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앞으로 다가온 제21대 총선, 스포츠 공약이 안 보인다

-10대 정책순위에 ‘체육’ 공약 전면에 내세운 정당 없어

-체육 인재 영입도 답보…민주당 임오경, 미래한국당 이용-김은희가 전부

-정치권의 체육 홀대, 장기적 국가 경쟁력 약화…체육인 인권도 뒷전 밀려나

평창 동계올림픽(사진=엠스플뉴스)
평창 동계올림픽(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제21대 총선이 불과 20일 앞으로 다가왔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가운데, 득표를 위한 정치공학만 난무하고 정책은 실종된 최악의 선거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스포츠・체육 관련 공약이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체육계에서 느끼는 실망감과 우려가 커지는 중이다.

엠스플뉴스는 3월 26일 기준 주요 정당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정당정책을 비교・분석했다(선관위 정책・공약알리미). 조사 결과 4・15 총선에 후보를 낸 정당 가운데 10대 정책에 스포츠・체육 관련 정책을 독립적인 공약으로 내세운 정당은 없었다. 정책순위 목표 하부에 체육 정책을 포함한 정당이 다수였다. 아예 정책공약에서 ‘스포츠’와 ‘체육’이란 단어를 한 글자도 넣지 않은 정당이 더 많았다.

스포츠·체육 관련 공약 실종사태…진보정당은 ‘체육’ 한 글자도 언급 안 해

주요 정당에서 내세운 체육 관련 정책(표=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주요 정당에서 내세운 체육 관련 정책(표=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책순위 10번 ‘문화강국 실현’에 체육 공약을 포함했다. 민주당은 ‘건강한 체육환경 조성’을 목표로 △AR, VR 스포츠체험관 조성 △국민체육센터 등 생활체육 인프라 지속 확충 △국민체력인증센터 운영 확대 △은퇴 선수 협동조합 창업지원 등 전문 체육인 복지 강화 재원조달방안 등을 나열했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정책순위 10번 ‘저출산 고령화 시대 대비 촘촘한 사회 복지 안전망 구축’에 △어르신 건강스포츠 이용권 신설을 언급했다. 대신 미래통합당은 은퇴 선수·국가대표·스포츠 꿈나무 지원을 골자로 한 ‘스포츠 기 살리기 5대 공약’을 별도로 발표했다.

주요 공약사항은 △은퇴 선수의 지도자 활동 지원 △국가대표 지원 현실화 △유소년 꿈나무의 국비유학제도 도입 △야구 등 실업리그·생활체육 활성화 △복합 문화체육시설 조성이다.

체육계 평가는 엇갈린다. “그나마 유력 정당 가운데 통합당이 유일하게 스포츠 공약을 따로 만들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전형적인 총선용 선심성 공약이다. 한국 체육계의 가장 시급한 과제인 인권보호와 공정성 확보가 빠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편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으로 탄생한 미래한국당도 정책순위 2순위에 스포츠 관련 공약을 포함했다. 미래한국당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개혁 목표’로 ‘문화 예술 체육계의 불공정 실태 근절’을 내세웠다.

주요 공약으론 △국가권력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스포츠 단일팀 구성 방지 체계 마련 △문화예술계와 체육계의 공정윤리 기반확립을 위한 종합 대응체계 마련 △문화예술계 체육계의 신고자 및 제보자에 대한 보호 강화를 중심으로 당내 ‘공정윤리 대응반(TF)’ 상시 운영지원 △스포츠윤리센터의 운영 전반을 지속적으로 점검 등을 나열했다. 체육계 신고자 보호와 비리, 불공정 문제를 정책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민생당은 특이하게 10번 과제 ‘미세먼지 50% 감축’ 공약에 체육 공약을 집어넣었다. 민생당은 미세먼지 대응책으로 △전국 초등학교에 가상현실(VR) 체육관 보급 △전국 100명 이상 재학 중인 초등학교(4천 개소)에 시설보급 △양궁, 축구, 농구, 볼링, 산악자전거 등 20여 가지의 다양한 스포츠 콘텐츠 구성을 공약했다. 이와 관련 한 체육인은 “미세먼지를 줄여서 아이들이 실외에 나가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순서가 뒤바뀐 공약”이라 평가했다.

