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대회에서 단 한 경기도 치르지 않고 순전히 ‘뽑기 운’으로 준결승전에 진출한 팀이 있다? 거짓말 같은 그 일이 올해 전국체육대회 고등부 야구에서 실제로 발생했다. 경북 지역에 내린 많은 비로 인해 16강전, 8강전 승자를 경기 대신 추첨으로 가리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포항야구장(사진=엠스플뉴스)
포항야구장(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경기’ 대신 ‘뽑기’로 승패를 가리는 야구가 있다?

경북 포항에서 진행 중인 제102회 전국체육대회 고등부 야구에서 나흘 연속 내린 많은 비로 인해 16강전 일부와 8강전 전체를 경기 대신 ‘추첨’으로 대체하는 촌극을 빚었다. 주최 측에선 ‘대회 일정상 다른 방도가 없다’고 설명하지만, 야구 종목의 특수성을 고려한 진행 방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체전은 아마추어 스포츠의 꽃이자 운동선수 한 해 농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중요한 대회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전면 취소됐던 전국체전은 올해도 대폭 축소돼 고등부 경기만 진행 중이다.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된 다른 종목과 달리 야구는 궂은 날씨 속에 정상적인 대회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경북 지역에 내린 많은 비로 개막 이틀째인 9일 하루에만 16강전 3경기가 모두 취소됐다. 취소된 경기는 하루 뒤인 10일에 정상 진행했지만, 11일에 다시 장대비가 내리면서 문제가 생겼다. 하루뿐인 예비일을 이미 소진한 주최측은 결국 11일 추첨으로 16강전을 진행했고 여기서 세광고가 경남고를, 마산용마고가 장충고를 꺾고 경기 없이 8강전 티켓을 손에 쥐었다. 같은 날 열린 8강전 추첨에선 포항제철고가 북일고를 제치고 4강에 올랐다.

이어진 12일에도 많은 비가 이어졌고, 이틀 연속 추첨으로 승자를 가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추첨 8강전에서는 대전고가 유신고를, 강릉고가 인천고를, 세광고가 마산용마고를 상대로 각각 승리해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세광고는 전국체전 개막 이후 실제 경기는 단 1경기도 치르지 않고 4강에 오르는 행운의 팀이 됐다. 반면 경남고, 장충고, 북일고, 유신고 등 전통의 강호 팀들은 제대로 경기도 못 해보고 탈락하는 불운을 맞았다.

대회를 주관하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측에선 “대회 일정상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KBSA 관계자는 “전국체전 대회 규정에 우천으로 경기 진행이 불가능할 경우 추첨으로 승리 팀을 정하게 돼 있다”면서 “전국체전은 야구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종목이 참여하는 대회다. 같은날 개막해서 같은날 폐막하고, 14일까지 모든 대회 일정을 진행해야 한다. 그래서 추첨 규정이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체전에 참가한 한 고교팀 감독은 “포항야구장의 배수가 전혀 안 돼서 운동장에 물이 가득 찬 상태였다. 전혀 경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했다. KBSA 관계자는 “10월에 이렇게 많은 비가 오는 건 처음 본다. 기다리는 데까지 기다리고, 물을 빨아들이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안 되서 추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전국체전 대회 진행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야구라는 종목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 없이 촉박한 대회 일정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한 지방 야구소프트볼협회 관계자는 “예비 구장을 정해놓고 동시에 경기를 진행하거나, 16강전을 미리 진행하고 대회에선 8강부터 진행하는 방법도 있다. 어린 선수들의 미래가 걸린 시합을 운에 맡기는 관행은 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궁금증 하나. 만약 4강전이 열리는 13일에도 계속 비가 오면 추첨으로 결승팀을 정하게 될까. 만약 결승전날 비가 오면 우승팀도 추첨으로 정하는 것은 아닐까. KBSA 관계자는 “비가 거의 그친 상태라 4강전 진행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만약 결승전 경기 진행이 불가능할 때는 규정상 ‘공동 우승’으로 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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