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문호 프리미어12 대표팀, 서울라운드 조 1위로 도쿄행

-C조 최강 전력...전력상 우세한 만큼 부담감도 컸던 서울라운드

-예선 내내 신중했던 김경문 감독, 불확실성과 변수 최소화하는 운영

-편안한 상황에 출전 기회 얻은 젊은 선수들, 세대교체 순조롭다

이번 프리미어12에서 어느 때보다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는 김경문 감독(사진=WBSC)
이번 프리미어12에서 어느 때보다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는 김경문 감독(사진=WBSC)

[엠스플뉴스]

돌다리도 여러 번 두들기고, 정밀 안전진단까지 끝낸 뒤에 건넌다. 김경문호 한국야구 대표팀이 2019 WBSC 프리미어12에 임하는 자세다.

한국은 11월 8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쿠바전에서 7대 0으로 완승하며, 3연승으로 서울라운드(C조) 1위를 차지해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슈퍼라운드에 진출했다. 3경기에서 15득점을 올릴 동안 실점은 단 1점뿐. 3경기 내내 단 한 순간도 상대에게 리드를 내주지 않고 완승을 했다.

사실 팀 전력만 놓고 보면 한국의 C조 1위는 예상했던 결과다. 이번 대회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비협조(40인 로스터 선수 차출 불허)로 C조 참가팀들은 최상의 전력을 꾸리지 못했다. 쿠바만 해도 메이저리그 방출 선수, 쿠바리그 선수 위주로 팀을 구성했다. 쿠바전 경기장을 찾은 한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는 “눈여겨볼 만한 선수는 2루수와 투수 하나밖에 없다”고 혹평했다.

그래도 국제대회는 1경기 단판 승부다. 낯선 상대 투수에게 말려들어 끌려가거나, 한순간 예기치 않은 실수가 나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게 야구다.

특히나 한국은 앞선 국제대회 때마다 첫 경기에서 ‘한 수 아래’로 생각한 상대에게 악몽을 경험한 바 있다. 2013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네덜란드에 0대 5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2015 초대 프리미어12 일본과 개막전에서 0대 5로 패했고, 2017년 APBC(아시아프로챔피언십)에서도 대표팀은 개막전 일본 상대 7대 8로 졌다.

2017년 WBC 예선이 가장 충격적인 결과였다. 대표팀은 당시 이스라엘과 만난 첫 경기에서 1대 2로 무릎을 꿇은 뒤 네덜란드에 또 0대 5 완패를 당해 2연속 WBC 조별 예선 탈락의 아픔을 겪었다. 지난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예선 첫 경기에서도 타이완에게 1대 2로 패했다.

이번 프리미어12 서울라운드는 첫 경기 상대가 도쿄올림픽 출전 티켓을 놓고 경쟁하는 호주라 부담이 더 컸다. 2017년 WBC에도 참가했던 한 선수는 사실 2년 전 WBC 대회는 부담감이 가장 컸던 첫 경기에서 패하자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첫 경기 결과가 가장 중요하다. 이변과 경우의 수는 피하고 싶다고 했다.

한 수 위의 전력을 갖춘 만큼, C조 1위란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중요했다. 지난해 아시아경기대회 당시 한국은 몇 수 아래 팀을 상대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해 비난을 받았다. 같은 승리도 ‘어떻게’ 이기느냐가 중요했다. 전임자의 실패를 지켜본 김경문 대표팀 감독으로선 이래저래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부담감도 클 수밖에 없었다.

김경문의 신중 모드, 대표팀 승리와 세대교체 둘 다 잡았다

김하성과 박민우, 이정후는 대표팀의 새 센터라인이자 테이블 세터진을 구성한다(사진=WBSC)
김하성과 박민우, 이정후는 대표팀의 새 센터라인이자 테이블 세터진을 구성한다(사진=WBSC)

그래서인지 김경문 감독은 서울라운드 내내 ‘신중 모드’를 유지했다. 가급적 말을 아꼈고, 대표팀의 사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언급은 아예 하지 않았다. 팀의 약점이나 전략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부정적인 얘기나 다음 경기 얘긴 하지 않겠다며 넘겼다.

