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손혁 감독 교체 사태로 프런트 야구, 데이터 야구 다시 비판의 도마에

-프런트 야구와 현장 야구는 잘못된 이분법…프런트 야구가 곧 현대야구

-데이터 야구와 감의 야구도 가짜 대립…모든 구단과 지도자가 데이터 활용하는 시대

-진짜 문제의 본질은 절대 권력 휘두르는 ‘회장님 야구’다

키움 히어로즈 허민 이사회 의장.
키움 히어로즈 허민 이사회 의장.

[엠스플뉴스]

키움 히어로즈의 손혁 감독 교체 사태는 한동안 잊혔던 야구인들의 ‘공공의 적’을 불러냈다.

우선 영원한 야구인의 주적 ‘프런트 야구’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장 야구인을 존중하지 않고 횡포를 일삼는 프런트를 향한 성토가 이어졌다. ‘자진사퇴지만 잔여 연봉은 드린다’는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급의 해괴한 변명도 논란을 자초했다.

만만한 ‘데이터 야구’도 논란 대상이 됐다. 키움은 프로선수 출신 코치들을 제쳐놓고 전력분석원 출신의 김창현 퀄리티 컨트롤 코치를 감독대행에 임명했다. 이에 “데이터가 만능은 아니다”란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해 키움이 두산 베어스에 패해 준우승에 그친 뒤 나왔던 그 레퍼토리 그대로다.

정작 데이터 야구의 안티테제로 지목당한 두산은 “우리도 데이터 야구 하는데…”라고 항변했지만, 데이터 야구만 깎아내릴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프런트 야구, 데이터 야구 비난은 허수아비 공격

영화 머니볼에서 빌리 빈과 아트 하우 감독의 대화 장면.
영화 머니볼에서 빌리 빈과 아트 하우 감독의 대화 장면.

전제가 있다. 프런트 야구, 데이터 야구는 현실을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하는 꾸며낸 말에 가깝다는 것이다.

애초 프런트 야구는 ‘현장 야구’와 이분법으로 편 가르기 하려고 만든 말이다. '프런트 야구'란 말이 쓰이는 맥락을 보면 구단 프런트는 야구를 모른다는 선입견을 씌우려는 의도가 보인다. 현장 감독에게 참견하면 안 된다는, 야구단의 주도권이 프런트가 아닌 감독에게 있어야 한다는 관점도 보인다. 야구팬들은 ‘프런트 야구’란 말을 들으면 부당한 간섭, 불필요한 통제, 무책임, 야구에 대한 무지, CCTV 등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21세기 현대야구에서 프런트의 역할 없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겉보기엔 감독 혼자서 다 알아서 하는 것처럼 보여도 뒤에선 큰 그림을 그리고 물심양면 지원하는 프런트가 존재한다. 선수단 규모가 커지고 1, 2군이 분리 운영되면서 야구단은 점차 감독 한 사람이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이제 프런트 야구/현장 야구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그냥 프런트 야구가 현대 야구 그 자체다. 프런트가 잘하느냐/못 하느냐가 구단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다.

데이터 야구라는 말도 괴상하긴 마찬가지. 데이터 야구 역시 현장 야구인들의 ‘감 야구’와 편가르기용으로 쓰이는 말이다. 실제 인간의 모든 판단과 선택이 ‘데이터’와 ‘감’을 함께 활용해서 이뤄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상한 이분법이다.

야구 감독의 결정 역시 다르지 않다. 이제는 모든 구단과 지도자가 데이터를 활용해 야구한다. 타율, 출루율 같은 단순한 숫자부터 회전수, 회전효율, 타구 속도 같은 지표까지 고려해서 라인업을 짜고 경기를 운영한다. 정작 감독이 된 뒤에는 데이터와 거리가 먼 운영을 하는 롯데 허문회 감독조차 취임 당시엔 “요새는 모든 게 다 데이터다. 커피숍 하나 차리는 데도 다 데이터를 참고한다”며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프런트 야구와 데이터 야구를 향한 비난은 일종의 허수아비 때리기에 가깝다. 현대야구가 곧 프런트 야구이고, 21세기 야구가 바로 데이터 야구인 시대에 설 자리가 좁아진 구시대 인사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애먼 프런트와 데이터를 두들겨 팬다. 안됐지만, 이제는 프런트와 데이터 도움 없이 마음대로 야구하고 싶은 사람은 프로야구에서 일하면 안 된다. 요새는 사회인 야구에서도 데이터를 활용한다.

