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 유격수 김하성 떠난 키움, 유격수 수비는 김혜성으로 채운다

-김혜성 빠진 2루수, 서건창이 전성기 활약으로 채워야

-한때 골든글러브 2루수였던 서건창, 부상 이후 하락세

-FA 앞두고 ‘자진삭감’ 초강수…2루수로 반등 성공+FA 대박 이룰까

한때 키움 키스톤 콤비를 이뤘던 김하성과 서건창(사진=엠스플뉴스)
한때 키움 키스톤 콤비를 이뤘던 김하성과 서건창(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주전 유격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키움 히어로즈에 낯선 상황이 아니다. 지난 2015시즌을 앞두고는 강정호가 미국으로 떠났다. 전년도 리그 WAR 전체 1위를 차지한 괴물 유격수, 40홈런 117타점 OPS 1.198을 기록한 간판스타의 이탈에 모두가 히어로즈의 하위권 추락을 예상했다.

하지만 키움은 강정호 없이도 보란 듯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평화왕’이 떠난 자리에 ‘평화왕자’가 나타났다. 입단 2년 차 유격수 김하성이 등장해 강정호의 빈 자리를 훌륭하게 메웠다. 김하성은 풀타임 첫 시즌부터 19홈런-22도루에 WAR 4.94승을 거두는 활약을 펼쳤다. 키움은 강정호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유격수 WAR 1위 팀 자리를 지켰다.

그로부터 다시 6년이 지난 올 시즌, 키움은 다시 한번 주전 유격수의 부재라는 곤경에 처했다. 이번엔 ‘평화왕자’ 김하성이 미국으로 떠났다. 지난해 30홈런-100타점을 기록한 괴물 유격수, 25살도 되기 전에 KBO리그 역대 유격수 WAR 6위에 이름을 올린 스타를 앞으로 더는 고척에서 만날 수 없다.

유격수 자리는 김혜성이, 2루수 자리는 ‘전성기’ 서건창이 채워야

키움 유격수 후계자 김혜성(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키움 유격수 후계자 김혜성(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평화왕의 빈자리는 평화왕자로 대체가 가능했다. 하지만 평화왕자가 떠난 자리를 선수 한 명이 완벽하게 대체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라진 WAR 6.87승과 30개 홈런, 20개 이상의 도루는 나머지 선수들이 십시일반 채워 넣어야 한다. 홈런은 새 외국인 타자와 김웅빈 등 장타력 있는 선수가, 도루는 새로 합류한 이용규를 비롯한 빠른 주자들이 대신해야 한다.

유격수 수비는 김혜성이라는 대안이 있다. 김혜성은 이미 고교 시절 정상급 유격수였고 입단 이후에도 꾸준히 유격수로 1군 경기에 출전해 왔다.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다뿐이지 이미 김혜성의 유격수 수비는 수준급이다. 최근 2년간 유격수 출전 시 WAA 4.95에 타구처리율 89.87%로 팀 내 유격수 중에 가장 좋은 지표를 기록했다(김하성 WAA 4.95, 타구처리율 88.46%). 수비율(0.970)과 더블플레이 성공률(65.2%)로 김하성(0.965, 58.8%)보다 근소하게 나았다.

지난해까지는 팀 내 사정 때문에 유격수로 나설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늘이 혜성을 낳고 또 하성을 낳는 바람에 유격수보다는 2루와 3루수로 주로 출전했다. 지난 시즌엔 외국인 타자 에디슨 러셀에 밀려 2루수 출전 기회까지 뺏겼다.

결국 출전 시간 확보를 목적으로 마지못해 외야수 변신까지 시도했는데, 당시 인터뷰 때마다 김혜성의 표정과 몸짓과 어조는 ‘나는 외야수가 싫어요’라고 소리 없이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다시 유격수 자리를 찾았으니 훨훨 날아다닐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유격수 수비로만 국한하면, 구멍이 크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김혜성의 자리 이동으로 생길 2루수 공백이다. 김혜성은 유격수뿐만 아니라 2루에서도 좋은 수비수였다. 지난 시즌 2루수 타구처리율 94.68%로 리그 1위, 병살 타구 처리율도 58.3%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자칫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격이 안 되려면, 2루에서 김혜성을 대신할 대안이 있어야 한다.

