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020시즌 KBL MVP 허 훈, 프로 데뷔 3년 만에 최고 선수로 우뚝

-“지금은 프로농구 선수가 직접 홍보에 나서야 하는 시대”

-“자기와 팀, KBL까지 알릴 수 있는 방송 출연 마다하지 않았으면”

-“2019년 농구 월드컵 경험이 코트 위에서의 ‘여유’ 선물했습니다”

-“KBL, 한 라운드 정도 내국인 선수로만 진행하는 건 어떨까요?”

2019-2020시즌 KBL 정규리그 MVP 허 훈(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2019-2020시즌 KBL 정규리그 MVP 허 훈(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엠스플뉴스=수원]

‘농구대통령’ 허 재의 아들. 허 훈의 이름 앞에 붙었던 말이다.

그 아들이 아버지를 넘어서고자 한다. 허 훈이 KBL(한국프로농구연맹) 데뷔 3시즌 만에 정규리그 MVP(최우수선수상)를 받았다.

허 훈은 2019-2020시즌 35경기에서 뛰며 경기당 평균 14.9득점(3점슛 2개), 7.2어시스트(1위), 2.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2월 9일 안양 KGC 인삼공사전에선 24득점, 2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 승리(91-89)를 이끌었다. 허 훈은 KBL 최초 ‘20득점-20어시스트’ 기록을 달성했다. 지난 시즌 KBL 올스타전 팬 투표 1위도 허 훈의 몫이었다.

허 훈은 KBL 흥행도 책임진다. 톡톡 튀는 개성과 입담으로 농구계 눈을 사로잡는다. 방송 출연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중의 마음을 빼앗아 농구장으로 불러들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엠스플뉴스가 2019-2020시즌 KBL MVP 허 훈을 만났다.

“인기 방송 출연, 장점이 아주 많습니다”

코트 안팎에서 대중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허 훈(사진=엠스플뉴스)
코트 안팎에서 대중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허 훈(사진=엠스플뉴스)

6월 1일 2020-2021시즌 대비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코트에서 뛸 체력을 만드는 단계입니다. 전술 훈련은 몸 상태가 올라올 7월부터 진행할 계획이에요. 개인적으론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보다 철저히 준비해서 좋은 몸으로 팬들과 마주 하고 싶습니다.

휴식기는 어떻게 보냈습니까.

지난 시즌 마치고 가족 여행을 계획했어요. 힘들 때마다 ‘올 시즌 마치면 가족 여행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텼죠.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으면서 계획이 꼬였습니다(웃음). 여행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시즌 때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을 만나면서 휴식기를 보냈습니다.

2019-2020시즌 MVP를 받았습니다. 언론 인터뷰뿐 아니라 인기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면서 농구계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꼭 출연하고 싶었어요. 운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더 많은 프로에 나가고 싶은 게 사실입니다(웃음). 그런 제게 아버지께서 한 말씀 하셨어요.

어떤?

“운동선수가 텔레비전에 자주 나가면 안 된다”고 남은 일정을 싹둑 자르셨어요(웃음). 아버지께선 제가 잦은 방송 출연으로 농구에 소홀하진 않을까 걱정하시는 거 같습니다. 이번에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어떤 겁니까.

프로 선수가 잦은 방송 출연으로 몸 관리를 못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겁니다. 아버지께서 걱정하시는 게 이런 거죠. 대중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에 나가면 장점이 많아요. 전 프로농구 선수입니다. 방송은 제 직업과 소속팀, 리그를 자연스럽게 노출하죠. 선수들이 방송 출연 기회를 잡으면 주저하지 않았으면 해요.

방송 출연을 주저하지 말라?

2020년엔 즐길 거리가 한둘이 아닙니다. KBL은 프로배구와 경쟁하는 게 아니에요. 쉬는 날 영화 관람이 취미인 분들을 농구장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휴대전화 안에서 펼쳐지는 세상보다 재밌는 흥미 요소를 만들어서 대중에게 전달해야 해요. 코트 안에서 좋은 경기력이 우선이다? 이건 프로선수에게 당연한 거죠. 그 외 것들이 필요한 시대예요.

그 이외의 것들이 필요하다?

