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럭비 국가대표 선수 이주연, 일본 실업팀 진출 눈앞

-육상선수로 출발,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부터 럭비 대표팀 합류

-“럭비의 매력은 자기희생…태클로 몸 희생해 동료 트라이(득점) 도울 때 짜릿해”

-“국내 최초의 여자럭비 코치, 감독이 목표…앞으로도 럭비 계속할 것”

한국 여자럭비 국가대표 선수 이주연(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한국 여자럭비 국가대표 선수 이주연(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7월 말의 어느 날, 기자는 메일함을 살피다 한 통의 읽지 않은 메일을 발견했다. 제목은 ‘저는 여자럭비 국가대표 선수 이주연입니다’. 본문은 ‘다른 종목 선수 인터뷰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 혹시 시간이 괜찮으면 나를 한번 인터뷰해보면 어떻겠냐’는 내용이었다.

기자가 인터뷰 대상을 정해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경우는 있어도, 선수가 먼저 인터뷰를 자청하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드물다. 궁금증이 생겼다. 대한체육회 스포츠지원 포털을 검색했다. 여자럭비 선수 이주연. 1996년생으로 구산중학교와 한강미디어고등학교에서 400m 육상 선수로 활약했고 고3 때 럭비로 전향했다.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여자럭비 대표팀을 꾸리면서 선수단을 모집하는 과정에 처음 럭비공을 손에 잡았다.

당시 함께 럭비를 시작한 선수 대부분이 지금은 럭비를 떠났다. 회사원이 된 선수도 있고, 트레이너로 전향한 선수도 있다. 하지만 이주연은 아직도 럭비공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럭비가 하고 싶어서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고, 대표팀 해산으로 갈 곳이 사라진 지금은 일본 실업팀 진출을 목표로 개인 훈련 중이다.

무엇이 육상선수였던 그를 럭비의 길로 이끌었을까. 뛸 곳도 없고 선수도 없는 한국 여자럭비의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그가 럭비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주연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한국 여자럭비의 ‘마지막 국가대표’ 이주연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선수촌 퇴촌, 대표팀 해산…여자럭비 마지막 국가대표 이주연

이주연 선수의 플레이 장면(사진=이주연 SNS)
이주연 선수의 플레이 장면(사진=이주연 SNS)

반갑습니다. 우선 이주연 선수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여자럭비 국가대표 선수 이주연입니다. 2014년 제17회 인천아시아경기대회부터 여자럭비 대표 선수 활동을 시작했고, 지난해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럭비 아시아 지역 예선까지 국가대표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국가대표팀 중에선 유일하게 현재까지 럭비를 계속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작년까지 2020 도쿄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합숙 훈련을 했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아시아에서 1장 남은 올림픽 출전권을 따는 데 실패했습니다. 7인제 경기에 선수 8명으로 출전했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한 장은 올림픽 주최국인 일본이 가져가고, 나머지 한 장은 예선 경기를 개최한 중국이 차지했어요.

아쉽네요.

올림픽 출전에 실패하면서 선수촌 합숙 생활도 끝났습니다. 올림픽 나가는 종목만 남고 그 외엔 선수촌에서 나오게 됐어요. 그러면서 함께 대표팀 활동한 선수들 대부분이 운동을 그만뒀습니다.

사실 코로나19 사태로 도쿄 올림픽은 내년 개최도 불확실한 상황입니다.

만약 내년에 올림픽이 열린다고 하면, 여자 럭비 대표팀 합숙훈련은 내후년부터나 가능해요. 기존 대표팀 선수들이 럭비를 그만두고 뿔뿔이 흩어진 상황이라, 그때가 되면 선수를 처음부터 새로 모아야 합니다. 언제 다시 대표팀으로 활동할 수 있을지, 현재로썬 기약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럭비를 포기하지 않고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고요.

서울스컬스라는 7인제 남자 럭비팀 분들의 도움으로 개인 운동을 하고 있어요. 매주 월·수·금에 모이는 데 그때 가서 함께 운동하고 그 외엔 개인적으로 운동하고 있습니다.

