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스포츠 올스톱…스포츠 방송인도 일거리 잃었다

-허구연 해설위원 “미뤄둔 자료정리 하며 시간 보낸다”

-아나운서들도 재택근무, “중계방송 안 하니 시간이 남네요”

-방송인들의 소망 “빨리 운동장 나가고파중계방송을 하고 싶다”

허구연 해설위원, 한명재 아나운서(사진=엠스플뉴스)
허구연 해설위원, 한명재 아나운서(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허구연 MBC스포츠 해설위원의 일과는 야구로 시작해 야구로 끝난다.

야구 시즌이 되면, 허 위원은 매일 아침 9시까지 공덕동 개인 사무실로 출근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TV부터 켜고, 오후 2시까지 메이저리그 중계방송을 보는 게 주요 일과다. 오후엔 자료를 분석하고, 한국과 미국은 물론 일본 신문 기사까지 챙겨 읽는다. 그리고는 야구장에 나가 KBO리그 경기 중계방송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은 허 위원이 수십 년간 빈틈없이 지켜온 루틴을 깨뜨렸다. 코로나19로 모든 프로 스포츠 경기가 멈췄고, 메이저리그와 KBO리그 개막은 연기됐다. 일과 대부분을 차지했던 ‘야구’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허전합니다.허구연 위원의 말이다. 원래대로라면 야구를 보거나, 중계방송을 할 시간인데 할 일이 사라졌어요. 그동안 미뤄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래된 사진과 자료도 정리하고, 틈틈이 건강 관리도 합니다. 겉으론 그렇게 안 보일지 몰라도, 내일모레면 일흔이라 방심할 수는 없으니까요.

야구의 ‘올스톱’ 기간은 야구 선수, 야구팬은 물론 야구를 말로 묘사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게도 낯설고 당혹스러운 시간이다. 스포츠 아나운서, 캐스터, 해설위원들은 일거리를 잃었다. 그들의 재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일터가 사라졌다. 마치 타노스가 핑거스냅이라도 튕긴 것처럼.

“스포츠 올스톱…요즘은 숨만 쉬며 삽니다”

정용검, 김선신, 박지영 아나운서(사진=엠스플뉴스)
정용검, 김선신, 박지영 아나운서(사진=엠스플뉴스)

“코로나19 사태 이후, 아나운서팀 전원이 재택근무 중입니다.” MBC 스포츠플러스 관계자의 말이다. MBC 스포츠플러스는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아나운서들에게 가능한 재택 근무를 권장하고 있다. 집에서 가능한 일은 집에서 처리하고, 꼭 필요할 때만 사무실에 나오라는 지침이다.

‘한국의 빈 스컬리’ 한명재 아나운서도 재택근무를 한다. 자체 청백전, 연습경기가 있는 날엔 경기장에 직접 나와 취재도 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관중으로 가득한 야구장 중계석에 앉아 샤우팅을 할 시간에 더그아웃 구석에서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지켜본다. “언제 개막할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흐름은 따라가야 하니까요.” 고척스카이돔에서 만난 한 아나운서의 말이다.

‘워킹맘’ 김선신 아나운서는 “재택근무하며 회사 일도 처리하고, 육아도 한다”고 했다. “부부가 함께 일하다 보니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이 부족했는데, 재택근무를 하면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정용검 아나운서는 “보통은 재택근무를 하지만, 인터넷 방송 ‘스톡킹’을 촬영하는 날엔 스튜디오에 나온다”고 했다. “중계방송을 안 하니까 시간이 남아요. 몸 관리 차원에서 등산도 다니고 운동도 하는데, 솔직히 답답하네요.”

박지영 아나운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아예 밖에 나가질 못하니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매일 집에 있다 보니까 생활 패턴도 평소와 달라졌습니다. 이러다가 페이스를 잃는 건 아닐까 걱정돼서 야구 기사를 꾸준히 챙겨보고 있습니다.”

