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 작 피더슨 사태, 1루 수비 중요성 보여주는 사례

-KBO리그도 전문 1루수 품귀 현상…500이닝 이상 소화한 국내 1루수 3명 뿐

-좌타자 증가로 강습 타구 늘어, 1루도 3루 만큼 ‘핫코너’…1루수 포구 능력이 내야진 수비력 좌우

-1루 수비 중요성 커졌지만, 리그에 전문 1루수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

해프닝으로 끝난 LA 다저스의 작 피더슨 1루 실험. 1루 수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사진=엠스플뉴스)
해프닝으로 끝난 LA 다저스의 작 피더슨 1루 실험. 1루 수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최근 LA 다저스 류현진 선발등판 경기를 시청하는 야구팬 사이에서 외야수 작 피더슨은 ‘욕받이’ 신세가 됐다. 욕의 총량으로 따지면 거의 박찬호 전성기 시절 톰 굿윈이 받은 비난과 맞먹을 정도로, 수명으로 따지면 불로장생을 누릴 만큼 많은 욕을 먹었다.

어설픈 1루 수비가 원인이다. 다저스는 중복 자원이 넘치는 외야를 정리하고 1루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전문 외야수 피더슨을 6월 중순부터 1루수로 기용했다. 결과는 대실패. 피더슨은 20경기에서 실책 6개를 저질렀다. 특히 류현진 선발등판 경기에서 1루 땅볼 포구 실책, 병살타 상황에서 유격수의 송구를 놓치는 실수로 K-팬들의 원성을 샀다.

결국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패착을 인정했다. “작 피더슨의 1루수 실험은 끝났다. 코디 밸린저와 맥스 먼시가 1루수로 나선다”며 수비 포지션을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선언했다. 야구에서 가장 수비 비중이 낮은 포지션으로 알려진 1루 수비가 사실은 만만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 해프닝이다.

1루수는 꿀보직? 알고보면 만만찮은 1루 수비

야탑고 시절부터 1루수로 활약한 오재일. 현재 리그에서 가장 1루 수비를 잘 하는 선수 중 하나로 꼽힌다(사진=엠스플뉴스)
야탑고 시절부터 1루수로 활약한 오재일. 현재 리그에서 가장 1루 수비를 잘 하는 선수 중 하나로 꼽힌다(사진=엠스플뉴스)

전문 1루수 부재는 LA 다저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KBO리그에서도 1루 수비에 전문성을 갖춘 ‘정통 1루수’가 점차 사라져가는 추세다.

올 시즌 리그 1루수 수비이닝 순위를 보면, 8월 18일 현재까지 500이닝 이상 1루수로 출전한 선수는 단 5명 뿐이다. 4명 중에 둘은 제이미 로맥(898.1이닝)과 다린 러프(544.1이닝)로 외국인 타자다. 국내 1루수는 두산 오재일(800.2이닝)과 키움 박병호(697.2이닝), KT 오태곤(608.1이닝)만이 시즌 내내 1루수로 경기에 나섰다.

이들을 제외하면, 각 구단 주전 1루수 중에 1루가 주포지션인 선수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 KIA 김주찬(489이닝)은 유격수로 프로에 입문해 외야수로 오랜 기간 활약했고 LG 김용의(398.2이닝)는 내외야 거의 전포지션을 소화하는 멀티 플레이어다. NC 모창민(394이닝)도 프로 입단 뒤 주포지션은 3루수였다. 정통 1루수로 보긴 어렵다.

20대 중반 이하 젊은 선수 쪽으로 눈을 돌리면 1루 인력난은 더 심각해진다. 27세 이하 선수 1루수 출전이닝 상위권을 차지한 롯데 오윤석(290.1이닝), 한화 노시환(199.2이닝), KIA 류승현(178.2이닝), KT 박승욱(173.2이닝), 한화 변우혁(132이닝), 삼성 공민규(101이닝)은 하나같이 아마추어 시절 유격수나 2루수, 3루수로 활약했다.

전통적으로 1루수는 수비력이 떨어지는 거포형 선수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다른 포지션에 비해 1루는 수비 부담이 적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수비 난이도만 놓고 보면 1루는 결코 쉬운 포지션이 아니다. 강한 어깨, 빠른 발 등의 ‘툴’ 없이도 소화할 수 있는 포지션이기 때문에 쉬워 보일 뿐이다.

현역 시절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한 홍원기 키움 코치는 요즘 프로야구에서 1루는 구멍나면 아무나 데려다 때우는 자리처럼 된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론 내야에서 어느 포지션보다 중요한 자리가 1루라고 강조했다. 전형도 한화 코치도 “3루보다 1루수의 움직임이 훨씬 많다. 1루 베이스에 있다가, 스킵해서 수비 위치로 나가야 하고 커트 플레이도 많다.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1루는 ‘핫코너’로 불리는 3루 만큼이나 강습타구가 많이 날아오는 자리다. 프로 초창기만 해도 좌타자 수가 적어 1루쪽 강습 타구가 많지 않았지만, 1990년대 이후 좌타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1루도 3루와 함께 ‘핫코너’로 분류되는 추세다.

실제 올 시즌 타구 방향 비율을 보면 좌측 타구가 40.1%, 우측 타구가 36.7%로 1-2간 방향 타구가 3-유간 못지 않게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장에선 ‘1루쪽 강습 타구 중에 이상한 바운드, 스핀이 먹어 처리하기 까다로운 타구 비율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포지션을 보다 1루로 온 선수는 이런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쉽지 않다.