“피 철철 흘리는 선수들 모습 보고 ‘정말 멋지다’ 감탄했죠”

경기중 포즈를 취한 이주연 선수(사진=이주연 SNS)
경기중 포즈를 취한 이주연 선수(사진=이주연 SNS)

원래는 육상선수였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육상을 시작했어요. 원래는 취미에 가까웠어요. 비등록 선수로 활동하다가, 중학교(구산중학교)에 진학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펜싱 선수 출신이거든요. 운동이 힘든 걸 잘 아시니까, 처음엔 운동하는 걸 반대하시다 나중엔 허락해 주셨습니다. 제가 중학교 올라가서 살짝 말썽을 피웠거든요. 운동부 활동이라도 하면 좀 얌전하게 지내지 않을까 생각하셨던 거죠.

육상에서 럭비로 종목을 바꾼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교 3학년 때 육상 코치님의 추천으로 럭비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때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앞두고 한창 여자럭비 대표팀을 모을 때였거든요. 어느 날 코치님이 저한테 ‘럭비 한번 해보지 않을래?’ 하시는 거에요. 저는 그때만 해도 럭비가 뭔지 전혀 몰랐어요. 머릿속에 떠올린 럭비의 이미지는 우락부락한 미식축구 같은 이미지였어요. 절대 안 한다고, 죽어도 하기 싫다고 거절했었죠. 그러다 ‘테스트만 한번 받아봐라, 그럼 맛있는 거 사줄게’ 하는 꼬임에 넘어가서…(웃음) 지금까지 럭비를 하고 있네요.

여자럭비는 이주연 선수처럼 다른 종목에서 건너온 선수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라크로스 선수 출신도 있고, 패션모델 선수 출신도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다른 종목 하다가 그만두고 운동이 좀 더 하고 싶어서 럭비 선수가 된 분도 있고, 체대입시로 체육학과에 들어갔다가 교수님 추천으로 대표가 된 경우도 있어요. 제가 처음 럭비를 시작했을 때는 대부분 육상이나 핸드볼 선수 출신 선수가 많았고요.

죽어도 하기 싫다던 럭비, 막상 해보니 마음에 들던가요.

육상은 개인종목이잖아요. 처음 팀 종목을 해봤더니 너무 재밌더라고요. 훈련하는 2시간 동안 뛰기만 하는 육상과 달리 다양한 플레이를 연습할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다들 제게 너무 잘해주셨어요. 저는 그때 19살 막내였고 팀원들은 전부 언니들이었습니다. 다들 예쁘다, 잘한다 오냐오냐해주지. 대표팀 용환명 감독님도 잘한다고 칭찬해 주시지. 주변에서 정말 많이 챙겨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더 잘해서 칭찬받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럭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단편적인 이미지만으로 편견을 갖기도 합니다. 위험하고 거친 운동이라는 고정관념도 있는데요.

저도 처음 테스트를 받으러 다녀온 뒤 럭비 관련 영상을 찾아봤어요. 여자 선수가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피를 줄줄 흘리면서 경기하는 영상이었어요.

무서웠겠네요.

아뇨, 오히려 그게 되게 멋있어 보였어요(웃음). 혼잣말로 막 욕하고 감탄하면서 ‘이게 진짜 운동이지, 이게 럭비구나’ 했어요.

재밌는 사람이네요(웃음).

또 한 가지. 럭비 특유의 ‘희생’도 제가 럭비에 꽂히게 만든 이유 중 하나에요. 육상은 사실 상대 선수와 몸을 부딪칠 일이 없잖아요. 럭비는 태클로 내 몸을 부딪치면서 동료에게 공격 기회를 만들어 주고, 동료가 안전하게 트라이(득점)할 수 있게 도와주는 운동입니다. 그런 희생 자체가 선수의 능력입니다. 내가 다쳐도 괜찮으니까 네가 점수를 내라, 그 희생정신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국가대표에서 일본 대학 진출까지…파란만장 도전기

준비운동을 하는 이주연 선수(사진=이주연 SNS)
준비운동을 하는 이주연 선수(사진=이주연 SNS)

5개월 동안 바짝 운동해서 아시안게임이란 큰 무대에 출전했습니다.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나간 국제대회는 어떤 느낌이었나요.

