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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체육회·경찰이 ‘문제없다’던 정빙기 입찰비리 의혹, 검찰이 재기수사 나섰다 [엠스플 탐사]

  • 기사입력 2021.05.13 07:50:05   |   최종수정 2021.05.13 05: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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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빙기 입찰 복마전, 이번엔 태릉선수촌 국제빙상장 정빙기 입찰 비리 의혹

-대한체육회, 특정 회사 제품 규격과 똑같은 사양 요구해 밀어주기’ 논란

-들러리 입찰, 서류 조작 의혹 제기 속에서 대한체육회는 “문제없다”며 예정대로 정빙기 납품받아

-경찰이 패스한 사건, 검찰은 재기수사 결정…서울북부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이 수사 중

 

대한체육회가 운영하는 빙상장 정빙기 입찰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사진=엠스플뉴스)

대한체육회가 운영하는 빙상장 정빙기 입찰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대한체육회가 운영하는 태릉선수촌 국제스케이트장 '정빙기 입찰비리 의혹' 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수사는 대형 경제사건과 시장질서 교란 행위를 수사하는 중요경제범죄조사단이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정 업체 밀어주기, 중복 입찰, 서류 조작 등 정빙기 입찰을 둘러싼 각종 의혹의 진상이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빙기 세부규격 E사 제품에 맞춰 설정…특정 업체 밀어주기 문제 있다”

 

정빙기 입찰은 수시로 각종 의혹이 되풀이되는 복마전 양상이다(사진=엠스플뉴스)

정빙기 입찰은 수시로 각종 의혹이 되풀이되는 복마전 양상이다(사진=엠스플뉴스)

 

문제의 정빙기 입찰비리 의혹은 지난해 4월 대한체육회에서 진행한 ‘태릉선수촌 국제스케이트장 정빙기 구매’ 사업을 놓고 제기됐다. 이 사업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사용하는 시설인 만큼 최근 5년 이내 진행된 정빙기 입찰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3억 원의 배정예산이 책정됐다. 

 

보통 정빙기 구매 사업은 한번 입찰 공고가 나면 많게는 1,000개 이상 업체가 참가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이 사업엔 이례적으로 단 2개 업체만이 참여했다. 특히나 두 업체 모두 동일한 제조사(이탈리아 E사)에서 제작한 '동일 제품'을 내세우면서 사실상 수의계약과 마찬가지 상황이 연출됐다.

 

이 때문에 정빙기 수입 업체 일각에선 최초 정빙기 입찰 공고가 나온 직후부터 ‘불공정 입찰’ 문제를 제기했다. 대한체육회가 제시한 정빙기 세부규격부터 도마 위에 올랐다. "처음부터 특정 업체에서 단독 수입하는 특정 제품을 염두에 두고 정빙기 세부규격을 설정했다"는 게 일부 업체의 주장이다. 

 

대한체육회가 제시한 정빙기 규격. 업계에선 이 정도로 세세한 규격을 요구한 건 특정 업체 제품을 밀어주려는 의도라고 주장한다.

대한체육회가 제시한 정빙기 규격. 업계에선 이 정도로 세세한 규격을 요구한 건 특정 업체 제품을 밀어주려는 의도라고 주장한다.

 

실제 대한체육회가 낸 ‘정빙기 구매 시방서’ 세부규격을 살펴보면 정빙기 성능과는 큰 관계가 없는 항목인 배터리 용량과 크기, 중량, 블레이드(삭빙날)까지 몇 센티미터 단위로 설정돼 있다. 현재 국내에 수입되는 정빙기 중에선 이탈리아 E사 제품만이 대한체육회가 요구한 사양을 빠짐없이 충족한다. 

 

세계점유율 1위인 미국 Z사 제품의 경우 배터리 용량은 옵션으로 충족할 수 있지만, 블레이드 길이가 5cm로 짧아 대한체육회가 요구하는 규격에 맞지 않는다. Z사 제품을 취급하는 일부 업체에서 특정 업체 밀어주기 의혹을 제기한 이유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문제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해당 입찰의 규격제안서 및 심사를 담당한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태릉은 국제스케이트장이라 규모가 크고, 정빙 작업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정빙기를 가동하다 중간에 충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배터리 용량이 커야 운영하기에 수월하다”고 주장했다.

 

또 이 관계자는 “블레이드 길이가 길어야 정빙 작업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며 삭빙날 길이가 정빙기 선정에 중요한 요소라고 밝혔다. 그러나 엠스플뉴스 자문에 응한 빙상계 관계자는 “외국의 대형 스케이트장도 Z사 제품을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다”며 대한체육회 해명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밝혔다.

