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송교창 등장 이후 시작된 얼리 엔트리 열풍, 2020년에도 이어진다

-“즉시전력감으로 활용할 선수 없으면 성장 가능성에 투자하는 게 낫다”

-동기들이 프로에 도전할 때 4년 차 시즌 준비하는 양홍석 “이른 프로 데뷔 후회한 적 없다”

-“프로엔 상상 이상으로 변수가 많다. 모두가 송교창이 될 수 없다는 것 기억해야”

전주 KCC 이지스 포워드 송교창(사진=오른쪽)(사진=KBL)
전주 KCC 이지스 포워드 송교창(사진=오른쪽)(사진=KBL)

[엠스플뉴스]

KBL(한국프로농구연맹) 신인선수 드래프트에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선수의 등장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얼리 엔트리(고등학교 졸업이나 대학교 4학년 졸업 이전 프로에 진출하는 선수)’ 확대다.

얼리 엔트리 열풍이 불기 시작한 건 2015년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다. 삼일상고를 졸업한 송교창(24·200cm)이 2015년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전주 KCC 이지스에 입단했다. 고교 졸업 선수가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지명된 건 1997년 출범한 KBL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송교창은 프로 첫 시즌(2015-2016) 20경기에서 뛰며 경기당 평균 1.5득점, 1.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팀 내 비중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2년 차 시즌부턴 달랐다. 송교창은 주전으로 도약했다. 정규리그 54경기 가운데 52경기에 출전해 평균 11.9득점, 5.6리바운드, 1.9어시스트를 올렸다.

송교창은 5년 차 시즌을 맞은 지난 시즌엔 42경기에서 뛰며 평균 15.0득점, 5.6리바운드, 3.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KCC 에이스이자 KBL을 대표하는 포워드로 거듭났다.

2015년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송교창을 지명한 KCC 추승균 전 감독은 “200cm 키에 스피드가 있었다”“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판단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덧붙여 “단순히 신체 조건만 좋은 게 아니었다. 슈팅력과 돌파 능력을 갖췄다. 당장 프로에서 통할 실력은 아니었지만 경험이 쌓이면 프로에서 일찌감치 자리 잡을 것으로 확신했다”고 했다.


제2의 송교창을 향한 도전, 얼리 엔트리 열풍이 시작됐다

2018년 부산중앙고를 졸업하고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에 입단한 서명진. 그는 프로 데뷔 시즌(2018-2019) 통합우승의 기쁨을 맛봤다(사진=KBL)
2018년 부산중앙고를 졸업하고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에 입단한 서명진. 그는 프로 데뷔 시즌(2018-2019) 통합우승의 기쁨을 맛봤다(사진=KBL)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더 이상 얼리 엔트리는 낯설지 않다. 2017년엔 중앙대 1학년을 마친 양홍석(23·196cm)이 자퇴서를 제출한 이후 신인선수 드래프트에 도전했다. 양홍석은 그해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부산 KT 소닉붐 유니폼을 입었다. 양홍석은 허 훈(25·180cm)과 함께 KT 간판으로 활약 중이다.

2018년엔 부산중앙고를 졸업한 서명진(21·187cm)이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로 향해 우승 반지를 꼈다. 주전은 아니었지만 21경기에서 뛰며 평균 2.7득점, 1.0리바운드, 0.9 어시스트란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지난해엔 안양고 졸업생 김형빈(20·201cm)이 1라운드 5순위 지명권을 획득한 서울 SK 나이츠 문경은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김형빈은 정상적으로 경기를 소화할 몸 상태가 아니었다. 무릎이 정상이 아니었던 것. 문 감독은 “장래를 보고 선택한 선수”라며 “신인선수 드래프트에 참여한 김형빈은 농구를 할 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부상은 둘째치고 체지방률이 20%나 됐다. 일반인 몸이었다. 프로에서 뛰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무릎 수술부터 했다. 이후 차근차근 몸을 만들었다. 김형빈은 휴가 때 매일 체육관에 나왔다. 재활 운동과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다. 지금은 연습경기에서 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다. 의지가 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기대가 큰 선수다.” 문 감독의 얘기다.

2020년에도 제2의 송교창을 향한 도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신인선수 드래프트의 정확한 시기는 확정된 상태가 아니지만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4명의 선수가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이 가운데 차민석(200cm), 조석호(183cm)는 고교 졸업 선수다. 제물포고를 졸업한 차민석은 2018년 U-18(18세 이하) 아시아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바 있는 엘리트로 지명이 유력하다는 평가다.

모 구단 관계자는 “신인선수 드래프트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드래프트 당일 몇 번째로 선수를 뽑느냐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다음과 같은 생각을 밝혔다.

