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정소림 캐스터 “내 인생 첫 게임은 스타크래프트 아닌 ‘팩맨’”
-남들보다 2배 열심히 준비했을 때 돌아온 말 “쟤는 뭘 알고 방송하는 거냐”
-“‘게임 캐스터는 만만한가 보네’란 한 마디, 이를 악물게 했죠”
-“인생을 걸고 e스포츠에 도전하는 선수들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팬들의 따뜻한 한마디에 울고 웃습니다”

올해로 e스포츠 입문 20년 차를 맞은 정소림 캐스터(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올해로 e스포츠 입문 20년 차를 맞은 정소림 캐스터(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
저는 여성이고 애 엄마여서 e스포츠 캐스터로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e스포츠 정소림(46) 캐스터의 얘기다.
정 캐스터는 e스포츠 중계 20년 차다. 모두가 안 될 거라고 한 업계에서 버티고 또 버텼다. 그 결과 e스포츠를 대표하는 캐스터로 우뚝 섰다.
그 과정이 쉬웠던 건 아니다. 송곳보다 날카로운 한 마디가 여기저기서 날아들었다.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한 마디는 지금도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다. 여성이어서, 애 엄마여서 안 된다는 편견은 매일 밤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게 했다. 엠스플뉴스가 e스포츠의 산증인 정 캐스터를 만났다.
e스포츠 산증인 정소림 캐스터 “인생 첫 게임은 스타크래프트 아닌 ‘팩맨’입니다”

정소림 캐스터는 e스포츠와 함께 성장했다(사진=엠스플뉴스)
정소림 캐스터는 e스포츠와 함께 성장했다(사진=엠스플뉴스)

e스포츠계의 산증인입니다. 2000년 10월 11일 itv(경인방송의 전신) ‘게임스폐셜’을 시작으로 e스포츠 전문 캐스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게임이 스포츠로 인정받지 못한 시절부터 중계했습니다.
미래는 모르는 겁니다(웃음). 아나운서를 꿈꾸던 소녀가 e스포츠 전문 캐스터로 20년째 활동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죠. 참 신기해요.
신기하다?
학창 시절엔 아주 평범했어요. 학교와 집만 오가는 모범생이었죠(웃음). 부모님, 선생님 말씀은 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틀에서 벗어나질 않았어요. 그런 아이가 게임 캐스터란 직업을 가진 겁니다. 그것도 무려 20년이나(웃음).
e스포츠의 탄생부터 쭉 함께하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게임을 좋아했습니까.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웃음). 초등학교 때 오락실에 갔다가 어머니께 혼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큰 오락기에 50원 넣으면 한 게임 할 수 있는 시절이었죠. 당시 어른들은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면서 게임을 안 좋게 봤어요. 게임과 친해지기 힘든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게임에 대한 인식이 안 좋던 시절이지만 오락실에서 남긴 추억이 있습니다. 인생 첫 게임을 기억합니까.
팩맨이요. 사촌 언니네 놀러 갔다가 처음 해봤습니다. 입을 살짝 벌린 주인공을 조종해 유령들을 피하며 미로에 떨어져 있는 쿠키를 주워 먹는 게임이었죠. e스포츠를 즐기는 분들은 ‘저것도 게임이야?’란 생각을 할 것 같아요(웃음). 당시 테트리스와 갤러그, 버블보블(보글보글), 너구리 등도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땐 이런 게임이 신문물이었어요. 부모님 말씀 안 듣는 어린이였다면 푹 빠졌을 겁니다.
어른들 말씀 따라 게임은 가끔 즐기는 어린이였군요. 학창 시절엔 유행하는 게임 몇 가지 즐겨본 게 전부입니다. e스포츠 캐스터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은 겁니까.
초등학교 5학년 때 교내 방송반이 생겼어요. 방송 시설을 갖춘 학교가 흔치 않던 시절입니다. 방송반에 들어갔죠. 카메라는 한 대뿐이고 자막은 수기로 썼어요.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죠. 그러면서 아나운서의 꿈을 키웠습니다.
아나운서?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아주 재밌었어요. ‘내 직업은 이거다’ 싶었죠. 일찍이 꿈을 찾은 겁니다.
그 뒤로 쭉 아나운서를 준비한 겁니까.
e스포츠 캐스터로 자리 잡기 전까지 꿈은 변하지 않았어요. 누군가 장래 희망을 물으면 당당하게 ‘아나운서’라고 답했습니다. 대학 때까지 교내 방송반 활동을 쭉 이어갔고요. 1996년 대학 졸업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97년 첫 직장이 SK텔레콤 사내방송국이었어요.
SK텔레콤 사내방송국이요?
사내 방송을 책임졌습니다(웃음). 주 업무는 라디오 방송이었어요. 영상으로 송출되는 방송은 가끔 했죠. 방송사 아나운서에 도전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던 시절입니다. 제가 어른 말씀 잘 듣는 아이였다고 했죠? 대학 졸업하면 곧바로 취업해야 한다는 말에 일하면서 아나운서를 준비한 거예요.
일하면서 아나운서 취업을 준비한 겁니까.
지금처럼 정보가 많이 없던 시절입니다. SK텔레콤 사내 방송 경험 쌓으면서 채용공고가 나면 지원하는 식이었죠. 그렇게 2년을 일하고 케이블 채널 리포터와 MC로 활동을 이어갔어요. 그러던 중 꿈을 포기하는 일이 생깁니다.
오랜 꿈을 포기할 만큼 큰일이 있었던 겁니까.
1999년 한국 나이로 27살이었습니다. 방송사 아나운서가 되기엔 나이가 많다고 봤죠. 일을 그만두고 임용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해요. 대학 때 국어 교사가 될 수 있는 과목을 수료했습니다. 모험을 그만하고 안정된 길을 택한 거죠.
27살이면 한창 도전할 나이 아닙니까.
당시 27살이면 아나운서가 되는 건 힘들다고 판단했어요. 여기에 결혼과 출산까지 있었습니다. 꿈꿀 여유가 없었죠. 재밌는 건 임신 중에 스타크래프트를 만난다는 거예요.

