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안간 불거진 LG 트윈스 박용택 은퇴 투어 논란

-이승엽, 이호준 이후 4년 만에 나온 ‘예고 은퇴’ 사례…의미있는 이벤트 준비는 당연

-통산 최다안타 1위, 19년 원팀맨…은퇴 투어 자격 충분하다

-역사 길지 않은 프로야구, 레전드 가치 존중하고 새로운 전통 만들어야

11일 잠실구장에서 1군에 복귀한 박용택(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11일 잠실구장에서 1군에 복귀한 박용택(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엠스플뉴스]

오늘부로 은퇴 투어 관련 얘기는 그만했으면 합니다.

8월 11일 1군 복귀를 하루 앞두고 선수단에 합류한 LG 트윈스 박용택이 경기 전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자리에서 박용택은 은퇴 투어를 사양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자신이 정말 바라는 은퇴 이벤트는 ‘한국시리즈 우승 헹가래’라고 말했다. 자신의 은퇴 투어가 논란이 되는 상황이 속쓰리고 자존심이 상했을 만도 했지만, 일부러 더 활짝 웃으며 쿨하게 받아들였다.

통산 최다안타 1위 박용택, 은퇴 투어 자격 충분하다

2017년 은퇴 투어를 가진 이승엽(사진=키움)
2017년 은퇴 투어를 가진 이승엽(사진=키움)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해프닝이다. KBO리그 개인 통산 최다안타 대기록을 보유한 한 팀의 레전드 선수가 은퇴를 앞두고 있다. 마지못해 등 떠밀려 하는 은퇴가 아니라 자신의 은퇴 시기를 스스로 정하고 실행하는, ‘박수 칠 때 떠나는’ 은퇴다.

동료 선수들과 리그 전체, 야구 팬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퇴장할 자격이 충분하다. KBO리그 역사의 중요한 한 장면이다. 어떻게 하면 이 은퇴를 보다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당연하다. 메이저리그에서 시작해 한국야구에 도입된 ‘은퇴 투어’ 이벤트는 그중 한 방법이다.

하지만 반대하는 여론이 예상보다 거셌다. 정확하게는 포털 스포츠 기사에 댓글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하는 계층 내에서 반대 목소리가 컸다. 한 구단 관계자는 박용택 정도면 은퇴 투어를 해도 별 이견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반대하는 사람이 많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며 놀란 눈치였다.

반대하는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누군가는 ‘1호 은퇴 투어’의 주인공 삼성 레전드 이승엽(SBS 해설위원)과 비교했다. “은퇴 투어를 하려면 이승엽 정도는 돼야 한다. 국가대표로 많은 업적을 남긴 이승엽과 박용택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한 마디로 은퇴 투어를 가질 만한 ‘급’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승엽 정도 커리어를 쌓은 선수만 은퇴 투어를 누릴 수 있다면, 앞으로 과연 어떤 선수가 논란 없이 은퇴 투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승엽 때 했던 것처럼 성대한 은퇴 투어를 준비한 것도 아니다. 이승엽 은퇴 투어는 KBO와 10개 구단 차원에서 준비한 대규모 이벤트였지만, 박용택 은퇴 투어는 이호준(NC) 때처럼 프로야구선수협회 차원에서 준비해 소규모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경기전 상대 팀 주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기념 촬영을 하는 정도를 계획했다. 박용택 정도 커리어를 쌓은 선수가 그 정도 대접을 받는 게 그렇게도 못 견딜 일일까.

“양준혁, 이종범도 은퇴 투어를 못했다”는 논리도 등장했다. 그러나 양준혁과 이종범이 은퇴할 당시엔 은퇴 투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또 둘은 예고 은퇴가 아니라 시즌 중 은퇴를 결정했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은퇴 투어는 스스로 자신의 은퇴 시점을 결정하는, 베테랑으로선 쉽지 않은 결단을 실행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KBO리그에서 그간 이 조건을 충족한 선수는 이승엽과 이호준에 이어 박용택이 세 번째다.

