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현대 이동국, 11월 1일 K리그1 최종전 끝으로 은퇴한다

-황선홍 감독 “내년부터 (이)동국이의 발리슛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벌써 허전하다”

-“동국이의 첫인상? 곱상한 외모에 축구까지 잘했던 ‘신세대’였다”

-“동국이가 대단한 건 부상과 부진을 이겨내고 다시 정상에 섰다는 것”

-“언제 어디서든 응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기억했으면”

이동국(사진 왼쪽)은 황선홍 감독의 뒤를 잇는 대형 스트라이커였다(사진=엠스플뉴스, 한국프로축구연맹)
이동국(사진 왼쪽)은 황선홍 감독의 뒤를 잇는 대형 스트라이커였다(사진=엠스플뉴스, 한국프로축구연맹)

[엠스플뉴스]

“착잡하다.” 전북 현대 이동국(41)의 은퇴 소식을 접한 대전하나시티즌 황선홍 전 감독의 심경이다.

10월 26일 이동국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은퇴를 발표했다. 전북 역시 “한국 최고의 프로축구 선수이자 K리그의 ‘살아있는 전설’ 이동국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그라운드를 떠난다”고 알렸다.

이동국의 마지막 경기는 11월 1일 홈(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K리그1 최종라운드(27) 광주 FC전이다.

“프로 스포츠에서 팬보다 중요한 건 없다. (이)동국이는 K리그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선수다. 동국이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올 시즌도 경기장에 들어설 때마다 좋은 경쟁력을 보여줬다. 통화할 때마다 동국이에게 ‘팬들을 위해 최대한 오래 뛰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내년부터 동국이의 발리슛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벌써 허전하다.” 황 감독의 말이다.

- 1998년 첫 만남 떠올린 황선홍 감독 “(이)동국이는 ‘신세대’였다” -

1998년 6월 21일 프랑스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2차전 네덜란드전에 교체 출전한 19살 이동국(사진 왼쪽)(사진=KFA)
1998년 6월 21일 프랑스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2차전 네덜란드전에 교체 출전한 19살 이동국(사진 왼쪽)(사진=KFA)

이동국은 등장부터 남달랐다. 포철공고를 졸업하자마자 프로(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해 축구계의 눈을 사로잡았다. 19살 소년은 K리그 15경기에서 뛰며 7골을 터뜨렸다. 컵 대회 9경기에선 4골을 넣었다. 그해 신인왕은 이동국 몫이었다. 경쟁자가 없었다.

이동국이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알린 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었다. 1997년부터 한국 축구 대표팀 상비군에 이름을 올린 이동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최종 명단에 뽑혔다. 김도훈, 최용수와 펼친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진 못했지만, 잠재력을 인정받아 출전 기회를 잡았다.

1998년 6월 21일 프랑스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2차전 네덜란드전. 이동국은 0-3으로 뒤지던 후반 32분 교체 투입돼 과감한 중거리 슈팅으로 네덜란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동국은 그 슈팅 하나로 네덜란드전(0-5)에서 찾은 유일한 희망으로 평가받았다.

황선홍 감독은 그해 이동국을 또렷이 기억한다. 1998년 여름까지 포항에서 이동국과 한솥밥을 먹은 까닭이다. 황선홍은 신인 이동국의 룸메이트이기도 했다.

“앳된 선수였지. 동국이를 처음 봤을 때 놀란 게 있다. 동국이는 신세대였다. 내 또래 선수들은 외모에 신경 쓰지 않았다. 잘생긴 동국이는 관리까지 했다(웃음). 1998년엔 그런 선수가 흔치 않아 신기했다. 더 놀라운 건 축구 실력이었다. 슈팅력이 남달랐다. 피지컬도 훌륭했다. 고교 졸업 후의 몸과 지금 몸이 크게 다르지 않다. 큰 선수가 되겠구나 싶었다. 동국이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 넘치는 선수였다.” 황 감독의 회상이다.

이동국이 1998년부터 2020년까지 축구계에 남긴 기록(표=엠스플뉴스)
이동국이 1998년부터 2020년까지 축구계에 남긴 기록(표=엠스플뉴스)

축구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동국은 K리그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이동국은 프로 23년 차 시즌을 맞이한 올해까지 K리그 통산 547경기에서 뛰며 228골 77도움을 기록했다. 이동국이 터뜨린 골은 K리그 통산 최다 골 기록이다. K리그 최초 70골-70도움 클럽 가입(2017년), 공격포인트 300개(223골 77도움·2019년) 등의 기록도 세웠다.

