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 마무리 투수 하재훈, KBO리그 첫해 세이브왕 등극
-담담한 하재훈 “최대한 숫자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고우석 PS 부진? 최근 경기 등판만으로 그 투수를 평가할 순 없다.”
-“첫 가을야구 도전, 점수 차를 오히려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KBO리그 입성 첫해 세이브왕을 달성한 SK 마무리 투수 하재훈(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KBO리그 입성 첫해 세이브왕을 달성한 SK 마무리 투수 하재훈(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

(하)재훈이는 ‘멘탈’이 남달라요. 그냥 믿습니다.

SK 와이번스 손 혁 투수코치는 마무리 투수 얘기가 나오자 걱정이 없다는 듯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올 시즌 리그 세이브왕을 보유한 팀의 투수코치다운 여유였다.

가을야구에서 마무리의 존재감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확실하게 느껴진다. 정규시즌 놀라운 투구를 보여준 LG 트윈스 마무리 투수 고우석은 최근 준플레이오프 시리즈 2경기에서 끝내기 홈런 허용과 블론 세이브를 연이어 기록하며 고갤 숙였다. 가을야구 ‘첫 경험’이라는 불안 요소를 끝내 넘지 못한 장면이었다.

SK 마무리 하재훈도 어려움을 겪는 고우석과 같이 마무리 투수로서 첫 가을야구를 앞두고 있다. 자신감과 실력은 충분하다. 하재훈은 올 시즌 61경기(59이닝)에 등판해 5승 3패 36세이브 3홀드 평균자책 1.98의 호성적을 거뒀다. 하재훈은 SK 구단 한 시즌 최다 세이브(종전 기록 2003년 조웅천-2012년 정우람 30세이브) 기록을 경신하며 자신을 투수로 선택한 구단의 믿음에 보답했다.

비록 정규시즌에서 아쉬운 준우승을 거뒀지만, 하재훈은 이에 개의치 않고 생애 첫 가을야구를 담담히 기다린다. 아무리 큰 무대라고 해도 하재훈은 숫자에 현혹되지 않는 마무리 투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정신적인 압박감을 받지 않고 자신의 흐름대로 경기를 풀어가겠단 하재훈의 의지가 담긴 표현이었다. 엠스플뉴스가 포스트시즌 SK 뒷문을 확실히 책임질 하재훈의 마음가짐을 직접 들어봤다.

“마무리 투수로서 ‘숫자’에 안 쫓기려고 노력했다.”

하재훈의 묵직한 강속구는 올 시즌 SK의 호성적을 예감하게 하는 투구로 이어졌다(사진=SK)
하재훈의 묵직한 강속구는 올 시즌 SK의 호성적을 예감하게 하는 투구로 이어졌다(사진=SK)

세이브왕을 만나게 돼 영광이다(웃음). KBO리그 입성 첫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사실 세이브왕을 향한 욕심이 전혀 없었다. 한 경기 한 경기 집중해 던지는 것도 바빴다. 그런 타이틀에 얽매이지 않고 당장 눈앞의 경기에 집중하는 게 나나 팀에 도움이 더 될 듯싶다. 타자도 전광판에 있는 타율을 보면 실망할 때도 종종 있지 않나. 그런 숫자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세이브왕으로서 자부심은 있지 않나.

나는 그런 것보단 눈앞에 있는 상대 타자를 압도할 때 자부심이 더 느껴진다. 솔직히 지난해 세이브왕 목표를 언급한 건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계속 야구하다 보면 언젠간 세이브왕이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어 가볍게 얘기한 거였다.

그 목표가 현실로 점점 다가왔다.

막상 세이브왕이 현실로 다가올수록 더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달콤한 맛을 보려고 하면 뒤에 따라오는 선수도 신경 쓰게 되더라. 최대한 숫자에 안 쫓기려고 했다. 그런 숫자에 현혹되지 않아야 진짜 마무리 투수가 아닐까.

숫자에 안 쫓기는 마무리라. 인상 깊은 답변이다. 무엇보다 올 시즌은 투수로서 자신의 능력에 확신을 느끼게 된 시간이 되지 않았나.

올 시즌 전부터 투수로서 확신이 이미 있었다. 이렇게 던지면 잘 통할 거로 생각했다. 상대 타자에 우위를 점할 수 있단 자존감이 시즌 내내 유지됐다.

풀타임 시즌 소화 도중 벽에 부딪힌 적도 있을 듯싶다.

그날 몸 상태에 따라 어려움을 자주 겪었다. 몸 상태가 안 좋으면 경기를 어렵게 끌고 가게 된다. 또 더 던지고 싶은데 계속 못 던지는 때도 있었고, 그만 던지고 싶은데 계속 던져야 할 때도 있었다. 나만의 노하우를 더 익혀야 한다. 구속이 잠시 안 나올 때 ‘왜 이러지’라고 걱정하기도 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괜찮아지더라. 투수로서 풀타임 시즌을 치르는 건 팔에 부담이 가기에 더 힘든 일인 듯싶다.

