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허문회 감독 체제 끝내고 서튼 감독 체제로 리스타트

-소통 전문가 서튼, 구단과 원활한 소통·협력 기대…2군 선수도 적극 활용할 전망

-데이터 활용에 능한 서튼 감독, 선수 기용과 육성에 데이터 활용한다

-코치진과 트레이닝 파트 조언도 적극 반영할 전망…구단과 현장이 ‘원팀’ 됐다

래리 서튼 롯데 신임 감독(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래리 서튼 롯데 신임 감독(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이제 겨우 1경기일 뿐이고, 결과는 패배로 끝났지만 이전 체제와는 확실히 다른 차별성을 보여줬다. 허문회 감독에서 래리 서튼 감독으로 수장을 교체한 롯데 자이언츠가 본격적인 ‘리스타트’ 모드에 돌입했다. 2군 선수를 콜업해 바로 기용하고, 라인업과 불펜 운영에서 데이터를 활용하는 등 작지만 중요한 변화도 눈에 띄었다.

서튼 신임 감독은 5월 11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SSG 랜더스 상대로 1군 사령탑 데뷔전을 치렀다. 경기전 기자회견에서 서튼 감독이 가장 먼저 강조한 건 ‘인내심’과 ‘소통’이었다. 또 ‘선수들과의 좋은 관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신뢰’도 강조했다. 댓글창 없는 온라인 방송처럼 불통 그 자체였던 이전 체제와 달리 모든 구성원과 소통하고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구단과 소통-협력, 선수단 내부의 건강한 경쟁 기대

퓨처스 선수들과 대화하는 서튼 감독(사진=엠스플뉴스)
퓨처스 선수들과 대화하는 서튼 감독(사진=엠스플뉴스)

현대야구에서 구단-현장의 원활한 소통과 협력은 필수다. 잘 나가는 강팀들을 보면 감독 혼자 모든 걸 맘대로 결정하지 않는다. 구단에 있는 분야별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팀을 위해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토론해서 방법을 찾는다.

이는 부당한 간섭이나 월권이 아닌 구단의 당연한 역할이다. 한화 이글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모 2군 선수의 콜업 이유를 묻자 “2군에서 올라온 보고가 좋았고, 구단 단장과 데이터 전문가의 프리젠테이션에서도 눈에 띄는 선수였다”고 밝혔다. 이게 요즘 야구단이 일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전 체제에서 롯데는 그러지 못했다. 감독 선임 당시엔 구단과 협력하고 상의해서 팀을 운영할 것처럼 말했지만, 막상 지휘봉을 잡은 뒤 돌변했다. 프런트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조언도 하고 제안도 했지만 로마제국 황제처럼 독단적인 운영이 계속됐다. 말로만 ‘한 사람보다 열 사람 머리가 낫다’고 했지 실제로는 모든 게 감독 맘대로였다.

이를 두고 한 야구인은 “인터뷰 때 얘기하는 야구 철학은 김성근 감독과 정반대인 것 같은데, 실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10개 구단 감독 중에 가장 김성근 감독과 비슷한 감독”이라 평하기도 했다.

롯데는 허 감독 경질과 서튼 감독 선임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구단과 감독이 가고자 하는 방향성 차이가 지속된 데 따른 것”이라 설명했다. 이는 반대로 얘기하면 구단과 서튼 감독이 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일치한다는 의미도 된다.

서튼 감독은 미 프로야구 출신으로 구단과 소통하며 함께 일하는 데 익숙하다. 롯데 퓨처스팀을 맡은 뒤에도 구단과 긴밀하게 교류하며 팀을 운영해 왔다. 프런트나 코치는 물론 구장 관리 직원, 영양사까지 모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성민규 단장과도 KIA 선수 시절부터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성 단장은 선수 시절 서튼 감독을 ‘큰형님’이라 부를 정도로 잘 따랐다. 감독 선임 전까지 전혀 안면이 없었고, 취임 이후에도 단장과 인간적인 교류가 전혀 없었던 전임 감독 시절과 달리 구단과 현장이 의기투합해 팀을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백업 선수, 퓨처스 선수의 폭넓은 활용도 예상되는 변화다. 기존 체제에서 롯데는 1군 엔트리에 있는 주전 선수들만 데리고 야구했다. 주전 선수는 아무리 부진해도 계속 기회가 주어졌다. 반면 2군 선수에겐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았다. 부상이나 다른 사유로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1군에 불렀다. 기껏 2군에서 불방망이를 휘두르다 1군에 올라와도 계속 벤치에만 앉혀뒀다. 한참 지나 감이 완전히 떨어진 뒤에야 경기 출전 기회가 주어졌다. 다른 팀은 9개 구단과 싸우는데 롯데는 9개 구단에 더해 상동 자이언츠까지 10개 팀과 싸웠다.

2군 홀대가 계속되자 자연히 선수단 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왔다. 감독의 2군에 대한 ‘네거티브’ 발언이 언론 보도로 알려진 된 뒤엔 상동 전체가 ‘멘붕’ 상태가 되기도 했다. 반면 1군 주전 선수들은 감독을 좋아했다. 선수 자율에 맡기고, 휴식을 주고, 계속 기용해 주니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다.

간판 선수들의 신뢰와 지지는 여러 구설수 속에서도 감독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보호막이었다. 나중엔 팀을 위해 선수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몇몇 선수를 위해 팀이 존재하는 지경이 됐다. 그 사이 롯데는 베테랑 주전 선수들이 대거 FA로 풀리는 2021시즌 이후 미래가 보이지 않는 팀이 되어가고 있었다.