“차민석은 송교창이나 양홍석처럼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한 선수다. 드래프트에 참여한다면 지명은 확실할 것으로 본다. 2017년 허 훈, 양홍석, 안영준, 김낙현 등이 등장한 이후 좋은 활약을 펼친 신인이 없었다. 구단이 일찌감치 프로에 도전하는 선수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이 때문이다. 즉시전력감으로 활용할 선수가 없다면 성장 가능성에 투자하는 게 훨씬 낫다. 여러 차례 증명됐다.”

대학 4년을 졸업하고 2020년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 도전하는 선수들은 양홍석의 동기다. 양홍석은 동기들보다 빠른 2017년 프로에 도전해 3시즌을 뛰었다. KBL 통산 139경기에서 뛰며 평균 11.0득점, 5.5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KBL을 대표하는 선수로 우뚝 섰다.

양홍석은 “일찌감치 프로에 도전한 걸 후회해본 적이 없다”“중앙대에서 농구를 계속했다면 지금처럼 기량 발전을 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엔 외국인 선수가 있다. 내로라하는 선배도 즐비하다. 매일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 전체적인 경기 흐름을 읽어야 하고 노련한 수비 능력을 갖춰야 한다. 공격할 때와 안 할 때를 명확히 구분하는 눈도 필요하다. 보완해야 할 점을 동기들보다 일찍 확인하고 보완해 간다는 게 이른 프로 도전의 최대 강점이 아닐까 싶다.” 양홍석의 말이다.


성장 가능성에 투자하는 분위기, 얼리 열풍 뒤엔 우려도 있다

지난 시즌 D-리그에서 감각을 끌어올린 창원 LG 세이커스 조성민(사진=KBL)
지난 시즌 D-리그에서 감각을 끌어올린 창원 LG 세이커스 조성민(사진=KBL)

KBL 얼리 엔트리 확대엔 장밋빛 전망만 넘치는 건 아니다. 우려의 시선도 있다. 가능성만 믿고 프로에 도전한다고 해서 송교창이나 양홍석처럼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게 농구 관계자들의 공통된 우려다.

2018년부터 명지대를 지휘한 바 있는 창원 LG 세이커스 조성원 신임 감독은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봐야 한다”면서 “송교창, 양홍석 등 일찍이 프로에 도전해 성공하는 선수는 드물다”고 강조했다.

“프로는 경쟁이다. 실력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어떤 팀이든 잠재력이 풍부한 선수를 마냥 기다릴 순 없다. (송)교창이나 (양)홍석이는 일찍이 경쟁력을 보여줬다. 그들이 프로에서 살아남은 건 이 때문이다. 몇 시즌 빼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도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게 프로다. 잠깐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사이에 누군가 그 자리를 메운다. 프로 도전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인생이 걸린 문제다.” 조 감독의 설명이다.

2007년 프로에 입문한 부산 KT 소닉붐 주장 김영환도 얼리 엔트리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양날의 검이다. 일찍 프로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자리를 잡으면 좋겠지만 프로엔 변수가 많다. 부상, 외국인 선수, 트레이드 등은 예측이 어렵다. 농구계가 인정하는 초특급 재능이 아니면 대학 1, 2년을 거치는 게 좋다. 대학에서 농구뿐 아니라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시야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평생 프로농구 선수로 살 순 없다. 은퇴 후의 삶도 생각해야 한다. 프로는 상상 이상으로 냉정하다. 기회가 왔을 때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야 살아남는다.”

KBL은 2014-2015시즌부터 선수 등록 인원을 15명 이상으로 바꿨다. 2군을 운영하지 않는 팀은 최소 14명을 등록해야 한다.

2019-2020시즌 D-리그(2군)엔 상무(국군체육부대)를 포함한 KBL 5개 팀이 참여했다. 서울 삼성 썬더스, 안양 KGC 인삼공사,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원주 DB 프로미, KT는 참여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프로에 도전한 선수들이 1군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면 뛸 수 있는 무대가 마땅치 않을 수 있다.

지난 시즌 D-리그에 참여하지 않은 한 구단 관계자는 “모든 팀이 2군을 운영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모기업이 2군 운용의 실효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비용 문제가 가장 크다. D-리그에서 기량 발전을 꾀해 1군에서 성공한 사례도 없다. 복귀를 앞둔 부상 선수가 감각을 끌어올리는 무대인 게 현실이다. 이렇듯 D-리그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한 프로 도전은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KBL에서 2군 운영은 권고사항이다. 매 시즌 선수 등록 인원만 지키면 D-리그에 참여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

송교창과 같은 선수가 늘어나는 건 KBL 흥행과 한국 농구 발전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일찌감치 프로에 도전하는 모든 선수가 송교창처럼 성공할 순 없다. 한국 농구를 이끌어갈 재능들이 얼리 엔트리 확대에 가려진 위험성을 확실히 파악해야 하는 이유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