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구단 조직 개편과 함께 ‘스포츠 사이언스 팀’ 신설

-기존 트레이닝 파트 역할에 첨단 스포츠 과학 접목…트레이닝 파트 외연을 넓힌다

-피지컬, 메디컬에 멘탈, 영양, 최신 테크놀로지까지 다룬다

-지옥훈련 대신 과학적, 합리적 야구 택한 롯데…명문 구단으로 가는 초석 될까

허재혁 롯데 스포츠 사이언스 팀장은 시카고 컵스에서 오랜 시간 트레이너로 일했다(사진=롯데)
허재혁 롯데 스포츠 사이언스 팀장은 시카고 컵스에서 오랜 시간 트레이너로 일했다(사진=롯데)

[엠스플뉴스]

지금 롯데 자이언츠는 프런트부터 선수단까지 구단의 모든 영역에서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구단 이름과 마스코트만 빼고 다 바꾼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재창단’ 수준의 뼈를 깎는 쇄신을 진행 중이다.

롯데 핵심 관계자는 “이제는 더 떨어질 곳이 없다. 이번이 롯데가 정말로 달라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모든 구성원이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며 “김종인 대표이사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개혁 드라이브에 더욱 힘이 실렸다”고 했다.

프런트 조직부터 메이저리그 구단과 비슷한 형태로 개편했다. 야구단 운영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베이스볼 오퍼레이션(Baseball Operation) 팀이 생겼고, 데이터 분석을 맡는 R&D(Research&Development)팀도 만들었다. 스카우트도 국내 프로와 아마야구, 국외까지 세 파트로 나눴다.

여기에 또 하나 새로운 부서가 눈에 띈다. 기존 KBO리그 구단의 트레이닝 파트에 해당하는 스포츠 사이언스(Sports Science) 팀이 새로 만들어졌다. 단순히 간판만 바꾸는 수준을 넘어, 첨단 스포츠 과학을 접목해 트레이닝 파트의 외연을 넓히려는 새로운 시도다.

‘스포츠 사이언스 팀’ 신설…선수 멘탈과 영양 공급까지 챙긴다

체력 캠프를 진행 중인 롯데(사진=롯데)
체력 캠프를 진행 중인 롯데(사진=롯데)

롯데는 스포츠 사이언스 팀 신설과 함께 허재혁 전 시카고 컵스 트레이닝 코치를 팀장으로 영입했다. 허 팀장은 1군과 2군, 잔류군 트레이닝 코치를 총괄하는 트레이닝 코디네이터 역할도 맡는다. 김대환 1군 트레이너, 김용진 잔류군 트레이너가 스포츠 사이언스 팀원으로 함께 한다.

허재혁 팀장은 미국 몬태나 주립대와 오클라호마대에서 스포츠 의학과 운동생리학을 전공하고,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체력 트레이너 인턴을 수료한 국내 최고의 트레이닝 전문가다.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 트레이너, SK 와이번스 수석 트레이너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했다.

허 팀장은 엠스플뉴스와 통화에서 컵스 시절 인연을 맺은 성민규 단장의 제안으로 롯데에 합류하게 됐다. 그동안 메이저리그 구단의 선진적인 트레이닝 시스템을 직접 경험하면서, 언젠가 국내 야구에 도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롯데와 생각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내 경험과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고 롯데에 왔다고 밝혔다.

롯데 핵심 관계자는 스포츠 사이언스 팀에 대해 “이해를 돕기 위해 기존 트레이닝 파트의 ‘확대 개편’이라 소개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커버한다”고 했다.


기존 트레이닝 파트에서 담당해온 피지컬, 메디컬은 물론 멘탈, 영양, 새로운 ‘테크놀로지’ 도입까지 크게 5개 분야가 스포츠 사이언스 팀이 다루는 영역이다. 특히 그간 KBO리그에서 트레이닝 파트와는 별개의 분야로 여겼던 멘탈 트레이닝을 하나의 울타리에 끌어들인 게 눈에 띈다.

