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선발 독수리 5형제(사진=한화)
한화 이글스 선발 독수리 5형제(사진=한화)

 

[스포츠춘추]

어, 맞아맞아. 놀랍지만 그건 사실이야.

류현진은 3월 29일 현재 한화 이글스 선발진에서 유일하게 승리가 없는 투수이다. 또한, 유일하게 패전을 기록한 투수이며 5회를 못 채우고 내려간 투수도 류현진 하나뿐이다. 만우절 농담이나 ‘야알못’ 같은 소리지만, 엄연히 사실이다.

한화는 28일 인천 SSG 랜더스전 승리로 4연승에 성공했다. 개막전에서 류현진이 패전을 기록했지만 이후 펠릭스 페냐를 시작으로 김민우, 리카르도 산체스, 문동주가 차례로 승리를 거두며 4경기 연속 선발승 행진이다. 

SSG 랜더스 상대로 오래된 불명예 기록도 깨뜨렸다. 한화가 SSG(전신 SK 시절 포함)와 3연전을 싹쓸이한 건 2015년 4월 24~26일 대전 3연전 이후 3,259일 만의 일이다. 또 인천 원정에서 3연전을 쓸어담은 것도 2006년 5월16~18일 이후 6,524일 만에 나온 기록이다. 류현진의 데뷔 시즌 이후 처음으로, 류현진 등판 없이 인천 스윕을 달성한 것이다.

28일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문동주(사진=한화)
28일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문동주(사진=한화)

 

류패패패패 시절 가고… ‘투수 왕국’이 된 한화

기왕 류현진 신인 시절 얘기가 나왔으니, 잠시 류현진의 미국 진출 이전을 떠올려 보자. 그 시절 한화 마운드는 류현진 혼자 팀 전체를 먹여 살렸다. 류현진은 한화의 알파이자 오메가이고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소년가장’이라 불렀다. 류현진 등판 이후 연패에 빠지는 일이 많아 ‘류패패패패’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류현진의 미국 진출 전 마지막 5시즌, 류현진의 선발 WAR과 한화 팀 선발 WAR 비교(통계=스탯티즈)
류현진의 미국 진출 전 마지막 5시즌, 류현진의 선발 WAR과 한화 팀 선발 WAR 비교(통계=스탯티즈)

특히 미국 진출 전 마지막 5시즌 동안 이런 경향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2008년과 2011시즌엔 팀 선발진 전체가 기록한 WAR(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 합계의 대부분을 류현진이 차지했다. 

2009년과 2010년엔 아예 류현진을 제외한 나머지 선발투수들의 WAR 합계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는데, 이는 어느 정도 이닝만 채워도 누적되는 WAR의 특성상 매우 기이한 일이다. 진출 전 마지막 해인 2012년에도 전체 WAR에서 류현진의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류현진이 미국으로 떠난 뒤에도 한화 선발진의 상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리그 꼴찌가 당연해진 2020년 이후로는 매년 모든 선발투수 지표가 리그 꼴찌였다. 선발승, 퀄리티 스타트, 투구이닝, 평균자책, WAR가 전부 바닥을 훑었다. 외국인 투수들은 부상과 부진 돌림병에 시달렸고 국내 투수들은 5회는커녕 1회를 무사히 넘기면 다행이었다. 2020년 이후 한화 국내 선발 중에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는 김민우 하나뿐이다. 

2020년 이후 한화 선발진의 상태(통계=스탯티즈)
2020년 이후 한화 선발진의 상태(통계=스탯티즈)

그러나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페냐와 산체스가 꾸준히 로테이션을 책임지며 제 몫을 다했고, 특급 유망주 문동주가 급성장해 국내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3선발까지만 놓고 보면 다른 팀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 구색을 갖추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여기에 류현진 영입이란 호재가 터지면서, 한화는 외국인 투수를 3명 기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리게 됐다. 기존 선발이 한 자리씩 뒤로 밀려나면서 2년 전만 해도 개막전 선발이었던 김민우는 5선발이 됐다. 개인에겐 자존심 상하는 일일지 몰라도, 팀 전체로 보면 그만큼 뎁스가 좋아졌다는 의미다.

