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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0

MLB 컬럼

[야구공작소] '아메리칸 아이돌' 조 마우어의 이런 엔딩

포수로서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는 조 마우어(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포수로서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는 조 마우어(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엠스플뉴스]

 

지난 12월 18일(현지 시각) 미네소타 주(이하 미네소타)의 어느 고등학교는 깜짝 행사 준비로 분주했다. 모교를 방문하는 야구 선수를 위한 행사였다. 이를 위해 가족은 물론 모교에서 근무 중인 학창 시절 친구, 미네소타 트윈스(이하 트윈스)의 선배 선수 그리고 미네소타의 주지사까지 동원됐다. 이들이 기다린 주인공은 바로 얼마 전 15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친 트윈스의 포수 조 마우어였다.

 

한 사람만 몰랐던 깜짝 행사는 공식일정이 마무리될 쯤 시작됐다. 연단 옆 대형스크린에서 미네소타 주지사 마크 데이턴이 등장했다. 그는 축하인사와 함께 12월 18일을 ‘조 마우어 데이’로 선포했다.

 

조 마우어(사진 중간)와 트윈스의 영구결번 선배들. (사진 왼쪽부터)톰 켈리, 토니 올리바, 버트 블라일레븐, 켄트 허벡(사진=미네소타 트윈스 공식 트위터)

조 마우어(사진 중간)와 트윈스의 영구결번 선배들. (사진 왼쪽부터)톰 켈리, 토니 올리바, 버트 블라일레븐, 켄트 허벡(사진=미네소타 트윈스 공식 트위터)

 

이때만 해도 어리둥절해했던 마우어는 단상으로 초대된 트윈스 선배들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행사의 숨겨진 의미를 깨닫고 웃었다. 이날 마우어를 축하하러 온 선배는 톰 켈리, 토니 올리바, 버트 블라일레븐, 켄트 허벡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트윈스의 누구도 쓸 수 없는 등번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구단이 마우어의 등번호 7번을 영구결번한다는 소식은 선배인 허벡이 전했다. 같은 미네소타 출신인 허벡은 트윈스에서만 뛰며 월드시리즈 우승도 일궈낸 프랜차이즈다. 마우어와 비슷한 선수 생활을 보낸 선배였기에 특별함이 더했다. 이로써 마우어는 트윈스의 9번째 영구결번자가 됐다. 전구단 영구결번인 재키 로빈슨의 번호를 포함한 수다.

 

마우어가 포수를 포기하고 성적이 하락세를 탄 2014년 이후 호사가들은 갑론을박을 펼쳤다. 그의 커리어를 대표하는 포지션은 무엇인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수 있을지에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그들도 부정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마우어가 트윈스를, 더 나아가 한때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였다는 점이다. 이 글에선 마우어를 둘러싼 지루한 커리어 논쟁은 잠시 뒤로 하고, 그의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지친 트윈스 팬들을 달래준 천재소년

 

2001년 전체 1번으로 트윈스에 입단한 조마우어(사진=미네소타 트윈스 공식 YOUTUBE)

2001년 전체 1번으로 트윈스에 입단한 조마우어(사진=미네소타 트윈스 공식 YOUTUBE)

 

마우어는 1983년 미네소타 주의 세인트 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부터 시작해 친형들까지 3대가 모두 야구를 한 야구인 집안이었다. 그의 유년 시절 미네소타엔 풋볼팀 바이킹스와 야구팀 트윈스만 존재했다. 우승 경험이 있는 건 트윈스 뿐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풋볼, 농구, 야구 모두에서 두각을 드러냈지만 선택한 것은 야구였다. 트윈스의 1991년 우승퍼레이드를 보며 자란 마우어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마우어의 다재다능함은 유명했다. 어떤 종목을 선택했어도 프로 선수는 됐을 것이라는 스카우트의 발언은 빈말이 아니었다. 그는 2,3학년 때 주 올스타에 선정됐던 포인트가드였다. 입학하자마자 학교 풋볼팀을 사상 처음으로 주 챔피언으로 만들었고, 2년 연속 챔피언십에 올린 쿼터백이었다.

