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세상이 김진욱-이의리만 바라본 15일 밤,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선 또 한 명의 신인왕 후보가 소리 없이 등장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1차지명 출신 2년 차 좌완 오원석이 이날의 진짜 승자였다.

소리없는 강자 오원석(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소리없는 강자 오원석(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엠스플뉴스=인천]

온 야구팬의 관심이 ‘신인왕 후보’ 김진욱-이의리의 광주 맞대결에 쏠린 4월 15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선 또 한 명의 알려지지 않은 신인왕 후보가 마운드에 올랐다. 지난해 1차지명으로 입단해 올해 2번째 시즌을 맞는 SSG 랜더스 좌완 오원석이다.

요란한 호들갑이나 화려한 조명, ‘괴물 신인 선발 출격’ 같은 수식어나 ‘먼 훗날 전설이 될 경기’와 같은 기대감은 없었다. 오원석은 팀이 0대 1로 뒤진 4회초 무사 1, 2루에서 두 번째 투수로 올라왔다. 어쩌면 대량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16이닝 연속 무득점 중인 팀 타선과 3연패에 빠진 팀 분위기를 생각하면, 1점만 내줘도 패배로 이어질 수 있는 위기였다.

오원석은 침착했다. 특유의 무표정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공을 던졌다. 첫 타자 NC 김태군의 희생번트 시도를 막아냈다. 존 높은 곳을 겨냥해 던진 빠른 볼에 타자의 예상보다 훨씬 힘이 실려 있었다. 김태군은 타구를 굴리려 시도했지만, 결과는 배트 윗부분에 맞고 솟아오르는 파울 플라이가 되고 말았다.

대타 김찬형도 삼진으로 잡아냈다. 3-1에서 5구째 파울로 풀카운트를 만든 뒤, 6구째 바깥쪽 높은 속구에 김찬형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좌타자 박민우 상대로는 더 자신 있게 승부했다. 슬라이더로 1-2 투수 카운트를 잡은 뒤 몸쪽 빠른 볼로 2루수 땅볼 아웃을 잡아냈다. 3아웃. NC 강타선을 상대로 무사 1, 2루 위기를 실점 없이 막아낸 오원석이다.

대량득점 찬스에서 한 점도 못 낸 NC의 아쉬움은 SSG의 기회로 이어졌다. SSG는 4회말 공격에서 2사 후 제이미 로맥의 역전 투런포로 17이닝 만에 점수를 얻었다. 꽉 막혀있던 타선의 혈이 뚫리자 이후로는 거칠 것이 없었다. 최주환의 2루타, 남태혁의 적시 2루타가 이어졌고 NC 유격수 실책까지 나오며 4대 1로 앞서 나갔다. 올 시즌 SSG의 첫 빅이닝.

오원석도 마운드에서 힘을 냈다. 5회초 NC 이명기-나성범-애런 알테어로 이어지는 상위타선을 공 7개로 삼자범퇴 처리했다. 6회에도 2사 후 안타 1개를 허용했지만, 김태군을 내야플라이로 잡고 실점 없이 막았다. 7회에도 올라온 오원석은 삼진 2개 포함 삼자범퇴를 기록하며 NC 타선을 잠재웠다.

경기 결과는 SSG의 9대 3 승리. 4이닝을 1피안타 무4사구 5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은 오원석이 프로 데뷔 첫 승리를 따냈다. 팀의 최근 3연패와 NC전 10연패 사슬을 끊어낸 승리여서 더 값졌다.

첫 승? 5선발? 신인왕? 오원석 “연연하지 않아…그냥 열심히 던질 뿐”

첫 승을 따낸 뒤 인터뷰장에 나타난 오원석(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첫 승을 따낸 뒤 인터뷰장에 나타난 오원석(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이날 오원석의 최고구속은 141km/h. 지난해보다 2km/h 이상 빨라진 구속이 이 정도다. 롤모델도 김광현이고 김광현이 물려준 글러브를 사용하지만 강속구 투수와는 거리가 멀다. 같은 날 광주에서 등판한 김진욱-이의리처럼 150km/h를 스피드건에 찍지는 못한다.

대신 오원석에겐 정확한 제구력이 있다. 올해 5경기 7.1이닝을 던지면서 볼넷은 단 2개만 내줬다. 이날도 4이닝을 볼넷 하나 없이 꺠끗하게 던졌다. 같은날 광주에서 김진욱이 3.2이닝 동안 볼넷 6개를, 이의리가 4이닝 동안 볼넷 4개를 허용한 것과 비교된다. 오원석은 “스스로 강속구 투수라 생각하지 않는다. 구속이 작년보다 많이 오르긴 했지만, 컨트롤 위주 투수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원석이 던지는 속구는 타자 관점에서 실제보다 훨씬 빠르고 힘있게 느껴진다. 크로스 스탠스에 팔이 감춰져서 나오는 투구폼이라 디셉션 효과가 극대화된다. 타석에서 보면 공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공의 회전력도 수준급이다. 구속은 빠르지 않아도, 속구의 회전 효율이 좋아 타자들이 공략하기 까다롭다. 전광판에 찍히는 스피드가 전부는 아니다. 슬라이더라는 확실한 무기도 있고, 이대진 코치와 함께 그립을 수정한 체인지업도 던진다.

스무 살 어린 투수답지 않은 침착함과 배짱도 오원석의 장점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 올라가든 내 공을 열심히 던지자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올랐다. 볼카운트 싸움을 불리하게 가져가지 않고, 유리한 카운트를 가져간 게 좋은 승부로 이어졌다”며 “4회 위기에선 부담보다 어떻게든 막자는 생각으로, 스트라이크를 던지자는 마음으로 던졌다”고 했다.

프로 데뷔 첫 승에 감격스러울 만도 했지만 오원석은 덤덤했다. 첫 승 생각보단 마운드에서 공 던지는 데만 포커스를 맞췄다. 7회 투구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 잠시 ‘첫 승’ 생각이 떠올랐지만, 금세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고 한다.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거기에 연연하지 않았다. 생각 안 하려 했다.” 오원석의 말이다.

스프링캠프 기간 5선발 경쟁을 펼치다 탈락했지만 아쉬움은 없다. 그는 “기회 주시는 대로 열심히 하려고만 생각했다. 내 마인드가 (5선발) 하면 하는 거고, 시켜주시면 하는 거고 아니면 다른 역할을 하면 된다는 쪽”이라 했다. 신인왕 경쟁 역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런 걸 잘 생각 안 한다”고 답했다. 지나간 일이나 불확실한 미래에 신경 쓰기보단 현재 눈앞에 주어진 일에 묵묵히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오원석은 올 시즌 목표로 “이닝수를 많이 던지고 싶고, 기회가 되면 선발로라도 기회를 받아서 선발승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소박한 목표를 말했다. ‘당장 1군 10승’ ‘차세대 국가대표 에이스’ ‘미래 메이저리거’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난무하는 신인왕 후보들 틈에서 오원석은 소리없이, 조용하게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다. 온 세상이 김진욱-이의리만 주목한 이 날, 진짜 승자는 오원석이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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