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멀티 백업 내야수 류지혁, 마무리 캠프 참가
-“수비 1부터 10까지 다 뜯어고치는 중, 부족한 게 많다.”
-류지혁의 송구 트라우마 “오히려 쉬운 수비 상황에서 실책이…”
-“더 정체하면 안 돼, 내년엔 야구장에서 뭐라도 보여드려야 한다.”

2020년을 향한 류지혁의 각오는 평소보다 더 비장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2020년을 향한 류지혁의 각오는 평소보다 더 비장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잠실]

‘백업’과 ‘멀티’, 그리고 ‘대수비’

이제 이 단어들을 떨치고 싶은 선수가 한 명 있다. 바로 두산 베어스 내야수 류지혁이다.

류지혁은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입성한 뒤 4년 동안 내야 멀티 백업 역할을 소화했다.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수비수로서 류지혁의 가치는 분명히 높았다. 두산 주전 내야수들도 (류)지혁이가 없었다면 시즌 내내 버틸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류지혁은 이제 ‘백업’이라는 단어에 만족할 수 없다. 시즌 종료 뒤 휴식은 사실상 없었다. 류지혁은 통합 우승의 여운이 채 가지 않은 시점에서 곧바로 마무리 캠프로 합류했다. 마무리 캠프에서 그 누구보다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류지혁이다.

마무리 캠프에서 류지혁은 유심히 지켜본 두산 강석천 수석코치는 (류)지혁이가 정말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었다. 마무리 캠프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선수라며 이대로는 안 된단 위기의식이 느껴지더라. 내년엔 진짜 달라진 류지혁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류지혁은 내년 시즌을 두고 ‘진짜 잘해야 할 때’, ‘류지혁이란 선수를 향한 생각을 바꿔야 할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류지혁은 ‘무언가 부족하다’는 자신을 향한 주변의 시선을 어떻게든 바꾸고자 한다. 엠스플뉴스가 처음부터 모든 걸 뜯어고치고 있는 류지혁을 마무리 캠프에서 직접 만나봤다.

“냉정하게 내 실력이 부족했던 걸 인정한다.”

류지혁은 2016년 1군 입성 뒤 멀티 내야 백업 역할만 4년째 맡아왔다(사진=두산)
류지혁은 2016년 1군 입성 뒤 멀티 내야 백업 역할만 4년째 맡아왔다(사진=두산)

한국시리즈 종료 뒤 쉴 새 없이 곧바로 마무리 캠프에 참가했다. 힘들지 않은가.

우승의 여운은 이미 잊었다. 새롭게 준비해야 할 시기라 내가 부족한 부분만 생각하고 있다.

2019년 팀은 통합 우승으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개인적으로 볼 때 2019년 류지혁은 어땠나.

팀 성적과 별개로 내 실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했던 걸 인정한다. 나를 향한 감독님과 코치님, 그리고 팬들의 기대치에 못 미쳤던 건 사실이다. 냉정하게 나를 바라봐야 한다.

누구보다도 노력하는 선수인데 결과가 나오지 않아 아쉬웠겠다.

야구 선수는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줘야 한다. 잘하면 열심히 노력한 거고, 못하면 욕을 먹고 열심히 안 한 선수가 된다. 어쨌든 결과론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다. 결과로 보면 나는 열심히 안 한 거다. 나는 내가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받아들인다. 누구든 다 열심히 한다고 생각할 텐데 안 되니까 더 해야지 않겠나. 과정도 중요하지만, 나는 예전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만큼 마무리 캠프에서도 가장 많은 훈련을 소화 중인 거로 들었다. 마무리 캠프에서 어떤 부분을 집중적으로 훈련 중인가.

일단 수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1부터 10까지 다 바꿔야 한다. 기본기부터 시작인 거다. 포수와 송구, 그리고 스텝까지 전부 다 코치님들과 상의하며 훈련 중이다.

특정 포지션을 잡는 과정이라고 보면 될까.

사실 그것도 잘 모르겠다. 모든 내야 포지션 백업 역할을 소화한 것도 내가 주전 형들보다 실력이 안 되니까 그런 거다. 1군에서 살아남으려고 모든 포지션에서 다 뛰게 된 거다. 어떤 자리든 내가 실력이 돼야 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우선 형들만큼 실력을 올린 뒤 감독님과 코치님이 판단해주시는 거다.

류지혁의 송구 트라우마 “오히려 쉬운 수비 상황에서 실책이

류지혁은 김재호와 함께 팀의 유격수 자리를 맡는 상황이 잦았다. 류지혁은 송구에 있어 안정감을 끌어 올리는 게 필요하다(사진=두산)
류지혁은 김재호와 함께 팀의 유격수 자리를 맡는 상황이 잦았다. 류지혁은 송구에 있어 안정감을 끌어 올리는 게 필요하다(사진=두산)

아무래도 유격수 자리를 이어받길 기대하는 시선이 많다.