이동국은 전북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클럽으로 발돋움하는 데도 앞장섰다. 2009년 전북 유니폼을 입은 이동국은 팀의 첫 K리그 우승(2009년)을 시작으로 총 7회 우승을 이끌었다. 이동국을 앞세운 전북은 성남 FC와 K리그 최다우승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16년엔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정상 등극을 이끈 이동국이다.

끝이 아니다. 이동국은 ACL 통산 37골(75경기 출전)을 넣었다. 1998년 A대표팀 데뷔 후엔 두 차례 월드컵(1998·2010) 포함 105경기(역대 10위)를 뛰었다. 이동국이 태극마크를 달고 터뜨린 33골은 차범근(58골), 황선홍(50골), 박이천(36골)에 이은 네 번째(김재한과 공동 4위) 최다득점 기록이다.

코로나19 시대에도 이동국의 활약은 변함이 없었다. 5월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시즌 K리그1 공식 개막전 수원 삼성전에서 이동국은 절묘한 헤더로 결승골을 기록했다. 이 골은 올 시즌 1호골이었다. 6월 6일 FC 서울전에선 76분만 뛰고 멀티골을 기록하며 팀의 4-1 승리를 이끌었다. 황 감독이 “이동국은 더 뛸 수 있는 선수”로 표현하는 건 이 때문이다.

황 감독은 “이동국은 K리그 역사를 새롭게 썼다”“특히나 전북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이어 “이동국이 대단한 이유는 또 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밝혔다.

“스트라이커는 반드시 시련을 겪는다. 골을 넣고 승리를 결정지어야 하는 포지션인 까닭이다. 경기 출전이 전부가 아니다. 동국이는 큰 부상과 부진을 여러 차례 이겨내고 다시 정상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꾸준한 기량을 유지했다. 축구계가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친구다. 후배지만 동국이를 존경하는 건 이 때문이다.”

- “월드컵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동국이는 그 이상을 해낸 선수다” -

이동국은 2009년 전북 입단 후 K리그 7회, ACL 1회 우승을 달성하는 데 앞장섰다(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이동국은 2009년 전북 입단 후 K리그 7회, ACL 1회 우승을 달성하는 데 앞장섰다(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황선홍 감독의 말처럼 이동국에겐 큰 시련이 있었다. 이동국은 두 차례 유럽 무대에 도전했지만 자릴 잡지 못했다.

첫 도전은 독일 분데스리가였다. 이동국은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에 출전해 득점왕(6골)을 차지했다. 이 활약을 발판삼아 2001년 포항을 떠나 베르더 브레멘으로 6개월 임대 이적했다. 하지만, 유럽 무대는 녹록지 않았다. 이동국은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리그 7경기 출전에 그쳤다.

2007년 1월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미들즈브러 이적을 알렸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에 이은 네 번째 EPL 도전자였다. 그러나 EPL 주전 경쟁은 만만치 않았다. 이동국은 1시즌 반 동안 리그 23경기에 출전해 득점포를 가동하지 못했다. 컵대회 6경기에서 2골을 기록한 채 K리그로 돌아온 이동국이다.

월드컵과 인연도 깊지 않았다. 아시아 최초 4강 진출을 일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선 십자인대 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당시 이동국은 리그 10경기에서 7골을 터뜨리는 놀라운 득점 감각을 과시 중이었다.

황 감독은 “100명 가운데 99명은 동국이와 같은 시련이 닥치면 주저앉을 것”이라며 “축구계가 동국이의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유럽 축구를 보면 국가대표팀보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높게 평가한다. 한국도 바뀌었다. 1990년대까진 국가대표팀 합숙이 길었다. 2002년 월드컵이 대표적인 예다. 지금은 아니다. 동국이가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조금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태극마크를 달고 좋은 경기력 자주 보였다.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 가입과 득점 수를 보면 안다. 무엇보다 한국의 그 어떤 선수도 한국 축구의 근간인 K리그에서 동국이와 같은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이동국에 대한 황 감독의 평가다.

이동국은 10월 26일 자신의 SNS에 “은퇴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며 “23년이란 긴 시간 많은 분의 격려와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다. 덧붙여 “팬이 있어 행복한 선수로 살았다. 특히나 전북에서 보낸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동국은 프로축구 선수로 마지막 경기를 준비한다. 전북은 11월 1일 광주 FC전에서 무승부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면 K리그 최초 4연패를 달성한다. 이동국이 전북의 새로운 기록 달성에 힘을 더하며 선수 인생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황 감독은 그런 이동국을 향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동국이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내린 결정으로 생각한다. 은퇴를 경험한 선배로서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느낀다. 선수 때보다 힘든 일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묵묵히 나아가면 제2의 삶도 선수 시절 못지않을 거다. 자랑스러운 후배 동국아,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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