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진출 마지막 승부수 던진 양현종, 마이너리그도 감수하며 도전 의지

-1998년 빅리그 진출 도전한 이상훈 해설위원…이 위원 계기로 한미 포스팅 시스템 도입

-정해진 것도, 돌아올 곳도 없었지만 모든 걸 다 걸고 도전했다

-“메이저 보장 계약 아니면 어떤가. 마이너리그 경험에서도 많은 걸 얻을 수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의 이상훈(사진 왼쪽)과 미국 진출을 바라는 양현종(사진=엠스플뉴스)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의 이상훈(사진 왼쪽)과 미국 진출을 바라는 양현종(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양현종이 오랜 꿈인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협상 데드라인을 30일까지 연장하고, 계약조건도 스플릿 계약을 제외한 모든 협상 조건에 문을 열었다.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는 상황까지 감수할 만큼 강한 미국 진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양현종보다 훨씬 오래전, 모든 걸 다 걸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투수가 있었다. 1990년대 레전드 좌완투수로 활약한 이상훈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다. 이 위원은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의 개척자다. 원래는 일본프로야구(NPB)와 MLB 간에 시행하던 제도가 1998년 이 위원의 미국 진출 과정에서 KBO에도 도입됐다.

이상훈 위원은 “당시만 해도 박찬호 등 아마추어 선수의 미국 진출 사례는 있었지만 프로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사례는 없었다. 한국야구와 미국 사이에 규약이 없는 상태였다”고 밝혔다.

원래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이 위원을 2년간 임대료 2백50만 달러, 연봉 1백30만 달러에 영입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계약하러 미국에 가니 다른 구단들이 태클을 걸었다. ‘보스턴이 뭔데 한국 선수를 마음대로 영입하느냐’고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입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 위원은 여러 구단 스카우트들 앞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시즌 끝난 뒤 제대로 몸도 못 만든 상태에서, 일주일 만에 급하게 준비해 나선지라 제대로 공을 던질 수 없었다. 포스팅 결과 응찰한 구단은 원래 이 위원을 영입하려던 보스턴이었다.

그런데 보스턴이 새로 제시한 금액은 애초 제안했던 금액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일련의 소동이 몸값을 후려칠 목적으로 설계한 일이 아니었나 의심이 들 정도로 황당한 상황이었다. 이 위원은 조건과 관계없이 미국에 가길 원했지만, LG 구단은 그 조건에는 보낼 수 없다고 맞섰다.

결국 LG 직원들과 트레이너, 투수코치가 다 한국으로 철수하고 이 위원만 미국에 남았다. 이 위원은 “다른 팀에서 연락이 오길 기다리며 20일 정도 혼자 지냈다. 혼자 공원에서 벽에 공을 던지고, 혼자 러닝하면서 몸을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영입 제안은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엔 이상훈의 도전을 지지했던 여론도 시즌 개막이 다가올수록 부정적으로 변했다. 결국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스로 방향을 틀었고, 일사천리로 입단 계약이 진행됐다. 이 위원은 “미국에서 혼자 훈련하느라 제대로 몸을 만들지 못했고, 시차 적응 문제 등이 겹쳐 일본에서 첫 시즌엔 애를 먹었다”고 돌아봤다.

미국 진출을 시도하기 바로 전 시즌 이 위원이 LG에서 받은 연봉은 1억 8백만 원. 국내에 있는 집과 생활을 다 정리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말 그대로 모든 걸 다 건 도전이었다. 실패해도 돌아올 곳이 마땅치 않았다. 요즘처럼 국외 리그에서 돌아오면 수십억대 계약이 기다리는 시대가 아니었다. 배수의 진을 치고 맨땅에 헤딩하듯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이 위원의 도전 이후 여러 프로 선수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미국야구에 진출했다. 그 중에선 류현진처럼 큰 성공을 거둔 선수도 나왔다.

‘도전자’ 이상훈 위원 “새로운 무대 도전, 그 자체로 큰 의미…마이너 경험에서도 많은 것 얻을 수 있다”

이상훈 위원은 1998년 당시엔 미국 진출 대신 일본야구로 방향을 돌렸다. 이 위원의 미국 진출이 성사된 건 2년 뒤였다.
이상훈 위원은 1998년 당시엔 미국 진출 대신 일본야구로 방향을 돌렸다. 이 위원의 미국 진출이 성사된 건 2년 뒤였다.

이상훈 위원은 새로운 경험과 도전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에 간다면 반드시 메이저리그에서 뛰어야 한다, 10승이나 30세이브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둬야 한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 위원은 “생각해 보면 프로야구 선수 중에 미국야구 진출에 성공한 선수가 몇이나 되나. 해마다 한두 명 정도로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만큼 새로운 무대에 도전해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고 야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후배들의 도전을 격려했다.

이 위원은 “도전하다가 설사 마이너리그로 내려가면 어떤가”라고 반문했다. “마이너리그에서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메이저리그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여러 팀을 옮겨 다니는 경험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걸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도전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계약 조건이 메이저 보장 계약인지 스플릿 계약인지는 덜 중요한 문제일지 모른다.

“코치도 한 팀에만 계속 머문 코치와 여러 팀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코치는 보는 시야가 다르다. 물론 한 팀에서 프랜차이즈로 계속 머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보는 시야를 넓히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전부를 걸고 도전했던 사나이, 이 위원의 진심 어린 조언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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