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레전드 김태균, 10월 22일 은퇴 기자회견 열고 현역 생활 마감

-2000년대 한국프로야구 최고 타자…어떤 기준으로 봐도 김태균은 최고였다

-“팬들에게 우승 약속 못 지킨 게 한…후배들이 우승 꿈 대신 이뤄주길”

-‘포스트 김태균’ 탄생 누구보다 바랐던 김태균

한화 후배들의 선전을 응원한 김태균(사진=한화)
한화 후배들의 선전을 응원한 김태균(사진=한화)

[엠스플뉴스=대전]

“마음속으로 생각한 선수는 있지만, 한 명을 지목하지는 않겠다. 후배들이 다 포스트 김태균이 돼서 한화를 강팀으로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한화 이글스 간판스타 김태균이 떠났다. 김태균은 10월 2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20년의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프랜차이즈 역사의 한 챕터를 마감한 한화는 이제 김태균 없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김태균은 2000년대 KBO리그가 배출한 최고의 타자였다.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한 첫해부터 3할 타율에 20홈런을 기록했다. 김태균의 데뷔 첫 홈런 경기(삼성전)를 중계한 고 하일성 해설위원은 방송 당시 “엄청난 타자가 나왔다”고 예언했다. 하 위원은 이승엽, 임창용의 첫 중계 때도 비슷한 극찬을 쏟아낸 바 있다.

20년 동안 김태균은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2000년 이후 리그에서 김태균보다 높은 WAR(대체선수대비 기여 승수)를 올린 타자는 SK 최정(71.27승) 하나뿐이다(김태균 69.09승). 김태균이 더 높은 타율과 출루율, OPS를 기록했고 안타수는 같은 기간 LG 박용택(2504개) 다음으로 많은 2209개를 때렸다.

또 같은 기간 가장 많은 1358타점을 올렸고, 가장 많은 1141개의 볼넷을 골라냈다. 역대 3천 타석 이상 타자 중에 김태균보다 높은 출루율을 찍은 선수는 고 장효조(출루율 0.427)뿐이다. 아무리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깎아내리려 해도 결코 훼손할 수 없는 김태균의 커리어다.

최고 타자 김태균, 최고 투수 류현진 데리고도 우승 못 한 한화의 아픔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린 김태균(사진=한화)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린 김태균(사진=한화)

하지만 이처럼 위대한 타자가 현역으로 뛰는 동안 한화는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김태균뿐만 아니라 2000년대 한국야구 최고 투수 류현진까지 보유하고도 우승을 못 했다.

김태균의 입단 첫해(2001년)엔 준플레이오프에 올라갔지만 두산에 2연패 해 탈락했다. 2005년에도 플레이오프에 올라갔지만 두산에 3연패로 밀려 떨어졌다. 류현진이 입단한 2006년 한국시리즈 진출로 우승 기회를 잡았지만 삼성을 넘지 못해 준우승에 그쳤다.

김태균은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엔 그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지 못했다. 그때 우리 팀이 강팀이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또 그런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2007년 준플레이오프에서 또 두산에 3연패 해 탈락한 한화는 이후 2018년 준플레이오프에 올라가기까지 10년간 암흑기를 통과했다.

김태균은 기자회견에서 “매년 시즌 시작 때마다 팬들에게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 ‘우승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말로 희망을 드렸다. 그런데 그 약속을 한 번도 지키지 못해 팬들께 너무 죄송하다. 평생 한이 될 것 같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하위권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는 부당한 비난의 표적이 되기에 십상이다. 한화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김태균도 팀의 암흑기가 길어지면서 안티팬들의 집중포화에 시달렸다. 홈런 수가 적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김태균은 프로야구 역사에 14명뿐인 300홈런 타자다. 영양가가 없다는 비판도 받았다. 2014년 이후 김태균의 득점권 타율은 0.362다. 같은 기간 이보다 득점권 타율이 높은 선수는 NC 박민우와 LG 김현수 둘 뿐이다.

