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홀드왕’ 차명주의 ‘SSL’ 연구소,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과 효율적인 해결책 제시

-“한국 데이터 야구는 수술 없는 진단뿐, 그저 회전수가 많다고 좋은 투수인가?”

-“과학적인 분석으로 보면 오버핸드 투수는 스리쿼터 투수보다 부상 가능성 크다.”

-“하체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이 사용하는 힘 크기와 방향 파악 뒤 개선 방안 필요”

-“학생선수들부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지도 받아야 좋은 선수로 성장 가능”

차명주 위원은 현역 은퇴 뒤 스포츠 과학 연구에 매진해 현재 SSL이라는 스포츠 과학 연구소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차명주 위원은 현역 은퇴 뒤 스포츠 과학 연구에 매진해 현재 SSL이라는 스포츠 과학 연구소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

중간 계투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기록은 홀드다. KBO리그에선 2000년부터 ‘홀드왕’이라는 상이 수여됐다. 2000년대 초반 원조 홀드왕의 활약을 펼친 불펜 투수는 단연 차명주였다. 당시 두산 베어스 투수였던 차명주는 2001년(18홀드)·2002년(17홀드)·2003년(16홀드) 동안 3년 연속 홀드왕을 달성했다. 이는 아직 깨지지 않은 홀드왕 연속 수상 기록이다.

2006년 34세의 젊은 나이에 현역 은퇴를 택한 차명주는 2007년 유소년 재활 센터로 시작해 2017년 ‘6.3 Baseball Institute’ 연구소를 설립했다. 유소년 및 학생선수들의 부상 방지를 위한 과학적인 분석과 최적의 투구 자세를 조언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여기서 차명주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야구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 종목까지 모두 포함해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과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운동역학 연구소인 SSL(Sport Science Lab)을 설립했다. 현재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과 프로축구선수 기성용도 SSL에 찾아오는 회원들이다.

이렇게 분야를 넓혔지만, 야구인 출신인 차명주는 한국야구 발전을 위한 고민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아마추어야구에서도 과학적인 데이터 야구는 여전히 ‘수술 없는 진단’ 수준에 그치고 있단 게 차명주의 시선이다. 이제 ‘감’이 아닌 ‘진짜 과학과 진짜 데이터 분석’이 한국야구에 자리 잡길 바라는 차명주의 바람을 엠스플뉴스가 직접 들어봤다.

"한국 데이터 야구는 수술 없는 진단뿐, 잘못된 인식 심어줘"

SSL 연구소에 찾아온 한 선수가 자신의 몸에 맞는 근육 보강 프로그램을 받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SSL 연구소에 찾아온 한 선수가 자신의 몸에 맞는 근육 보강 프로그램을 받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SSL’ 설립으로 야구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까지 시야를 넓혔습니다.

모든 종목의 선수들에게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으로 잘못된 동작을 깨닫게 해주고 자신에게 맞는 올바른 부상 방지 보강 운동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야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목 선수들이 연구소에 찾아와 상담을 받고 있어요. 효과를 본 선수들이 꽤 많습니다(웃음). 그래도 야구가 제 주 종목인 만큼 더 애정이 갑니다.

현재 한국의 데이터 야구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야구인 출신 대부분은 과학과 트레이닝을 잘 모릅니다. 과학을 잘 아는 분들은 데이터를 제공하지만 그게 야구에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또 단순히 특정 데이터 측정 기계로 나온 결과 값만 가지고 선수들에게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긴 어렵습니다.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힘의 크기와 변화를 측정해야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알 수 있는 거죠. 제가 보기엔 지금 한국의 데이터 야구는 겉만 보는 ‘수술 없는 진찰’뿐입니다.

‘수술 없는 진찰’의 대표적인 예로 어떤 점을 꼽고 싶습니까.

예를 들어 회전수나 릴리즈 포인트 높이 같은 데이터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회전수가 많다고 무조건 좋은 투수는 아니라고 봐요. 예를 들어 상체가 기울어진 오버핸드 유형의 투수는 스리쿼터 유형의 투수보다 어깨에 과부하가 심하게 걸립니다. 아무리 릴리즈 포인트가 높고 회전수가 많아도 부상이 빨리 찾아올 수 있단 뜻입니다. 최근 아마추어 야구에서도 데이터 활용을 하고 있잖아요.