허 팀장은 그간 KBO리그에서 멘탈 트레이닝 하면 선수의 심리상담과 멘토링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었다. 선수가 속마음을 털어놓고, 고민을 상담하고, 때론 눈물도 흘리는 상담이 주를 이뤘다. 우리는 좀 더 경기력 향상에 초점을 맞춘 멘탈 코칭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일 안타를 치는 선수는 멘탈이 무너지지 않는다. 4타수 무안타가 계속되면 그때 멘탈이 무너진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경기력을 굉장히 강조하고, 멘탈 코칭도 실제 야구장에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방향으로 진행한다.” 허 팀장의 말이다.

이를 위해 롯데는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스포츠 심리 전문가와 협력해, 롯데만의 멘탈 코칭 매뉴얼을 만드는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는 국내의 여러 전문가를 대상으로 프로젝트 계획서를 받는 단계다.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에선 영양사가 선수들과 함께 장을 보며 올바른 식단을 짜는 법, 좋은 재료를 선택하는 법을 교육한다(사진=허재혁 팀장 SNS)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에선 영양사가 선수들과 함께 장을 보며 올바른 식단을 짜는 법, 좋은 재료를 선택하는 법을 교육한다(사진=허재혁 팀장 SNS)

‘영양 공급’도 스포츠 사이언스 팀에서 중요하게 다룰 분야다. 모 구단 트레이너는 “좋은 몸을 만들려면 열심히 운동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잘 먹고, 잘 자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런데 여전히 많은 구단과 선수는 운동만 생각하지 잘 먹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거 같다”고 지적했다.

일부 구단은 아직도 선수단 식사로 라면, 짜장면 등 밀가루 음식이나 튀김 음식을 내놓는다. 운동 선수 식단으로는 최악의 메뉴다. 야식으로 매일 탄산음료와 치킨, 족발 등 배달음식을 먹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라면과 냉동식품을 먹고 살을 찌웠다는 선수도 있는 현실이다. 이를 두고 모 구단 트레이너는 “자동차에는 비싼 휘발유만 넣으면서, 정작 중요한 자기 몸에는 싸구려 연료를 채워 넣는 격”이라 했다.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 구장에 설치된 안내문. 경기 전과 이닝 중간, 경기 후에 마셔야 할 물의 양을 알려준다(사진=허재혁 팀장 SNS)
시카고 컵스 마이너리그 구장에 설치된 안내문. 경기 전과 이닝 중간, 경기 후에 마셔야 할 물의 양을 알려준다(사진=허재혁 팀장 SNS)

허 팀장은스포츠 사이언스 팀에선 먼저 간단하고 재미있는 교육을 통해 선수들의 의식 변화부터 이끌 것이라 했다. 무조건 건강에 좋은 식단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식이 아니라, 왜 올바른 영양 공급과 식단 조절이 필요한지 이해부터 돕는다는 계획이다. 특히 신인 선수부터 5년차 이하까지 저연차 선수들을 중점적으로 교육할 예정이다.

MLB 구단에선 영양사가 마이너리그 선수들과 함께 마트에 방문해, 건강한 식단을 위한 재료를 구입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경기 전후와 이닝 중간에 필요한 수분 섭취량까지 철저하게 교육한다. 허 팀장은 “선수들의 의식을 점진적으로 개선하고, 경기력 향상과 신체적 회복에 중점을 둔 식단을 제공해 최상의 영양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비전 트레이닝, 신경 트레이닝 도입…몸 만들듯 ‘눈’도 만든다

한 미국 선수가 비전 트레이닝을 수행하는 장면(사진=MEYEND Neurocognitive Training)
한 미국 선수가 비전 트레이닝을 수행하는 장면(사진=MEYEND Neurocognitive Training)

롯데 스포츠 사이언스 팀은 선수 경기력 향상을 돕는 최신 테크놀로지 도입에도 앞장선다. 허재혁 팀장은 이미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선수 기량 발전을 위해 다양한 최신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시각적 기능을 향상시키는 비전 트레이닝(Vision Training), 타자들의 투구 인식 능력 향상을 돕는 신경 트레이닝(Neuro Training) 등 다양한 훈련을 진행한다고 전했다.

