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을 바라보는 어린이 팬(이미지=Bing AI)
야구장을 바라보는 어린이 팬(이미지=Bing AI)

 

[스포츠춘추]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지난해 8월,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가 한국의 합계출생률을 듣고 보인 반응이 큰 화제가 됐다. 인종, 성별, 계급 문제 전문가인 윌리엄스 교수는 EBS 다큐멘터리 제작진으로부터 2022년 한국의 합계출생률이 0.78명이란 사실을 전해 듣고는 머리를 움켜쥐며 “그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기함할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2023년 3분기 한국의 합계출생률은 0.7명으로 더 줄었다. 올해는 0.6명대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전 세계 꼴찌인 것은 물론, OECD 가입국 가운데 유일한 0명대 합계출생률이다. OECD 회원국 평균은 1.58명이다. 인구 1억 2,200만 명인 일본의 출생률은 1.26명이다. 

한국 인구는 2019년 11월을 기점으로 계속 줄고 있다. 2014년 700만 명에 달했던 유치원·초중고 학생 수는 지난해 4월 기준 578만 명으로 100만 명 이상 줄었다. 2년 새 문을 닫은 유치원만 300곳이 넘는다. 전문가들은 이 추세가 계속되면 앞으로 10년 뒤 서울 초중고생이 반 토막이 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정도면 인구 감소를 넘어 ‘인구 소멸’이다. ‘망했다’는 반응은 결코 유난이나 호들갑이 아니다.

지난해 큰 화제가 됐던 조앤 윌리엄스 교수의 반응(사진=EBS 화면)
지난해 큰 화제가 됐던 조앤 윌리엄스 교수의 반응(사진=EBS 화면)

 

초교 야구부는 통폐합 중, 다음엔 고교-대학, 그다음은 프로야구 차례다

인구 소멸 현상은 야구계도 예외가 아니다. 누구보다 리틀야구, 초등학교 야구 지도자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한 경기 지역 리틀야구팀 감독은 “갈수록 선수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수도권은 나은 편이지만, 지방팀 중에는 선수 없어 팀을 해체하거나 통폐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했다. 지방 A 구단 스카우트는 “우리 지역에선 3개 초등학교 야구부원을 다 합해도 30명이 되지 않는다. 3학년부터 5학년까지 선수가 하나도 없어서, 6학년이 졸업하면 폐부 위기인 야구부도 있다”고 전했다. 

유승안 한국리틀야구연맹 회장은 “해마다 눈에 띄게 선수가 줄어들고 있다. 최근 3년간 등록선수 추이를 보면 팀에 따라 부원 5%가 줄어든 팀도 있고 10%가 사라진 팀도 있다. 아예 와해가 되는 팀도 있어서 걱정”이라 했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 지난 연말엔 세계리틀연맹 차원에서 이 문제로 회의를 열기도 했다. 

서울구단 스카우트는 “당장은 초등학교의 문제지만 몇 년 뒤에는 중학교의 일이 될 것이다. 그 이후에는 고교, 대학, 프로로 이어질 것”이라며 “마치 기후위기가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듯, 모든 야구인이 자기의 일로 실감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 “이 위기는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찾아올 것이다.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당장은 리틀 지도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문제지만, 10년 뒤에는 모든 야구인의 문제가 될 거다.”

차정환 대구 경상중학교 감독은 “선수 스카우트를 위해 지역 초등학교 야구부원 수를 세어보는데, 머릿속이 하얘진다”고 했다. “아무리 살펴봐도 신입생으로 받을 선수가 11명, 12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중학교 3학년 부원이 16명인데 2학년은 14명이다. 갈수록 수가 준다는 얘기다. 앞으로 3년만 더 지나면, 중학교 부원 수가 20명대로 줄어드는 때가 올 수도 있다.”

인구가 소멸하는 미래, 야구는 노인들의 스포츠가 된다? (이미지=Bing AI)
인구가 소멸하는 미래, 야구는 노인들의 스포츠가 된다? (이미지=Bing AI)

어쩌면 인구 빙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녹는 중이었는데, ‘인기스포츠’인 야구만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알아차린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 여자농구, 여자배구의 현재는 앞으로 한국야구에 다가올 미래를 보여준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여고 농구부 19곳 가운데 5팀이 선수 부족(5명 미만)으로 주말리그에 참가하지 못했다. 참가한 14팀 중에 7곳은 선수가 딱 5명뿐이었다. 주말리그 38경기 중 9경기는 선수 4명으로 경기를 뛰거나, 고의 파울로 경기를 조기에 끝낸 ‘비정상적인 경기’였다. 심지어 한 농구부는 십자인대 수술로 재활 중인 선수를 코트 구석에 세워놓고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여자배구 역시 마찬가지. ‘한국일보’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여자고교 배구팀은 18곳, 선수는 204명에 불과했다. 전국체육대회에 참가한 여자 고교배구팀 14곳 중 정상 엔트리 기준인 12명을 충족한 팀은 5곳에 불과했다. 2020년 한 대회는 3팀만 참가한 사례도 있었다. 지방 팀 중에는 최소 인원인 6명으로 운영하는 팀도 있다. 선수가 없어서 상대 스파이크에 블로킹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비정상’ 경기도 종종 나온다. 