학생선수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단 뜻이군요.

오버핸드 투구 유형으로 더 세게 던지려고 하다 보면 어릴 때부터 관절에 큰 부하를 주는 겁니다. 그러면 고등학교 때나 프로에 입단해 수술을 받는 거고요. 또 오버핸드 투구가 다른 유형과 비교해 구종 노출이 빨리 이뤄집니다. 그것도 과학적인 데이터 분석이 있고요.

어떤 데이터입니까.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공을 놓는 순간 0.1초 동안 타자의 눈이 뇌에 공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그다음 0.075초 동안 공의 속도와 궤적을 계산합니다. 거기서 타자는 공을 칠지 말지 0.025초 동안 결정하고 만약 친다면 어떤 스윙을 할지 0.025초 동안 다시 선택하고요. 다음 0.025초 동안 뇌에서 스윙을 시작하라고 다리에 신호를 보내죠.

투수의 손에서 공을 떠난 뒤 방망이 스윙에 맞기까지 진행되는 도식표(사진=차명주 교수)
투수의 손에서 공을 떠난 뒤 방망이 스윙에 맞기까지 진행되는 도식표(사진=차명주 교수)

다시 정리하면 145km/h 공이 포수 미트에 도달하기까지 0.58초가 걸리고 방망이에 맞는 순간까지 0.4초가 걸리는 겁니다. 그 사이에 0.007초만 늦거나 빨라도 파울이 되는 거예요. 타석에 있는 타자가 릴리즈 포인트에서 떨어진 뒤 공 움직임만 보고 속구와 변화구를 노려 치는 건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란 뜻입니다.

"회전수가 많고 릴리즈 포인트가 높은 오버핸드라고 무조건 좋은 투수는 아니다."

차명주 위원은 하체 활용을 잘한 투수의 예시로 '코리안특급' 박찬호를 꼽았다(사진=gettyimages)
차명주 위원은 하체 활용을 잘한 투수의 예시로 '코리안특급' 박찬호를 꼽았다(사진=gettyimages)

오버핸드 유형의 문제점은 속구와 변화구 릴리스 포인트 자체의 차이가 확실 하단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오버핸드 유형은 스리쿼터 유형보다 릴리즈 포인트가 뒤에서 형성됩니다. 그만큼 공의 변화하는 지점이 비교적 빠르고 타자 눈에서도 빠르게 인식되는 겁니다.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가는 공의 궤적은 정해져 있어요. 더 넓게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려면 투구 각이 좁은 오버핸드 유형보다 투구 각이 넓어지는 스리쿼터 유형이 과학적으로 더 효율적이란 뜻입니다.

스리쿼터 유형이 그만큼 공을 앞으로 끌고 와서 던지는 만큼 부상 방지 효과도 있겠습니다.

앞서 말했듯 아무리 회전수가 좋고 높은 릴리스 포인트가 있다고 해도 결국 공을 앞으로 끌고 와서 던지지 못하면 어깨 과부하의 지름길입니다. 소위 말하는 공을 끌고 와서 놓는 지점의 길이 데이터인 ‘익스텐션’에서 40cm 차이가 나는 두 투수가 있다고 치죠. 같이 공 100개를 던지면 40m, 1,000개를 던지면 400m를 더 던지는 겁니다.

누적 데미지가 쌓이는 거군요.

결국, 오버핸드 유형의 투수가 자신에게 효율적인 투구 자세를 찾지 못하면 부상이 자주 찾아올 수밖에 없어요. 팔 각도를 올리고 상체 위주의 투구를 하려고 하니까요. 릴리즈 포인트가 비교적 뒤에 있으니까 당연히 회전수도 많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근본적인 투구 자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회전수와 릴리즈 포인트 높이 데이터가 좋다고 그대로 놔두면 결국 선수 건강을 해치는 겁니다.

