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포수 유강남(사진 왼쪽부터), SSG 포수 이지영(사진=롯데, SSG)

[스포츠춘추=인천]

야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2024년을 맞이한 KBO리그가 3월 23일부로 개막과 함께 정규시즌 144경기 대장정에 돌입한 것. 이 가운데 올 시즌 시범경기를 거쳐 새롭게 도입된 ‘ABS(자동 투구판정 시스템)’도 지난 이틀 동안 데뷔전을 치르면서 야구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른바 ‘로봇 심판’의 등장으로 심판의 볼·스트라이크 판정은 이제 ABS 트래킹 결과로 대체된다. KBO(한국야구위원회)가 공정성 강화를 위해 발 빠른 움직임으로 적극적인 조치에 나선 결과다. KBO는 2020년부터 지난 4년 동안 퓨처스리그(2군) ABS 시범 운영을 거쳐 기술적 안정성을 제고한 바 있다. 그 뒤 구단 운영팀장 회의, 감독 간담회, 자문위원회와 실행위원회, 이사회 의결 등을 거쳐 올 시즌 도입을 결정했다.

오랜 준비를 거친 만큼 성과도 제법 도드라졌다. 개막에 앞서 진행된 시범경기에선 초반 19경기 99.9%의 투구 추적 성공률을 보였을 정도다. 개막 후 지난 두 경기 또한 큰 문제 없이 진행된 바 있다. 팬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호평 일색이다. ABS 도입으로 더 이상 판정에 있어 선수와 심판 사이 갈등은 보지 않아도 될 것이란 기대 덕분이다.

선수들의 경우 투수, 타자를 가리지 않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들은 올해 시범경기 때부터 ABS를 처음 접했다. 가능한 한 빨리 현재 판정 시스템에 적응하는 게 급선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가장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포지션은 투·타에 걸쳐 밀접한 관계에 있는 포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포수 쪽에서) 앞으로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질 겁니다.”

지난 24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만난 롯데 포수 유강남의 말이다.


‘프레이밍 기술자’ 유강남이 바라보는 ABS 시대

롯데 주전 포수 유강남(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KBO리그를 대표하는 포수 가운데 한 명인 유강남은 2015년부터 LG 트윈스의 주전 포수로 성장해 2022년까지 잠실의 안방을 지킨 이다. 해당 기간 1,014경기에 출전해 103홈런 446타점 타율 0.269, 출루율 0.331, 장타율 0.420을 기록했고, 잠실 구장에서 보여준 장타 능력과 안정적인 수비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여기에 더해 리그 내 최고 ‘프레이밍 기술자’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 뒤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유강남은 4년 총액 80억 원 조건으로 롯데에 합류했고, 올해로 거인군단 안방마님 2년 차를 맞이했다. 이적 후 첫 시즌인 2023년엔 121경기에 출전해 10홈런 55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726 기록을 남겼다. 그해 팀 내 홈런 2위, 타점 3위에 해당하고, 300타석 이상 소화한 팀 내 타자 10명 중에선 OPS 4위다.

유강남의 강점은 수비에서도 빛났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포키-스탯티즈’에 따르면 유강남의 지난해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는 4.09다. 이는 두산 베어스 양의지(6.10)에 이은 리그 포수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그 어느 때보다 압도적인 성과를 보인 프레이밍 관련 지표가 반영된 것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유강남은 올 시즌부터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ABS 도입으로 프레이밍의 존재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 선수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이에 24일 인천에서 스포츠춘추와 만난 유강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레이밍은 이제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포수를 평가하는 기준도 많이 변할 것 같아요. 베테랑부터 아마추어 어린 선수들까지 모두 이젠 프레이밍이 아닌 송구나 블로킹 연습에 더 치중할 이유가 생긴거죠.”

