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23일 롯데 방문해 구단 고충 듣는 자리 가졌다

-롯데와 야구계 호소 외면해온 부산시, 시구 외 목적으로 야구장 방문은 이례적

-전국 최악의 야구장으로 꼽히는 사직구장, 리모델링과 구장 신축 가능할까

롯데 구단을 방문한 이병진 행정부시장(사진=부산시)
롯데 구단을 방문한 이병진 행정부시장(사진=부산시)

[엠스플뉴스=사직]

소닉붐 잃고 외양간 고친다. 프로농구 KT 소닉붐을 수원시에 뺏긴 부산시가 뒤늦게 연고지 프로스포츠팀 단속에 나섰다. 부산시의 달라진 자세가 향후 사직야구장 리모델링과 야구장 신축이란 결과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롯데 자이언츠 구단에 따르면 6월 23일 오후 부산광역시 이병진 행정부시장이 사직야구장을 방문해 이석환 대표, 성민규 단장 등 롯데 관계자들과 만났다. 박형준 부산시장의 국외 출장 일정으로 이날은 이 행정부시장과 권기혁 체육진흥과장, 송찬희 체육진흥과 스포츠산업팀장 등이 대신 방문했다.

부산시 고위 인사의 사직야구장 방문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롯데 관계자들조차 깜짝 놀랐다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롯데 관계자는 “과거 시장이 시구하러 야구장을 찾은 적은 있어도 구단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방문 자체만으로도 고무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부산시, 축구단 시작으로 야구단, 여자농구단 연쇄 방문…구단 목소리 듣고 정책에 반영한다

사직야구장 로고(사진=엠스플뉴스)
사직야구장 로고(사진=엠스플뉴스)

그간 야구장 관련 롯데와 야구계의 끊임없는 호소에도 귀를 닫고 외면했던 부산시가 뒤늦게 태세전환한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농구단 KT 소닉붐의 수원 이전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KT 농구단은 이전부터 부산시의 오랜 비협조와 무관심에 연고 이전을 검토해왔다. 연고지 이전 소문이 퍼지자 그때야 KT 측과 만나 훈련장 부지 제공을 제안하는 등 협상에 임했지만, 결국 KT는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이후 부산시는 농구단 모기업 KT를 향해 저주에 가까운 말을 쏟아내며 강하게 비난했지만, 부산시를 향한 농구팬과 시민들의 비판을 피할 순 없었다.

부산시도 이날 사직구장 방문이 ‘KT 충격’ 때문이라고 시인했다. 이병진 행정부시장은 롯데와 만난 자리에서 “부산에 연고를 두고 있던 KT 농구단 이전이 생각보다 충격이 크다” “이 일을 계기로 부산을 스포츠도시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시에 이야기할 부분이 있다면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KT 농구단의 연고지 이전을 계기로 부산 스포츠 산업 정책과 시설 투자 등을 전면 재검토하고 대안을 만들 예정이다. 박형준 시장은 농구단 이전 관련 긴급회의 자리에서 부산시 공무원들의 소통 부재를 크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야구장 방문도 박 시장이 주문한 ‘소통 강화’의 일환이다.

부산시는 야구장 방문에 앞서 21일엔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 클럽하우스를 방문했다. 이날 박형준 부산시장은 아이파크 구단 관계자와 만나 축구 전용구장 건립, 구덕운동장 시설 개·보수, 시설 사용료 감면, 경기 홍보 지원 등을 논의했다. 이어 23일 롯데 사직구장과 여자프로농구 BNK 썸의 클럽하우스가 있는 BNK연수원 방문이 이어졌다.

부산시는 앞으로도 프로구단 방문을 정례화해 구단들과 소통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 구장 방문에서 수렴한 구단들의 의견을 이달 말 발표 예정인 ‘부산시 스포츠산업 발전 종합계획’에도 반영할 예정이다. 농구단을 잃고서야 뒤늦게 연고 프로스포츠단의 소중함을 깨달은 부산시다.

