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사태로 KBO리그가 쑥대밭이 된 가운데, 야구계에선 언젠가부터 정지택 KBO 총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화기에는 전면에서 진두지휘하다 위기가 오자 뒤로 물러난 정 총재의 ‘귀청 터지는 침묵’은 과연 언제쯤 끝날까.

정지택 총재(사진=엠스플뉴스)
정지택 총재(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정지택 KBO 총재가 ‘귀청 터지는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NC발 코로나19 사태로 프로야구가 40년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겪는 와중에 리그 수장 총재가 어디서 뭘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취임 초기 전면에 나서 진두지휘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위기가 되자 뒤로 물러나 숨어버렸다는 지적이다.

NC 다이노스발 코로나19 사태의 시작은 지난 7월 8일. 서울 원정 숙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고 선수단 전원 PCR 검사를 시행했다. NC 선수와 외부인의 밀접접촉이 드러난 것도 이날이고, 구단이 KBO에 보고한 것도 이날이다.

공교롭게도 바로 이날 정지택 총재는 취임 첫 기자간담회를 예고했다. “최대한 캐쥬얼한 분위기에서 질의응답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려고 한다. 취임 이후 추진 및 시행해온 통합 마케팅 준비 및 리그 수익성 개선, 드래프트 제도 개선, 클린베이스볼 강화 등에 대해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며 19일 있을 자리를 홍보했다.

그러나 정 총재의 기자간담회 데뷔전은 다음날 NC 선수단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물거품이 됐다. 10일엔 두산에서 2명, NC에서 1명이 추가로 나왔고 역학조사 결과 1군 선수단의 절반 이상이 자가격리 대상으로 분류됐다. 두산과 NC는 ‘정상적인 경기가 어렵다’고 직간접적으로 하소연했고, 결국 긴급 실행위와 이사회를 거쳐 리그 중단이라는 초유의 결정이 나왔다.

야구계에선 이 과정에서 정지택 총재의 역할에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많다. 지방 A 구단 관계자는 “KBO에 NC 선수들의 외부인 접촉 사실 보고가 올라간 게 8일이다. KBO는 문제를 파악하고서도 역학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시간만 보냈다. 그 사이 각종 추문이 퍼지고 구단과 KBO의 은폐 의혹까지 불거졌다”면서 “지금에 와서 보면 엄청난 오판이었다. 최종 결정권자인 정지택 총재의 책임이 적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리그 중단이 결정된 이사회에서도 총재가 중재 역할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이사회에선 4개 구단이 리그 정상 진행을 주장했고, 4개 구단은 리그 중단 찬성 입장을 표했다. 사고 친 두산과 NC는 감히 직접적으로 리그 중단을 말하지는 못했지만 암묵적으로 중단 쪽에 기울었다.

찬성과 반대가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격론이 오간 이사회. 중재자로서 총재의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뼛속까지 두산맨인 정 총재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두산 편을 들기 부담스러웠던 것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침묵을 통해 묵시적으로 두산에 힘을 실어준 셈이란 의견도 있다. 결국 이사회는 리그 중단을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리그 중단은 프로야구를 향한 여론의 분노를 횃불에서 산불로 키운 최악의 결정이 됐다. 처음엔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일이 이제는 굴착기를 동원해도 못 막을 정도로 커졌다. 여론의 분노는 결국 올스타전을 나흘 앞두고 전격 취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이 과정에서 총재의 모습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KBO리그는 위기인데…오, 총재여 어디에 있는가

정지택 총재가 19일 열 예정이었던 기자간담회는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됐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정지택 총재가 19일 열 예정이었던 기자간담회는 코로나19 사태로 연기됐다(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구단들과 KBO 직원들 사이에서도 총재의 긴 침묵을 둘러싼 뒷말이 나온다. 지방 B 구단 팀장은 “취임 초기만 해도 정 총재는 의욕적으로 사무국 일을 지휘했다. KBO의 각종 활동 홍보도 이전 체제보다 훨씬 적극적이었다”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그런데 정작 리그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뒤에는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좋을 때만 나와서 얼굴을 비추고 정작 책임져야 할 순간에 숨는 건 리더의 자세가 아니다. 이번 사태도 결국은 KBO 구단과 이사회의 판단 착오로 일이 커진 것이고, 최종적인 책임자는 총재 아니겠나.”

KBO 내부에서도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한 KBO 관계자는 “새 총재가 꼼꼼하게 업무를 챙기는 스타일이라, 거의 매일 보고서를 올려야 한다. 올릴 내용도 없는데 보고를 위한 보고를 하려니 정작 해야 할 업무를 할 시간이 빠듯하다”고 하소연했다.

취재 결과 정 총재는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린 6월 사무실 근처 식당에 직원들을 불러 모아 점심 술자리를 여러 차례 가졌다. 우연찮게도 이날은 KT 1군 코치 중에 확진자가 발생한 날이었다. KBO 관계자는 “사무국 구성원들 한 명 한 명과 함께 식사하며 면담하는 자리였다. 인원 제한이 있어 4명씩 모이다 보니 자리가 잦았고, 술은 반주하는 정도였다”고 했다. 소식을 접한 지방 A 구단 관계자는 “이 시국에 술판을 벌인 구단과 선수도 문제지만, KBO도 별로 할 말은 없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영어권에서 쓰는 반어적 표현 중에 ‘귀청 터지는 침묵(deafening silence)’이란 말이 있다. 원래는 인종적, 성적 차별적 행태를 보고도 침묵하는 미국 백인 주류 사회를 비꼬는 표현이다.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는 “침묵은 권력의 최후 무기인가”라고 물었다. 책임 있는 권력자의 침묵은 비겁하다. 나서야 할 때 보이지 않는 정지택 총재의 침묵에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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