 

2개 업체만 참여한 입찰 경쟁에서 승리한 건 국내 최초로 전기 정빙기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A사였다. A사는 입찰 금액 3억 원의 98.988%에 달하는 2억9천8백15만 원에 입찰을 따냈다. 탈락한 B사는 입찰 금액 2억9천8백50만 원으로 99.105%에 해당하는 금액을 써냈다. 

 

최근 4년간 정빙기 입찰에서 낙찰된 업체의 평균 입찰률은 85%로,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입찰률 90% 이상을 제시한 업체가 낙찰된 사례는 보기 드물다. 정빙기 수입 업계 일각에서 “처음부터 A사가 낙찰을 예상하고 입찰가를 써낸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이유다. 

 

“조작된 서류 제출…컴퓨터에 저장해둔 직인 복사해 사용” 의혹 제기

 

A사와 B사가 제출한 서류상 작성 날짜. PDF 파일 분석 결과 실제 파일 작성 날짜는 29일로 확인됐다.

A사와 B사가 제출한 서류상 작성 날짜. PDF 파일 분석 결과 실제 파일 작성 날짜는 29일로 확인됐다.

 

'들러리 업체를 이용한 중복 입찰'이라는 의혹 제기와 함께 서류 조작 의혹도 나왔다. 정빙기 입찰비리 의혹을 수사기관에 고발한 업계 관계자 ㄱ 씨는 “입찰에서 탈락한 B사가 낙찰된 A사의 ‘들러리 업체’로 의심된다”“단독 입찰로 인한 유찰을 막기 위해 가족이나 직원 명의의 위장업체를 참여시키는 전형적인 중복 입찰을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사와 B사는 해당 입찰에선 경쟁 업체로 참여했지만, 과거 여러 빙상장 관련 사업을 함께 진행한 협력 관계로 알려졌다. 실제 A사는 2016년 1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대전엑스포 시민광장 야외스케이트장 운영관리용역을 B사에 맡겼다. 지난해 10월 A사가 입찰을 따낸 세종시 시청광장 야외스케이트장 운영관리용역도 12월부터 B사가 맡아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B사 대표이사는 한 지역지의 세종시 스케이트장 관련 기사에 A사의 ‘직원’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A사와 파트너 관계인 B사가 이번 정빙기 입찰에 ‘들러리’를 선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정빙기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A사와 B사가 조작된 서류를 제출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탈리아 E사는 국내 업체 중에 A사와 독점 에이전트 계약을 맺고 있다. A사가 아니면 E 사 정빙기를 국내에 수입하는 건 불가능하다. 업계 관계자 ㄱ 씨는 “정빙기 수입 실적이 거의 없는 B사가 어떻게 E사 제품을 수입해 공급하겠다고 입찰에 참여했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두 회사가 입찰 당시 제출한 공급증명원과 A/S 확약서 문서를 보면 A사의 문서 작성 시점은 4월 28일, B사는 4월 27일로 오히려 B사가 하루 일찍 서류를 받아 작성한 것으로 돼 있다. 이상한 건 두 문서 PDF 파일의 속성값에 나오는 파일 작성 일자는 똑같이 4월 29일이란 점이다. 이를 근거로 ㄱ 씨는 “두 업체가 4월 29일에 작성한 문서를 각각 27일과 28일에 작성한 것처럼 조작해 제출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두 문서는 과거 A사가 작성해 다른 업체에 제출했던 문서와 동일한 응용프로그램, PDF 속성값을 띄는 것으로 확인됐다. ㄱ 씨는 이를 두고 “이탈리아 E사에서 작성해 한국으로 보낸 문서가 아니라는 증거다. B사 문서도 A사 문서와 같은 A사 사무실 컴퓨터에서 작성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A사와 B사 제출한 서류상 직인. 잉크가 흘러내린 모양까지 동일하다.

A사와 B사 제출한 서류상 직인. 잉크가 흘러내린 모양까지 동일하다.

 

공교롭게도 두 회사가 제출한 문서는 수신인만 다를 뿐 내용은 문구 하나까지 완벽하게 일치했다. 심지어 이탈리아 E사 주소 오타까지 동일했다. 특히 E사의 공식 문서임을 나타내는 직인 부분은 찍힌 부분과 잉크가 흘러내린 형태까지 놀랍도록 똑같았다. 

 

ㄱ 씨는 “문서 내용이 동일할 수는 있어도 회사 직인이 잉크 형태까지 100% 일치하는 건 불가능하다. 직인을 직접 도장으로 찍지 않고,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로 찍어야만 가능한 일”이라며 “A사가 이전에 E사로부터 받아두었던 문서 날인을 편집 프로그램으로 복사해 위조한 뒤 제출한 증거”라고 했다.