우리공화당은 10번 과제 ‘한민족의 높은 역사 정신문화 계승발전’ 공약에서 ‘체육’을 언급했다. 우리공화당은 △소유권 보장과 자유 위에서 시장 중심의 문화예술체육관광 발전 △관 주도에서 문화예술체육관광 등 컬쳐테크의 기업화 지원. 기업이 문화예술체육 관광을 돕는 메세나 운동에 세금 감면 확대를 내세웠다. 내용을 접한 스포츠 종목단체 관계자는 “무슨 얘기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평가하지 못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당은 10대 정당정책에 ‘스포츠’와 ‘체육’ 관련 공약이 없었다. 6번 과제 ‘복지개혁’의 출산부부 대상 혜택 제공 항목에서 ‘2자녀 다둥이 부부부터 교통・문화・체육・관광・편의시설 할인혜택을 담은 다둥이 문화패스 신설’에 ‘체육’이란 단어가 나오긴 하지만 체육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한 장면(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평창 동계올림픽의 한 장면(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정의당, 민중당, 노동당, 녹색당 등 진보정당들은 아예 체육 관련 공약을 하나도 내놓지 않았다. 네 정당 다 정당정책 자료에 ‘스포츠’와 ‘체육’이란 단어가 한 글자도 등장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최동호 스포츠 평론가는 “진보정당은 체육 정책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거대 양당에는 그래도 체육 전문가가 한두명은 있는데, 진보정당에는 체육 담당이 없다”고 했다. 이기광 국민대학교 체육학부 교수는 유럽 등 서구에서는 사회주의 정당이 오히려 더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국내에서는 진보정당이 체육을 경시하는 것 같아 아쉽다는 생각을 밝혔다.

진보정당 가운데 유일하게 체육 공약을 내놓은 정당은 신생 ‘여성의당’이다. 여성의당은 6순위 ‘여성 신체의 건강과 여성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나라’ 항목에서 ‘여성건강권 보장을 위한 정책 수립의 의학적 근거 마련’을 공약하며 △여아 및 청소년을 위한 체육 활동 지원 강화 이행방안으로 내걸었다. 체육 활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지만,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 방안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 한계다.

체육계 인재 영입도 답보…민주당 임오경, 통합당 이용-김은희 도전장

21대 총선에 도전장을 던진 이용 봅슬레이 감독, 임오경 전 핸드볼 선수.
21대 총선에 도전장을 던진 이용 봅슬레이 감독, 임오경 전 핸드볼 선수.

선거 때마다 활발하게 이뤄졌던 정당의 체육계 인재 영입도 이번 총선에선 답보 상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공한 제21대 총선 후보자등록상황 자료를 살펴본 결과(26일 기준) 체육 관련 학위가 있거나 경기인 출신, 체육 관련 분야 경험이 있는 지역구 예비후보는 총 906명 가운데 14명에 그쳤다.

현역 국회의원으로 21대 총선에 도전장을 낸 후보 중엔 더불어민주당 안민석(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 도종환(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영주(농구선수 출신) 의원 정도가 체육 관련 인사로 분류된다. 미래통합당 구상찬 전 의원도 동국대학교 체육학 석사 출신으로 체육계에 연이 있는 인사다.

체육계 인재영입 사례로는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후보가 지역구(광명갑)에 도전장을 던졌고,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는 이용 봅슬레이 스켈레톤 국가대표 총감독, ‘체육계 미투 1호’로 알려진 김은희 전 테니스 코치가 있다.

임오경 후보는 민주당 내 후보 적합 여론조사를 거쳐 전략 공천된 사례다. 이용 후보도 비례대표 순위 18번으로 당선권으로 분류된다. 반면 김은희 후보는 비례대표 순위 23번으로 당선권과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이변이 없는 한 21대 국회에 체육인 출신 정치 신인은 2명을 넘지 않을 전망이다.