내야수들이 던진 송구를 받아내는 것도 1루수의 중요한 역할이다. KT 이강철 감독은 요즘엔 전문 1루수가 많지 않다. 과거에는 1루 수비를 오랫동안 경험한 선수들이 많아서, 내야수의 좋지 않은 송구도 잘 잡아내 아웃으로 만들곤 했다. 송구를 잘 잡는 1루수가 있으면, 내야 수비 전체의 수준이 크게 향상된다고 했다.

키움 홍원기 코치도 “파인플레이의 완성은 좋은 1루수의 포구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콜로라도 로키스 놀란 아레나도의 ‘아크로바틱’한 플레이가 가능한 건, 어떻게든 공을 잡아서 1루 쪽으로 던지면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1루수가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홍 코치는 “메이저리그 내야수라고 모두 정확한 송구를 하는 건 아니다. 1루수가 잘 잡아서 마무리를 해줘야 비로소 명장면으로 완성된다”고 했다.

어린 내야수의 ‘입스’ 방지를 위해서도 1루수의 포구 능력이 중요하다. 홍 코치는 과거엔 어린 선수가 1루 송구를 잘못하면 고참 선수가 인상을 쓰거나 혼을 내는 경우가 있었다. 그 때문에 ‘입스’가 오기도 했다. 반면 송구가 좀 빗나가도 1루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내면 어린 내야수들에겐 큰 힘이 된다. 우리 팀 박병호 선수에게 고마운 것도 그런 점이라 했다.

홍 코치는 1루수가 다른 내야수에 비해 송구 거리가 짧다는 점도 지적했다. “먼 거리 송구는 잘하는데 의외로 짧은 거리에서 송구에 애를 먹는 선수가 적지 않다. 가까운 거리 송구를 잘 하려면 평소 캐치볼 연습도 많이 해야 하고, 예민한 볼 핸들링 감각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루 수비 중요성은 커지는데…KBO리그는 전문 1루수 기근

3루수로 프로에 입단해 오랜 기간 1루수로 활약한 김태균. 김태균과 이대호 등의 뒤를 이을 전문 1루수가 보이지 않는 게 프로야구 현실이다(사진=엠스플뉴스)
3루수로 프로에 입단해 오랜 기간 1루수로 활약한 김태균. 김태균과 이대호 등의 뒤를 이을 전문 1루수가 보이지 않는 게 프로야구 현실이다(사진=엠스플뉴스)

이처럼 1루 수비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반면, 전문성을 갖춘 1루수는 점차 리그에서 사라지는 추세다. 특히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이후 거포 외국인 선수가 대거 1루를 차지하면서, 1루는 농구의 ‘정통센터’처럼 아마추어 선수들이 기피하는 포지션이 됐다.

또 신인 스카우트에서 스피드, 송구능력 등 ‘툴’이 우선시되면서 아마야구에서 1루를 보던 선수가 프로 지명을 받는 사례는 갈수록 드물어졌다. 지방 구단 스카우트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박정권, 오재일 등 아마야구에서 1루수로 활약한 선수가 프로 지명을 받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아마야구에 1루만 보는 선수도 거의 없을 뿐더러, 있더라도 좀처럼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어렵게 신인 드래프트를 통과해 프로에 입단해도 산 넘어 산이 기다린다. 다른 지방팀 스카우트는 “아마추어에서 날고 기는 거포 1루수도 프로에 오면 변화구 대처 등에 약점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발빠른 외야수나 센터라인 내야수는 대수비, 대주자로라도 쓰임새가 있지만 장타 원툴인 선수는 1군 기회가 꾸준히 주어지질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 팀에서 간판 스타나 외국인 타자가 1루 자릴 꿰차고 있어 좀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프로야구의 전문 1루수 기근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지난 7월 23일 발표된 ‘2019 WBSC 프리미어12’ 1차 예비 엔트리다.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1루수는 총 6명. 이 중에 박병호, 이대호, 김태균, 오재일은 30대 중후반 베테랑이다.

박병호와 오재일은 올 시즌에도 여전히 1루수로 많은 경기에 나오고 있지만, 이대호와 김태균은 이제는 전업 지명타자에 가깝다. 3루수-유격수 출신인 오태곤은 전문 1루수로 분류할 정도는 아니다. 포수 출신으로 2010년부터 1루수로 활약한 최지만은 KBO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 구단 소속이다. 국가대표 팀의 다른 포지션은 비교적 빠르게 세대교체가 이뤄진 반면, 유독 1루수만 ‘그때 그 사람들’ 그대로다.

역대 KBO리그 골든글러브 수상자 명단을 보면, 각 시대별로 리그를 지배한 1루수가 누구였는지 알 수 있다. 1997년부터 2003년은 삼성 이승엽이, 2005년부터 2011년 사이엔 이대호와 김태균이 리그를 평정했다. 그리고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는 박병호의 시대였다.

이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나면, 뒤를 이어 국가대표와 골든글러브를 차지할 차세대 1루수는 누가 될까? 한참을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 현실이다. 한때 야구팬 사이에 유행한 코믹송 ‘1루수가 누구야?’가 조만간 프로야구에서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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