일각에선 박용택 은퇴 투어를 반대하려고 2009년 타율왕 사건까지 꺼내왔다. 당시 박용택은 롯데 홍성흔과 시즌 막판까지 타율왕 경쟁을 펼쳤다. LG와 롯데의 맞대결에서 박용택은 타율 관리를 위해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고, LG 투수들은 홍성흔을 볼넷으로 내보냈다. 박용택은 타율 0.372로 타율왕에 올랐다. 이후 박용택에겐 ‘졸렬택’이란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었다.

이 사건에 대해 박용택은 오래전에 이미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는 2013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페어플레이’ 상을 받으며 소감으로 내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쑥스럽다. 4년 전 페어플레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 그렇게 못 했다. 어리석었다. 그 이후 야구장 안팎에서 모범적으로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했다. 11일 인터뷰에서도 “이후로는 졸렬하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실제 박용택은 2009년 사건 이후 야구장 안과 밖에서 모범적인 선수 생활을 해 왔다. 비시즌마다 연탄배달 등 봉사활동에 앞장섰고, 사생활 구설수나 인성 논란 한번 없이 깨끗한 커리어를 이어왔다. 최고의 매너와 팬서비스를 자랑하는 선수가 박용택이다. 누군가는 프로 선수라면 당연한 일이라 할지 몰라도, 그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다.

“박용택 은퇴 투어 논란, 프로야구 가치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11일 잠실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가진 박용택(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11일 잠실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가진 박용택(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가치는 상대적이다. 박용택은 먼저 은퇴한 레전드 선수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 왔다. 프로 데뷔부터 은퇴를 앞둔 올해까지 19년간 LG 유니폼만 입고 뛰었다. FA(자유계약선수) 제도 도입 이후 선수 이동이 활발해진 프로야구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원클럽맨’이다.

프로 데뷔부터 최근까지 오랜 세월 동안 큰 부침 없이 팀의 간판이자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3번이나 FA 계약을 맺었지만 그 흔한 먹튀 논란도 없었다. 30대 후반에도 꾸준히 3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나이가 들수록 더욱 원숙한 기량을 발휘했다. 2000년대 이후 KBO리그 역사의 산증인이자 소중한 자산이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쌓아올린 수많은 노력과 가치가 하루아침에 부정당하고, 폄하됐다. 박용택은 은퇴 투어 기사에 달린 댓글을 하나도 안 빼놓고 다 읽었다고 했다. 어떤 연예인은 “당사자가 악플을 다 찾으면 정말 멘탈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자신의 야구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댓글을 읽는 박용택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했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박용택 정도 선수도 은퇴 투어를 못 한다면, 과연 앞으로 어떤 선수가 논란 없이 은퇴 투어 행사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화 레전드, 롯데 레전드, 두산 레전드가 은퇴할 때는 논란 없이 은퇴 투어를 실행할 수 있을까. 오랜 세월 팬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하다 은퇴를 앞둔 스타 선수에게 이렇게까지 흠집을 내고, 상처투성이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한 야구 원로는 우리 프로야구는 이제 출범 39년째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역사가 짧은 만큼 기록과 역사의 가치를 존중하고,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박용택 은퇴 투어 논란을 보면서, 우리가 우리 프로야구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프로야구가 박용택을 이런 식으로 보내선 안 된다. 박용택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떠나야 앞으로 은퇴할 프랜차이즈 선수들도 정당한 평가와 박수를 받으며 은퇴하는 전례를 만들 수 있다. 일부의 극단적 주장이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과잉 대표되는 댓글 여론에 밀려 잘못된 판단을 해선 안 된다. 지금이라도 선수협과 10개 구단이 머리를 맞대고, 박용택의 마지막을 멋지게 마무리할 방법을 고민했으면 한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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