올겨울 체중감량 및 각종 훈련으로 구슬땀을 흘린 포수 유강남(사진=롯데)

지난 겨울 유강남 역시 이에 대비한 훈련들을 진행했다. 더 기민한 움직임을 목표로 체중 감량에도 큰 힘을 쏟았고, 특히 블로킹 차원에서 포크볼을 많이 던지는 롯데 투수진을 고려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유강남은 이를 두고 “경기 중 포수가 막을 수 없는 공도 분명히 존재한다”면서도 “하지만 포수의 역할은 최대한 막을 수 있는 공들을 실수하지 않고 잡아내는 것이다. 개막 전까지 집중적으로 준비한 것도 그런 부분”이라고 했다.

겨우내 짧은 적응 기간이었지만, 경기에 임하는 포수들의 디테일적인 측면 역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송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으로 점쳐진다. 대표적인 예로 포수들은 과거 프레이밍 차원에서 스트라이크존 하단의 공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쪽 무릎을 굽히고 몸 상체를 앞에 두는 모습들을 종종 보이곤 했다. 더 좋은 스트라이크 콜을 받기 위함이지만, 상대 팀의 도루 시도 혹은 포구 실수가 나오는 등 일종의 ‘양날의 검’이 될 때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이는 ABS가 도입된 후론 더 이상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유강남은 이와 관련해 고갤 끄덕이면서 “아무래도 떨어지는 변화구는 그렇게 받아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도루 저지 대응이 취약했던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또 유강남은 “지금은 그런 자세들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포수 입장에선 주자를 좀 더 신경 쓰거나, 볼 배합·블로킹·마운드 위 투수 등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ABS의 등장으로 유강남에게 다소 박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에 유강남은 사라지고 있는 프레이밍의 가치에 대해 담담한 목소릴 전했다. 선수 입장에선 섭섭할 법도 한데, 오히려 “자극을 느낀다”고 말하는 유강남이다.

“제가 그동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프레이밍 덕분이잖아요. 지금 저를 걱정하는 시선들은 오히려 저의 좋았던 부분을 인정해 주신 것 아닐까요. 프레이밍 이미지는 제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다른 장점들을 팬들께 보여드릴 자신이 있어요.” 유강남의 포부다.


베테랑 이지영 “구장마다 판정이 다른 부분도 있다. 하지만…”

SSG 베테랑 포수 이지영(사진=SSG)

한편 유강남은 ABS와 관련된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바로 “구장마다 설정된 스트라이크존이 다르다”는 점이다. 23일 개막전 후 더그아웃에서 만난 SSG 베테랑 포수 이지영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이날 롯데전에 선발 출전한 이지영은 SSG 에이스 김광현과 호흡을 맞춰 SSG의 홈 개막전 승리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인천 SSG 랜더스필드뿐만 아니라, 시범경기에선 포수 마스크를 쓰고 사직 야구장, 수원 KT 위즈파크 등을 경험했다.

“각 구장마다 다른 느낌이 확실히 있습니다. 다른 구장에서 스트라이크로 판정된 곳이 인천에선 반대로 볼이 되는 상황도 몇 차례 있었어요. 포수는 이제 그런 부분도 놓치지 말아야 할 듯싶습니다.” 이지영의 설명이다.

현장에서 만난 선수들 대부분도 구장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24일 선발로 포수 마스크를 쓴 SSG 신예 조형우도 마찬가지다. 조형우는 “혹시나 했는데 신기했다”면서 “또 그렇다고 엄청난 차이는 아니다. 포수들이 경기 상황에 맞게 투수들을 도울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SSG 신예 포수 조형우(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올해로 프로 데뷔 17년 차인 이지영과 14년 차 유강남도 동의하는 게 이 지점이다. 특히 이지영은 “어느 정도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고, 선수들이 맞춰서 적응하는 게 당장은 최선”이라면서 “포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구장마다 존이 다르면 마운드 위 투수들과 소통해 최적의 투구 내용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지영이 바라보는 ABS 시대는 어떨까. 이에 이지영은 “타자 또한 생각했던 판정이 아닐 때 당혹스럽겠지만, 마운드 위 투수들도 그럴 때마다 감정이 크게 요동친다. 경기 중 흔들릴 수 있는 상황도 앞으론 많이 나올 것이다. 그걸 잡아주는 게 포수가 해야 할 일”이라고 힘줘 말했다.