“고우석 부진? 최근 경기로 진짜 실력 평가할 수 없다.”

SK 마무리 하재훈은 이제 개인 첫 가을야구를 맛보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사진=SK)
SK 마무리 하재훈은 이제 개인 첫 가을야구를 맛보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사진=SK)

그래도 마무리 전환 뒤 블론 세이브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팀 벤치에서 잘 관리해주신 덕분이다. 기본적으로 마무리 투수는 블론 세이브를 하면 안 되는 자리다. 선발투수의 승리를 뺏는 게 블론 세이브니까 어떻게든 리드를 지켜야 한다. 물론 블론 세이브가 설사 나오더라도 어차피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쉬울 수도 혹은 어려울 수도 있는 자리다.

마무리 투수를 맡으며 느낀 압박감은 어땠나.

압박감 자체를 느낀 것보단 자리가 자리다 보니까 더 신경 쓰이는 건 있었다. 다른 역할보단 확실히 세이브 상황에서 올라가는 거라 부담은 덜 느꼈다. 처음부터 강한 공을 던져야 한단 부담은 다소 있었다. 좋았던 과정도 나빴던 과정도 다 있는데 나쁜 건 최대한 빨리 잊으려고 한다. 정규시즌 때 한 점 차나 만루 위기를 막은 경험이 가을야구에 좋은 약이 되지 않을까.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우승컵을 넘겨준 상황은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

마지막 순간 느낀 아쉬움은 그때로 잊어야 한다. 정말 잘해왔지만, 그런 결과가 나온 건 끝까지 우리가 집중을 제대로 못 했단 뜻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정규시즌 얘길 하고 싶진 않다. 포스트시즌이 다 끝나고 얻을 성과에만 집중하겠다.

LG 마무리 고우석이 첫 가을야구 무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재훈 선수도 첫 가을야구인데 불안한 감정은 안 느끼는지 궁금하다.

고우석 선수도 정규시즌까지 정말 잘 던졌지 않나. 최근 경기에서 부진으로 그 선수의 전부를 평가해선 안 된다고 본다. 자신감은 준비된 자가 가질 수 있는 거다. 개인적으로 나는 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한다. 나는 걱정이 전혀 없는데 오히려 감독님과 코치님이 더 걱정하시는 듯싶다(웃음).

“큰 경기 경험? 경기 출전 숫자가 아니라 과정과 극복하는 방법이 중요”

지난해 국외파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삼성 이학주(사진 왼쪽부터)-SK 하재훈-KT 이대은. 이 가운데 하재훈이 가장 인상적인 올 시즌 기록을 남겼다(사진=엠스플뉴스)
지난해 국외파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삼성 이학주(사진 왼쪽부터)-SK 하재훈-KT 이대은. 이 가운데 하재훈이 가장 인상적인 올 시즌 기록을 남겼다(사진=엠스플뉴스)


가을야구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심적으로 버릴 요소는 확실히 버려야 한다. 한 점 차 승부에서 꼭 지켜야 한단 마음가짐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한 점 차 역전 위기라도 속으론 그 점수 차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뒤집어지면 그냥 지는 거로 생각한다. 죽고자 하면 사는 거다(웃음).

볼넷도 가을야구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요소다.

투수들이 점수 차를 지키려고 하다 보니까 소위 말하는 ‘볼질’을 하게 된다.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줘 안 들어가는 거다.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영점 잡기와 관련해 공개할 수 없는 영업 비밀이 있긴 있다. 투구를 하다가 그 자리에서 바로 약간의 변화를 주는 거다.

가을야구 등판에서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번 가을야구에선 공부하는 마음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큰 경기 경험이란 건 단순히 많은 경기로 얻는 게 아니라 그 과정과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본다. 눈앞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실수 없이 수행하는 게 중요하다. 시즌 막판 벤치에서 관리를 해주셨고, 플레이오프를 대비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분위기 싸움에서 먼저 이겨야 한다.

SK 팬들도 지난해처럼 ‘업셋’ 우승을 기대하는 상황이다.

앞서 말했지만, 정말 경기 초반 분위기 싸움이라고 본다.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집중해야 한다. 연습이야 똑같이 하는 거니까 팀 동료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응원도 잘 해줘야 한다. 스포츠의 세계에선 당연히 이기는 게 먼저다. SK 팬들이 올 시즌 야구장에 많이 찾아와주셨는데 가을야구에서도 끝까지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보름 정도 뒤에 나올 시즌 최종 결과로 팬들과 함께 꼭 웃고 싶다.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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