 

타자로서도 대단했다. 고등학교 4년간 삼진 단 한 개를 기록했고 매년 타율 0.500 이상을 기록했다. 야수로서, 포수로서 완벽한 툴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단숨에 드래프트 전체 1번 후보로 거론됐다. 풋볼에서 전미 올해의 선수상을 받고, 야구 국가대표를 경험해 본 몇 안 되는 고등학생 선수 중 하나가 마우어였다.

 

한편 마우어가 진로를 고민하던 2001년, 미네소타 연고 팀들은 제각기 다른 상황 속에 있었다. 5년 연속 플레이오프 무대에 진출한 풋볼팀 바이킹스, 케빈 가넷이란 신성과 함께 4년 연속 플레이오프 무대에 오른 농구팀 팀버울브스와는 달리 야구팀 트윈스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1996년 장기계약을 맺은 커비 퍼켓의 이른 은퇴 이후 칼 폴라드 구단주는 큰돈을 쓰기 꺼렸다. 구장 신축 문제로 지역 사회와 갈등을 겪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트윈스의 연고지 이전 및 해체까지도 고민하던 시기였다.

 

이때 나타난 것이 미네소타 최고 유망주 마우어다. 그는 이미 대학풋볼 명문인 플로리다 주립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리고 야구는 트윈스가 아니면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다분히 그 해 전체 1번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트윈스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미네소타의 스포츠 팬은 열광했고, 트윈스는 자연스레 전체 1번으로 마우어를 지명했다.

 

마우어를 지명하기 직전까지 트윈스는 7년간(1994~2000년) 한 번도 지구 4위 이상을 기록하지 못하며 침체기에 빠져있었다(4-5-4-4-4-5-5위). 그런데 트윈스는 이 이후로 호성적을 거두기 시작했다. 이 때는 에이스 브래드 래드키를 필두로 요한 산타나, 토리 헌터 같은 유망주가 활약했다. 마우어가 지명된 2001년부터 반등을 시작해 2002, 2003년은 2년 연속 지구 우승을 한 것이다(2-1-1위).

 

좋은 성적과 때마침 찾아온 메이저리그의 전성기가 맞물려 트윈스의 구단 가치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하지만 여전히 내실은 좋지 못했다.

 

 

포브스에서 발표한 트윈스 구단 가치 평가

포브스에서 발표한 트윈스 구단 가치 평가

 

 

*포브스의 구단 가치 평가는 매년 초 2~3월에 이뤄진다. 2005년 영업이익은 조사 불가. 단위는 백만 달러

 

미국 유명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의 트윈스는 좋은 성적에도 영업이익이 들쭉날쭉했다. 하지만 2005년 마우어가 첫 풀타임 시즌을 치른 후부터 구단의 영업이익은 안정적으로 증가했다. 물론 개인 만의 성과는 아니지만 그의 합류가 팀에 큰 보탬이 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언론이 2009년 개장한 트윈스의 새 구장 타깃필드를 두고 ‘마우어가 지은 집’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의 데뷔 후 트윈스는 더는 연고지 이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미네소타의 다른 스포츠 팀들이 갈수록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사이 트윈스는 지역을 대표하는 팀으로 성장했다. 그 안에서 마우어는 미네소타를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한때 지역을 떠날지 고민하던 구단이 지역을 대표하며 안정적 수익을 내는 구단으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미네소타를 넘어 아메리칸 아이돌로 

 

조 마우어의 아메리칸 아이돌 시절(사진=미네소타 트윈스 공식 트위터)

조 마우어의 아메리칸 아이돌 시절(사진=미네소타 트윈스 공식 트위터)

 

마우어는 앞서 말한 만화같은 데뷔, 유망주 시절 받은 평가로 데뷔 전부터 야구팬들에게 많은 기대를 받았다. 데뷔 3년 차인 2006년엔 아메리칸리그 최초로 포수 타격왕에 등극해 팬들의 기대를 실현했다. 기대를 실력으로 보답한 것이다. 유명 스포츠 매체는 그에게 아메리칸 아이돌이란 별명까지 선사했다.