21대 총선 후보 가운데 체육 관련 학위 소지자, 체육 관련 경력이 있는 인사(표=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21대 총선 후보 가운데 체육 관련 학위 소지자, 체육 관련 경력이 있는 인사(표=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체육계에선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최동호 스포츠 평론가는 개인적으로는 출마하는 분들에게 기대를 걸고 싶다면서도냉정하게 말해 이번 인재 영입에서 체육 전문가는 없고 ‘체육 스타’만 있다. 공천에서 체육 쪽 몫을 당의 득표 전략을 위한 얼굴마담으로 활용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허구연 MBC스포츠 해설위원도 “체육계 인사 영입이 체육계 유명인을 이용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국회의원은 입법활동을 해야 하고 해당 분야에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냥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영입하고 이용당할 게 아니라, 실제 입법 활동을 할 수 있는 인사를 영입해야 하는데 우리 정치 풍토가 잘못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기광 국민대 교수는 “체육 분야 정책 수립을 도와줄 진짜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전문가라면 데이터를 근거로 얘기해야 한다. 가령 체육 예산을 어떤 용도로 얼마만큼 투자하면 국민 건강 수준이 이만큼 올라가고, 삶의 만족도가 향상된다는 지표를 갖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경기장 하나 짓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막상 체육계 인사가 국회에 입성해도 체육계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당론에 따른 거수기의 하나로 전락하거나, 체육을 개인 정치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비판이 그간 체육 관련 정치인들에게 제기돼 왔다.

최동호 평론가는 “정당들이 구색맞추기용으로 한 두명씩 체육인을 영입하지만, 막상 국회에선 ‘원 오브 뎀’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00명의 의원 중에 한 사람이고, 당내에서도 주류와 비주류로 나눠지는 상황에 의원 혼자서 힘을 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체육 정책 실종은 국민 건강과 국가 경쟁력 약화…정치권, 체육 이해도 높여야”

최근 스포츠계에서는 인권과 공정이 큰 화두였다. 21대 총선 공약에선 이런 가치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사진=엠스플뉴스)
최근 스포츠계에서는 인권과 공정이 큰 화두였다. 21대 총선 공약에선 이런 가치에 대한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사진=엠스플뉴스)

스포츠・체육 관련 공약 실종에 대해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전혀 새롭지 않은 현상”이라 했다. “공급자 입장에서 득표 전략에 과연 체육 정책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큰 문제, 더 시급한 문제 위주로 정책을 만들다 보니 체육이 뒤로 밀려나는 것”이란 지적이다.

이기광 국민대 교수도 “정당에서 볼 때 유권자들의 체육에 대한 요구가 적다고 판단한 것”이란 의견을 밝혔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국민 건강 문제는 인풋과 아웃풋이 하루아침에 나타나지 않는다. 정부나 국회나 임기 내에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우선 순위에서 뒤로 미루게 된다고 지적했다.

다른 분야에 비해 체육인들의 정치적 행동력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탁구선수 출신으로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이에리사 휴먼스포츠 대표는 “정치권이 체육인들에게 별다른 응집력이나 압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예술인들만 해도 삭발하고 단체로 행동해서 관철하는 경우가 많은데, 체육인들은 조직의 힘을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했다.

최동호 평론가도 노동, 복지, 인권 분야는 시민사회 단체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 조정을 위해 열심히 뛴다. 계속 여론을 전달하면서, 정당이 득표를 위해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게끔 활동한다. 반면 스포츠는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주는 것만 받아먹는 데 그쳤다고 했다.

체육계에선 체육 정책 실종이 장기적으로 국민 건강과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6년 세계 145개국 11~17세 남녀 학생을 대상으로 신체활동량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운동 부족으로 분류된 학생 비율이 94.2%로, 146개국 중 가장 높았다. 분석 대상 중 이 비율이 90% 이상인 나라는 한국, 필리핀(93.4%), 캄보디아(91.6%), 수단(90.3%)뿐이다. 세계 최악의 ‘운동 부족 국가’인 셈이다.

한 체육단체 관계자는 “그간 정부와 정치권의 체육 정책은 국제대회에서 메달 획득, 그리고 경기장 건설 같은 토건 분야. 이렇게 두 가지만 초점을 맞췄다”며 “이번 총선 공약을 봐도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장기적 체육 정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역구 후보들도 하나같이 경기장이나 체육센터 신설 공약만을 내세운다. 하나같이 지역구에서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고, 토건업자들과 연결된 공약으로 체육 발전은 안중에 없다”고 비판했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정치권이 체육의 중요성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운동부족은 장기적으로 엄청난 사회적 대가를 치르게 된다”며 “세계 챔피언이나 금메달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들 체력이 강해야 진짜 국력이다.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인프라를 만들어 사람들이 스포츠를 생활화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최동호 평론가는 “정치권이 체육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고, 관심도 부족하다”며 “지금 한국스포츠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선수 인권과 공정성이다. 최근 2년간 체육계가 고민하고 논의해 왔던 인권, 공정성은 사라지고 득표용 정책만 남았다”고 비판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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