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 24일 학생선수 기숙사 실태조사 결과 보고 토론회 진행

-인기 스포츠 스타들 “합숙소 폭력·기합·부조리한 심부름 등 성공을 위해 거쳐야 할 과정으로 인식”

-둘로 나뉜 의견, 인권 친화적 기숙사로의 전면 개편이냐 폐지냐

-학생선수 학부모 “더 확인할 것 없다. 합숙소 폐지가 유일한 해결책”

국가인권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10월 24일 학생선수 기숙사 실태조사 결과 보고 토론회를 진행했다(사진=엠스플뉴스)
국가인권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10월 24일 학생선수 기숙사 실태조사 결과 보고 토론회를 진행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학생선수 합숙소 없애세요. 오늘도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숙소에서 잠들 아이들을 생각해주십시오.

10월 24일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특조단)의 학생선수 기숙사 실태조사 결과 보고 토론회에 참석한 학생선수 학부모의 말이다.

특조단은 6월 초부터 9월 말까지 전국 380개 운동부 합숙소 가운데 16곳(고교 13·중학 3/남 11·여 2·공학 3/수도권 7·지방 9)을 직접 조사했다. 토론회가 열리기 하루 전엔 그 결과를 발표했다. 합숙소에서 상습구타 및 단체 기합, 유사 성행위 강요, 성희롱 및 신체 폭력 등이 가해진 걸 확인했다.

학생선수들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휴대전화 압수, 이성 교제 적발 시 삭발 강요, 관등성명 외치기, 선배 빨래 및 마사지해 주기 등 부조리한 일이 비일비재했다.

둘로 나뉜 의견, 인권 친화적 기숙사로의 전면 개편이냐 합숙소 폐지냐

특조단이 방문한 합숙소 가운데 CCTV를 설치해 학생선수들의 일상생활을 감시한 학교들이 있었다(사진=엠스플뉴스)
특조단이 방문한 합숙소 가운데 CCTV를 설치해 학생선수들의 일상생활을 감시한 학교들이 있었다(사진=엠스플뉴스)

체육계에 합숙 훈련이 등장한 건 대학특기자(체육) 제도가 도입된 1962년이다. 2년 뒤엔 엘리트 스포츠의 산실 태릉선수촌이 건립됐다.

선수들은 메달 획득을 위해 장시간 합숙을 마다하지 않았다. 세계 정상에 오르는 선수가 하나둘 생겨나면서 합숙은 당연해졌다. 운동을 시작한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성적을 내려면 합숙이 필요했다.

체육계에선 ‘선배는 하느님과 동격이다’ ‘선배의 말은 곧 법이다’란 말이 통용된다. 이유 없는 폭력과 기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선배의 빨래와 라면 심부름 등을 일과에 포함한다. 한국프로축구 및 프로농구 감독과 선수들이 유소년 시절을 떠올리며 공통으로 하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인다.

성공을 위해서 꾹 참았습니다. 이겨내야 하는 과정으로 생각했죠. 당시엔 그게 ‘잘못된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원로가 된 인사뿐 아니라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 모두 부조리한 일이 많은 합숙소에서 성장했다.

10월 24일 학생선수 기숙사 실태조사 결과 보고 토론회에 참석한 체육계 관계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관계자는 대중의 큰 관심을 받는 인기 종목 선수들이 인권이 무시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그렇다면 대중의 눈 밖에 있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어떻겠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꿈을 키워가는 학생선수들이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1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수년간 폭행 및 성폭행당한 사실을 폭로했다. 고립되고 통제된 합숙소 내 가혹한 훈련과 인권침해가 문제로 떠올랐다. 한 달 후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발족했다. 10개월간 합숙소 문제를 비롯한 체육계 문화를 바꾸기 위해 쉼 없이 내달렸다.

10월 24일 토론회에 참석한 서강대학교 교육대학원 정용철 교수,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구정화 교수, 한국스포츠정책연구원 한태룡 스포츠정책연구실장, 교육부 체육예술 교육지원팀 김대진 교육연구사, 연희중학교 김규식 체육 교사 등은 현 합숙소 문제에 공감하면서, ‘문화 개선’과 ‘전면 금지’ 두 의견으로 갈렸다.

김대진 교육연구사는 합숙소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 합숙소 폐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거리에서 등교하는 학생선수들이 있다. 학교체육진흥법 시행규칙 제7조엔 원거리 통학 학생선수를 위해 기숙사를 운영할 수 있게 돼 있다고 했다.

이번 토론회에선 ‘인권 친화적 기숙사로의 전면 개편’, ‘교육 당국의 감독 강화’, ‘학교체육진흥법 등 관련 법령 개정 검토’가 합숙소 문화 개선의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됐다.

반면 한태룡 실장은 불량식품에 캐비아를 올린다고 해서 좋은 음식이 되는 건 아니다. ‘인권친화적인 합숙소’라는 대안이 제시된다. 하지만, 환경을 개선한다고 해서 학생선수들의 인권침해 문제가 해결될지 의문이라며 학생선수의 합숙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을 실었다.

합숙소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른 지 16년, 무엇이 바뀌었나

A 중학교 합숙소는 군 내무반 구조형 침실이다(사진=국가인권위원회)
A 중학교 합숙소는 군 내무반 구조형 침실이다(사진=국가인권위원회)

운동부 합숙소 인권 문제가 공론화된 건 16년 전이다. 2003년 3월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9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 당시 합숙소 창문엔 방범용 쇠창살이 설치돼 있었다.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고, 비상구는 잠겨있었다.

10년이 지난 2013년 1월 학교체육진흥법이 제정됐다. 학교의 장은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 및 신체적·정서적 발달을 위하여 상시 합숙 훈련이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강제조항이 아닌 까닭에 뿌리 깊은 운동부 합숙 문화를 바꾸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만들어지고 10개월이 지났다. 명확한 해결책이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 최영애 위원장은 14명으로 구성된 특조단이 숨 고를 틈 없이 달려왔지만 갈 길이 멀다우리만의 힘으론 학생선수들의 인권 향상을 꾀하고 꿈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시민단체 등이 힘을 합쳐야 한다. 국민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줘야 오랫동안 지속된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날 현장의 실태를 잘 알고 있는 학생선수 학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3만 3천346달러(한화 약 3천 913만 원)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운동선수의 꿈을 가진 학생들이 비좁은 방에 칸막이를 치고 자요. 선배들의 빨래와 잔심부름이 반복되는 등 부조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더 확인할 것이 남았습니까. 합숙소를 폐지하는 것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입니다.

한국 학원 체육의 상징 ‘운동부 합숙소’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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