선수 기용과 경기 운영에서도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개막을 앞두고 시사했던 ‘조상우 6회 투입’은 실제론 이뤄지지 않았다. 미디어에서 대표팀 신데렐라로 주목했던 문경찬의 국제대회 데뷔전도 도쿄 슈퍼라운드로 미뤄졌다. 1, 2차전 불펜 운용은 이영하와 이용찬, 차우찬 등 이미 국제대회 경험이 있고 큰 무대에서 검증된 선수들에 무게를 뒀다.

김 감독은 나이 어린 선수와 국제대회 출전이 처음인 선수는 ‘편한 상황’에 쓰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리그 세이브 1위 하재훈과 2위 고우석은 2차전까지 등판 기회를 잡지 못했다. 고우석은 쿠바전 점수 차가 7점 차로 벌어진 7회가 되자 마운드에 올랐고, 8회엔 하재훈이, 9회엔 이승호가 올라와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떨리게 마련인 국제무대 첫 등판을 비교적 부담이 덜한 상황에서 무사히 치렀다. 고우석은 경기 후 긴장은 됐는데 잘 풀린 것 같아 다행이다. 정규시즌 때도 중요한 상황에 자주 등판했지만, 국제대회 단기전이다 보니 긴장이 되더라고 소감을 밝혔다.

야수진에서도 경험을 우선했다. ‘야구천재 ’강백호는 선발 출전 대신 경기 후반 교체 멤버로 나섰다. 강백호는 쿠바전 7회 우중간을 가르는 타구를 전력 질주해 잡는 좋은 수비로 역시 국제대회가 처음인 투수 고우석을 도왔다.

국제대회 첫 출전인 포수 박세혁도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경기 후반 양의지의 대주자로 출전해, 그대로 마스크를 쓰고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김 감독은 리드오프 박민우가 평가전 2경기에 이어 첫 경기 호주전에서도 무안타로 어려움을 겪자, 2차전에는 김상수를 먼저 기용해 부담을 덜어줬다. 박민우는 캐나다전 후반 대주자로 출전해 타석에서 첫 안타까지 기록하며 반등의 실마리를 찾았다.

결과적으로 김 감독의 ‘신중 모드’가 서울라운드 3전 전승이란 최상의 결과로 돌아왔다. 3경기 모두 결과는 물론 내용에서도 완승이었고, 주력 선수들 대부분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 가운데 일본으로 가게 됐다. 김 감독은 “앞으로 5경기가 더 남았다”며 여전히 신중한 자세를 유지했지만, 대등한 전력을 갖춘 팀들과 상대할 슈퍼라운드에선 김 감독 특유의 과감한 승부수가 나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대표팀의 영원한 숙제인 세대교체도 순탄하게 진행되는 흐름이다. 김 감독은 이번 대표팀을 33세 이하 비교적 젊은 선수 위주로 꾸렸다. 주장 김현수가 제 몫을 잘하고, 나이대가 비슷한 선수들끼리 조화를 이루면서 이번 대표팀은 ‘역대 최고’라 할 정도로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야수진에선 중견수 이정후와 2루수 박민우-유격수 김하성으로 이어지는 새 센터라인과 테이블세터진이 탄생했다. 특히 이정후와 김하성은 지난해 아시아경기대회 경험을 발판으로 이번 대회에서 부쩍 성장한 모습이다.

마운드에서도 고우석, 이승호 등이 경험치를 쌓은 만큼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대표팀 운영의 ‘연속성’은 전임감독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효과 중에 하나다. 차곡차곡 쌓은 젊은 선수들의 경험치가 슈퍼라운드와 2년 뒤 도쿄올림픽까지 이어지는 게 한국야구 대표팀에겐 최상의 시나리오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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