사실 인천 아시안게임 때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너무 복잡했고, 사람도 많았고, 모든 게 순식간에 지나갔어요. 럭비 경기시간이 7분인데 정말 눈 깜짝할 새 경기가 진행되거든요. 또 당시만 해도 어릴 때라 아시안게임이 얼마나 큰 경기인지 개념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아, 하나 생각나는 기억이 있어요.

뭔가요.

럭비 대표팀 유니폼을 처음 받았는데, 태극기가 유니폼 앞이 아닌 옆에 부착되어 있더라고요. 이유를 물었더니 누가 ‘럭비는 피를 자주 흘려서, 국기에 피가 묻으면 안 되니까 옆에 붙인다’고 하더라고요.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그 말을 듣고서 또 한 번 ‘진짜 멋있다’고 생각했죠.

인천 아시안게임 때도 대표팀 주전 선수였나요?

그때는 주전이 아닌 엔트리 멤버였어요. 럭비가 처음인데도 훈련기간도 5개월 남짓이라 기술적으로 언니들보다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실력도 모르고 감독님께 계속 ‘나 좀 내보내 달라’ ‘남은 시간 없다’고 계속 졸랐죠. 지금 생각하면 미친 애였죠(웃음). 하도 분해서 경기 끝난 뒤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들어갔는데, 나중에 감독님과 부모님께 크게 혼났어요.

럭비를 잘 알게 된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까.

솔직히 그때 전 실력이 없었어요. 제 딴엔 제가 제일 빠르다고 자신에 넘쳤는데, 지금 와서 그때 영상을 보면 확실히 언니들이 훨씬 잘하더라고요(웃음).

나중에 주전 선수가 됐을 때는 느낌이 전혀 달랐겠네요.

경기장으로 통하는 터널에서 기다릴 때 너무 떨리더라고요. 앞에서 진행요원이 ‘준비하세요’하고 옆에서는 드라이아이스가 올라오는데, 너무 떨려요. 제 심장 소리만 들릴 정도로요. 그런데 막상 킥오프한 뒤 경기장에서 태클 한 번 하고 나면, 신기하게도 긴장이 한 번에 싹 풀려요. 아무리 몸이 굳어 있고 긴장하다가도, 한번 태클하고 볼을 잡고 나면 그때부터는 긴장이 풀립니다. 신기하죠.

여자럭비 이주연 선수(사진=이주연 SNS)
여자럭비 이주연 선수(사진=이주연 SNS)

2017년부터 2년간 일본 대학 선수로도 활약했다고요.

일본 이바라키 현 류가사키시에 있는 유통경제대학(Ryutsu Keizai University, RKU)란 곳이에요. 전에 전지훈련에서 함께 운동한 적이 있는 학교라서 어떤 곳인지는 알고 있었어요. 한국인인 지영기 코치님이 헤드코치로 계신 곳이라서 한국 남자 선수도 여럿 뛰고 있습니다.

일본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게 됐습니까.

아빠 친구분이 일본에서 펜싱 지도자를 하고 계세요. 일본에 한번 놀러 오라고 하셔서 아버지와 함께 갔는데, 마침 지역이 도쿄라서 RKU와 그리 멀지 않더라고요. 아빠 친구분에 학교 주소 받아갖고 무작정 찾아갔죠. 셔틀버스에서 내리는데, 순간 소름이 쫙 돋더라고요. 아빠랑 둘이 ‘완전 대박’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어요.