외국인 감독 임명으로 변화가 기대된다. 서튼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개인적으로는 승리에 대한 야망이 크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앞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 팀들은 하나같이 선수단의 건강한 경쟁과 공정한 선수 기용으로 전력 상승효과를 누렸다.

외국인 감독은 모든 선수를 편견 없이 바라본다. 실력순으로 정직하고 떳떳하게 기용하기 때문에 선수단 내에 경쟁 분위기가 조성되고 활력이 생긴다. 11일 경기에서도 주전 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경기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2군에서 불방망이를 휘두른 신용수는 콜업 첫날 바로 선발 출전해 1타점 2루타를 날렸다.

앞으로도 1군에서 감이 떨어진 선수는 재정비 시간을 주고, 2군에서 한창 좋은 선수를 올려 기회를 주는 ‘상식적인’ 선수단 운영이 예상된다. 이래야 팀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함께 준비할 수 있다. 서튼 감독은 “모든 선수가 다 함께 성장해야 한다. 육성보다는 성장이라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데이터 활용, 코치진 조언 수용, 숨죽였던 트레이닝 파트도 제 목소리 기대

퓨처스 감독 시절 자신의 야구관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서튼 감독(사진=엠스플뉴스)
퓨처스 감독 시절 자신의 야구관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서튼 감독(사진=엠스플뉴스)

서튼 감독은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도자다. 현재 KBO리그에 있는 외국인 감독 가운데 가장 데이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지도자가 서튼이다. 배트 노브에 부착해 사용하는 트래킹 장비인 ‘블라스트 모션’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이전 감독은 말로는 ‘데이터에 따라 선수 기용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인재들을 끌어모아 R&D 팀을 꾸렸지만 정작 실제 경기와 선수 지도에는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정말 데이터를 보고 기용한다면 팀 내 wRC+ 최하위인 선수를 계속 2번에 배치할 수는 없다. 2번보다 비중이 낮은 타순으로 조정했어야 한다.

서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11일 경기에선 달랐다. 이날 서튼 감독은 생산력이 뛰어난 전준우를 2번에 배치하고, 현재 팀 내 최고 생산력을 자랑하는 이대호를 4번 아닌 3번 타순에 배치했다. 기존 야구인들 하던 대로 3-4-5번 위주의 타순이 아닌 2-3번에 초점을 맞춘 타순 구성이다.

마무리 김원중의 8회 기용도 데이터에 따른 판단으로 풀이된다. 롯데는 셋업맨 최준용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김대우도 9일 경기에서 많은 공을 던져 11일 경기에 승리조로 투입할 만한 선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 8회초 SSG 공격은 1번타자부터 시작하는 상위타순.

만약 다른 투수를 8회에 투입해 막아낸다면, 팀 내 불펜 에이스 김원중은 9회에 하위타순과 상대하게 될 공산이 컸다. 또 9회 김원중까지 가기 전에 이미 8회에 동점이나 역전을 허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불펜 최고의 투수를 9회가 아닌 가장 중요한 상황에 투입하는 메이저리그식 운영을 선보인 것이다.

다만 이런 기용 방식과 관련해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안 됐거나, 김원중의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김원중은 올라오자마자 홈런-안타-볼넷-홈런으로 4실점, 4대 2에서 4대 6으로 역전을 허용했다. 하지만 이처럼 데이터에 기반한 색다른 운영 방식은 앞으로도 자주 나올 가능성이 크다. 1경기 결과만 갖고 성공 여부를 논할 일도 아니다.

데이터 분석 파트는 물론 코칭스태프와도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기대된다. 기존 체제에서 코치진은 꿔다놓은 보릿자루였다. 구단의 조언도 안 듣는 지도자가 야구 후배인 코치들의 말을 들을 리가 만무했다. 특히 투수 파트에서 전문가가 아닌 감독의 판단대로 하다 경기를 그르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경기에서 지는 것도 문제지만, 투수들의 이닝수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게 더 심각한 문제였다.

미국 야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외국인 코치들도 운신의 폭이 좁다 보니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주로 잘못된 결정과 안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함께 상의한’ 사람들로, 책임을 나눠지는 용도로 쓰였다. 그러나 서튼 감독 선임으로 이제는 코치진 개개인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특히 그간 선수 코칭을 맘 놓고 할 수 없었던 라이언 롱 타격코치의 활약이 기대된다.

서튼 감독 체제에선 트레이닝 파트도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전망이다. 기존 체제에선 트레이닝 파트의 의견이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시즌엔 일부 주전 선수의 부상자 명단 복귀 시점이나 출전 여부를 놓고 트레이너와 현장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

이전 현장 감독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말하는 트레이닝 파트 리더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지난 시즌 중반 이후부터는 트레이닝 파트 책임자가 좀처럼 1군 구장에 나오지 못했다. 필요해서 나오더라도 현장 감독 눈을 피해 드나들어야 했다. 서튼 감독 체제에서 선수 부상 관리와 컨디션 관리가 보다 체계적으로, 철저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다.

서튼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얻으면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이 구단을 적으로 여기고 선수, 코치, 구단 직원을 편 가르는 비정상적 상황이 정상화됐다. 모든 롯데 구성원이 ‘팀 승리’라는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롯데 구단과 현장이 힘을 합해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내는 일만 남았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