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프로스포츠 올스톱…미국 메이저리그에선 사회 공헌 활동 한창

-지역사회와 호흡은 메이저리그 전통…지역민의 지지 받는 이유 있다

-일부 구단 노력에도 아직 KBO리그는 야구단의 지역사회 공헌 부족해

-코로나19 사태, KBO리그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계기 만들자

피츠버그 선수단은 400판의 피자를 주문해 의료진에게 전하는 선행을 베풀었다(사진=트레버 윌리엄스 SNS)
피츠버그 선수단은 400판의 피자를 주문해 의료진에게 전하는 선행을 베풀었다(사진=트레버 윌리엄스 SNS)

[엠스플뉴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초토화됐다. 모든 스포츠 경기가 중단됐고, 번화가와 관광지에 사람의 발길이 끊겼고, 자영업자들은 폐업 위기에 내몰렸다. 이런 가운데 미국 피츠버그 야구장(PNC파크) 인근 피자 가게들이 대량의 피자 주문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3월 24일(미국시간) MLB.com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선수단이 홈구장 인근 여러 피자 가게에서 총 400판의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주문한 피자를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지역 병원 의료진에 전달했다.

피츠버그 선수단의 주문을 받은 한 피자 가게 사장은 “선수단이 주문한 피자 300판 덕분에 직원들의 1주일 치 월급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역 상권도 살리고,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도 격려하는 일거양득 효과다. 비록 코로나19로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지만, 피자 400판에 지역사회와 야구단 사이 ‘마음의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피츠버그 지역에 왜 피츠버그 야구단이 존재해야 하는지 증명해 보여준 선행이다.

야구팬 아니어도 지역 사회 지지받는 미국 야구단, “활발한 지역사회 공헌이 비결”

창원NC파크. 25년간 330억 원의 사용료를 낸다(사진=엠스플뉴스)
창원NC파크. 25년간 330억 원의 사용료를 낸다(사진=엠스플뉴스)

지역사회와 항상 함께 호흡하는 건 메이저리그의 오랜 전통이다. 2015년 볼티모어 소요사태로 ‘무관중 경기’를 치른 오리올스 야구단은 해당 경기에서 일하지 못한 좌석안내원, 입장권 검표원, 안전검사요원 등 시간제 직원 전원의 임금을 변상했다.

또 홈 대신 탬파베이로 장소를 옮겨 치른 3경기에 대해서도, 홈구장 시간제 직원들의 임금을 전액 물어줬다. 야구단의 통 큰 배려는 소요사태로 큰 상처를 입은 볼티모어 지역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지역민들의 야구단을 향한 애정이 더욱 깊어진 것은 물론이다.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인 김경민 전 롯데 자이언츠 마케팅 팀장은 미국은 지역 커뮤니티에서 지역 프로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경기 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그전에 스포츠팀을 지역사회와 자기 자신의 일부처럼 여긴다고 했다.

이는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프로 스포츠단의 지역사회 공헌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구단은 연고지와 마이너리그 소재 지역 사회에 각종 사업을 지원하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백만 달러의 자선 기부를 통해 기여한다. 김 전 팀장은 “미국에선 스포츠단이 모든 부면에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서나 프로팀을 유치하기 위해 애를 쓴다. 양키스 구단이 새 양키스타디움을 ‘1달러’란 상징적인 금액만 내고 사용할 수 있는 비결”이라 했다.

반면 한국에서 프로스포츠팀과 지역사회의 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보다도 멀게 느껴진다. 김 전 팀장은 “한국은 아쉽게도 지역사회에 프로구단이 갖는 의미가 크지 않다”며 광주, 대구, 창원 등에서 벌어진 신축 야구장 사용료 갈등을 예로 들었다. 광주에서 KIA 타이거즈는 300억 원을, 대구에서 삼성 라이온즈는 500억 원을 ‘25년 사용료 선납 방식’으로 야구장 건립 비용에 보탰다. NC 다이노스 역시 창원시와 갈등 끝에 25년간 330억 원의 사용료를 내기로 합의했다.

김 전 팀장은 항상 야구장 문제가 불거지면 시민단체, 시의회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시민의 세금이 들어간 경기장을 왜 납세자인 시민이 사용하지 못하고, 사기업에게 독점 운영권을 주느냐는 주장이다. ‘야구단이 지역을 위해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사실 틀린 얘기도 아니다. 반박할 논리가 마땅치 않다고 했다.