이석환 롯데 대표이사는 이 행정부시장에게 “사직야구장은 유서 깊은 야구장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시 시설사업소와 협업해 배수 공사 등을 진행하며 40년 동안 관리 잘해왔다. 다만 팬이나 시민들이 사직구장을 찾았을 때 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것과 관전의 편의성 부분은 아쉽다”고 의견을 전했다.

이어 “구단 입장에서는 야구장 인프라 구축엔 여유가 없는 상태”라며 야구장 문제 해결이 부산시의 몫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대표는 “팬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성적이니깐 경쟁력 갖는 강한 팀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팬들의 자존심 회복시키고 긍지 느끼게 하려면 결국 야구를 잘하고 강팀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구장 관련해선 아직 (구단의) 구체적인 입장은 없지만 부산시민과 야구팬들을 위한 생각들이 모여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면서 “부산시가 야구장 건축에 신경 써준다면 저희는 경쟁력 있는 구단, 이기는 팀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어 서로 윈윈하게 될 것”이라 밝혔다.

농구단이 부산 떠났다면 야구단, 축구단도 떠날 수 있다...뒤늦게 단속 나선 부산시

사직야구장은 전국 최악의 구장으로 꼽힌다(사진=엠스플뉴스)
사직야구장은 전국 최악의 구장으로 꼽힌다(사진=엠스플뉴스)

사직야구장은 ‘구도’ 부산과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명소지만, 한편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노후하고 열악한 야구장으로 꼽힌다. 1985년 개장해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1964년), 잠실야구장(1982년) 다음으로 오래됐다.

사직구장은 비가 오면 물이 줄줄 새고, 초대형 바퀴벌레가 창궐한다. 불펜 문을 열다 선수 손이 찢어지고 펜스 철망을 잡다 손바닥 근육이 손상되는 부상도 끊이지 않는다. 관중 입장에서도 동선과 좌석 배치 등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부산시는 롯데와 야구계의 호소에는 귀를 닫은 채 매년 수십억 원의 비싼 구장 사용료만 챙겼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신구장’ ‘돔구장’을 외치다 당선된 뒤엔 나 몰라라 했다.

그나마 농구단 이전 사태로 정신이 번쩍 든 부산시가 이제라도 전향적 자세를 취하게 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박형준 시장 취임 이후 부산시는 12개 장기표류 사업 관련 올해 안에 해법을 찾기로 했는데, 이 중에 사직야구장 재건축도 포함돼 있다. “사직구장 근처를 스포츠 클러스터로 조성하겠다”는 행정부시장 말로 미뤄보면 부산시는 구장 리모델링과 부지 활용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임기가 1년 남짓인 박형준 시장으로선 재선을 위해서라도 발 빠르게 움직여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필요가 있다. 롯데 핵심 관계자도 “박 시장 당선 이후 부산시와 관계가 이전보다 우호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꽉 막혀 있던 야구장 문제가 빠르게 해결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물론 중요한 건 말이나 계획이 아닌 실천이다. 야구장 문제에 정통한 야구 관계자는 “프로스포츠단의 연고지 이전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라며 “프로스포츠 천국인 미국에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지역으로 연고 이전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도시들은 지역에 스포츠팀을 유치하려고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경쟁을 벌인다”고 지적했다.

KT 농구단이 연고지를 옮겼다면 롯데 자이언츠도, 부산 아이파크도 다른 지자체로 옮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가뜩이나 돈 먹는 하마가 된 프로야구단 사업이다. 과거에는 사회공헌 차원에서 야구단을 운영했지만 시대와 환경이 바뀐 지금은 점점 많은 그룹이 야구단을 왜 운영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적자를 감수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운영하는 대기업이 적지 않다.

여기에 지난해 터진 코로나19 사태로 무관중 경기가 계속되면서 구단들의 고통이 더욱 커졌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가 없으면 버티기 어렵다. 구단을 해체하거나 매각하고 연고지를 옮기는 움직임이 앞으로도 얼마든 일어날 수 있는 실정이다. 더 많은 소를 잃지 않으려는 부산시의 외양간 단속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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