롯데는 이 가운데 ‘비전 트레이닝’을 국내 구단 최초로 도입해, 내년 시즌 스프링캠프부터 진행할 예정이다. 흔히 ‘트레이닝’ 하면 같은 동작을 계속 반복하며 몸에 익히는 걸 떠올리지만, 비전 트레이닝은 몸이 아닌 ‘눈’의 감각과 신경을 단련한다는 게 차이점이다.

롯데 관계자는아무리 신체적인 조건이나 기술이 좋아도 일반 시력이나 입체 시력 등 시각적 기능이 떨어지면 선수로서 성공할 확률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스윙은 몸으로 하지만, 날아오는 공은 눈으로 본다. 근력이 약한 선수가 웨이트를 통해 근력을 키우듯, 훈련을 통해 선수의 시각적 기능을 향상시키는 게 비전 트레이닝의 목적이라 설명했다.

롯데는 비전 트레이닝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 어떤 전문가가 비전 트레이닝을 진행할지에 대해선 “영업비밀”을 이유로 함구했다. 다만 앞서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했던 훈련법을 통해 롯데가 하려는 시도가 어떤 형태일지 가늠해볼 수 있다.

시각을 교란하는 안경을 쓰고 하는 타격 훈련부터 빠르게 움직이는 공의 색깔과 숫자를 맞추는 훈련, 링을 던져서 특정한 색깔의 공이 달려 있는 쪽으로 링을 받아내는 훈련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롯데 관계자는 “비전 트레이닝은 선수의 기량 향상은 물론 선수의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 선수들이 신경 트레이닝을 진행하는 장면(사진=허재혁 팀장 SNS)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 선수들이 신경 트레이닝을 진행하는 장면(사진=허재혁 팀장 SNS)

한편 신경 트레이닝은 기존 동체시력 트레이닝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훈련법이다. 단순히 빠른 공을 보는 능력인 동체시력을 넘어,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별하고 구종과 궤적을 파악하는 ‘투구 인식 능력’을 발전시키는 게 신경 트레이닝의 목적이다. 모니터 화면에서 날아오는 공 가운데 볼을 구별해 골라내거나, 공이 특정한 색깔로 바뀌는 순간 버튼을 눌러 점수를 따는 등 마치 컴퓨터 게임 같은 방식으로 훈련을 진행한다.

모 구단 관계자는 “최근 신경과학이 발전하면서, 투구 인식 능력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흐름”이라고 전했다.

아무리 신체조건이 좋고 스윙 스피드가 빨라도 투구 인식 능력이 떨어지면 타자로 성공할 가능성이 떨어진다. 이에 최근 많은 메이저리그 구단은 이런 능력이 뛰어난 선수를 스카우트하고, 신경 트레이닝을 통해 유망주들의 능력을 향상하는 데 신경쓰고 있다.

롯데는 비전 트레이닝과 신경 트레이닝 외에도 앞으로 새로운 기술과 훈련 방법이 등장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검토해 도입할 예정이다. 허 팀장은 “그간 국내 여러 구단에 비전 트레이닝의 중요성을 설명했지만, 어디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과학적 훈련을 시도하는 건 롯데가 처음”이라 힘줘 말했다.

