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이영하, 개막 시리즈 등판 뒤 9경기 만에 승리

-볼넷 비율 상승, 영점 자체가 흔들린 이영하의 제구력

-“커브 장착 욕심에 전반적인 투구 밸런스가 흐트러졌다.”

-“가족 향한 악플에 마음고생, 운 아닌 실력 입증하겠다.”

이영하가 개막 시리즈 등판 뒤 9경기 만에 승리 투수의 맛을 봤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이영하가 개막 시리즈 등판 뒤 9경기 만에 승리 투수의 맛을 봤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고척]

프로 선수에게 기량 발전은 당연한 욕심이다. 지난 시즌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건 흔한 일이다. 두산 베어스 투수 이영하의 생각도 그랬다. 지난해 이영하는 프로 데뷔 뒤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선발진 주축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와 동시에 팀의 통합 우승까지 이끌며 잊을 수 없는 한 해를 보냈다.

이영하가 지난해 보여준 강점은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그리고 커터를 중심으로 보여준 강력한 구위였다. 여기에 이영하는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새로운 무기인 ‘커브’ 장착을 선언했다. 커브에 일가견이 있는 김원형 투수코치와 팀 선배 투수 유희관에게 조언을 얻은 것이었다.

개막 전 이영하는 “속구와 슬라이더, 그리고 커터 등 비교적 빠른 구속의 비슷한 구종만 계속 보여주니까 상대 타자들이 4~5회 정도엔 적응하더라. 그래서 올 시즌엔 느린 커브를 많이 던지려고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올 시즌 초반 침체한 이영하, 커브 구사율·볼넷 비율 동시에 UP

올 시즌 초반 이영하는 고갤 숙이고 더그아웃을 향하는 장면이 많았다(사진=두산)
올 시즌 초반 이영하는 고갤 숙이고 더그아웃을 향하는 장면이 많았다(사진=두산)

실제로 올 시즌 이영하의 구종 구사 비율이 다소 달라졌다. 지난해와 비교해 스플리터 구사율(13.1%->6.1%)이 떨어진 반면 커브 구사율(1.8%->6.6%)은 확연히 높아졌다. 하지만, 그 변화는 결국 독으로 돌아왔다. 이영하는 올 시즌 개막 시리즈에서 시즌 첫 승(5월 6일 잠실 LG 트윈스전 6.1이닝 5피안타 2실점)을 거둔 뒤 무려 8경기 동안 승리가 없었다.

등판 내용이 좋았는데 승운이 따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이영하는 7월 1일 기준으로 10경기(54.2이닝)에 등판해 2승 4패 평균자책 5.76 38탈삼진 30볼넷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 1.87을 기록했다. 10경기 가운데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는 네 차례에 불과했다.

올 시즌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이영하의 문제는 제구였다. 지난해와 비교해 속구 평균 구속(144.5km/h->145.3km/h)은 오히려 오른 상태였다. 9이닝당 볼넷 허용 개수 증가(3.36개->4.99개) 흐름이 가장 눈에 들어오는 요소다. 제구가 되지 않아 가운데로 욱여넣은 공은 장타로 연결되기 일쑤였다. 지난해와 비교해 외야로 날아가는 타구 비율의 증가(48.4%->65.1%)도 아쉬웠다.

“시즌 초반부터 강하게만 던지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정작 어려운 상황에서 던질 공이 없다고 느꼈다. 단순히 힘이 문제가 아니었다. 투구 자세도 변한 게 없다. 시즌 첫 등판 때 승리를 얻고 계속 더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니까 마운드 위에서 더 생각이 많아졌다. 잘 풀릴 땐 아무 생각 없이 던졌는데 그 반대였다.” 이영하의 말이다.

이영하는 6월 등판 가운데 2경기 연속 7실점을 기록했을 때 2군행을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산 김태형 감독은 이영하를 믿고 기다려줬다.

몸 상태가 이상이 있는 게 아닌데 어딘가 아플 수 있겠단 불안감까지 느꼈다. 던질 때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까 중간에 선발 로테이션을 한 차례 거르자고 말씀드릴까 고민했는데 벤치에서 먼저 며칠 휴식을 주셔서 도움이 됐다. 이 정도로 못 던지면 2군에 가겠구나 싶었는데 감독님께서 따로 불러 ‘못 해도 괜찮으니까 자신 있게만 던져’라고 말씀하셨다. 안 좋아도 잘 챙겨주셔서 감사했다.

"커브를 던지다 보니까 다른 구종 투구 밸런스도 흐트러진 느낌"

기존 구종들과 비교해 던지는 투구 감각이 다소 다른 커브는 이영하의 전반적인 투구 밸런스에 악영향을 끼쳤다(사진=두산)
기존 구종들과 비교해 던지는 투구 감각이 다소 다른 커브는 이영하의 전반적인 투구 밸런스에 악영향을 끼쳤다(사진=두산)

이영하가 스스로 느낀 부진의 원인은 ‘커브 장착’ 후유증이었다. 느린 변화구인 커브를 던질 때 미묘하게 흔들리는 투구 밸런스가 다른 구종에도 영향을 미쳤단 분석이다.