외국인 선발 듀오와 류현진(사진=한화)
외국인 선발 듀오와 류현진(사진=한화)

 

팀 5연승, 홈 개막전 승리, 통산 99승 걸린 등판

12년 만에 돌아온 류현진의 복귀전은 아쉬운 결과로 끝났다. 23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류현진은 3.2이닝 동안 5실점(2자책)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미국 진출 전 22승 8패 평균자책 2.46으로 강했던 LG 상대로 5회를 못 채웠고, 삼진을 하나도 못 잡고 내려왔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최고구속이 150km/h에 달했고 대부분 공이 140km/h 중반대에 형성됐다. 하지만 공이 계속 존 가운데로 몰리면서 리그 최강 LG 타선의 먹잇감이 됐다. 류현진은 다음날 인터뷰에서 “컨디션이 좋아도 제구가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돌아봤다. 

그는 “당연히 긴장했고 첫 경기라 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면서 “속구가 초반엔 좋았는데 가운데로 몰렸고 변화구도 아쉬웠다”고 원인을 진단했다. 이어 “예방 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한다”면서 다음 등판을 기약했다.

옛날 한화였다면 류현진 경기에서 승리를 못 하면 기나긴 연패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올 시즌의 한화는 다르다. 오히려 류현진이 지고 난 뒤 4연승을 질주하고 있다. 류패패패패가 아닌 류승승승승 행진이다.

4연승 기간 한화 선발진의 투구내용을 보면, 시즌 초반 일시적인 이변이나 운이 좋아서 나온 결과처럼 보이진 않는다. 24일 선발 페냐는 평균 147km/h 속구와 주무기 체인지업을 섞어 최강 LG 타선을 6.2이닝 2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지난해 KT 고영표 다음으로 높은 체인지업 구종가치를 기록한 페냐는 3번째 시즌을 맞아 믿음직한 외국인 선발로 자리 잡았다.

26일 등판한 김민우의 피칭은 14승 시즌인 2021년을 연상케 했다. 이날 김민우는 평균구속 142.4km/h로 지난해(139km/h)보다 3km/h 이상 빠른 공을 던졌고, 주무기 포크볼도 위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빠른 투구템포와 경쾌한 슬라이드 스텝은 마치 이름만 같은 다른 투수가 던지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27일 산체스도 5.2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전체 투구의 60% 이상을 평균구속 149km/h의 힘 있는 패스트볼로 던지면서 타자들을 힘으로 찍어눌렀다. 특히 5.1이닝 동안 삼진을 8개나 솎아내면서 지난 시즌(9이닝당 삼진 7.07개)보다 더 압도적인 피칭을 기대하게 했다.

그리고 28일엔 문동주가 등판해 5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 시범경기 기간 최고구속이 148km/h에 그쳐 우려를 자아냈던 모습은 사라지고, 평균 150.3km/h의 폭발적인 속구와 커브, 체인지업 등 다양한 공을 골고루 섞어 던졌다. 문동주의 등판으로 한화 마운드는 포심 평균구속 145km/h로 10개 팀 가운데 1위로 올라섰다.

이제는 류현진 차례다. 류현진은 오늘(29일) 대전에서 열리는 홈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한다. 팀의 5연승과 홈 개막전 승리, 개인 통산 99승이 걸린 중요한 등판이다.

상대는 지난해 준우승팀 KT 위즈. KT는 류현진의 미국 진출 이후 창단한 신생팀이라, 맞대결은 오늘이 처음이다. 개막 4연패로 위기에 몰렸던 KT는 29일 경기에서 9회말 역전 끝내기 승리로 한숨을 돌렸다. 마운드가 예상보다 부진하지만, 타선의 흐름은 나쁘지 않다. 

한화 선발진의 유일한 무승투수이자 패전투수 -쓰면서도 어색한 말- 류현진이 ‘류승승승승’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지, 29일 대전 경기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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