구단 마케팅팀만 홍보해선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 매력과 KBL을 알려야 합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 분이라도 더 농구장을 찾을 거라고 봐요. 팬들이 하나둘 늘면 선수들은 더 땀 흘리면서 경기를 준비할 겁니다. 선순환 구조가 생기는 거죠. 이것이 방송 출연에 욕심을 낸 이유 중 하나예요.

2019-2020시즌 KBL 정규리그 MVP 허 훈(사진 오른쪽)(사진=KBL)
2019-2020시즌 KBL 정규리그 MVP 허 훈(사진 오른쪽)(사진=KBL)

스포츠계엔 운동선수의 방송 출연에 비판적인 시선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방송에 나설 시간에 운동해야 더 좋은 경기력이 나오고 그것이 프로’란 주장입니다.

프로농구 선수에게 농구가 최우선인 건 당연한 거예요. KBL에서 뛰는 선수 모두가 프로농구 선수를 꿈꾸며 살아왔습니다. 프로가 된 후엔 1분이라도 더 뛰기 위해 구슬땀을 흘려요. 전 아버지 못지않은 최고 선수가 되는 게 꿈입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루도 빼먹지 않아요. 스킬 트레이닝에선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집중합니다.

방송 출연해도 몸 관리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군요.

전문 방송인처럼 매주 방송에 나가는 게 아니에요. 쉬는 날 하루 나가는 겁니다. 시즌이 한창일 땐 아무리 좋은 제안이 와도 방송 못 해요(웃음). 차기 시즌 보여드리겠습니다. 비시즌 많은 인터뷰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KBL을 알리고 경기력까지 좋아졌다는 걸. 자신 있어요.

KBL MVP 출신다운 자신감입니다.

인생에 농구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최고 선수가 되겠다’는 꿈은 한 번도 변하지 않았어요. 지난 시즌 정규리그 MVP를 받았지만 아직 부족한 게 많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보완해야 할 게 훨씬 많은 선수죠. 특히나 제 아버지가 농구 대통령이십니다(웃음). 형도 KBL을 대표하는 선수죠. 부끄럽지 않은 막내가 되려면 자만할 수 없어요.

“세계 최고 선수들과 만난 월드컵, 기량 향상에 큰 도움 됐죠”

2019년 중국에서 열린 남자 농구 월드컵에 출전한 허 훈(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19년 중국에서 열린 남자 농구 월드컵에 출전한 허 훈(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본인은 “부족한 게 많다”고 하지만 2019-2020시즌 KBL 최고 선수로 우뚝 섰습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매 시즌 MVP를 받을 수 있도록 자만하지 않고 준비할 거예요. 통합우승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KBL에서 우승하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해요. 정상에 서봐야 지금보다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을 거로 믿죠. 꼭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중요한 게 있어요.

어떤?

프로 데뷔 시즌과 2년 차 땐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부상 없이 팀과 나아간 건 지난해가 처음이에요. 몸이 아주 좋았죠.

예년보다 몸이 좋았던 이유가 있습니까.

항상 온 힘을 다해서 경기를 준비한 건 변함이 없었어요. 차이가 있다면 큰 무대를 경험했다는 겁니다. 2019년 중국에서 열린 세계 남자 농구 월드컵에 출전했어요. 2018-2019시즌 마치고 한국 최고 선수들과 구슬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코트에 나선 건 아니지만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붙어봤죠.

휴식 없이 2019-2020시즌에 돌입했습니다. 지친 기색 없이 최고의 활약을 보였죠. 특별한 체력 관리 비법이 있었습니까.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특히나 타지에서 즉석식품 먹고 운동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한국 음식이 매우 그리웠죠.

그리움을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에 나서는 건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주변 상황에 신경 쓰지 않고 운동에만 집중했어요. 결정적으로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했습니다. 2019-2020시즌 지친 기색 없이 뛰었던 이유죠. 아직까진 팔팔한 나이기도 하고요(웃음).

세계 최고 선수들과 실력을 겨룬 건 월드컵이 처음이었습니다.

월드컵에서 부딪친 상대들은 대단했습니다. 체격 조건부터 달랐어요. 하나같이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었죠.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의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선수들과 실력을 겨루고 2019-2020시즌에 돌입하니 조금 수월했습니다.