 

ㄱ 씨는 E사 구매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 “한국의 B사가 입찰에서 귀사의 공급증명원과 A/S 확약서를 제출했다. 이 회사를 아느냐”고 문의했다. 그러자 첫 답장에서 E사 담당자는 ”어떤 종류의 입찰이 있었는가? 관련 서류의 복사본이 있는가? 또한, B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라고 되물었다. 자신들과 거래관계라고 주장하는 B사는 물론, 대한체육회 정빙기 입찰 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정빙기 입찰 비리 의혹, 2월부터 중요경제범죄조사단에서 수사 착수

 

평창 올림픽 당시 제기된 정빙기 입찰비리 의혹은 회사 대표의 실형 선고로 이어졌다(사진=엠스플뉴스)

평창 올림픽 당시 제기된 정빙기 입찰비리 의혹은 회사 대표의 실형 선고로 이어졌다(사진=엠스플뉴스)

 

ㄱ 씨를 비롯해 정빙기 수입업계 일각에선 이번 입찰비리 의혹을 두고 여러 차례 대한체육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는 ‘문제없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계속 민원이 들어와, 이탈리아 E사에 B사의 문서를 보내 진위를 확인했다. 그 결과 ‘우리 문서가 맞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입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수사권이 없는 체육회로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업체 쪽에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서류를 내놓으라 하는 것도 체육회 입장에선 쉽지 않은 면이 있다”고 했다. 반면 ㄱ씨는 “입찰 과정에서 온갖 문제가 드러났고 증거가 차고 넘치는 데도 대한체육회가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결국 ㄱ 씨는 정빙기 입찰비리 의혹 관련 B사 대표를 직접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처음 사건을 맡은 경찰과 서울북부지검에선 피의자들의 주장과 문서를 근거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불기소 결정을 확인한 대한체육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A 사와 계약을 강행했다.

 

그러나 피의자들의 통화 녹취 내용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상황이 급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서울고등검찰청은 2월 17일 정빙기 입찰비리 사건 재기수사를 결정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서울고검 항고사건 중에 재기수사 명령이 나오는 사건 비율은 보통 11% 정도에 불과하다”며 변호인이 수행하지 않고 일반인이 항고장을 제출해 재기수사 명령이 나오는 경우는 더 희박하다, 그만큼 주목할 만한 증거가 나왔다는 뜻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사건은 서울북부지방검찰청 중요경제범죄조사단(주임 검사 김태광)이 맡아 수사를 진행 중이다. 중요경제범죄조사단은 사기·횡령·배임 등의 고소·고발 사건을 담당하기 위해 2014년 검찰에 신설된 조직으로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경제사건과 시장교란 행위 사건을 담당한다. 전국 16개 지검에 설치된 조사단엔 고검 검사급이 파견돼 각종 경제범죄를 강도높게 수사하고 있다.

 

문제의 정빙기는 검찰 재기수사 결정 이틀 뒤인 2월 19일 대한체육회에 납품이 완료됐다.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무리하게 계약을 강행했다’는 ㄱ 씨의 지적에 대한체육회는 ‘수사기관의 요청에 대해 적극협조하고 유죄판결 시 관련법규에 의거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ㄱ 씨는 “입찰 비리를 저지른 업체는 물론, 대한체육회 담당자의 특정 업체 봐주기와 무책임한 일 처리에 대해서도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 사건이 바로 잡히지 않는다면, 국민의 혈세는 낭비되고, 막대한 부당 이득을 취하는 이들은 더 승승장구하며 살 겁니다. 저는 잘못된 일을 잘못됐다고 말한 공익제보자인 제가 어째서 무고죄와 민사소송에 시달리고 있는지 제 아이들에게 설명해줘야 합니다. 정의가 반드시 바로 잡혀야 하는 이유입니다.” 

 

해당 사건과 관련해 엠스플뉴스는 A, B 양사의 입장을 물었다. A사 관계자는 "우리가 ㄱ 씨를 고소한 무고건은 무혐의 처분이 난 게 맞다"며 검찰의 재기수사와 관련해선 “ㄱ 씨가 하도 고소를 많이 하고 다녔다. 우리에 대한 음해다. 그 외 더 할 이야기가 없다.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다니는 중”이란 말로 입장을 마무리했다.

B사 관계자는 “(검찰의 재기수사에 대해)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 수사한다고 하면 성실히 임할 것”이라며 "지금 코로나로 사무실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따로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입장을 전했다.

 

배지헌, 박동희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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