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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선발승’의 시대 [엠스플 KBO]

  • 기사입력 2021.05.15 04:50:02   |   최종수정 2021.05.15 0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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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호투에도 단 1승도 못 거둔 라이블리, 평균자책 1점대에 승리는 1승뿐인 카펜터

-선발투수 승리 기록, 선발이 혼자 9이닝 책임졌던 초창기 야구의 산물

-선발 비중 줄고 ‘오프너’ 등장하며 승리 기록의 가치 더욱 하락해

-영리해진 구단들, 승리 기록 대신 투구내용의 퀄리티 따진다

 

올시즌 유독 승운이 따르지 않는 라이블리(사진=삼성)

올시즌 유독 승운이 따르지 않는 라이블리(사진=삼성)

 

[엠스플뉴스]

 

삼성 라이온즈 벤 라이블리는 올 시즌 7경기에 등판해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4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를 작성하고 3경기에서 6이닝 이상-1실점 이하로 잘 던졌지만 시즌 성적은 0승 1패다. 구원투수인 우규민(3승), 심창민(2승), 양창섭과 임현준이 1승씩 가져갈 동안 1승도 못 올렸다. 그리고 11일 KT전에서 경기 시작하자마자 부상까지 당했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 정도로 시즌 초반 운수가 사납다.

 

운 나쁘기로는 한화 이글스 라이언 카펜터도 만만치 않다. 카펜터는 7경기에 등판해 1승 2패를 기록했다. 평균자책 1.37에 9이닝당 탈삼진 9.61로 나왔다 하면 상대 타자들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투구를 했지만, 승리투수와는 좀처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야구 원시시대 만들어진 투수의 승리 기록, 현대 야구에는 어울리지 않아

 

승리 기록은 선발투수가 경기 전체를 책임졌던 과거 야구의 산물이다. 사진 오른쪽은 프로야구 초창기 활약한 장명부.

승리 기록은 선발투수가 경기 전체를 책임졌던 과거 야구의 산물이다. 사진 오른쪽은 프로야구 초창기 활약한 장명부.

 

야구는 선수 한 사람에게 ‘승리’를 공식 기록으로 부여하는 유일한 종목이다. 농구에선 스테판 커리가 3점슛을 20개씩 집어넣어도 커리에게 승리를 주지 않는다. 배구에서 김연경이 아무리 스파이크를 때려 넣었다고 ‘김연경 1승’을 기록하지는 않는다. 

 

야구의 승리투수 기록은 투수 한 명이 한 경기 전체를 책임졌던 20세기 초 원시시대 야구의 산물이다. 그 시절 투수들은 9이닝 완투를 밥 먹듯이 해댔고, 구원투수는 다 끝난 경기 후반에 올라와 뒤처리하는 역할에 그쳤다. 그래서 팀이 이겼을 때 선발투수에게 승리 기록이 돌아가도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난 지금의 야구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타자들의 힘이 강해지고, 수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경기에서 야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투수의 완투가 사라지고 불펜투수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이런 와중에도 옛날 옛적 승리투수 기록을 그대로 유지하려니 갖가지 딜레마가 발생한다.

 

선발투수의 ‘승리’는 까다로운 기록이다. 우선 5이닝 이상을 던져야 하고, 던지는 동안 팀 동료들이 실점보다 많은 점수를 내줘야 한다. 타자들이 점수를 내는 데 있어 선발투수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더그아웃에서 열심히 박수를 치거나, 타자들에게 피자를 돌리는 정도다. 

 

모든 타자들 삼진으로 돌려세울 게 아니라면 야수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일단 공을 던져서 타자 배트에 맞은 뒤에는 투수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없다. 인플레이 타구가 안타가 될지 아웃이 될지는 어느 정도의 운과 수비수들의 실력, 타자의 성향에 좌우된다. 

 

또 선발에 이어 나오는 구원투수들이 동점이나 역전을 내주지 않고 잘 던져주길 빌어야 한다. 중계방송을 보다 보면 경기 후반 마무리투수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안절부절못하는 선발투수의 모습을 비춰주는 짓궂은 연출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때 선발투수는 팀 승리가 날아갈까 봐 걱정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 승리가 사라질까 염려하는 걸까. 

 

어느 쪽이건 ‘승리’가 선발투수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타자들이 점수를 내야 하고, 수비수들이 잘 잡아줘야 하고, 불펜투수들이 뒷일을 책임져줘야 한다. 아무리 9이닝을 완벽하게 던진 투수라도 최소 타선과 수비 도움은 받는다. 노히터나 퍼펙트 기록조차도 타선이 점수를 내줘야 완성된다. 

 

최근 야구에선 선발투수가 소화하는 이닝이 줄고, 오프너와 탠덤 등의 전략이 등장하면서 승리의 가치가 더 떨어졌다. 올 시즌 KBO리그에선 선발 중에 5회를 버티는 투수가 보기 드물다. 올해 리그 선발투수 평균 투구이닝은 4.92이닝으로 5회도 되지 않는다. 선발투수 둘 중 하나는 5회도 못 막고 일찌감치 더그아웃으로 쫓겨난다. 또 선발로 나와서 1이닝, 2이닝만 던지고 내려가는 투수도 많다. 