 

잘생긴 백인,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정받은 리더십, 스타가 됐음에도 팀동료 저스틴 모노와 함께 살며 보여준 검소함까지. 트윈스에 관심 있는 팬만 알던 마우어의 평소 모습은 전국적으로 퍼져 그를 진짜 아메리칸 아이돌로 만들었다. 결혼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여성 팬들의 지지도 한 몸에 받았다.

 

야구계 여러 선배의 찬사도 마우어의 유명세에 날개를 달아줬다. ‘철인’ 칼 립켄 주니어는 마우어의 타격 자세를 ‘포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자세’라고 평가했다. 현재 시카고 컵스 감독으로 재직 중인 조 매든 또한 이 시절 마우어를 두고 ‘신이 설계한 포수가 있다면 그것은 조 마우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정점은 MVP를 수상했던 2009년이다. 그 해 마우어는 포수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며 주요 공격 지표에서 1위를 달성한 공수겸장 그 자체였다. 아쉬웠던 장타력도 폭발했다. 홈런을 28개나 기록하며 절정의 공격력을 뽐냈다. 그러면서 본인의 장점은 극대화했다.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포수타율과 출루율 기록을 갈아치웠고 포수로서는 역대 최초로 양대 리그 통합 타격왕이 됐다. 포스트시즌에서도 타율 0.417에 OPS 1.000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조 마우어의 완벽했던 2009년

138경기 191안타 94득점 96타점 28홈런 4도루

타율 0.365, 출루율 0.444 장타율 0.587, OPS 1.031

 AL MVP, 타격왕(ML 전체 1위), 포수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 올스타

 

이 시기 마우어의 스타성은 상업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었다. 그 해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만이 할 수 있는 유명한 게임의 표지모델이 된 것은 물론, 야구, 미네소타와 무관한 상업 광고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음 해엔 득표수 1위를 기록하며 올스타에 뽑혔다. 이때 기록한 537만 표는 당시 기준으로 역대 3위 기록이다. 그를 앞선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명예의 전당이 예약된 전국구 스타였던 1994년의 켄 그리피 주니어, 2009년의 알버트 푸홀스다. 올스타 최다 득표, 1위를 다투는 유니폼 판매 순위. 달라진 마우어의 위상을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끝내 넘지 못한 뉴욕 양키스와 뇌진탕

 

이런 활약과 스타성에도 트윈스와 마우어는 결코 최고가 될 순 없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전력과 상품가치를 가진 뉴욕 양키스 때문이었다. 마우어는 선수 생활 동안 네 번의 포스트시즌을 경험하고 세 번의 시리즈에 출장했다. 그리고 2006년을 제외하면 모두 양키스에 가로막혔다. 마우어가 뛴 포스트시즌에서 트윈스는 양키스를 상대로 0승 7패를 기록했다.

 

야구 외적으로도 마우어의 상대는 양키스 선수였다. 마우어의 스타성으로도 구단 가치가 5배 넘게 차이 나는 양키스에서 뛰는 선수를 넘을 수 없었다. 스폰서 금액은 알렉스 로드리게스에게 밀렸고, 유니폼 판매량은 데릭 지터에게 밀렸다. 마우어가 양키스 선수였다면 커리어나 상업적 측면에서나 더 나은 결실을 얻었으리라고 말한 기자도 있었다.