여자(농구, 배구)는 야구의 미래다. 앞으로 몇 년 뒤엔 선수 9명이 없어서 대회 참가를 포기하거나, 아예 야구부가 사라지는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지방 B 구단 스카우트는 “예전엔 야구하려는 아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부원을 골라서 받는 팀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목표 인원 채우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면서 “최근 고교, 대학 야구부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추세인데 나중에는 줄도산할 가능성이 높다. 부실 학교나 부원이 적은 학교부터 순차적으로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고교, 대학 야구부의 와해는 프로야구 선수 수급의 문제로 이어진다. 서울구단 스카우트는 “10개 구단이 11라운드까지 선수를 뽑는 지금의 체제가 과연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KBO리그가 지난해 800만 관중을 회복해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지금의 인구 소멸이 계속되면 언젠가 야구장에서 뛸 선수도 야구를 볼 관중도 없는 시대가 올 지 모른다. 뒤늦게 “한국야구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고 외쳐봐야 그때는 너무 늦다.

지금의 인구 소멸이 가속화하면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이미지=Bing AI)
지금의 인구 소멸이 가속화하면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이미지=Bing AI)

 

주말리그 반대, 최저학력제 폐지? 한가한 소리들 하고 있네

물론 인구 소멸 현상은 야구계 차원에서 어찌할 수 없는 전 지구적 문제다. 지방 A 구단 스카우트는 “이번에 이정후가 아주 큰 일을 한 덕분에, 당분간은 야구선수를 꿈꾸는 아이들과 자녀를 야구 시키려는 학부모가 많아지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아무리 슈퍼히어로 이정후라도 사람들이 자녀를 더 많이 낳게 하거나 출생률을 증가시킬 순 없다. 이는 국가와 정치권, 사회가 해결할 문제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앨런 말라흐 럿거스대 교수는 저서 ‘축소되는 세계’에서 “한번 인구가 감소한 나라는 다시 그 수준을 회복하기 어렵다”면서 “인구도 경제도 성장은 없고 축소되는 시대, 축소되는 국가나 도시를 성장 실패의 상징이 아니라 합리적인 미래 경로라는 생각부터 받아들이며 축소를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구 감소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하고, 그 전제 위에서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리틀야구연맹 국제이사를 지낸 이알참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육성 이사는 “지금 우리가 야구만 갖고 논하는 건 어찌 보면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면서 “WBC나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가 야구계 앞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아직은 야구계 전문가들도 인구 소멸과 관련해 뾰족한 대책이나 대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인구 소멸 시대에 현재와 같은 엘리트 체육 시스템을 계속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한 아마야구 관계자는 “운동선수는 다른 길을 차단한 채 운동에만 올인하고, 일반 학생은 오로지 입시에만 올인하는 지금의 체제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면서 “강훈련을 시키고 싶어도 훈련시킬 선수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최저학력제 폐지나 주말리그 반대를 외치는 일부 지도자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울구단 스카우트는 “야구를 접할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어린이, 학생들이 야구를 접하는 데 가장 큰 진입 장벽 중 하나는 ‘비용’ 문제”라고 지적한 이 스카우트는 “한 아이가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대학까지 야구를 하려면 억대의 비용이 든다. 기본 회비 외에도 대회 출전비, 사설 레슨비까지 매달 수백만 원을 써야 야구를 시킬 수 있다. 야구가 점점 돈 많고 여유 있는 집 아이들만 즐기는 운동이 되고 있다”고 했다. 

지방 B 구단의 스카우트는 “최근엔 한 자녀 가정이 대부분이다. 학부모 중에는 일단 야구를 시키면 학창시절 내내 야구에만 ‘올인’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주저하는 분도 많다”면서 “수많은 선수 중에 프로에 가는 선수나 성공하는 선수는 극소수이지 않나. 하나밖에 없는 자녀를 실패자로 만들고 싶지 않다고 하는 분이 많더라”고 전했다. 

결국 더 많은 학생이 야구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해법일 수 있다. 엘리트 부원만이 아닌 모든 학생이 적은 비용으로 야구할 수 있게 하고, 이 가운데 재능이 뛰어난 학생이 전문적인 선수의 길을 걷는 선진국 시스템이 바람직하다. 부원 모집에 어려움을 겪던 다른 종목 팀들이 공공 클럽으로 전환해 활로를 찾은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야구선수로 실패해도 얼마든지 제2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학업을 병행하고 최저학력을 갖추게 하는 건 기본이다. 운동선수의 운동권이 아니라 일반 학생의 ‘운동권’을 보장하고, 일본처럼 모든 학생이 최소 1종목을 배우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최근 빠르게 증가하는 다문화 가정에서도 선수가 나올 수 있다. 유승안 리틀야구연맹 회장은 “연맹 차원에서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게 야구를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방 A 구단 스카우트는 “나중에 꼭 야구선수가 될 필요는 없다. 어릴 적 야구를 접한 뒤 그 애정과 관심을 평생 간직한 채 야구팬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또 그 사람들이 부모가 되면 자녀에게 야구를 시킬 수도 있는 일”이라며 “특별활동이든 주말 프로그램이든 학생들이 야구를 접할 기회를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게 야구가 사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이알참 이사는 “반드시 야구가 아니라도 티볼이나 소프트볼 등의 종목을 통해 야구로 이끄는 길도 있다”고 했다. 이 이사는 “가령 소프트볼의 경우 레크리에이션 차원에서 학생들이 즐기기 딱 좋은 종목이다. 야구협회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한다.MLB가 피치스마트, 인재 육성 파이프라인(Prospect Development Pipeline)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처럼 KBO에서도 관심을 갖고 준비하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KBO도 인구 소멸 시대에 대비한 저변 확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KBO 관계자는 “티볼을 학교 방과 후 수업으로 채택하기 위해 노력 중이고, 겨울에는 넥스트 레벨 트레이닝 캠프를 열어 유소년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엔 직원들을 미국으로 보내 야구 인구 감소와 저변 확대 관련 MLB의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했다. KBO 관계자는 “작년 발표한 ‘레벨업 프로젝트’ 중에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저변 확대 프로그램이 있다”면서 연구 보완을 거쳐 순차적으로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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