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1982년 한국 찾았던 홈런왕의 회고. “30년 만에 이렇게 한국 땅을 밟으니 나 대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1982년 10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선수단 단장으로 내한한 행크 아론이 꽃다발을 받은 뒤 악수하는 장면(사진=삼성)
1982년 10월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선수단 단장으로 내한한 행크 아론이 꽃다발을 받은 뒤 악수하는 장면(사진=삼성)

[엠스플뉴스]

‘홈런왕’ 행크 애런이 하늘 그라운드로 떠났다. 향년 86세.

애런은 한국 야구팬들에게 낯익은 이다. 올드 야구팬들에겐 더하다. 1982년 그가 방한했을 때를 기억하는 이가 많은 까닭이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1982년 8월 26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선수관리 담당 부사장이던 애런이 방한했다. 원래 방문 목적은 ‘브레이브스의 내한 경기 협의’. 하지만, 정작 애런이 정성을 기울인 건 한국선수 지도와 팬 사인회였다.

애런은 방한 기간 내내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을 상대로 정성껏 자신의 타격 기술을 전수했다. 대구까지 내려가선 이틀 내내 하루 2시간씩 선수들을 지도했다.

애런은 팬 사인회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1982년 8월 29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신세계백화점에서 진행한 팬 사인회엔 어린이 2만 명이 몰렸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파였다. 애런은 그 많은 인파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 아이들이 한국 야구의 미래”라며 사인과 사진 촬영에 최선을 다했다.

2012년 타계한 '한국의 헨리 채드윅' 이호헌 KBO 초대 사무차장(사진=엠스플뉴스 박동희 대표 기자)
2012년 타계한 '한국의 헨리 채드윅' 이호헌 KBO 초대 사무차장(사진=엠스플뉴스 박동희 대표 기자)

애런이 다시 방한한 건 2달 뒤였다. 애런은 같은 해 10월 16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대구에서 열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방한 친선 경기’에서 브레이브스 선수단 단장 역할을 맡았다.

애런은 직접 선수로 뛰진 않았지만, 홈런 레이스에 참가해 팬들을 기쁘게 했다. 당시 애런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이가 있다. 당시 KBO 사무차장이던 고 이호헌 선생이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영어에 능했던 이 선생은 애런으로부터 “30년 전 한국 땅을 밟을 뻔했다”는 얘길 들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적지 않은 미국 야구선수들이 징집됐다. 나는 운이 좋아 징집되지 않았다. 30년 만에 이렇게 한국 땅을 밟으니 나 대신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선생이 들려준 애런 얘기다.

애런은 내한 기간 막바지에 “브레이브스가 받은 초청료 가운데 일부를 독립기념관 건립 성금으로 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독립기념관 건립 성금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고 이호헌 선생은 “기부는 다른 곳에 했다”고 기억했다.

“애런이 방한 기간 중 미8군 부대를 찾아 부대원들과 함께 판문점, 휴전선 등을 방문했다. 다녀온 뒤 '스포츠는 최고의 긴장 해소제'라고 했다. 팬 사인회에서 받은 행사비 일부를 ‘평화를 위해 고생하는 미군과 국군을 위해 써달라’며 주한미군 쪽에 전달했다. 애런을 초청한 삼성과 브레이브스에서도 성금을 보태준 것으로 기억한다.” 이 선생의 회고다.

애런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내한을 추진하고, 전체 경비를 댄 이는 당시 삼성 라이온즈 구단주였던 고 이건희 회장이었다. 고 이호헌 선생은 KBO 사무차장으로 한국 프로야구의 저변 확대와 발전을 위해 메이저리그팀 초청 필요성을 역설했던 이였다. 그런 두 이의 노력으로 한국땅을 밟아 걸음마 단계이던 한국 프로야구에 힘을 실어준 이가 바로 행크 애런이었다.

세 이의 명복을 빈다.

박동희 대표 기자 dhp1225@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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