야구단 문제, 프런트와 현장 넘어 회장님 보면 본질이 보인다

뉴욕 양키스의 황금기와 암흑기를 모두 함께한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뉴욕 양키스의 황금기와 암흑기를 모두 함께한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프런트 대 현장, 데이터 대 감이라는 가짜 갈등을 잠시 머리에서 지우면 프로야구단에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진짜 문제가 보인다. 바로 ‘회장님’으로 의인화된 구단 오너의 존재다. 모기업 지원 없이는 존립할 수 없는 국내 프로구단 실정에서 ‘주님(구단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건 불가능하다.

지난겨울 인기를 끈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이 진짜 문제의 실체를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줬다. 드라마에서 백승수 단장이 아무리 구단을 잘 이끌어도, 프런트 직원들이 헌신적으로 일해도, 현장 감독 및 선수들과 힘을 합쳐도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야구를 우습게 아는 구단주 ‘제송그룹’의 변덕과 훼방 탓이다.

과거 최종준 전 LG 트윈스 단장은 감독과 단장의 관계를 배의 선장과 선사에 비유했다. 하지만 아무리 선사에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선장이 최고의 항해술을 발휘해도 대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다. 태풍이 불고 비바람이 몰아치면, 날고 기는 선장과 선사를 보유한 배도 파선을 피하기 어렵다.

‘주님(구단주님)’이 따뜻한 햇볕과 선선한 바람을 내려주실 때는 별문제가 없다. 야구단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과 관심으로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지원하면(대신 간섭은 하지 않으면) 야구단은 잘 돌아간다. 올해 압도적 1위를 달리는 NC 다이노스가 좋은 예다. 구단주가 양의지도 영입해주고, 미국 마무리캠프도 보내주면서 간섭은 하지 않는다. 프런트와 감독의 호흡도 잘 맞는다. 잘 나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회장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거나, 애정이 사라지거나, 애정이 변질하면 문제가 생긴다. 회장님이 구속이라도 되면, 중요한 서류에 결재를 못 받아 발을 동동 굴러야 한다. 회장님이 지갑을 닫으면, 선수들과 얼굴을 붉히는 건 협상 테이블에서 얼굴을 맞대는 구단 실무진이다.

팬들의 환호성에 기분 좋아진 회장님이 ‘아무개 데려올게’ 약속하면 구단에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데려와야 한다. 팀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둘째 문제다. 구단에서 팀의 현재와 미래를 고려해 최선의 감독 후보를 추천해도, 회장님이 따로 마음에 둔 사람이 있으면 물거품이다.

감독을 자를지 말지도 결정은 회장님 마음이다. 그래서 때로는 어이없는 타이밍에 감독 경질이 이뤄지기도 하고, 당연히 잘라야 할 감독이 살아남는 일도 생긴다. 회장님과 친한 선수는 감독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갖기도 한다. 회장님들 뜻을 받드는 사장님들끼리 속닥속닥해서 프로야구 전체 판을 마음대로 주무르기도 한다. 정지택 전 두산중공업 부회장을 차기 총재로 추대한 이사회만 봐도 안다.

야구계를 뒤흔든 키움의 감독 교체 사태도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회장님, 아니 ‘의장님’에 도달한다. 멀쩡한 준우승 감독을 내보내고 친한 사람을 감독에 임명한 것도, 그리고 그 친한 사람이 말을 안 듣는다고 자른 것도 같은 ‘의장님’이다. OOTP 게임을 하듯 감독에게 배 놔라 감 놔라 간섭한 것도, 감독을 자른 뒤 대리인을 앞세워 ‘자진 사퇴’로 포장한 것도 결국은 의장님이다.

과거 독립구단을 운영하며 한국 프로야구에 새 희망을 제공했던 '야구계의 은인'이 '야구계의 대표 빌런이자 공적'이 된 데엔 의장에게 독립구단 시절부터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잘못된 길을 가도록 유도한 최측근의 '오래된 무능'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 '오래된 무능'을 계속 지켜보는 한 미래는 지금과 같을 것이다.

이장석 사태로 홍역을 치른 히어로즈가 구단 감시하라고 데려왔더니, 보여주는 행태는 대기업 구단 회장님들보다 더하다. 그래도 회장님들은 구단 지분을 보유한 ‘주인’이라고 하지만, 주식 한 주 없는 외부인이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말 주식이 한 주도 없긴 한가?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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