 

5월 13일 광주 경기에서 LG 선발 이상영은 4.1이닝을 1실점(1비자책)으로 던지고 내려갔다. 5회 1아웃까지 83구를 던지면서 2안타만 맞고 잘 던졌지만, 1사 후 몸에 맞는 볼을 내준 뒤 바로 교체됐다. 승리투수는 두 번째 투수로 나와 1.2이닝을 던진 송은범이 가져갔다. 4.1이닝을 잘 던진 투수는 5회를 못 넘겼다는 이유로 아무 기록도 얻지 못하고, 아웃카운트 5개를 잡은 투수는 5회에 마운드 위에 있었다는 이유로 승리를 가져간다. 

 

승리 기록이 갖는 맹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오프너’와 탠덤으로 나오는 투수는 야구 규칙상 승리 기록을 챙길 수 없다. 승리는 불가능한데 1점이라도 내줬다가는 괜히 패전 기록만 추가되기 십상이다. 승리 기록은 주로 오프너 뒤에 나오는 ‘벌크 가이’에게 돌아간다. 2018시즌 탬파베이 라이언 야브로는 선발등판은 6차례에 불과했지만 시즌 16승으로 아메리칸리그 다승 공동 7위였다. 같은 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자 제이콥 디그롬보다 6승이나 더 챙겼다. 

 

어떤 경기에선 기록원의 주관적 판단으로 승리투수가 결정되기도 한다. 13일 잠실에서 열린 키움-두산전이 한 예다. 난타전 끝에 키움이 14대 13으로 이긴 이날 경기에서 키움 선발 이승호는 2이닝 3실점(1자책)으로 승패 없이 물러났다. 승리 기록은 3회 등판해 4회까지 2이닝 1실점 한 양현에게 돌아갔다.  

 

‘선발 투수가 5회를 채우지 못하고 선발투수가 던질 때 만든 리드가 끝까지 이어져 승리할 경우, 구원투수 중 ‘가장 효과적인 투구’를 했다고 공식기록원이 판단한 투수에게 승리를 준다’는 야구 규칙에 따른 결정이다. 등판한 투수 중에 누군가에게는 승리 기록을 주려다 보니 만들어진 고육지책이다. 

 

영리해진 구단들, ‘투승타타’ 벗어나 투구내용 따진다

 

삼성 양창섭은 구원 등판 경기 중 3경기에서 3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선발투수에 이어 올라와 긴 이닝을 던지는 벌크 가이 역할을 수행했다(사진=삼성)

삼성 양창섭은 구원 등판 경기 중 3경기에서 3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선발투수에 이어 올라와 긴 이닝을 던지는 벌크 가이 역할을 수행했다(사진=삼성)

 

이처럼 승리 기록은 그라운드에서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다. 승리 기록은 야구 경기에서 선발투수의 역할을 과장하고, 야수와 투수가 함께 팀 승리를 합작하는 야구의 본질을 오해하게 만든다. 

 

독립적인 기록으로서 가치도 거의 없다. 탈삼진은 투수의 구위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고, 이닝은 투수가 잡아낸 아웃카운트를 알려주지만 승리를 통해 알 수 있는 유용한 정보는 거의 없다. 기껏해야 어떤 투수가 5회에 마운드에서 던졌는지, 난타전 와중에 그나마 인간답게 던진 투수가 누구인지 정도만 알려줄 뿐이다.

 

보완책은 없을까. 사실 승리 기록에 큰 의미가 없다는 건 이미 구단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삼성 허삼영 감독은 라이블리가 4경기 연속 QS 호투에도 승리에 실패한 뒤 “외국인 투수는 승리보다 자신의 가치를 더 인정받고 싶어한다” “승리는 타선 도움이나 운 등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다. 라이블리는 첫 2경기를 제외하면 WHIP, QS, 평균자책 등이 모두 뛰어났다. 단지 승수만 없을 뿐”이라 했다. 

 

허 감독은 “외국인 투수는 승수와 별도로 평가받는 항목이 있어서, 굳이 승수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승리보다는 팀에 얼마나 보탬이 됐는지, 경쟁력을 보여줬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삼성은 외국인 투수 평가에 승리 대신 이닝, 탈삼진 등 투구내용을 측정하는 나름의 기준을 사용한다. 이를 바탕으로 재계약 여부와 연봉을 결정한다는 설명이다. 라이블리가 승리 실패에도 더그아웃에서 밝은 미소를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 지방구단 관계자도 “우리 구단은 클래식 스탯과 함께 세부 지표를 선수 고과에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투수가 승리를 챙기지 못해도 6이닝 이상 던졌는지, 클러치 상황에서 어떤 투구를 보여줬는지 등을 세밀하게 측정해 고과에 반영한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흔히 말하는 ‘투승타타’는 이제 연봉 협상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논리”라며 투수의 ‘승리’를 보는 관점의 변화를 전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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