 

마우어에게 핀스트라이프를 입는 선택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0년 3월, 마우어의 FA가 1년 남은 시점에서 양키스가 그를 강하게 원했다. 당시 양키스는 노쇠하던 호르헤 포사다를 지명타자로 쓰고, 새로운 양키스의 안방마님으로 마우어를 앉히길 바랐다. 과거 마우어가 뉴 양키스타디움에 대해 좋은 구장이라고 말한 것조차 화제가 될 정도로 팬과 언론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렇지만 마우어의 선택은 고향 미네소타였다. 트윈스도 8년 1억 8400만 달러를 제시하며 그 선택에 보답했다. 언론의 예상보단 낮은 금액이었지만 역대 포수 중에선 최고액이었다. 재계약 소감으로 그는 미네소타와 트윈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며 우승을 다짐했다. 자연스레 미네소타에서 마우어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마우어와 트윈스의 행복한 시간은 5년을 채 가지 못했다. 한 시즌에 140경기 이상 출전한 것이 2시즌 밖에 없을 정도로 부상을 달고 살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게다가 트윈스엔 이미 장기계약을 맺은 선수가 부상으로 일찍 은퇴한 기억이 있다. 1990년대 퍼켓이 녹내장으로 일찍 은퇴하며 미네소타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구단이 떠올린 방안은 포지션 변경이었다. 마우어는 유망주 시절부터 포수치곤 큰 체격(196cm, 102kg)을 가지고 있어 포지션 변경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왔다. 포수보다 부상 위험이 낮은 1루수가 제격이었다. 마우어는 장기계약이 시작된 2011년부터 1루로 나오기 시작했다. 부질없는 노력이었다. 2009년 만개한 것만 같았던 마우어의 홈런은 새 구장에서 완전히 실종됐다. 2013년 파울 타구에 맞아 생긴 뇌진탕은 치명적이었다. 2014년부턴 포지션을 1루로 완전히 전환했지만 결국 뇌진탕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는 은퇴 소감에서 뇌진탕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이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때라고 말했다.

 

트윈스의 영원한 7번 조 마우어

 

올해를 끝으로 트윈스에서 7번은 영원히 사용할 수 없다.(사진=미네소타 트윈스 공식 트위터)

올해를 끝으로 트윈스에서 7번은 영원히 사용할 수 없다.(사진=미네소타 트윈스 공식 트위터)

 

17년간 이어진 트윈스 역사의 한 권은 주인공 마우어의 선택으로 마무리됐다. 그의 커리어를 하나의 작품으로써 평가한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흔히 야구를 소재로 한 소년만화는 주인공이 열악한 조건 속에서 팀을 성장시켜, 함께 우승에 성공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마우어의 시작도 마치 야구 만화의 주인공과 같았다. 하지만 그의 결말은 현실적이고 씁쓸한 새드엔딩이었다. 이런 면에서 트윈스 팬들에게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달성한 퍼켓의 시대보다 그러지 못한 마우어 시대는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작품엔 이런 끝맺음도 있는 법이다.

 

17년간 써 내려간 마우어의 행보를 보며 메이저리그 팬들은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고향팀이 아니면 야구를 하지 않겠다는 드라마틱한 시작, 포수로서 타격왕, MVP까지 수상한 클라이맥스, 최강팀의 벽과 부상에 좌절하는 안타까운 끝맺음까지. 17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마우어의 선택은 항상 미네소타와 트윈스였다. 한결같았던 주인공 마우어와 다채로웠던 17년은 트윈스 시리즈의 절판을 막고 떠났던 팬덤까지 불러모았다.

 

마우어가 은퇴 후 무슨 일을 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미네소타에서 나고 자라 동네 친구와 결혼하고, 자식까지 쌍둥이로 낳은 뼛속까지 미네소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은퇴 후에도 미네소타에 머물며 팀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건 당연해보인다. 퍼켓을 보며 야구선수의 꿈을 꾸고 성장했던 마우어처럼 그를 보며 자란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하길 바란다.

 

 

조 마우어 통산 기록

1858경기 2123안타 1018득점 923타점 143홈런 52도루

타율 0.306, 출루율 0.388 장타율 0.439, OPS 0.827

AL MVP(2009), 타격왕(2006,2008,2009), 골드글러브 3회, 실버슬러거 5회, 올스타 6회

 

출처 : Baseball Reference, Fangraphs, MLB.com, Twin Cities Pioneer Press

 

야구공작소

김동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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