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위기에 몰린 한국 당구계에 내린 단비,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

-허정한 “한 달에 최소 2회였던 당구 대회가 1년 2회로 확 줄었다”

-“대회가 하나둘 사라지면서 동기부여를 갖는 게 쉽지 않았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가 열려 천만다행. ”

-“당구계에서 ‘당구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 출전하는 허정한(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 출전하는 허정한(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

“한 달에 최소 2회였던 당구 대회가 1년 2회로 확 줄었어요. 대회가 그리운 한 해입니다.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가 하루빨리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웃음).”

'한국 당구 스타' 허정한(경남당구연맹·세계랭킹 19위)의 얘기다.

허정한은 중학교 3학년이던 1993년 1월 1일부터 당구를 시작했다. 그후 27년 동안 허정한은 1월 1일 훈련을 시작해 12월 31일 더 나은 선수가 되는 걸 목표로 삼아왔다. 그 목표에 점점 다가갈수로록 허정한은 시쳇말로 '바쁜 몸'이 됐다. 출전해야할 대회가 많아진 까닭이다. 예외가 있다면 올해였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올해 당구는 생각지도 못한 파행을 경험했다. 각종 대회가 취소됐고, 예정됐던 행사가 줄줄이 연기됐다. 코로나19로 수세에 몰렸던 당구계가 합심해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를 개최하기로 한 것도 이 상황이 지속되면 당구계가 파행을 지나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허정한은 이 대회에서 남자 3쿠션에 출전했다. 허정한 외 김행직, 최성원, 이충복 등 국내 최정상급 8명이 출전하기로 예정돼 있다.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는 한국 당구 사상 최다 상금이 걸린 대회다. MBC스포츠플러스가 11월 29일부터 내년 2월 14일까지 전경기를 생중계하는 '코리아 당구 그랑프'로 당구 인기가 되살아나길 많은 당구팬이 바라고 있다.

엠스플뉴스가 이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 허정한을 만나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를 앞둔 소감을 들었다.

- 허정한 “당구 시작 후 대회가 가장 그리운 한 해” -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 남자 3쿠션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허정한(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 남자 3쿠션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허정한(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11월 29일부터 시작하는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에 출전합니다.

11월 25일 강원도 양구에서 개최 예정이던 전국당구대회가 긴급 취소됐어요. 대회를 일주일 앞두고 결정된 일이죠. 사실 코로나19로 익숙해진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 와중에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가 열려 당구인의 한사람으로서 무척 감사하게 생각해요.

플레이할 수 있는 무대가 사라졌다는 것. 어떤 감정이 들었을지 궁금합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던 1993년 1월 1일부터 당구를 시작했어요. 올해처럼 대회가 그리운 해도 없었을 거예요. 대회가 하나둘 취소되면서 무기력해지더라고요. 평소와 같은 연습량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동기부여가 없으니깐. 저뿐만 아니라 한국 선수 모두 2월 터키에서 열린 월드컵 이후 국제대회 출전 기록이 없어요. 국내 대회에 두 번 출전한 게 전부죠.

아.

사실 연습할 때도 힘든 점이 많아요. 사람과 접촉을 최소화해야 하기에 연습이 쉽지 않죠. 예년과 달리 마스크를 끼고 연습해야 하고요. 당구에만 집중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애초 2020년 계획은 무엇이었습니까.

월드컵과 국내대회에서 한 번씩은 우승해야겠다고 다짐했죠(웃음). 올해를 끝마칠 즈음엔 세계랭킹 14위 안에 진입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도전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마음 편히 당구 연습에만 매진하고, 대회에 출전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뼈저리게 느껴요. 올해는 목표가 없어요.

목표가 없다?

대회가 없으니 목표 설정을 할 수가 없죠(웃음). 딱 하나의 바람은 있습니다. 하루빨리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는 거예요. 예년처럼 정상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싶습니다.

코로나19 시대, 당구계 변화 가운데 하나는 비대면 대회가 생겼다는 겁니다. 11월 9일 ‘UMB(세계당구연맹) 10X4 원캐롬 챌린지’에 출전했는데요.

2월까진 비대면 대회가 생길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어요. 아주 낯설었죠. 비대면 대회는 선수들이 대회 장소로 모이지 않습니다. 그 바람에 미소 속 감춰진 긴장감을 느낄 수 없어요. 온라인으로 서로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경쟁하는 거예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지난해까진 출전 대회가 많지 않았습니까.

한 달에 최소 두 번 이상은 대회에 출전했어요. 연습을 게을리할 수 없는 환경이었죠(웃음). 한 해가 금방 지나갔어요. 올해는 시간이 예년보다 느리게 간다는 걸 느낄 때가 많아요. 정신없던 지난해가 참 그립더라고요(웃음). 3개월가량 진행하는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에 출전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올 한해 예정된 대회들이 잇달아 취소되면서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선수가 증기한 것으로 압니다.

올 한해 경제적으로 타격이 없는 분야가 있을까요? 저처럼 후원을 받는 선수에게도 대회 상금은 아주 중요합니다. 스폰서가 나를 후원하는 이유를 대회에서 증명해야 하거든요. 어떤 선수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 “당구계에서 ‘당구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

허정한은 “올해처럼 당구 대회가 그리운 한 해는 없었다“고 말한다(사진=엠스플뉴스)
허정한은 “올해처럼 당구 대회가 그리운 한 해는 없었다“고 말한다(사진=엠스플뉴스)

17살 때 당구를 처음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당구가 재밌습니까.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지금도 그냥 당구가 좋아요(웃음). 계속해서 연구하고 연습하면 실력이 늘어요. 실력이 늘고 있다는 게 느껴지면 아주 재밌죠. 물론 뜻대로 안 풀리는 날이 훨씬 많습니다.

뜻대로 안 풀린다?

오랜 시간 연습하고 연구해도 잘 안 되는 거예요. 당구는 수가 아주 많습니다. 빼어난 기량을 갖춘 선수도 즐비하고요. 더 연구하고 연습해서 도전하고 싶은 요구가 솟구치죠(웃음). 당구가 재밌는 게 뭔지 아세요?

글쎄요.

어제는 생각한 대로 딱딱 맞았는데 오늘은 아니라는 점이에요. 당구는 생물처럼 살아있습니다.

허정한 같은 세계적인 선수도 안 풀리는 날이 있습니까.

엄청나게 많아요(웃음). 세계 최고로 불리는 선수도 안 풀리는 날엔 정말 안 됩니다. 그런 날엔 욕심내지 않는 게 중요해요.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경기를 마무리하는 데 집중해야 하죠.

선수뿐민 아니라 당구 팬들 역시 11월 29일 시작하는 ‘코리아 당구 그랑프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1월 24일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2단계로 격상됐어요. 코로나19로 어려움이 많은 한 해입니다. 당구 선수답게 당구장에서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제 꿈이 뭔지 아세요?

뭡니까.

당구계에서 ‘당구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겁니다. ‘당구를 참 잘 치는 선수’란 얘기도 듣고 싶고요(웃음). 코로나19로 힘든 시기, 당구로 조금이나마 많은 분께 위안을 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재미난 경기 보일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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