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처럼 또 깜짝 FA 이적 택한 한국전력 박철우

-“삼성화재 이적 때와는 마음가짐 달라, 내 기량 자신감 느낀다.”

-“대형 계약 부담감? 행동을 통해 책임감으로 보여주겠다.”

-“배구장 안팎 사소한 기본부터 지켜야 강팀 될 수 있다.”

-“20대 박철우보다 훨씬 더 쌩쌩하고 발전한 기량 보여줄 것”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게 된 박철우(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게 된 박철우(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엠스플뉴스=의왕]

나이가 들수록 인간은 현재 적응한 환경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환경을 향한 도전을 선뜻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 배구를 대표하는 라이트 공격수 박철우에게 나이와 도전의 숫자는 무관했다. 10년 전 라이벌 팀 유니폼을 입는 FA 이적으로 배구계를 들썩이게 한 박철우는 이번엔 한국전력의 유니폼을 입는 새로운 도전으로 배구계의 시선을 모았다.

그만큼 만년 하위권이었던 한국전력의 전력 보강 의지가 강했다. 한국전력은 3년 총액 최대 21억 원의 통 큰 투자로 박철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단순히 전력 보강의 의미뿐만 아니라 팀 문화와 후배들을 긍정적인 변화로 이끌기를 바라는 구단의 바람도 담겼다.

박철우는 오랜 기간 공격수로서 리그 정상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 원동력은 바로 프로 선수로서 솔선수범한 자세에요. 후배들이 그런 박철우의 솔선수범한 자세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배운다면 팀 문화의 긍정적인 변화에 큰 힘이 될 듯싶습니다.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의 말이다.

이제 박철우는 10년 동안 익숙했던 ‘삼성화재 박철우’가 아닌 ‘한국전력 박철우’에 적응 중이다. 그 과정에서 부담감과 걱정보단 자신감과 설렘의 감정이 더 커졌다. ‘20대 박철우’보다 훨씬 더 쌩쌩하고 잘할 수 있다는 ‘30대 중반 박철우’의 근거 있는 자신감을 엠스플뉴스가 직접 들어봤다.

10년 전 FA 계약과 달라진 마음가짐 "내 기량 자신감 느껴"

박철우는 10년 동안 익숙하게 입었던 푸른 유니폼을 벗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사진=KOVO)
박철우는 10년 동안 익숙하게 입었던 푸른 유니폼을 벗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사진=KOVO)

10년 전과 비슷하게 또 깜짝 FA 이적으로 배구계를 놀라게 했습니다.(2005년 프로 원년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던 박철우는 2010년 라이벌 팀 삼성화재로 FA 이적했다)

FA 계약 시점에 상황이 복잡했습니다. 삼성화재 쪽에선 감독 선임이 늦어지며 자연스럽게 FA 계약도 늦어졌고요. 그사이 한국전력에서 저에게 적극적으로 연락이 왔죠. 한국전력이 제시한 좋은 조건을 마다할 수 없었습니다.

10년 동안 ‘삼성맨’이었기에 결정이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오랫동안 함께했고 좋아했던 삼성화재를 떠나기가 쉽진 않았습니다. 팀 우승을 통해 팬들과 느낀 교감으로 감사한 부분도 있었고요. 옛 동료들과의 정도 있었죠. 그래도 장병철 감독님과 권영민 코치님이 적극적으로 같이 뭉쳐서 배구하자는 설득에 마음을 열었습니다. 최근 한국전력 팀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제가 힘을 보태 더 좋은 팀 성적을 내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죠.

한국전력 구단 사상 FA 최대 계약 금액이라는 상징성이 큽니다.

제가 입단 뒤 한 인터뷰에서 ‘한국전력에 오니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기사 댓글을 살펴보다 어느 한 분이 ‘돈을 많이 주니까 가슴이 뛰지’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처음엔 ‘이거 뭐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다가 ‘그래 맞는 말이긴 하다. 좋은 조건을 마다할 수 있겠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수로서 좋은 조건의 계약에 감사해야 한다고 봐요. 팀에서 더 헌신적으로 뛰어야 하고요. 팀에서 받을 연봉보다 더 가치 있는 활약을 펼치고 싶습니다.

10년 전 FA 이적과 이번 FA 이적에서 느낀 감정에서 다른 점이 있습니까.

어떻게 보면 두 차례 이적 모두 계약 흐름이 비슷했습니다. 10년 전에도 삼성화재에서 더 적극적으로 계약을 제안해 이적을 결정했어요. 다만, 마음가짐 자체는 그때와 다른 듯싶습니다.

마음가짐이요?