스타크래프트의 한 장면(사진=OGN)
스타크래프트의 한 장면(사진=OGN)

스타크래프트요?
임신 중 공부는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기분도 별로고 속도 안 좋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남편이 재밌는 게임이 있는데 한 번 해보라는 거예요. CD를 넣고 해봤죠. 와. 신세계였습니다.
신세계였다?
아주 재밌는 거예요. 평생을 무인도에서 살던 사람이 문명 세계로 나오면 이런 느낌일 것 같습니다(웃음).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접한 뒤로 아침에 눈 뜨면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리고 해가 질 때까지 게임을 했죠. 무언가에 이토록 푹 빠진 게 처음이었어요.
스타크래프트가 이전에 접한 게임들과 달랐습니까.
처음으로 접한 컴퓨터 게임은 지뢰 찾기와 카드 맞추기였어요. 스타크래프트는 내 생각대로 게임을 운영하고 상대와 경쟁을 벌였습니다. 게임을 할수록 깊이 빠졌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재미였습니다(웃음). 그리고 이 시간이 쌓여 게임 캐스터로 일할 기회가 찾아왔어요.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다 게임 캐스터로 일할 기회가 생겼다?
아나운서의 꿈을 접고 스타크래프트에 푹 빠져있던 시절 대학 방송국 선배에게 연락이 왔어요. 이 선배는 itv 게임 방송 해설을 맡고 있었습니다. 선배가 “게임을 잘 알고 방송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찾던 중에 네가 생각났다”면서 제안을 했습니다.
어떤?
게임 캐스터 자리가 비었는데 도전해보라는 거였죠. e스포츠 캐스터 정소림의 시작인 겁니다.
“난 여성이고 애 엄마여서 안 되는 사람이었다”

오버워치 리그 중계를 맡고 있는 정소림 캐스터(사진 가운데)(사진=트위치 TV)
오버워치 리그 중계를 맡고 있는 정소림 캐스터(사진 가운데)(사진=트위치 TV)

학창 시절부터 아나운서를 꿈꿨습니다. 이후엔 국어 교사를 목표로 임용고시를 준비했습니다. 게임 캐스터 제안을 받고 고민은 없었습니까.
스타크래프트에 깊이 빠졌습니다. 게임 캐스터 제안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웃음). 당시엔 게임 캐스터란 직업 자체가 생소하기도 했습니다. 도전해보고 싶었죠.
게임을 즐기는 것과 카메라 앞에서 게임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건 다르지 않습니까.
세상에 만만한 일이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었어요. 신입 게임 캐스터에게 스타크래프트뿐 아니라 여러 가지 종목을 맡긴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오늘은 스타크래프트 중계를 하고 내일은 피파 온라인을 책임지는 겁니다. 그다음 날엔 오버워치, 주말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중계하는 거죠. 제 인생 실수가 여기서 나와요.
인생 실수요?
스타크래프트 외 게임은 잘 몰랐어요. 중계 시간에 맞춰 최대한 준비했지만 부족했죠. 사건은 축구 게임인 피파 중계를 할 때 생깁니다. 제가 축구에 관심이 없었어요. 축구 중계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죠. 게임에서도 골이 들어가면 골 장면을 다시 보여줍니다. 저는 그걸 모르고 “또 골이 들어갔습니다”라고 중계한 거예요. 담당 PD께 엄청나게 혼났죠. 너무 부끄러운 실수였습니다.
e스포츠 대표 캐스터도 실수를 할 때가 있었군요.
그 실수 후에 잠을 못 잤습니다. 중계를 책임질 깊이는 없고 준비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어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당시엔 딱 한 가지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던 것 같아요.
어떤?
게임이 스포츠로 발전한다? 상상조차 못 했죠. 더 솔직히 말하면 상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방송을 실수 없이 마치는 데만 집중했어요.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이 업계에서 꼭 살아남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졌습니다.

