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스플뉴스=국회]
“우리 예쁜 딸, 유민아. 엄마가 미안하다. 사랑한다.”
8월 20일 오전 11시 30분. 여의도 국회 기자회견장에 고인이 된 전 여자프로배구 선수(현대건설 힐스테이트) 고유민 선수의 어머니와 남동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박정 의원과 체육시민단체 ‘사람과 운동’ 대표 박지훈 변호사가 자리에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유족 측은 “고유민 선수를 생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건 악성 댓글이 아니라 현대건설 배구단의 의도적 따돌림과 ‘사기 갑질’이었다”고 폭로했다. 고유민 선수의 어머니는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유족 측은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뒤 45분부터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시작했다.
그런데 한창 질의·응답이 진행 중인 시간에 현대건설 배구단에서 돌연 구단 공식 입장문을 배포했다. 고유민 선수 사망 이후 현대건설은 단 한 번도 공식 홈페이지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계정을 통해 고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프로배구연맹(KOVO) 공식 SNS 계정에 올라온 고유민 추모 게시물도 현대건설 배구단 계정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랬던 현대건설이 마치 기자회견이 열리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절묘한 타이밍에 입장문을 내놨다.
입장문에서 현대건설은 “그간 구단은 고인의 명예를 존중하기 위해 별도의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며 “유족 측에서 제기하는 몇 가지 사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구단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고 밝힌 뒤, 기자회견에서 나온 의혹을 ‘따박따박’ 반박했다.
현대건설은 유족이 주장한 훈련 제외가 사실이 아니고, 임의탈퇴는 본인 의사를 존중한 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유족이 객관적으로 명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추측만으로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다시 한 번 고인의 사망 원인을 ‘악플’에 돌렸다.
구단 입장문이 나온 뒤 12시부터 구단 입장을 반영한 보도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현장 취재 기자들은 한창 질의·응답이 진행 중이라 유족 측 입장을 반영한 기사 작성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유족의 눈물 젖은 호소는 구단에서 내놓은 건조한 공식 입장에 쓸려 내려갔다.
입장문을 기자회견 시간에 맞춰 발표한 이유가 뭔지 박원철 현대건설 배구단 부단장에게 물었다. 박 부단장은 “입장문을 정확히 몇 시 몇 분에 배포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기자회견이 다 끝난 것을 확인한 뒤에 배포했다”며 “배포 시간은 기자회견이 끝나고 질의·응답하는 중 아니었나”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기자회견은 입장 발표와 질의·응답으로 이뤄지며, 질의·응답 시간도 기자회견의 일부로 보는 게 상식적이다.
구단 공식 입장문이 불과 30분 사이 짧은 시간 안에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의도적으로 유족의 기자회견 시간에 맞춰 배포한 게 아닌지도 물었다. 박 부단장은 “입장문은 기자회견 이전부터 준비했고 일부 문구를 수정하는 정도는 금방 가능하다. 회견에서 어떤 내용이 나올지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다”고 밝혔다.
모 프로 스포츠단 홍보팀 관계자는 “구단 공식 입장을 기자회견 진행 중에 내놓는 건 기자회견 관련 기사를 ‘묻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홍보 기법”이라며 “다만 사람이 죽었고 유족이 기자회견 중인데 반박 입장문을 내는 건 보기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와 관련 ‘도의적으로 문제 있는 것 아닌지’ 묻자 박 부단장은 “알아서 판단하시라”고 답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