허 훈은 2019년 월드컵에서 자기보다 큰 선수들을 상대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허 훈은 2019년 월드컵에서 자기보다 큰 선수들을 상대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수월했다?

한국 선수들의 체격은 월드컵에서 붙은 아르헨티나나 러시아, 나이지리아 선수보다 작은 게 사실입니다. 체격이 월등히 좋은 선수를 막다가 큰 차이가 없는 이를 수비했죠. 시야가 탁 트이고 농구가 수월해진 겁니다. 세계 대회를 경험하면서 자신감도 붙었죠.

월드컵을 경험한 허 훈은 1라운드부터 남다른 경기력을 뽐냈습니다. 9경기에서 뛰며 경기당 평균 18.2득점, 6.2어시스트를 기록했죠. 3점슛 개수(2.5개)와 성공률(51%)에선 외국인 선수 포함 전체 1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자신감이 더 붙었죠. 경기를 치를수록 농구가 아주 재밌었어요. 코트에서 생각한 대로 경기가 풀린다는 느낌이었죠(웃음).

개인적으론 최고의 한 해를 보냈지만 팀은 직전 시즌보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심한 팀이었습니다. 앨런 더햄, 바이런 멀린스 모두 코로나19를 이유로 자진 퇴출을 선택했어요. KBL 10개 구단 가운데 외국인 선수 두 명 모두 떠난 팀은 KT가 유일했습니다. 외국인 선수들이 떠나기 전까지 3연승을 기록 중이었어요. 외국인 선수들이 떠나면서 2연패로 시즌을 마쳤죠. 마무리가 참 아쉬웠어요.

“KBL, 내국인 선수만으로 리그 진행하는 건 어떤가요”

부산 KT 소닉붐 포인트 가드 허 훈(사진 오른쪽)(사진=KBL)
부산 KT 소닉붐 포인트 가드 허 훈(사진 오른쪽)(사진=KBL)

부산 KT 소닉붐은 2시즌 연속 정규리그 6위를 기록했어요. 허 훈은 통합우승을 꿈꿉니다. 팀이 한 단계 나아가려면 비시즌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 합니까.

경험이 쌓일수록 수비의 중요성을 느껴요. 많은 분이 KT의 공격적인 농구를 좋아합니다. 문제는 실점도 많다는 거예요. 저부터 한 발 더 뛰며 수비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힘쓸 겁니다. 농구는 팀 스포츠란 걸 잊지 않고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거예요. 2020-2021시즌엔 득점은 많고 실점은 적은 팀이었으면 합니다. 잘 준비해야죠(웃음).

서동철 감독께선 새 시즌 외국인 선수 찾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떤 선수와 함께하고 싶습니까.

어느 팀이든 득점력이 뛰어난 선수는 꼭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론 골밑을 듬직하게 지킬 수 있는 센터도 왔으면 해요. 제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입니다. 지난 시즌 좋은 경기력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엔 바이런 멀린스가 있어요. KBL 최장신(212cm) 센터 멀린스와 뛰는 게 재밌었고, 경기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죠.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합니다.

어떤?

KBL이 지난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규정을 1~4쿼터 한 명 출전으로 바꿨습니다. 내국인 선수 비중이 올라갔어요. 저를 포함한 많은 선수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팬들도 예년보다 뜨거운 관심을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생각해봤습니다. 한 라운드 정도 내국인 선수만으로 리그를 진행해보는 건 어떨까.

WKBL(한국여자농구연맹)은 2020-2021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WKBL은 이에 앞선 2007-2008시즌부터 2011-2012시즌까지 외국인 선수 제도를 없앤 바 있습니다. KBL도 외국인 선수 없이 리그를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겁니까.

시원시원한 덩크슛은 확 줄어들 겁니다(웃음). 하지만, 한국 농구의 매력을 살릴 기회가 될 수 있어요. 내국인 선수들은 이전보다 철저히 경기를 준비할 겁니다. 외국인 선수가 책임진 득점, 리바운드 등을 내국인 선수가 맡아야 하는 까닭이죠. 외국인 선수에게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내국인 선수들을 만날 기회이기도 합니다. KBL 출범 후 내국인 선수만으론 리그를 진행한 적이 없죠. 재밌을 것 같지 않나요.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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