정소림 캐스터는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을 받아야 했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정소림 캐스터는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을 받아야 했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살아남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게임 캐스터 일을 시작하고 10년간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이 있습니다. “여자가 무슨 게임이냐”가 시작이었어요. “쟤는 뭘 알고 방송하는 거야?”란 이야기도 들었죠. “집에 스타크래프트는 설치돼 있느냐”면서 비웃는 사람도 있었어요. 남들보다 철저히 준비했고 실수 없이 방송을 마쳤습니다. 억울했어요.
아.
조그마한 게임 리그 진행을 맡아요. 큰 문제 없이 대회 준결승을 마칩니다. 전 결승전을 앞두고 방송에서 제외되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했어요. 결승전 생방송은 남자 캐스터로 바뀌는 겁니다. 너무 억울해서 담당자를 찾아가 물어봤어요. 내가 처음부터 실수 없이 방송을 진행해왔는데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결승전 중계에서 빠진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랬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어떤 대답이었습니까.
풋 웃더니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결승전이다. 우리 채널을 대표하는 남자 캐스터가 진행해야지”라고 하는 거예요. 어떤 분은 “네가 여자라서 그래”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대표 프로그램을 맡을 순 없지. 더군다나 넌 애 엄마잖아”라고 한 분도 있었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이러한 차별을 겪으면서 캐스터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까.
이를 악물게 한 결정적인 한 마디가 있었어요. “게임 캐스터는 만만한가 보네”란 말이었습니다. 전 모든 걸 걸고 게임 캐스터 일에 도전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카메라 앞에서 아나운서를 준비했습니다. 게임에 푹 빠지고 캐스터 일을 시작하면서는 밤낮없이 공부에 매진했어요. 솔직히 많이 울었습니다.
울었다?
집으로 돌아와 베갯잇을 눈물로 적셨죠. 울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어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편견,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 한마디가 너무 아팠습니다. 그렇게 울면서 결심했어요. ‘여기서 포기하면 저 사람들의 생각대로 되는 거다. 여성이라서 애 엄마라서 안 된다는 사람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자.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죽을힘을 다해서 꼭 살아남겠다’고.
‘할 수 있다’는 격려와 용기를 건넨 동료는 없었습니까.
있죠. 어느 조직이나 다양한 사람이 존재해요. 힘들 때마다 ‘잘하고 있어’란 격려를 해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별거 아닌 말 한마디죠? 이 말이 하루를 버틸 힘이 됐습니다. 또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저는 힘들면 말로 풉니다. 누군가를 찾아서 힘든 일을 이야기하는 거죠(웃음).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업계에서 살아남은 게 아닌가 싶어요.
e스포츠 대표 캐스터로 20년간 활약 중인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 아닙니까.
어떤 캐스터보다 준비를 많이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웃음). 캐릭터 스킬, 빌드, 특성 등을 모조리 외워요. 포스트잇에 핵심을 요약해 종일 봅니다. 경기를 앞두고선 선수들을 꼭 만나요.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질문을 정리해 물어보는 거죠.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선수 이야기를 전달하고요. 20년째 변함없는 일상입니다.
“e스포츠의 주인공은 선수입니다”

