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기대감’에 들썩이는 인천 서구 대곡, 일부 주민 “대박은 고사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고려”

-수억 원의 토지를 약정금 몇 백만 원 받고 넘긴 주민들. “약정 해지하자고 했더니 소장 날아와”

-1% 약정액으로 막대한 규모 토지 매입한 W사를 둘러싼 의혹들. 대표이사는 아내 명의, 본점 주소는 공동 사무실, 수천억 원대 도시개발 사업 최초 제안한 김 아무개 대표는 국세 체납자

-건설업계 관계자들 “주민들이 받는 땅값이 오르면 분양가가 오른다? 분양가는 별 차이없고, 대행사와 시행사 파이만 줄어들 뿐”

인천 서구 대곡3-2구역 도시개발사업 토지이용계획도
인천 서구 대곡3-2구역 도시개발사업 토지이용계획도

인천시 서구 대곡동. 대곡(大谷)은 ‘큰 골’이란 뜻이다. 대곡에 속한 마을들이 산세가 험한 가현산의 동남편 큰 골에 자리 잡은 데서 유래했다. 지금도 대곡은 개발과는 담을 쌓은 채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 대곡 주민 사이에 희망이 생긴 건 최근이다. 지역 부동산 업자는 “수십 년간 미뤄왔던 도시개발사업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며 “대곡3-2구역 개발사업 소식이 들리면서 마을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일부 대곡 주민은 “그 반대”라는 입장이다. 한 주민은 “대박은 고사하고, 거액의 소송전에 휘말려 극단적 선택까지 고려할 지경이다. 주변에선 우리가 땅값으로 수억 원 이상씩 받은 줄 알지만, 정작 손에 쥔 건 땅값의 1%도 안 되는 푼돈”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 일부 주민의 반발 “토지 대금 1%로 대규모 토지 확보한 W사,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 -

W사와 지역 주민이 맺은 토지계약서. 8억4천만 원의 토지를 확보하며 W사가 지역 주민에게 준 돈은 약정금 570만 원이었다. 만약 지역 주민이 W사와 맺은 약정 계약을 해지한다면 약정금 570만 원만 돌려주면 될까. 계약서엔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하고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지역 주민이 받기로 한 계약금은 8천400만 원이었다.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한다면 1억6천800만 원을 W사에 줘야 한다는 뜻이다.
W사와 지역 주민이 맺은 토지계약서. 8억4천만 원의 토지를 확보하며 W사가 지역 주민에게 준 돈은 약정금 570만 원이었다. 만약 지역 주민이 W사와 맺은 약정 계약을 해지한다면 약정금 570만 원만 돌려주면 될까. 계약서엔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하고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지역 주민이 받기로 한 계약금은 8천400만 원이었다.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한다면 1억6천800만 원을 W사에 줘야 한다는 뜻이다.

대곡 주민 A 씨는 2020년 하반기 부동산개발회사 W사 김 아무개(57) 대표로부터 “땅값을 후하게 쳐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김 대표가 시세보다 높은 ‘평당 200만 원 이상 주겠다’고 약속했다. 김 대표가 대곡 인근 지역인 김포에서 오래 살았고, 개발사업도 많이 했던 사업가로 알려져 순순히 계약서에 사인했다.” A 씨의 얘기다.

시간이 흐르면서 A 씨처럼 김 대표와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한 주민이 늘었다. 주민 B 씨는 “김 대표가 자기를 대곡3-2구역 도시개발을 이끄는 핵심 중의 핵심인 것처럼 말하고 다녔다. 언론에서도 김 대표를 ‘도시개발조합장’이라고 소개해 최근까지 나조차 김 대표를 조합장으로 알고 있었다” “가뜩이나 김 대표와 유명 정치인이 매우 가깝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김 대표를 ‘꽤 힘 있는 사람’으로 아는 주민이 많았다”고 전했다.

1·2구역으로 나눠 추진되는 대곡3구역 도시개발은 환지 방식에 의한 민간 주도 개발이다. 대부분의 민간주도 도시개발이 그렇듯 실질 자금은 시공사가 댄다. 그에 앞서 토지매매, 보상, 각종 인허가, 조합 설립 등의 사업 초기 역할은 시행사 몫이다.

복수의 건설업계 관계자는 “누가 토지를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사업 성격과 시공사가 판이해진다”며 “토지주들과 맺은 계약서를 대형 건설사에 수수료를 받고 파는 ‘전문 토지 용역 회사’가 활개 치는 것도 토지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토지 확보에 비상이 걸린 건 또 다른 시행사인 G사가 나서면서다. 주민 C 씨는 “G사가 본격적으로 토지 계약에 나서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특히나 G사와 계약한 몇몇 주민의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보면서 앞서 김 대표와 계약했던 주민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고 회상했다.

“G사는 주민들에게 토지 대금의 10%를 계약금으로 지급했다. 반면 김 대표는 계약금이 아닌 토지대금의 1%가량을 약정금으로 줬다. 10억대의 같은 토지라도, 누구는 계약금으로 1억 원을 받고, 누구는 1천만 원을 받으면서 의문을 제기하는 주민이 하나둘 늘었다. 특히나 김 대표가 전체 토지매매액의 1%도 되지 않는 돈을 약정금으로 걸어놓고, 막대한 규모의 토지를 확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 대표를 가리켜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고 부르는 주민이 늘었다. 지금 식이라면 김 대표는 투자한 돈의 수백배를 벌게 될 거다.” C 씨의 얘기다.

결국 약정 계약에 불만을 품은 몇몇 주민이 W사에 계약 해지를 요구하며 갈등이 표면화됐다. 주민들은 W사에 보낸 내용증명에서 ‘부동산 매매약정 계약은 정상적인 계약금을 수령한 것이 아니므로 매매약정 계약 해지를 통보한다’고 밝혔다. 이에 W사는 내용증명을 보낸 주민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에 들어간 상태다.