2000년대 최고 타자와 2000년대 최고 투수를 동시에 보유하고도 우승하지 못한 건, 김태균의 책임이 아닌 한화의 문제다. 그룹에서 수시로 낙하산 사장과 단장을 내려보내는 구조에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구단 운영은 불가능했다. 임기 내 성적이 유일한 목표인 임시 수장들 아래서 감독 선임, 외부 영입 투자, 선수 군입대까지 잘못된 선택이 되풀이됐다.

김태균 후계자를 육성하려는 노력도 소홀했다. 한화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6년 연속 신인드래프트에서 중간에 ‘패스’를 외쳤다. 2004년과 2008년엔 딱 6명만 지명하고 드래프트를 마쳤고 2005년엔 5명만 뽑았다. 2군 훈련시설 투자도 소홀했다.

가뜩이나 연고지 선수자원도 빈약한데 북일고 출신만 우대하느라 안 그래도 약한 선수층이 더 약해졌다. 운도 따르지 않았다. 어쩌다 연고지에 좋은 선수가 나온 해엔 신생팀 창단으로 지명 순서가 뒤로 밀렸다. 온갖 오판과 악재 속에, 한화는 김태균-류현진을 옆에서 도와주고 뒤를 이을 선수를 오랫동안 발굴하지 못했다.

‘포스트 김태균’ 탄생 누구보다 바랐던 김태균 “후배들 보며 은퇴 결심”

정민철 단장과 김태균. 이제 한화는 김태균 없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사진=한화)
정민철 단장과 김태균. 이제 한화는 김태균 없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야 한다(사진=한화)

‘포스트 김태균’의 등장을 누구보다 바란 건 바로 김태균 그 자신이었다.

김태균은 몇 해 전 인터뷰에서 “한화 후배 중에 실력으로 나를 밀어내는 선수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자기 성적만 신경 쓰는 어떤 노장 스타들과는 달랐다. 김태균은 후배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조언과 도움을 베풀며 후배들의 성장을 독려했다. 거포 유망주 노시환의 타격폼 변신도 김태균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역 은퇴라는 쉽지 않은 결심을 한 것도 한화 후배들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태균은 “우리 팀엔 젊고 유망한 선수가 많이 보인다. 강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며 “그런 후배들을 보면서 좋은 기회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이루지 못한 우승 꿈을 후배들이 이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은퇴를 결심한 뒤에도 김태균은 2군에서 평소처럼 열심히 훈련했다. 이 또한 후배들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2군에서 젊은 선수들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얼마나 힘들게 준비하는지 과정을 잘 안다. 선수들이 열심히 준비하는데,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평상시와 다르지 않게 행동했다”고 털어놨다.

후배들 생각에 은퇴 경기도, 마지막 타석에 설 기회도 고사했다. 김태균은 ‘은퇴 경기를 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안 하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내게도 한 타석이 소중하지만 다른 선수에게는 더 간절할 수 있다. 다른 선수의 소중한 기회를 뺏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많이 고민해서 결정했기에 번복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태균은 한화 후배들이 자신이 못 이룬 우승 한을 풀어주길 기원했다. 그리고 특정한 선수 한 사람이 아닌, 모든 선수가 ‘포스트 김태균’이 되길 응원했다. 한화가 스타 한 두 사람에게만 의존하는 팀이 아닌, 모든 선수가 함께 만드는 강팀이 되도록 앞으로 단장 보좌로 힘을 보탤 계획이다.

마지막까지 한화와 후배들만 생각한 김태균의 한을 풀고 눈물을 닦아주는 건 이제 남은 이들의 몫이다. 비록 김태균이 떠난 날 KIA에 패하면서 정규시즌 10위가 확정됐지만, 올 시즌 이후 한화가 만들어갈 미래는 지금까지와 달라야 한다. 작년 꼴찌 롯데는 올 시즌 5할 승률 팀으로 올라섰다. 리그 1위 NC도 불과 2년 전에는 꼴찌팀이었다. 한화의 ‘포스트 김태균’들이 함께 열어갈 새로운 역사에 기대를 걸어본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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