스타크래프트 최강자로 군림했던 임요환(사진=OGN)
스타크래프트 최강자로 군림했던 임요환(사진=OGN)

e스포츠의 성장을 눈앞에서 지켜봤습니다. 스타크래프트부터 스폐셜 포스, 카스 온라인, 오버워치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e스포츠 종목을 중계했어요. 오랜 시간 e스포츠를 중계하면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선수는 누굽니까.
임요환이란 선수가 없었다면 e스포츠가 탄생했을까 싶어요(웃음). 임요환은 최고가 될 수밖에 없는 선수였습니다. 임요환의 경기를 지켜볼 때마다 깜짝 놀랐어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전략을 가지고 나오는 겁니다. 이 선수에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어요. 도전을 즐길 줄 아는 선수였죠. 또 있습니다.
어떤 선수입니까.
스타크래프트 통산 승률 1위(505승 202패, 71.4%) 이영호입니다. 15살에 e스포츠 무대에 데뷔해 성장하는 과정을 쭉 지켜봤어요. 머리가 좋은 연습벌레입니다. 경기에서 이길 수밖에 없도록 준비하는 친구예요. 게임방송에서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게 참 아쉽습니다.
2012년 5월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빈자리는 스타크래프트2가 채웠습니다.
스타크래프트는 하나의 문화였어요.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대중의 눈을 사로잡으면서 e스포츠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됐죠. 하지만, 스타크래프트는 e스포츠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어요.
e스포츠의 약점?
생명력입니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는 내년에도 시즌이 이어질지 걱정하지 않아요. e스포츠는 다릅니다. 이 리그를 내년에도 진행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아요. 종목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거죠. 스타크래프트처럼 긴 역사를 자랑하는 종목도 게임사 결정에 따라서 사라질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e스포츠는 발전을 멈추지 않았어요.
발전을 멈추지 않았다?
2011년 12월 4일 리그 오브 레전드(LOL)가 등장합니다. 스타크래프트는 한국에서만 큰 인기를 끌었던 게 사실이에요. LOL은 다릅니다. 세계가 열광하는 e스포츠 종목이에요. 2016년 5월 24일 출시한 오버워치도 큰 사랑을 받고 있죠. 국제대회를 현장에서 중계하면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국제대회요?
인간 파도를 아세요(웃음)? 중국에서 e스포츠 대회가 열리면 어마어마한 관중이 모여요. 중계석에 앉아 있으면 사람 머리가 끝없이 보입니다. 그 많은 관중이 선수들 플레이 하나에 똑같이 열광하는 걸 봐요. e스포츠가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걸 느끼죠. e스포츠의 성장을 눈앞에서 지켜본다는 건 큰 행운인 것 같아요.
큰 행운이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게임이 스포츠가 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게임이 무슨 스포츠야”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어요. 그러나 10년 전과 비교해 게임을 스포츠로 인정하는 분이 많아졌습니다. 제가 e스포츠의 매력을 알리는 데 조금은 이바지하지 않았을까요(웃음).

e스포츠의 주인공은 선수라는 게 정소림 캐스터의 생각이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스포츠의 주인공은 선수라는 게 정소림 캐스터의 생각이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스포츠를 대표 캐스터입니다. e스포츠계에서 어떤 존재로 남고 싶습니까.
따뜻한 사람. 모든 스포츠의 주인공은 선수입니다. e스포츠도 마찬가지죠. e스포츠 선수들은 연령대가 아주 어려요. 10대 때부터 인생을 걸고 한 종목에 올인합니다. 많은 걸 경험하면서 성장해야 할 시기에 인생을 걸고 무언가에 몰두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니에요. 그 선수들의 시간이 값질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와주고 싶어요.
도와주고 싶다?
임요환이나 이상혁처럼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른 선수는 문제가 없어요.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죠(웃음). 문제는 그 뒤에 가려진 선수들입니다. 죽을힘을 다한 선수들이 경기에서 패하는 걸 봐요. 한 단계 올라서지 못하는 걸 지켜봅니다. 그런 선수들이 “e스포츠를 선택해서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을 하진 않을까 걱정해요.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챙기려고 하는 게 이런 이유입니다.
선수들을 향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선수들이 하나뿐인 아들과 비슷한 연령대예요. 애정이 갈 수밖에 없죠. 세상엔 주연만 존재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조연이 되고, 단역을 맡아야 해요. 조연과 단역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고 존재라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거 아니에요. 아쉬운 패배가 향후 성공에 큰 자양분이 될 수 있습니다. 그걸 알려주고 싶어요. 선수들이 “e스포츠로 많은 걸 배웠다”고 느낄 수 있게끔 말이죠.
“팬들의 따뜻한 한마디에 울고 웃습니다”