- W사는 아내 명의, 본점 주소지는 공동 사무실, 수천억 원대 도시개발 사업을 최초 제안한 김 아무개 씨는 국세 체납자 -

법인 등기부등본상에 나와 있는 W사의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본점 사무실.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 이 사무실은 여러 사업자가 사무실을 쪼개 쓰는 공동 사무실이었다
법인 등기부등본상에 나와 있는 W사의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본점 사무실.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 이 사무실은 여러 사업자가 사무실을 쪼개 쓰는 공동 사무실이었다

주민과 W사의 갈등이 소송전으로 비화한 가운데 지역 사회엔 W사 김 아무개 대표와 관련해 여러 소문이 돌고 있다. 우선 김 대표가 W사의 실제 대표가 아니며 W사 역시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주장이다. 과연 사실일까.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W사의 자본금은 1천만 원이다. 대표이사는 알려진 것과 다르게 김 대표가 아니라 이 아무개 씨였다.

법인 등기부등본에 적시돼 있고, 평소 김 대표 명함에 찍힌 W사의 주소도 서울 강남구 역삼동 J빌딩이 아니었다.

취재 결과 법인 등기부등본상 W사 대표이사로 명기된 이 아무개 씨는 김 대표의 아내로 밝혀졌다. 현장 방문한 역삼동 J빌딩 역시 여러 소호 사업자들이 함께 쓰는 공동 사무실이었다. 공동 사무실 관계자는 "W사가 이곳에 입주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W사에 직접 물어보라"며 말을 아꼈다.

이와 관련해 김 대표는 “(취재한 내용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김 대표는 “W사의 대표가 아내로 돼 있는 게 맞다. 그러나 다른 사업체는 내가 대표자로 돼 있다”“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J빌딩 사무실은 사업장 주소로만 쓰고, 실제 사무실은 경기도 김포 마산동에 있다”고 밝혔다.

대곡 주민들은 “김 대표가 자신을 ‘도시개발사업조합장’으로 소개하고, 마치 도시개발조합이 실재한 것처럼 속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일간지 인터뷰에서 김 대표는 ‘대곡3구역 도시개발조합장’으로 소개됐다. 김포 마산동의 W사 사무실을 찾았을 때도 입구엔 ‘대곡3구역 도시개발조합’이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

정식 설립 전(前) 도시개발조합은 반드시 '가칭'과 '추진위원회'란 단어를 동반해 쓴다. '가칭 000도시개발조합 추진위원회'식이다. 정식 설립된 도시개발조합으로 오인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취재 결과 김 대표는 도시개발 조합장이 아니었다. 게다가 대곡3구역엔 도시개발조합이 설립조차 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일간지에서 날 조합장으로 소개한 걸 몰랐다”고 했다. 사무실 입구의 현판에 대해선 “늘 '가칭'이란 단어를 붙인다"며 "(현판과 관련해선)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다”고 한발 물러섰다.

W사 김 아무개 대표는 2018년 1월 대곡동 소재 도로 70m2(약 21평)를 1천100만 원에 샀다. 도로를 산 뒤 김 대표는 토지주 자격으로 대곡동 3-2구역 도시개발을 이끄는 핵심 중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W사 김 아무개 대표는 2018년 1월 대곡동 소재 도로 70m2(약 21평)를 1천100만 원에 샀다. 도로를 산 뒤 김 대표는 토지주 자격으로 대곡동 3-2구역 도시개발을 이끄는 핵심 중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김포 지역 건설업계 관계자는 “김 대표의 형이 수 년전 부동산 개발과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현재 국외에 있다. 김 대표도 현재 국세 체납 상태인 것으로 안다”며 “대곡3-2구역 도시개발 같은 큰 프로젝트를 김 대표가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소릴 듣고 ‘진짜?’하고 되물은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 대표는 “국세가 지금 해결 안 된 부분이 있다”고 인정한 뒤 “형 얘기는 벌써 20년 전 얘기”라고 일축했다.

주민 A 씨는 “W사가 자본금 1천만 원의 회사인 걸 떠나 역삼동 사무실이 공동 사무실이고, 김 대표 아내가 W사의 대표이사인 걸 전혀 알지 못했다. 김 대표가 국세 체납자란 것도 소문으로만 들었지 사실인지 몰랐다. 대부분의 주민이 나와 같았을 것”이라며 “주민들을 위해 도시개발을 하겠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 주민들을 상대로 소송전을 펼칠 수 있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목소릴 높였다.

김 대표는 “주민들이 먼저 내용증명을 보내와 법적으로 누구의 말이 맞는지 따져보자는 의미에서 민사소송에 나섰을 뿐, 주민들을 압박하거나 겁박하려는 의도는 처음부터 없었다”며 “지금도 최대한 원만하게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취재 중 만난 법조계 관계자는 “W사와 토지주 사이에 체결한 매매계약(약정)서엔 계약금, 잔금과 함께 약정금을 따로 명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 계약은 계약금이 실제 지급됐을 때 성립되므로 애초부터 양자 사이의 계약은 효력이 없다는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땅을 가진 주민들은 더 많은 보상을 받고 땅을 팔길 원한다. 대행사나 시행사는 더 적은 보상으로 땅을 사고 싶어한다. 주민들이 땅값을 후하게 받으면 미래의 입주민들이 부담해야할 분양가가 올라가고, 싸게 팔면 분양가가 내려간다? 지극히 순진한 발상이다. 정직하게 말해 주민들이 가져가는 파이가 커지면 대행사나 시행사의 파이만 줄 뿐이다.”

박동희, 이근승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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