그렇다면 해결 방안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투구 과정에서 하체 활용도를 높이는 겁니다. 예전에 박찬호 선수가 하체를 전체적으로 숙였다가 앞으로 끌고 나오는 투구 자세를 보여줬잖아요. 최근엔 박찬호처럼 하체 활용을 하는 투수가 잘 안 보입니다. 의학적으로 하체가 53%, 상체가 40%의 비율로 힘을 발생하게 하면 팔에선 7%의 힘만 써도 되는 겁니다. 그만큼 더 효율적이고 강한 공을 던지는 동시에 부상 방지까지 이루는 거죠.

자신이 어떤 부위에서 어느 정도의 힘을 사용하고 있는지 아는 게 먼저겠습니다.

그래서 동작분석이 중요한 겁니다. ‘SSL’에서 사용 중인 3D 모션 캡처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각 신체 부위의 속도 값과 관절 각의 변화를 분석할 수 있어요. 자신의 하체와 상체, 그리고 팔에서 나오는 힘 크기와 방향을 알 수 있는 거죠. 몇몇 투수를 보면 하체와 상체에서 나오는 힘 방향이 투구 방향과 반대인 경우가 꽤 있어요. 그만큼 효율적으로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겁니다.

"힘을 쓰는 방향만 바꿔줘도 완전히 다른 투수로 바뀐다."

3D 모션 캡처로 측정한 한 투수의 힘 크기와 방향. 투구와 반대 방향으로 힘을 쓰고 있는 안 좋은 예시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3D 모션 캡처로 측정한 한 투수의 힘 크기와 방향. 투구와 반대 방향으로 힘을 쓰고 있는 안 좋은 예시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힘을 효율적으로만 사용해도 확 달라진 선수가 될 듯싶습니다.

지난겨울에 프로팀 소속 한 젊은 투수가 연구소로 찾아와 교정을 받았어요. 몸 내부에서 나오는 힘의 방향을 바꾸도록 처방했을 뿐인데 구속이 10km/h 넘게 올라 올 시즌 1군에서 깜짝 활약을 펼쳤습니다. 프로 구단들도 조금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 접근과 해결책 제시를 할 수 있다면 한국야구의 수준도 몇 단계 더 발전할 거로 봐요.

학생선수들부터 이런 과학적인 분석과 해법 제시를 받는다면 ‘선수가 부족하다’라는 얘기가 안 나오겠습니다.

투수들이 체중을 축 발에서 다른 발로 전환할 때 몸통을 가능한 한 늦게 회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동적 균형과 자세의 안정, 그리고 팔꿈치와 전완의 정렬과 함께 그 동작이 이뤄진다면 생체 역학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투구 자세가 되는 거예요. 미국에선 이미 이런 부분을 학생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체득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투구 자세가 정해지는 건데 지도자들이 감으로 ‘내가 이렇게 던져서 좋았으니까 너도 이렇게 던져’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죠.

얘길 들을수록 프로 무대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무대에서도 과학적인 데이터 야구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

학생선수들의 투구 자세와 타격 자세는 중학교 시절을 지나면 굳어져 버립니다. 그 뒤로 자신에게 익숙해진 자세를 고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그만큼 유소년 지도자들이 과학적으로 더 접근하고 노력해서 선수들을 길러야 합니다. 그저 경기 결과와 승리에만 연연해 투수와 타자를 키운다면 변화구로 손장난하는 투수와 공을 땅볼로 맞히고 1루로 뛰기 급급한 타자밖에 안 나오는 겁니다. 한국 야구의 위기는 일찌감치 시작됐습니다.

그래도 ‘원조 홀드왕’ 차명주의 이런 노력이 있기에 한국 야구에 희망이 보이는 듯합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현장 지도자가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있는데 지금 걷는 길이 더 재밌고 행복합니다. 지금까지 해온 연구보다 더 연구해야 과제가 많다는 것도 저에겐 배움의 기쁨입니다. 한국 야구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단 마음으로 계속 공부하겠습니다. 또 제가 배운 걸 많은 야구인에게 공유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다치지 않고 더 훌륭한 야구 선수로 자라는 날까지 제 배움과 고민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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