개인적으로 (김)재호 형을 한국에서 최고의 유격수라고 생각한다. 계속 ‘재호 형만큼 해야 하는데’라는 압박감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그게 잘 안 되니까 나도 정말 답답하다. 내야 포지션마다 한국 최고의 수비수 형들이 있으니까 따라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물론 지금까지 경험이 나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당장 어느 자리에서 뛰어야 할지 확고한 생각은 없다. 개인적인 욕심이 있어도 나를 가장 잘 아는 감독님과 코치님의 얘기에 따라야 한다고 본다.

김재호 선수가 유격수 선배로서 평소 많은 조언을 하는 거로 안다.

(김)재호 형과 (오)재원이 형이 그런 조언을 정말 많이 해주신다. 내가 내야수 막내인데 형들은 자기 다음 세대를 걱정하신다. 나중엔 내가 이끌어야 하니까 수비할 때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수비를 이끌어야 한다’라고 엄마 아빠처럼 얘기해주신다(웃음). 정말 감사하다. 내가 형들이 원하는 실력으로 올라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류지혁’ 하면 떠오르는 건 정말 아크로바틱한 놀라운 수비가 나올 때가 있는가 하면 정말 평범한 수비 상황에서 허무한 송구 실책이 나올 때가 종종 있다. 안정감을 쌓는 것도 과제인 듯싶다.

확실히 송구는 심적인 게 크다고 생각한다. 차리라 급한 상황에서 수비가 더 잘 된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더 엉킨다. 오히려 여유 있게 아웃이 될 이지 플레이 때 나도 모르게 불안해지는 트라우마가 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다.

음.

그럴 때마다 실책이 꼭 나오더라. 차분하고 여유 있게 수비를 해야 하는데. 급하게 해야 할 때 느긋하게 해야 할 때 그걸 제대로 구분해 수비를 못 하니까 답답하다. 어떻게든 몸으로 반복해 수비가 습관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무조건 연습으로 극복해야 한다.

타격보단 수비에 우선 집중하는 분위기인 듯싶다.

일단 나는 수비가 먼저 돼야 하는 선수다. 수비로 먼저 들어가야 타석 기회가 찾아온다. 내가 대타로 들어가 수비에 나가는 선수가 아니지 않나. 물론 타격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도 맞다. 수비와 타격을 다 잘해야 주전 선수다. 하나만 잘하면 반쪽 선수인데 그런 소릴 듣는 건 싫다.

타석에선 항상 초구 타격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왔다. 선수 자신만의 스타일이라고 보면 되나.

어쨌든 빨리 쳐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진으로 물러나면 아쉬우니까 빠른 타이밍에 방망이가 나왔다. 솔직히 쳐야 할 상황과 안 쳐야 할 상황을 구분하지 못했다. 올 시즌 그런 얘길 주위에서 자주 들었다. 이제 무턱대고 악으로 깡으로 휘두르는 건 아닌 듯싶다. 경기 흐름을 파악하고 기다려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 생각하는 플레이가 필요하다.

“더 정체하면 안 돼, 야구장에서 뭐라도 보여드려야 한다.”

이제 단순히 대주자 대수비가 아닌 주전 류지혁으로 존재감을 발휘해야 할 때가 다가온다(사진=두산)
이제 단순히 대주자 대수비가 아닌 주전 류지혁으로 존재감을 발휘해야 할 때가 다가온다(사진=두산)

내년에 어떻게든 ‘내 자리’를 만들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내 자리’와 관련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제 남은 야구 인생은 ‘어떻게든 잘해야 하는 시기’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에서 끝나면 안 된다. 사람들이 ‘류지혁’이라는 선수를 향해 지닌 생각을 바꾸게 하고 싶다. 이제 ‘얘도 잘하는 선수구나’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무언가 모자란 선수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지 않다. 정확한 목표도 정하지 않았다. 우선 어떤 성적이라도 나와야 그런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사실 두산 야수 백업 자리는 강한 인내심이 필요한 곳이다. 다른 주전 야수들도 이런 과정을 다 거쳤다.

주위에서도 두산 백업 역할은 정말 오랫동안 해야 한다고 말하더라(웃음). 물론 백업 생활의 길이는 내 성적에 따라 달라지는 거다. 형들도 스스로 작아지는 어려운 시기가 있다고 얘기해준다. 나도 형들처럼 이 시기를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다.

평소 류지혁 선수와 대화를 하면 겸손함이 많이 느껴졌는데 이제 비장함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해마다 가을, 이 맘 때 마무리 캠프 인터뷰를 해왔다. 어릴 땐 이렇게 목표를 세우고 내년에 이렇게 하면 될 듯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해마다 고비와 어려움을 겪으니까 말하는 것도 점점 조심스럽다. ‘정말 잘해야겠다’ 이 마음만 전해드리고 싶다. 더 정체하면 안 된다. 야구장에서 뭐라도 보여드려야 할 때다.

두산 팬들은 그만큼 기대치가 크니까 쓴소리도 던지는 듯싶다.

야구를 못 할 때 쓴소리는 달게 받아야 한다. 내가 야구장에서 성적으로 보여드려야 그런 쓴소리를 지울 수 있다. 내년엔 그라운드 위에서 몸으로 대신 얘길 해야 한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해가 됐으면 한다. 항상 어떤 얘기든 나에게 관심을 주시는 두산 팬들에게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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