“(ABS와 관련해) 크게 걱정하지 않아요. 제가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팀 동료 투수들의 공을 믿고 있습니다. 팀에 합류한 건 최근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 투수들이 ABS에 적응하는 것도 긍정적인 부분이고요. 모두과 함께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어본 이지영의 현명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日 국대 포수 출신 스즈키 코치 “ABS, 정확성 측면에서 무척 좋다”

SSG 스즈키 후미히로 1군 배터리코치(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SSG 스즈키 후미히로 1군 배터리코치(사진=스포츠춘추 김종원 기자)

ABS의 경우 올해 도입된 만큼 KBO리그 구성원 대다수가 처음으로 경험 중이다. 그중 앞서 2군 경기들을 통해 과도기를 접한 이들도 있다. SSG의 스즈키 후미히로 1군 배터리코치가 그렇다.

지난겨울 코치진 쇄신 과정에서 SSG로 영입된 스즈키 코치는 현역 시절 일본 야구대표팀 포수로 활약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NPB 주니치 드래곤스, 오릭스 버팔로스 소속 포수로 뛰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일본 야구국가대표로 출전한 것. 은퇴 후론 2013년부터 지난해 직전 시즌까지 오릭스, KT에서 지난 11년간 배터리 코치 및 육성 코치를 역임했다. 특히 KT 2군 구장이 있는 익산에 설치된 ABS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본 이다.

SSG 관계자는 “스즈키 코치는 이숭용 감독님과 KT에서 인연이 있었다”면서 “감독님이 과거 KT 단장 및 육성총괄 시절 스즈키 코치의 역량을 높게 평가하셨고, 때마침 기회가 닿아 올 시즌부터 함께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SSG 내부에선 스즈키 코치를 통해 ‘유망주 육성 및 현재 1군 포수 운영’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것으로 기대 중이다.

NPB와 KBO를 두루 거친 스즈키 코치의 눈엔 ABS는 어떤 모습일까. 25일 인천에서 열린 롯데전을 앞두고 홈팀 더그아웃에서 만나 스즈키 코치는 “사람이 보는 스트라이크존에선 ‘반대 투구’ 상황이라든지 한계가 어느 정도 있었다”“그런데, ABS는 그런 상황마저도 극복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정확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캠프 중 송구 관련 지도 중인 스즈키 SSG 1군 배터리코치(사진=SSG)

무엇보다, 선수와 심판 사이 불신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주목한 스즈키 코치다. 그간 야구장 풍경에선 스트라이크존에 대한 불만으로 파열음이 때때로 발생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스즈키 코치는 “(판정 불만은) 미국, 일본 야구서도 마찬가지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러한 모습들이 점차 사라지는 게 야구의 미래에도 좋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ABS는 향후 미국과 일본에 도입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스즈키 코치는 환한 미소와 함께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나중에 일본에 복귀했을 때 내가 가진 KBO리그에서의 ABS 경험, 또 그와 관련된 포수 노하우 등을 큰 도움이 될 듯싶다. 이곳에서 ‘선진야구’를 먼저 경험한 게 내게도 큰 경험”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제는 포수들이 기본기로 경쟁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프레이밍도 없어졌고, 또 어깨가 강하다고 송구가 좋은 게 아니에요. 우리 팀 선수들에게도 기본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도록 늘 강조하고 있습니다.” 스즈키 코치의 당부다.

한편 ABS 정식 도입은 메이저리그(MLB), 일본프로야구(NPB)보다 KBO리그가 먼저다. 최근 성황리에 마친 한국 최초 MLB 개막전 ‘쿠팡플레이와 함께하는 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 2024’에서도 내한한 MLB 사무국 관계자들이 KBO리그의 ABS를 주목했다. 특히 이때 허구연 KBO 총재와 회동을 가진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 역시 ABS와 관련해 깊은 관심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전 세계 프로야구 관계자를 비롯해 선수, 팬들 등이 KBO리그를 주목하고 있다. KBO가 ‘선구자’로 거듭날 수 있을까. 향후 ABS의 연착륙 여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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