프리랜서인 임용수 아나운서는 숨만 쉬며 삽니다. 다 똑같지 않나요?라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차명석 단장의 제안으로 LG 트윈스 자체 청백전 중계를 하고, 개인 유튜브 찍는 것 외엔 다른 일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숨만 쉬며 살고 있습니다.”


스포츠 아나운서, 해설자는 활동적인 직업이다. 매일 역동적인 스포츠 현장에 나가 선수들과 호흡하고 생생한 분위기를 전달하는 일이다. 야구 시즌 중엔 야구 경기에 모든 걸 쏟아붓는다. 바이오 리듬도, 대인관계도, 일과도 모두 야구에 맞춰 조정해 왔다. 야구 중계를 못하는 상황이 되자, 많은 스포츠 방송인이 답답함과 허탈한 마음을 넘어 스트레스까지 호소하고 있다.

정용검 아나운서는 솔직히 죽겠습니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올 시즌 중계방송을 위해서 개인적으로 MLB 시즌 프리뷰 자료 정리를 해왔어요. 작업은 진작에 다 끝났는데, 시즌이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7월에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박지영 아나운서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요새 안 하던 게임까지 시작했다. 화면을 보면서 몸을 움직이는 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했다. 김선신 아나운서도 “언제쯤 마스크를 벗고 바깥에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건강과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유튜브 활동 시작한 아나운서들 “실내에서 가능한 콘텐츠 찍는다”

최근 유튜브 활동을 시작한 임용수 캐스터(사진=엠스플뉴스)
최근 유튜브 활동을 시작한 임용수 캐스터(사진=엠스플뉴스)

한편으론 스포츠가 없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창의적’이고 생산적으로 보내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영국의 럭비 아나운서 닉 히스(Nick Heath)는 일상생활을 마치 스포츠 중계처럼 해설하는 영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공원에서 뛰어다니는 개, 시장에서 식료품을 사는 사람도 모두 중계방송 대상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며 히스는 ‘레깅스 신은 여성이 앞서갑니다. 먼저 건너느냐, 건너느냐, 건넜습니다!’라고 샤우팅을 섞어 중계한다.

영국의 축구 해설가 클라이브 타일데슬리(Clive Tyldesle)도 요리, 샤워헤드 교체 등 각종 집안일을 하면서 이를 중계방송 형식으로 구성해 유튜브에 올린다. NFL 해설가 조 벅(Joe Buck)은 아예 슬로우 모션 리플레이까지 활용해 업그레이드된 영상을 선보였다.

국내 스포츠 아나운서들도 개인 유튜브 활동으로 ‘방송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임용수 캐스터는 “유튜브를 열심히 하고 있다. 김정준 해설위원과도 유튜브를 시작했고, 최근엔 전 KT 위즈 선수 김상현 인터뷰를 업로드했다”고 알렸다. 임 캐스터의 유튜브 채널은 야구인은 물론 야구 콘텐츠 크리에이터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김선신 아나운서는 “재택근무 브이로그를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고 했다. 박지영 아나운서는 “유튜브를 밖에서 촬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최대한 집에서 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찍으려 한다”고 전했다.

심재학 해설위원은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야구를 한다. 평소엔 아들 야구하는 걸 봐줄 기회가 없었는데, 지금은 모든 학교 야구부 훈련이 중단된 상황이라 틈틈이 아들의 개인 훈련을 도와준다”고 했다.

물론 유튜브도 좋고 개인 활동도 좋지만, 역시 스포츠 방송인은 경기장에서 중계방송 중계석에 앉았을 때 가장 빛난다. 박지영 아나운서는 9년 넘게 생체리듬을 야구 시즌에 맞춰 준비해 왔는데, 일을 못 하니까 좀 지친다. 우리도 이런 데 선수들은 오죽하겠나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빨리 운동장에 나가서 일하고 싶습니다. 정용검 아나운서의 말이다. 아마도 모든 스포츠 방송인들이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빨리 중계방송을 하고 싶어요.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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