10년 전 이적 땐 잘해야 한단 부담이 스스로 감당이 안 됐습니다. 제 실력은 이것밖에 안 되는데 더 좋은 실력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많이 부족해 혼도 많이 났고요. 팬들에게 미안해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죠. 이번 이적 땐 스스로 잘할 수 있단 큰 자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10년 전 힘든 시간도 있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행복한 환경인가 싶어요. 팀 동료들과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부담감을 책임감으로 바꿀 박철우 "강한 정신력 보여줄 것"

장병철 감독(왼쪽)은 박철우(가운데)의 솔선수범한 자세가 팀 동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원한다(사진=한국전력)
장병철 감독(왼쪽)은 박철우(가운데)의 솔선수범한 자세가 팀 동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원한다(사진=한국전력)

등번호 ‘3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3번’이 딱 비어 있었습니다(웃음). 누가 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은 3번으로 계속 가야죠. 숫자 3이라는 느낌이 좋아요. 잘했던 선배들이 3번을 달았고 저도 숫자 3을 좋아하고요. 이제 번호에 의미를 두고 싶단 생각까지 들죠. 배구에선 세 번의 기회가 있으니까 그 세 차례 기회에 최선을 다하는 뜻이고요. 예견한 건 아닌데 소속팀도 마침 세 번째 팀입니다(웃음).

새로운 팀과 함께하는 설렘도 느끼겠습니다.

훈련을 2개월 정도 소화했는데 초반엔 하루는 설렘을 느꼈다가 하루는 ‘우리 팀이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감정이 왔다 갔다 했는데 최근엔 확실히 기대와 설렘의 감정이 더 커졌습니다. 성장하는 젊은 선수들로부터 저도 큰 에너지를 받고요. 저는 뒤에서 잘 받쳐주는 역할에 집중해야죠.

팀에서 받는 기대만큼 부담감도 느껴질 듯싶습니다.

(입술을 굳게 깨물며) 부담감은 당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박철우가 왔기에 한국전력이 달라질 거다’라는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의무고요. 저는 부담감 자체를 책임감으로 바꾸려고 해요. 코트 안팎에서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죠. 안 풀린다고 축 처진 그림을 보여주고 싶지 않고요. 정신적으로 강한 면모를 보여줘야죠. 팀 동료들과 서로를 믿고 도와준다면 그런 부담감은 충분히 떨칠 겁니다.

장병철 감독은 박철우 선수가 후배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도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후배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제가 크게 변해야 한다고 이끄는 것보단 당장 제가 주장이자 선수로서 할 수 있는 역할에 집중하겠습니다. 또 ‘예전엔 이게 그랬고 왜 저랬는지’ 이런 말이 아니라 선수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것들을 강조하려고요. 배구 코트 안이든 밖이든 제가 열심히 하고 보여줄 수 있는 걸 말뿐만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말’엔 책임감이 들어있는 거니까 꼭 지키려고요.

후배들이 가야 할 방향성을 행동으로 제시해야 한단 뜻으로 들립니다.

(고갤 끄덕이며) 방향성이 정말 중요합니다. 선수들이 운동할 때 자신이 설정한 목표와 의도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야 100% 실력을 보여줄 수 있어요. 배구가 자기 인생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 건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냥 어렸을 때 해온 거니까 관성적으로 하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죠. 배구를 통해 무얼 얻고 누구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지 깨닫는다면 좋은 마음가짐으로 훈련과 경기에 임할 수 있을 겁니다.

최근 어린 선수들을 향해 ‘정신력이 부족해 보인다. 나약하다’라는 현장 지도자들의 시선이 있습니다. 후배들의 정신적인 무장도 필요한 요소일까요.

(미소 지으며) 사실 저도 어릴 때 그런 비슷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있었던 베테랑 선배들도 어린 시절엔 그런 소리를 들었을 거고요. 어느 시대에 항상 위에서 볼 땐 어린 선수들이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어요. 저도 어렸을 때 ‘정신력이 약하다 표정을 보니 기운이 없어 보인다. 의지가 박약하다’라는 소리를 듣는 게 싫어 고치려고 정말 노력했습니다.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기량 유지만 하려고 하면 안 돼, 은퇴 직전까지 발전하는 선수 되겠다."

현대캐피탈 시절 박철우.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를 거친 박철우가 강팀 DNA를 한국전력에 심어주길 바라는 기대가 쏟아진다(사진=KOVO)
현대캐피탈 시절 박철우.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를 거친 박철우가 강팀 DNA를 한국전력에 심어주길 바라는 기대가 쏟아진다(사진=KOVO)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를 거쳤기에 ‘강팀 DNA’를 한국전력에 심어주길 바라는 기대의 시선도 큽니다.