뭘 본 겁니까.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럭비 전용구장이 있더라고요. 트라이존에 ‘RKU 럭비’라고 크게 쓰여있고요. 너무 멋있다고 감탄했죠. 마침 그때 지영기 코치님이 운동장에 나오면서 절 알아보시더라고요. 전에 한국 대표로 나갔던 걸 기억하신 모양이에요. 아빠랑 셋이 근처 돈카츠집에 가서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학교 환경이나 일본 럭비 저변, 문화 같은 것들에 대해서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갑자기 ‘여기서 운동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코치님도 흔쾌히 언제든 와서 같이 운동해도 좋다고 하셨고요.

그 길로 바로 유학길에 올랐나요.

그때 바로는 아니었지만, 한국에 돌아오니 자꾸만 일본 생각이 나더라고요. 국내에는 그만한 운동 환경이 없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외국 선수들과 운동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또 팀에 한국인도 있어서 완전 맨땅에 헤딩은 아니니까. 한번 도전해보자고 결심했죠. 비자와 장학금 문제 등이 있어서 학교에 입학하진 못했지만, 관광비자로 왔다 갔다 하면서 여자럭비부 팀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일본에선 럭비가 꽤 인기 있는 스포츠라고 들었습니다. 럭비 저변도 잘 갖춰져 있고요.

가장 큰 차이점은 분기별로 꾸준히 경기할 수 있다는 거에요. 한국 대표팀의 경우 일 년 내내 합숙을 하지만 상대 팀이 없어 실전 경기를 할 기회는 많지 않아요. 남자 중학교 럭비부원들과 하는 연습 시합 정도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일본에 가니 7인제 기준 한 달에 2, 3번은 경기를 할 수 있었어요. 일 년 내내 경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죠. 또 하나는 15인제 경기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7인제와 15인제는 뭐가 다른가요.

말 그대로 7인제는 7명이 하는 경기고, 15인제는 15명이 뛰는 방식입니다. 7인제는 개인 스킬과 능력이 중요하고, 빠른 선수가 유리해요. 반면 15인제는 뛸 공간이 많지 않아 사인플레이와 전술 등이 중요합니다. ‘감독의 게임기’라는 말도 있더군요. 국내에선 15인제 경기를 할 기회가 아예 없습니다. 그만한 인원이 없으니까요. 일본은 선수가 많아서 15인제도 가능했어요. 15인제 경기도 2개월에 2차례꼴로 할 수 있었고요.

원래 일본어를 잘했나요?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전혀요. 처음엔 애니메이션 ‘원피스’로 일본어를 배워보려 했어요. 그런데 그 만화 대사는 실생활에 전혀 쓸모가 없더라고요. 온통 대장님, 해적 같은 단어만 나오니까요. 나중엔 구몬 학습지로 히라가나, 카나가나부터 공부했죠. 일본 친구들이 아침에 ‘오하요’라고 인사해도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래도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조금씩 말문이 트이기 시작해서, 지금은 의사소통은 가능한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착한 일본 친구들이 제가 엉터리로 말해도 척척 알아들어 준 덕분이죠.

직접 가서 경험한 일본 럭비는 어느 정도 수준이었습니까.

일본에선 럭비가 한창 발전하는 중입니다. 남자 대표팀의 경우 월등한 신체조건을 지닌 서구권 팀 상대로도 승리를 거둘 정도로 발전했어요. 개인적으로 일본 팀에서 느낀 건 ‘이 사람들은 연습 때부터 항상 100%로 임하는구나’였어요. 한국에선 선수가 부족해서 부상 선수가 나오면 경기 자체가 불가능해요. 그래서 연습 때는 50%로 살살 하라는 주문을 받습니다. 100%로 해도 경기 때 80%가 나올까 말까 한데 50%로 하다가 100%를 하려니 어렵죠. 일본에선 100%로 안 하면 안 됩니다. 그래야 경기에서도 다치지 않는다고 배워요.

2018년 일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실은 일본에 좀 더 있고 싶었어요. 하지만 계속 일본에 머물기엔 제 신분이 불안정했습니다. 대학 소속이라 취업비자를 딸 수 없었고, 그렇다고 학생비자를 받을 수 있는 신분도 아니었고요. 그때 마침 진천선수촌에서 대표팀 합숙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서 돌아오게 됐습니다. 귀국 전날, 친구들과 다 같이 손잡고 펑펑 울었죠.