속구와 슬라이더, 커터 조합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시즌 개막 전 커브를 열심히 연습했다. 그런데 시즌 개막 뒤 커브를 계속 던져도 안 좋은 결과가 계속 나오니까 힘들었다. 기존에 잘 던지고 있던 속구와 커터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 커브를 던진 다음 곧바로 다른 구종을 구사할 때 밸런스도 흐트러졌다. (박)세혁이 형도 그런 부분을 조언해줬기에 커브 비율을 줄이려고 한다.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나을 듯싶다. 이영하의 말이다.

이영하는 7월 1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 등판이 하나의 ‘전환점’이 되길 소망했다. 이날 이영하는 6이닝 7피안타 3탈삼진 3볼넷 1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와 더불어 시즌 2승째를 달성했다. 9경기 등판 만에 나온 승리인데다 2회 말 2사 만루와 3회 말 1사 만루 위기에서 추가 실점 없이 막은 장면이 돋보였다. 김태형 감독도 경기 뒤 “(이)영하가 오늘 승리를 계기로 앞으로 좋은 활약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이영하는 “8경기 연속 승리가 없는 데다 등판 내용도 안 좋았다. 안 좋은 야구 생각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경기 초반부터 팀 타선의 대량 득점으로 힘을 얻었다. 위기일 때 삼진을 잡아야겠단 생각보단 맞아도 된다는 마음으로 공을 던졌다. 어딘가 갇혀 있다가 꺼내진 기분이다. 오늘 등판을 마치고 속이 후련한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라며 미소 지었다.

코치진과 팀원들의 도움도 이영하에겐 버팀목이 됐다. 이영하는 “머리가 닫혀있는 기분으로 오랫동안 공을 던졌는데 팀 동료들이 계속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도와줘 자신감을 다시 얻었다. 특히 코치님이 가장 많이 신경 써주셨다. 지난해 공을 많이 던져 트레이닝 파트에서도 걱정이 많다. 혼자가 아니라 주위에서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니까 고마운 마음이 크다”라며 고갤 끄덕였다.

"가족들도 좋은 소리만 들을 수 있도록 내가 더 잘해야 한다."

이영하는 올 시즌 초반 부진과 악플 등 안 좋은 얘기로 마음고생이 심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이영하는 올 시즌 초반 부진과 악플 등 안 좋은 얘기로 마음고생이 심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팔꿈치 통증으로 토미 존 서저리(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를 받아 시즌 아웃 판정을 받은 팀 선배 이용찬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도 이영하의 몫이다.

“예전엔 선발진에서 내가 흔들려도 (이)용찬이 형이 나가서 잘 던져줬는데 지금은 확실히 허전한 느낌이 든다. 용찬이 형이 떠나기 전에 ‘너는 지금 잘 안 풀려도 여전히 어린 나이다. 마음을 편하게 먹어’라고 말씀해주셨다. 용찬이 형이 야구장 밖에서 계속 응원해주고 있는 걸 잘 안다. 내가 조금 더 잘해야 한다. 용찬이 형 빈자리까지 잘 메워야겠단 생각이 든다.” 이영하의 말이다.

이영하는 올 시즌 초반 부진으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겪었다. 안 좋은 성적에 따른 가족을 향한 ‘악플’도 감내해야 하는 처지였다.

지난해엔 다시 생각해도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걸 모두 다 한 해였다. 지난해 내 인생의 운을 다 가져다 썼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제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헤쳐나가야겠단 생각이 드니까 고민이 더 깊어졌다. 강하게만 던지는 게 아닌 포수 미트에 정확히 던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 ‘악플’처럼 안 좋은 애긴 어떤 선수든 듣는 거니까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보단 가족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앞으로 가족들도 좋은 소리만 들을 수 있도록 내가 잘해야 한다.

김태형 감독은 부상자가 속출했던 6월을 잘 넘겼기에 7월 반등을 노리고 있다. 김 감독은 “부상자가 계속 나오니까 쉽지 않은 6월이었다. 특히 이용찬의 시즌 아웃 판정이 가장 컸다. 그래도 선수들이 하나둘씩 돌아오며 나름대로 잘 넘어갔다. 7월에도 부상자가 더 나오면 힘들다. 팀 상황이 안 좋더라도 잘 버티겠다”라고 전했다.

김 감독의 말대로 이용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선 결국 이영하가 지난해와 같은 활약상을 재현해야 한다. 두산의 7월 반등 필수조건은 ‘2019년 이영하’가 돌아오는 것이다. 커브 장착 욕심에 잠시 흔들렸던 이영하는 이제 잘하는 것에만 집중해 반등을 노릴 계획이다. 이영하가 가장 좋았던 ‘폼’을 되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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