물론 서건창이 전성기 모습이라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서건창은 한때 골든글러브를 세 차례나 차지한 정상급 2루수였다. 리그 MVP도 한 차례 수상했고 올스타전에도 여러 차례 나갔다. 2017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엔 국가대표로도 출전했다.

그러나 불의의 발목 부상 이후 공격력은 물론 수비력에서 하락세가 시작됐고, 2018년부터는 수비수보다 지명타자로 나서는 경기가 많았다. 지난해 서건창의 OPS 0.776은 지명타자로는 다소 아쉬운 숫자다. 서건창의 수비 포지션과 기록의 괴리는 키움으로서도 상당한 딜레마였다.

올 시즌 뒤 서건창은 생애 첫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는다. 서건창은 첫 FA를 앞두고 초유의 연봉 자진삭감을 택했다. 그냥 삭감도 아닌 1억원 이상 거액을 포기했다. 구단에선 3천만 원 삭감을 제안했지만, 자진해서 9,500만 원을 더 깎겠다고 했다. A등급 FA가 아닌 B등급으로 시장에 나가는 길을 택했다.

서건창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서건창은 한 인터뷰에서 “키움을 떠나겠다는 뜻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는 립서비스라고 봐야 한다. 팀이 무조건 자신을 잡을 거라는 확신이 있고, 팀에 남을 생각이라면 굳이 연봉을 1억 2천500만 원이나 깎아가며 등급을 낮출 이유가 없다.

키움 선수단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시즌 뒤 팀을 떠날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택근, 김상수, 이보근 등이 팀을 떠나는 과정을 보며 선수단 내 동요가 적지 않다. 다음 차례는 서건창이 될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시즌 뒤 생길지도 모르는 만일의 상황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스스로 등급을 낮춘 것”이라 지적했다.

리그 2루수 기근, FA 앞둔 서건창에겐 대박 기회

김웅빈, 전병우도 2루 수비가 가능하지만 주전으로는 검증되지 않았다(사진=키움)
김웅빈, 전병우도 2루 수비가 가능하지만 주전으로는 검증되지 않았다(사진=키움)

시장 상황을 놓고 보면 충분히 해볼 만한 도전이다. 현재 10개 구단 가운데는 2루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팀이 적지 않다.

2루수 최대어 박민우가 시즌 뒤 FA 시장에 나올지는 아직 확실치 않은 상황. SK와 최주환의 계약으로 ‘공격력 좋은 2루수’가 시장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도 충분히 확인됐다. 만약 서건창이 풀타임 2루수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시장에 나가면, 상당한 인기를 끌 가능성이 크다.

‘2루수 FA 대박’을 현실화하려면, 올 시즌 공·수·주에서 경쟁력을 증명해야 한다. 타격에선 지난해 하락한 컨택트 능력을 되찾는 게 중요하다. 지난 시즌 서건창은 시즌 타율 0.277로 2013시즌(0.266) 이후 가장 나쁜 타율을 기록했다. 단 콘택트율 % 이나 헛스윙 지표 등이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 시즌 다시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

수비에선 지난해 어느 정도 회복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난해 타구처리율 93.18%로 2014시즌(94.97%) 이후 가장 좋은 수치를 기록했다. 부상 후유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키움 한 1군 코치는 “옆으로 움직이는 스텝이나 더블플레이만 어느 정도 보완하면, 서건창은 여전히 경쟁력 있는 2루수”라고 했다. 주루에서는 최근 다소 떨어진 도루성공률을 높이는 게 관건이다.

서건창의 올 시즌 활약은 개인은 물론 팀에게도 중요하다. 키움은 “잘하면 당연히 잡을 것”이라고 했지만, 올 시즌 서건창이 잘하면 잘할수록 키움을 떠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게 아이러니다. 서건창이 남아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내야 후계자를 발굴하는 게 보다 현실적인 선택지다. 키움이 그동안 가장 잘해온 일이기도 하다.

키움 관계자는 “문찬종, 김주형, 김병휘, 김휘집 등 젊은 내야수들이 2루수 혹은 유격수 자리에서 차기를 준비해야 한다. 2021시즌 후반에는 1군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선수인 송성문도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다”라고 했다. 그때쯤엔 ‘서교수님’은 더는 키움에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키움 야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혀벤저스’ 멤버들과 작별할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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