비인기 종목의 설움…‘미식축구냐’ ‘손흥민 기사나 써라’ 악플에 울컥하기도

아시아 럭비대회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순간(사진=이주연 SNS)
아시아 럭비대회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순간(사진=이주연 SNS)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럭비는 인기 스포츠와 거리가 먼 실정입니다.

그래도 남자럭비는 조금 사정이 나아요. 원래는 삼성에도 팀이 있었고, 한국전력과 현대글로비스, 포스코 건설 등 실업팀도 있습니다. 국군체육부대(상무)에도 팀이 있고요, 제 훈련을 도와주시는 서울스컬스 팀도 있죠. 대학교도 연세대, 고려대, 경희대 등에 럭비팀이 운영되고 있어요. 럭비로 대학 진학이 가능하니까 계속 선수 수급이 되죠.

하지만 여자럭비는 팀 자체가 존재하지 않죠?

몇몇 동아리가 있긴 하지만, 실업팀이나 학교 팀은 없어요. 그러다 보니 선수 수급이 쉽지 않습니다. 대표팀에 고교생 선수를 한 명 데려온 적이 있는데, 충북체육고등학교 위탁교육 형태로 학교에 다니게 하고 버스로 오가면서 함께 훈련했어요. 용인대에서 유도하던 친구 하나도 팀에 들어온 적이 있는데, 소속 학교에서 ‘유도로 입학해서 럭비 하는 건 인정 못 한다’ 해서 그만두게 됐고요.

대표팀 막내 생활을 오래 했겠네요.

새로 대표팀에 들어온 선수가 얼마 안 가 그만두는 일이 잦았어요. 선수가 해마다 바뀌니까, 기존 선수들 처지에선 제자리걸음 하는 느낌도 들었을 거에요. 빨리 가르치고 기량을 끌어올려서 사인플레이를 해보고 싶은데,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잖아요. 언니들은 어떻게든 끌고 나가고 싶고, 새로 시작한 친구 처지에선 힘들고. 그러다 보니 트러블이 생길 때도 있었죠.

아까도 얘기했지만 실전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일 것 같습니다.

게임을 자주 해봐야 경험이 생기잖아요. 한국 대표팀은 선수촌에서 일 년 내내 합숙훈련을 해요. 반면 일본은 소속팀에서 운동하다가 3개월만 모여서 바짝 운동합니다. 훈련 기간은 1년과 3개월인데, 막상 만나서 붙으면 대단히 큰 차이로 져요. 일본보다 키도 크고 몸도 좋은 선수들이 일 년 내내 합숙해도 이기질 못하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럭비만 해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불가능하죠?

저희끼리 농담삼아 하는 얘기가 있어요. 핸드볼 할 때 차 몰고 다니던 사람이 럭비로 건너오면 일 년 안에 차를 팔아야 한다는 웃픈 농담이에요(웃음). 수입이 천양지차로 달라져 버리니까요. 럭비 하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는 소리도 하고요.

원래 럭비가 시초엔 영국 귀족들이 하는 스포츠였습니다. 다쳐도 생계에 지장 없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운동이었죠. 물론 농담으로 하는 소립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대표팀 소속인 기간에도 한 달 수입이 20대 후반 여자가 혼자 생활하기엔 빠듯한 수준이에요. 저야 아직까지 부모님 집에서 도움받으며 생활하니까 어려움이 덜하지만, 언니들 같은 경우엔 생계 유지가 불가능하니까요. 견디다 못해 그만둔 사람이 많아요.

럭비 하는 것, 부모님이 반대 안 하시나요.

저는 부모님 복은 타고난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 열심히 해봐, 되는 데까지 도와줄게’ 하고 응원해 주시거든요. 언니 중엔 럭비를 계속하고 싶어도 못하는 언니들이 많아요. 진짜 저보다 럭비를 더 좋아하는 데도 어쩔 수 없이 그만둔 사람도 있고요.