20살 때부터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운동하고 대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보고 배웠는데요.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기본을 중시해야 한단 겁니다. 배구 기술적으로 기본기가 될 수도 있지만, 선수로서 생활 속 모든 기본적인 걸 완벽하게 지킬 때 강팀이 된단 걸 느꼈어요. 위기의 순간 흔들리지 않고요.

‘기본’과 관련해 더 자세한 얘길 듣고 싶습니다.

생활에서 정말 작고 사소한 부분도 쉽게 지나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시간 약속도 그렇고요. 다음날 훈련과 경기를 하려면 잘 자고 푹 쉬고 좋은 음식 먹는 건 기본적인 거잖아요. 좋은 훈련은 곧 좋은 경기력으로 나오고, 좋은 경기력은 곧 좋은 결과로 나올 테니까요. 모든 선수가 이런 기본적인 것만 완벽하게 지켜도 그 팀이 정말 강해질 겁니다.

그런 기본을 잘 지켜왔기에 지금의 박철우가 있는 게 아닐까요.

자만보단 자신감이라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20대 때보다 지금 기량이 정신적이든 기술적이든 체력적이든 더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웨이트 트레이닝 체지방이나 인바디 수치도 그렇고요. 나이가 들어도 그냥 경기 뒤에 조금 더 피곤하다 정도에요. 시즌 중간 체력 관리에 신경 쓴다면 향후 3년 동안은 최소 ‘20대 박철우’보다 훨씬 더 쌩쌩하고 잘할 겁니다.

30대 중반까지도 정상의 기량을 유지한단 점은 정말 대단합니다.

형들이 ‘지금 나이에선 기량 유지만 해도 잘하는 거다’라고 말하던데 저는 유지만 하려고 하면 기량은 계속 떨어질 거로 봅니다. 그래서 제 목표가 항상 발전하는 선수에요. 나이를 먹더라도 발전하려고 해야 최소한 유지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프로 선수라면 은퇴할 때까지 자기 기량 발전에 욕심을 내야 한다고 봐요.

"코트 안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모범적인 선수 돼야"

박철우는 20대 시절보다 더 발전한 기량을 30대 후반까지 보여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박철우는 20대 시절보다 더 발전한 기량을 30대 후반까지 보여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근한 기자)

1985년생으로 한국전력과 3년 계약이 끝나면 불혹을 바라볼 시점입니다. 은퇴에 대한 구상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 기량에 항상 자신감을 느낍니다. 40세에도 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형들이 1년 1년마다 다르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현재 나이가 코트 위에서 황혼기가 맞고 선수라면 에이징 커브도 있잖아요. 중요한 건 제가 그만두는 시점을 미리 정하는 게 아니라 팀에 더는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느낄 때 은퇴하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저는 오랫동안 더 할 자신이 있습니다(웃음).

솔선수범한 자세와 모범적인 생활도 ‘롱런’의 비결인 듯합니다.

먼저 프로 선수로서 배구 코트 안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최근엔 실력 말고도 운동 외적인 생활도 중요하잖아요. 운동선수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죠. 단지 운동만 잘한다고 좋은 선수로 평가받는 시대는 아닌 듯싶어요. 저뿐만 아니라 후배들도 코트 밖에서 생활과 행동을 모범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봅니다.

베테랑의 위치인 만큼 기록도 그만큼 차곡차곡 쌓이고 있습니다. 통산 5,681득점으로 V리그 개인 통산 득점 1위에도 올라 있는데 다가오는 시즌 목표가 궁금합니다.

솔직히 득점 같은 개인 목표는 딱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고 팀에 도움이 되자 정도고요. 자신감을 느끼되 겸손하게 시즌을 준비하고 싶어요. 팀이 좋은 성적으로 우승까지 가는 것만 딱 하나 생각하겠습니다.

한국전력 팬들은 ‘박철우 효과’를 얼른 배구 코트 위에서 볼 수 있길 바랍니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팀 목표도 플레이오프 이상 올라가 챔피언결정전까지 가는 겁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한국전력이 강팀으로 변화하는 그림을 보여드리는 겁니다. 팬들께서 경기장에 와주셔야 저희도 힘을 더 낼 수 있지 않을까요. 팬들이 없으면 프로배구가 아니니까요. 팬들이 있어야 저희가 존재하고요. 목표에 도달했을 때 느낄 그 기쁨을 팬들과 같이 느끼고 싶습니다. 얼른 경기장에서 팬들과 뵙길 바랍니다. 항상 감사합니다(웃음).

김근한 기자 kimgernhan@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