지옥훈련 대신 ML식 ‘체력캠프’…선진 구단으로 변신하는 롯데

체력 캠프 훈련을 진행하는 롯데 선수단(사진=롯데)
체력 캠프 훈련을 진행하는 롯데 선수단(사진=롯데)

이번 가을 새롭게 도입한 ‘체력캠프’도 스포츠 사이언스 팀의 작품이다. 롯데는 국외에서 기술훈련 위주로 진행하는 기존 방식의 마무리 캠프 대신, 체력 강화와 컨디셔닝에 중점을 둔 ‘체력캠프’를 도입했다. 체력캠프는 10월 11일부터 상동 2군구장에서 시작해 11월까지 진행한다.

허재혁 팀장은 “한 시즌을 치르고 난 선수들의 몸은 마치 바람 빠진 타이어와 같다. 이런 상태에서 또 훈련을 하는 건 타이어 바람을 완전히 빠지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오프시즌 기간 충분히 회복할 시간을 갖고, 몸의 밸런스를 되찾아야 다음 시즌을 건강하게 치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롯데가 도입한 체력캠프는 테오 엡스타인 사장이 2012년 시카고 컵스에 부임한 뒤 도입해 큰 성공을 거둔 프로그램이다. 잘 짜인 선수별 맞춤 식단으로 영양을 공급하고, 오전 짧은 시간 강도 높은 스트레칭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게 핵심이다. 크리스 브라이언트, 하비에르 바에즈 등 컵스가 자랑하는 젊은 스타들이 체력 캠프를 통해 균형 잡힌 몸을 만들었고, 빅리거로 성장했다.

허 팀장은 지난 시즌 경기 출전 수에 따라 선수단을 세 그룹으로 나눠 진행할 것이다. 이닝수가 많았던 투수는 더 많은 휴식을 취하고, 훈련을 늦게 시작하는 식이다. 반면 출전 경기가 적었던 선수는 그보다 많은 훈련을 하게 된다이라 전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비시즌 기간을 이용해 근육량을 늘리고 몸을 만들어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 그런데 우리 리그 같은 경우 11월까지 마무리캠프를 하다 보니, 실질적으로 선수들이 몸을 만들 수 있는 기간은 12월과 1월 두 달밖에 없다. 체력 트레이닝을 하기엔 시간적으로 부족한 게 사실이다. 10월부터 체력캠프를 시작해 11월까지 확실하게 진행하고, 비활동 기간에도 선수들이 체력캠프의 연장선에서 개인 훈련을 이어가도록 하면 효과가 배가될 것이다.”

무의미한 기술훈련의 반복보단 체력과 신체적 능력의 향상이 더 큰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게 허 팀장의 지론이다. 부상을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허 팀장은 “컵스 구단 내부에선 체력캠프를 통해 굉장히 큰 효과를 냈다는 평가가 많다. 롯데 역시 체력캠프가 자리 잡으면 어린 선수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전력 강화 효과도 볼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체력캠프를 통해 내년 시즌을 위한 몸 만들기에 한창인 롯데 선수단(사진=롯데)
체력캠프를 통해 내년 시즌을 위한 몸 만들기에 한창인 롯데 선수단(사진=롯데)

흔히 팀 성적이 떨어졌을 때 꺼내 들 수 있는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강훈련’이다. 실제 롯데가 최하위로 시즌을 마치자 일각에선 ‘지옥훈련’과 스파르타식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롯데는 구시대 야구 대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길을 택했다. 롯데는 체력캠프를 통해 선수들의 몸을 살피고, 균형 잡힌 영양 공급과 멘탈 관리로 경기력을 끌어올릴 참이다. 또 최신 기술을 통해 선수의 시각적 ‘감각’을 풍부하게 만들려는 준비도 하는 중이다. 가장 시대에 뒤떨어진 구단에서 어느새 KBO리그를 선도하는 구단으로 변신한 롯데다.

허 팀장은 롯데는 구단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지원하는 분위기라 의욕이 생긴다 피지컬은 물론 멘탈과 영양, 휴식, 첨단 훈련법의 조화를 통해 트레이닝 분야에서 롯데만의 프로세스를 만들고 싶다. 롯데가 명문 구단으로 가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다짐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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