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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R.I.P. 필 니크로, 너클볼의 전설

필 니크로(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필 니크로(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엠스플뉴스]

 

현실 야구에서 가장 마구(魔球)에 가까운 구종은 너클볼(Knuckle ball)이다.

 

너클볼은 손가락을 구부린 채 야구공을 잡고 마지막 순간에 손끝으로 밀어 던짐으로써 공의 회전을 의도적으로 억제하는 구종이다. 야구공이 거의 회전하지 않는 상태로 날아가면 불규칙한 공의 표면이 공기 저항을 받으면서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메이저리그급 타자라도 제대로 구사한 너클볼을 예측하고 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전성기 시절 R.A. 디키의 고속 너클볼. 제구라는 요소를 빼고 단순히 구위만 놓고 비교했을때 야구에서 가장 위력적인 단일 구종인 너클볼은 회전수가 거의 없는 공이다(영상=MLB.com)

전성기 시절 R.A. 디키의 고속 너클볼. 제구라는 요소를 빼고 단순히 구위만 놓고 비교했을때 야구에서 가장 위력적인 단일 구종인 너클볼은 회전수가 거의 없는 공이다(영상=MLB.com)

 

문제는 너클볼을 구사하는 투수도 공이 어디로 갈지 거의 예측할 수 없으며, 그 공을 받는 포수 역시 제대로 된 포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완벽(이란 단어가 이 공에 적합한진 의문이지만)하게 구사할 수만 있다면 너클볼 하나만 던져도 메이저리그를 평정할 수 있다. 그것을 몸소 증명한 이가 '전설의 너클볼러' 필 니크로(1939년 4월 1일~2020년 12월 26일)다.

 

니크로는 오하이오주에서 광부이자 세미프로 야구선수였던 필립스 니크로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뒷마당에서 동생 조 니크로(통산 221승)와 함께 아버지로부터 너클볼을 전수받은 그는, 만 20세였던 1959년 지역 선수 선발 캠프에 참가해 월급 250달러에 하루 식비 2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밀워키 브레이브스(現 애틀랜타)와 계약을 맺고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프로 데뷔 첫해 D리그에서조차 고전했던 니크로는 이듬해부터 마이너리그 상위 레벨에서도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투수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풀타임 선발 투수로 자리 잡는 데에는 거의 8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가르치는 것은 10분이면 충분하지만, 배우는 데에는 평생이 걸린다는 너클볼의 특수성 때문이다.

 

필 니크로의 통산 성적(자료=베이스볼 레퍼런스)

필 니크로의 통산 성적(자료=베이스볼 레퍼런스)

 

너클볼은 제구하기 까다로울뿐더러, 포수 미트에 도달하기 전까지 공이 세 바퀴 이상 회전하기라도 한다면 느리고 치기 쉬운 배팅볼로 전락한다. 따라서 연습 투구에서 재미로 던지는 게 아니라, 실전에서 써먹기 위해선 문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대로 구사할 수 있다면 팔에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만 28세란 늦은 나이에 11승 9패 207이닝 평균자책점 1.89로 NL 평균자책점 부문 1위를 기록하며 풀타임 선발 투수로서 첫 시즌을 보낸 니크로는,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1987년 만 48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그 기간 동안 니크로는 MLB 역대 4위(라이브볼 시대 1위)인 5404이닝을 던지며, 통산 318승 274패 3342탈삼진 평균자책점 3.35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쌓았다.

 

MLB 역사상 300승과 3000탈삼진을 동시에 달성한 투수는 니크로를 포함해 10명(월터 존슨, 그렉 매덕스, 로저 클레멘스, 스티브 칼튼, 놀란 라이언, 게일로드 페리, 돈 서튼, 톰 시버, 랜디 존슨) 뿐이다. 특히 만 40세 이후 1977이닝을 소화하면서 121승을 기록한 것은 40세 이후 기준으로 역대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필 니크로의 너클볼(자료=MLB.com)

필 니크로의 너클볼(자료=MLB.com)

 

하지만 그가 늦은 나이까지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너클볼 때문만은 아니었다. 니크로의 대단한 점은 그 자신이 너클볼 투수의 대명사이면서도, 너클볼 투수의 태생적인 한계(폭투가 많고, 도루 허용이 쉽다는 점)를 상당 부분 극복해냈다는 것이다. 그는 끊임 없는 노력으로 너클볼러임에도 폭투와 도루 허용을 일반 투수에 가까울 만큼 억제해냈다.

 

이러한 그의 면모는 통산 투수 부문 골드글러브 5차례 수상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이런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천시받는(과거 너클볼에 대한 인식은 좋지만은 않았다. 타자들은 물론 기자들도 정정당당하지 못한 투구라고 생각했다) '너클볼러'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니크로는 1997년 5번째 투표 만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클볼러들이 받는 이런 취급은 그들끼리 더 뭉치도록 했다. 2012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너클볼!(Knuckleball!, 2012)에서 비춰준 선후배 너클볼러들의 관계는 흡사 가족과도 같다. 그들은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도 정기적으로 모여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주고, 서로를 북돋아 준다. 그 중심에는 니크로가 있었다.

 

필 니크로(왼쪽)와 R.A. 디키(오른쪽)(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필 니크로(왼쪽)와 R.A. 디키(오른쪽)(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니크로는 그의 동생인 조 니크로(초창기에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던지는 투수였으나 커리어 중반부터 어린 시절 배운 너클볼을 다시 던지면서 형과 함께 MLB 539승을 합작했다)를 시작으로 찰리 허프(통산 216승), 팀 웨이크필드(통산 200승) 등 후배 너클볼러들을 길러냈다. 그리고 그 명맥은 R.A. 디키(2012 NL 사이영상)를 거쳐 스티븐 라이트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라이트가 금지약물(PED) 복용이 적발되고, 보스턴으로부터 방출된 2019년 이후 현재 메이저리그에는 단 한 명의 전문 너클볼러도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2020년 12월 27일(한국시간), 오랫동안 암투병을 해온 니크로가 수면중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면서 너클볼은 사장될 위기에 처해있다.

 

새 너클볼러에게 제대로 된 너클볼 그립과 노하우를 전수해줄 수 있는 그의 영면은 단순히 레전드 한 명이 세상을 떠난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필 니크로의 커리어

통산 318승 274패 5404이닝 3342탈삼진 ERA 3.35 WAR 97.0승

* NL 올스타 선정 5회

* NL 투수 골드글러브 5회

* 다승 1위(2회), 평균자책 1위(1회), 탈삼진 1위(1회)

* 노히트 노런 (1973년 8월 6일)

* 로베르토 클레멘테상 (1980년)

* 애틀랜타 영구결번 (No. 35)

* 애틀랜타 명예의 전당

* MLB 명예의 전당(1997년 80.34%)

 

MLB 사무국장 롭 만프레드는 "니크로는 가장 독특하고 기억에 남는 투수 중 한 명이었다. 지난 세기 동안 니크로 외에 5404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없었다. 그의 너클볼은 그를 5번의 올스타 선정과 3번의 20승 시즌, 통산 300승 그리고 명예의 전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니크로는 우리에게 가장 상냥한 야구인 중 한 명으로 기억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항상 야구를 사랑했으며, 우리는 그를 깊이 그리워할 것이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해서 니크로의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팬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현우 기자 hwl05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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