중계방송 중인 정소림 캐스터(사진 가운데)(사진=정소림 캐스터 제공)
중계방송 중인 정소림 캐스터(사진 가운데)(사진=정소림 캐스터 제공)

e스포츠를 대표하는 캐스터답게 팬층도 아주 두껍습니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인 것 같아요. 가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 이런 메시지를 받습니다.
어떤?
“누나 방송 보고 오늘 하루 스트레스를 싹 날려버렸습니다” “언니가 중계하는 오버워치 방송 챙겨보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났어요. 오늘도 응원합니다” 등의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따뜻한 한마디의 힘을 느낍니다. 아주 감동적이고 감사해요. 이 마음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많은 e스포츠 캐스터 지망생이 제2의 정소림을 꿈꿉니다.
e스포츠가 발전하면서 여성이어서 안 된다는 인식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성별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에요. 능력이 있으면 누구든지 마이크를 잡을 수 있는 시대죠. 문제는 중계석에 앉는 게 이전보다 어려워졌다는 겁니다.
이전보다 어려워졌다?
힘든 일이 많았지만 한편으론 좋은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해요. 2020년 e스포츠 캐스터에 도전하는 친구들은 베테랑처럼 중계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원해요. 요즘은 중계가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채팅창에 불만을 표시합니다. “누구누구는 별로”라면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네.
원활한 방송 진행 능력과 게임 지식만큼 중요한 게 있습니다. e스포츠 방송을 챙겨보는 시청자는 10~20대가 대다수예요. 딱딱한 중계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재밌어야 해요. 시청자들을 어떻게 하면 웃길 수 있을까 20년째 고민합니다. 매우 어려운 과제죠.
이 힘든 과제를 20년째 해결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e스포츠 캐스터로 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까.
사실 은퇴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나이란 현실을 외면할 순 없잖아요(웃음).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e스포츠 중계 현장을 떠날 날이 올 겁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엔 어떤 일을 할지 계획이 있어야 해요. 인생의 절반을 e스포츠와 함께했습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e스포츠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이어가고 싶어요.
e스포츠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요?
눈에 띄는 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인생을 걸고 e스포츠에 도전하는 친구들의 멘토가 한 예죠. e스포츠 방송 작가도 꿈꿔요(웃음). e스포츠와 함께 성장한 경험을 살리는 거죠. 지난해 9월부턴 트위치란 방송 플랫폼에서 개인방송을 진행하고 있어요. 은퇴 후에 개인방송에 집중해볼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다양한 길을 고민하고 있어요.
“아들이 엄마처럼 e스포츠계에 종사한다고 하네요”

정소림 캐스터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최고의 자리에 섰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정소림 캐스터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최고의 자리에 섰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2000년부터 쉴 틈 없이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삶의 활력소가 되는 취미가 있습니까.
일 욕심이 많았습니다. 완벽한 중계를 위해 쉴 여유가 없었죠. 집에선 아들을 챙겨야 했습니다. 가끔 좋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게 전부였어요. 하지만,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여유를 찾기 시작했죠. 지금은 아들이 군에 있어요.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2년 전부터 무슨 일이든 즐기려고 해요. 나이가 들면서 하나둘 내려놓는 거죠(웃음). 아이가 성인이 되면서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요.
e스포츠계에 입문했을 때부터 일과 육아를 병행했습니다. 일에선 e스포츠를 대표하는 캐스터로 우뚝 섰습니다. 그렇다면 집에선 어떤 어머니입니까.
아들이 친구 같은 어머니라고 합니다.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가 공부보단 게임이잖아요. 제가 태교를 게임으로 했습니다. 아들은 게임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랐죠. 게임이 아들과의 관계를 친구로 만들어줬어요. 우리 대화의 70%가 게임입니다.
많은 학부모가 자녀의 게임 시간으로 고민에 빠지곤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게임을 하는 걸 막을 순 없었어요. 제가 게임을 하는데 아들은 게임을 못 하게 한다? 말이 안 되는 거죠. 대신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중학교 입학 후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진 일주일에 딱 하루 자유 시간을 줬어요. 종일 게임 하라고. 6일은 게임을 안 하는 겁니다.
종일이요?
많은 학부모께서 하루 30분이란 게임 시간을 정하는 걸 봅니다. 그럴 경우엔 게임에 대한 갈증만 더 커져요. 차라리 일주일에 하루는 마음껏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아드님께서 같은 업종에 종사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까.
저를 꼭 빼닮았어요(웃음). 미술을 배우는 친구인데 게임 회사에 들어가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세상엔 많은 길이 있다”고 조언해줘도 한 길만 보네요. 저처럼 한 우물만 파는 거죠. 무슨 일에 도전하든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주려고 해요. 아들이 존경할 수 있는 어머니일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매 순간 온 힘을 다할 겁니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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