야구를 좋아하는 팬 입장에선 ‘지역 이기주의’로 보일지 몰라도, 야구에 관심 없는 일반 시민 입장에선 야구장에 세금이 쓰이는 걸 납득하지 못할 수 있다. 야구에 무관심한 납세자의 관점에선 야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하는 것보다, 야구장을 일반 시민에게 개방해서 공원으로 사용하는 쪽을 선호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야구단이 야구 외에도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면이 많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김 전 팀장은 “만약 야구단이 정말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바가 크고, 지역민들의 삶에 의미가 있고, 시민들의 생활의 일부가 돼 있다면 아마 광주, 대구, 창원에서도 야구단을 지지하는 여론이 컸을 것”이라 지적했다. 그런 면에서 KBO리그 야구단은 아직까지 ‘왜 야구단이 지역사회에 필요한 존재인지’ 시민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야구 팬 외의 시민들에게 야구단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KBO리그의 미래, 지역사회와 공존에 달려…코로나19 계기로 지역사회와 거리 좁혀야

KBO리그 최고의 기부왕 박석민. 개인의 선행을 넘어선 구단과 리그 차원의 지역사회 공헌 활동이 필요하다(사진=NC)
KBO리그 최고의 기부왕 박석민. 개인의 선행을 넘어선 구단과 리그 차원의 지역사회 공헌 활동이 필요하다(사진=NC)

여기엔 KBO리그의 태생적 한계가 있다. KBO리그는 재벌기업 회장님들의 사회 공헌, 혹은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구단 연고지도 회장님 고향, 혹은 회장님 선친의 연고지를 따라 배정했다. 구단 운영비는 모기업 계열사에서 나왔고, 낙하산 사장들은 임기 내 성적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사회공헌 활동은 어차피 모기업 관련 부서에서 맡아서 하는 일이다. 야구단이 지역사회와 교류하고 함께 호흡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프로야구가 불혹을 앞둔 지금은 KBO리그 구단들도 자생력을 갖춰야 하는 시대가 됐다. 김경민 전 롯데 마케팅 팀장은 이제는 야구장에서 야구하고, 관중들이 먹고 즐기는 데만 머물러선 안 된다. 야구단이 지역사회에서 하나의 ‘플랫폼’ 기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플랫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김 전 팀장은 “야구단이 지역사회, 지역 기업, 학교,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가 돼야 한다. 야구단의 인프라와 인력을 활용해 교육사업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야구단을 바라보는 지역사회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야구단이 살아남기 위해선 지역사회와 함께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단체에서도 생각이 달라지고, 세금이 들어가는 야구장 신축 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야구단도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 저변을 확대하고 산업화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한국 프로스포츠의 미래는 지역사회와 공생에 달렸다.” 김 전 팀장의 말이다.

한국사회에 큰 생채기를 남긴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야구단이 지역사회와 거리를 좁히고 호흡을 함께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위축되고 상처받은 지역민들의 아픔을 달래고, 새로운 힘을 불어넣는 역할을 야구가 할 수 있다. 그렇게 힘을 얻은 지역민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야구장 관중석을 채우고, 소비 활동으로 야구단 모기업을 지탱한다. 지역사회를 살리는 게 야구단도 함께 사는 길이다.

메이저리그는 이미 지역사회와 소외된 이들을 돕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은 팀별로 100만 달러씩을 모아 3,00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했다. 시즌 개막 연기로 생존 위협에 내몰린 계약직 직원들을 위한 기금이다. MLB 커미셔너 사무국도 메이저리그 선수노조(MLBPA)와 함께 공립학교 식당 폐쇄로 급식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 취약계층의 식사 지원을 위해 100만 달러를 기부한 바 있다.

KBO리그도 리그와 구단 차원에서 무너진 지역사회와 함께 할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류중일 감독, 한용덕 감독, 우규민, 구자욱, 박석민, 박민우, 황재균, 이승엽, 양준혁, 양현종의 개인적인 기부 활동을 넘어 구단과 리그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24일 KBO 이사회가 “개막 이후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국가적 위기 상황에 KBO 리그가 국민들에게 힘을 주고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사회공헌사업 등을 검토해 추진하기로” 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엔 구단들도 하나같이 ‘패닉’ 상태다 보니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다. 구단 실무진과 얘기를 나눠봐도 당장 선수단 훈련과 시즌 준비 대책을 세우는 게 급해 지역사회 공헌 활동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는 것 같았다”며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정상적인 리그 진행이 가능해지면 구단들도 고려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대구 연고 삼성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선수단이 지역민과 직접적으로 접촉하긴 쉽지 않다. 직원들도 재택근무를 하거나 격일제로 출근하고 있어 당장 지역사회 활동을 실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팀 내에서 지역민 지원, 지역 경제 활성화 관련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온 만큼 추후 논의를 거쳐 실행에 옮길 생각이라 했다.

9.11 테러 이후 열린 뉴욕 경기에서 마이크 피아자의 홈런포는 뉴욕 시민과 미국인들에게 큰 위로를 선사했다. 보스턴 총기 사태 이후 시민들은 팬웨이파크에서 데이비드 오티즈의 격정적인 연설과 함께 하나로 뭉쳤다. KBO리그도 한국 지역사회에서 그 같은 ‘구심점’이 될 수 있을까. 그러려면 39년 동안 이어진 지역사회와 거리두기 상태부터 벗어나야 한다. 꼭 거창한 이벤트나 거액의 성금이 아니어도 된다.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데는 피자 400판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시작이 반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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