그만둔 분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시나요.

골프장에서 캐디 일을 하는 언니도 있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지내는 분도 있어요. 전공을 살려 트레이너로 일하는 언니들도 있고요. 다들 직장 다니면서 평범한 삶을 사는 것 같아요.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비인기 종목 선수라서 겪는 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이번에 남자 대표팀이 96년 만에 올림픽에 나가게 돼서, 제 개인 SNS로 엄청나게 홍보를 했어요. 그런데 막상 ‘좋아요’ 누른 사람을 보면 다 럭비 선수들이에요. 기사 댓글을 봐도 10개나 달릴까 말까 한데 ‘미식축구 아니냐’ ‘이게 왜 축구 카테고리에 있냐’는 댓글이 대부분이고요.

무플보다 더 아픈 ‘본문과 상관없는 댓글’이군요.

심지어 ‘기자야, 이런 거 말고 손흥민 기사나 써라’는 댓글도 봤어요. 저는 대표팀 오빠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노력했는지 잘 아니까, 그런 댓글을 보면 속이 상하죠. ‘고생하셨어요’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힘든지. 대표팀 우승 소식은 아무 관심을 못 받다가, 사회적으로 물의 일으킨 사람이 럭비 선수 출신이란 소식엔 댓글이 폭발적으로 달리는 걸 보면 씁쓸하기도 하고요.

일본 실업팀 진출…이주연의 새로운 도전 “럭비, 오랫동안 계속하고 싶다”

이주연은 럭비를 힘 닿을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이주연은 럭비를 힘 닿을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한국 여자럭비의 앞으로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서울스컬스 팀에 훈련하러 가면 다들 ‘여자는 언제 팀 다시 만드느냐’고 물어봐요. 저 역시도 불안한 마음이 크죠. 지금은 저 혼자만 운동을 계속하고 있고, 다시 대표팀이 생길지 안 생길지도 모르고. 한다고 해도 내후년이나 돼야 할 텐데. 전 럭비를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거든요.

일본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고요.

너무 감사하게도 용환명 감독님 통해서 일본에 다시 갈 기회가 열렸어요. 일본의 한 회사에서 럭비팀을 운영하는데 갈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시더라고요. 처음 얘길 들었을 땐 대표팀 합숙 기간이라 큰 관심이 없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저야 일본어로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라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그쪽 회사에서도 자신들과 잘 맞을 것 같다고 1년 만이라도 함께 해보자고 제안하더군요.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못 가고 있군요.

(울상을 지으며) 그러니까요. 지금도 매주 회사 관계자와 통화하면서 연락을 취하고 있어요. 2주 전부터 일본행 비행기 운항이 재개됐습니다. 비자 대기 인원이 많아서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비자 문제만 해결되면 바로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가격리도 2주 해야 하겠지만, 럭비만 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실업팀 소속이면 회사 생활과 운동을 병행하게 되겠군요.

맞아요. 사실 큰돈을 받고 가는 건 아니에요. 아오모리라는 작은 지역에서 자동차 리사이클 회사 소속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낮에는 회사에서 폐차 재활용 일을 하고, 오후에는 운동을 하게 될 거에요. 공장에서 부품 정리하는 일도 하고, 한국 손님이 오면 통역 일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럭비팀이 큰 규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15인제 경기를 할 정도는 된다고 하더군요.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모습이 멋집니다.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럭비를 계속하고 싶어요. 다음 아시안게임까지는 선수로 활동하는 게 제 목표입니다. 나중엔 플레잉코치를 하면서, 최초의 여자 럭비팀 감독까지 하는 게 제 궁극적인 목표에요. 럭비는 희생이잖아요. 아무도 간 적이 없는 길이니까 힘든 일도 많겠지만, 그래도 제가 고생하면 앞으로 럭비 하는 친구들이 조금은 편하지 않을까. 거기에 희망을 품고 있어요. 무엇보다 럭비라는 종목의 즐거움과 매력을 보다 많은 분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