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작년 꼴찌 한화 이글스에 스윕당해 최하위 추락

-1년 차 실패 뒤 ‘달라지겠다’던 허문회 감독, 2년 차에도 지난해 문제점 여전

-1점 차 승부에 극도로 약한 모습…투수 잘 던지고 타자 잘 쳐야 이긴다

-경직된 엔트리 운영, 2군 불신…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롯데 자이언츠 허문회 감독의 2년차 시즌도 험난하다(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롯데 자이언츠 허문회 감독의 2년차 시즌도 험난하다(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엠스플뉴스]

지난 시즌 막판 롯데 자이언츠 허문회 감독은 불현듯 강도 높은 ‘자아비판’에 나섰다. 마치 당 간부들 앞에 나선 부하린처럼 “투수교체, 대타, 작전 타이밍 등 내가 부족해서 망친 경기가 많았다” “선수들이 아닌 내 책임이 크다” “안 좋은 피드백도 달게 받겠다”고 스스로를 비판했다. “내년에는 같은 실수가 없게 코치, 구단과도 소통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했던 말들과는 180도 달라진 자세였다. 허 감독은 시즌 내내 날 선 말로 구단과 2군을 비판했다. 구단에서 이미 전달한 웨이버 공시 명단을 언론을 통해 알았다며 “정보 고맙습니다”라고 하거나(아무도 질문 안 했다), 뜬금없이 ‘프런트 야구’를 맹비난하며 “프런트가 어떤 선수가 좋으니까 쓰라고 현장에 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프런트와 현장이 책임도 같이 져야 한다”고 각을 세웠다(프런트 야구 질문은 나오지도 않았다).

시즌 후반 제기된 ‘경질설’을 의식한 유화 제스처라는 분석이 나왔다. 허 감독은 자아비판과 ‘달라지겠다’는 약속으로 인사권자인 이석환 대표이사의 마음을 움직였다. 결국 구단은 허 감독에게 다시 한번 힘을 실어주기로 결정했다.

3연속 감독 경질의 흑역사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허 감독의 실패는 곧 감독을 임명한 구단의 실패가 된다는 것도 재신임 이유였다. 롯데 구단도 ‘허 감독과 더 긴밀하게 소통하고 지원하겠다’며 2년 차 도약을 약속했다. 롯데는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다. 어쩌면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점 차 승부 다 내주고, 쓰는 선수만 쓰고…달라진 게 뭔가?

경기를 지켜보는 허문회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경기를 지켜보는 허문회 감독(사진=엠스플뉴스 강명호 기자)

그러나 달라진 건 없었다. 허 감독은 2년 차 시즌에도 여전히 그대로다. 오히려 지난해보다 상황은 더 나빠졌다. 지난 시즌엔 후반으로 갈수록 서서히 단점이 표면화됐다면, 올 시즌엔 초반부터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보통 1년 차에 시행착오를 겪은 대부분 사령탑이 2년 차엔 발전한 모습을 보이는데, 허 감독은 정반대다.

대표적인 게 1점 차 승부다. 롯데의 승리 공식은 간단하다. 선발투수가 엄청나게 잘 던지고, 타선이 폭발하면 그날은 이긴다. 반면 선발이 좀 흔들리거나, 타선이 마음먹은 대로 터지지 않으면 맥없이 경기를 내준다. 접전 상황에서 벤치의 효과적인 선수 기용이나 전술로 이기는 경기가 없다. 한 지역 방송 해설위원은 “그럴 거면 차라리 유재석이 감독하는 편이 낫지 않나. 어차피 이기는 건 선수가 잘해서 이기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모두가 좋아할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지난해 롯데는 1점 차 승부에서 13승 21패 승률 0.382로 승률 꼴찌였다. 올해도 1승 5패 승률 0.167로 9위다. 5회까지 동점 경기에서 1승 3패, 6회까지 동점 경기에서 승리 없이 2패, 8회까지 동점 경기에서 1승 3패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경기는 잘하지만, 대등한 접전엔 약하다. 불펜 운영, 작전 타이밍, 대타-대수비-대주자 기용 등 고비마다 반복되는 벤치 실수가 가져온 결과다.

최하위로 추락한 5월 2일 사직 한화전도 마찬가지. 전날 경기에서 대패한 롯데는 8, 9회 투수 대신 야수를 마운드에 세워가며 이날 총력전을 대비했다. 그러나 1회 무사만루에서 한 점도 못 내며 경기가 꼬이기 시작했다. 2, 3회 홈런으로 리드를 잡았지만 선발 노경은이 무너져 한 점 차로 추격당했다.

일단 분위기가 넘어가자 그 뒤는 속수무책이었다. 5회부터 구승민-김대우-최준용-김원중의 승리조를 총동원했지만 패배를 막지 못했다. 4연패로 리그 최하위. ‘봄데’의 여운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익숙한 그 자리 ‘꼴찌 롯데’로 돌아갔다.

지난해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경직된 엔트리 운용도 그대로다. 허 감독은 철저하게 주전 선수, 시즌 전에 미리 정해놓은 선수, 믿음이 가는 선수 위주로 기용한다. 웬만하면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좋게 보면 주전 선수들에게 대한 믿음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나머지 선수들에 대한 ‘불신’이다.

롯데는 지난해 베테랑 불펜 진명호에 대한 무한 신뢰로 많은 승리를 날렸다. 실력 있는 선수니까 계속 던지다 보면 살아날 거라고 믿었지만 결과적으로 팀에게도 선수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로 돌아왔다.

올해는 구승민-박진형에 대한 집착으로 여러 경기를 그르쳤다. 지난 2년간 혹사 여파로 구위가 떨어진 두 선수를 계속 쓰려다 불펜 운영이 어그러졌다. 최준용-김대우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졌는데, 이건 정확히 지난해 구승민-박진형이 겪었던 상황이다. 악순환이다.

데뷔 이후 최악의 부진(OPS 0.606)에 빠진 손아섭은 팀이 치른 25경기에 모두 붙박이 2번타자로 나섰다. 현대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타순이자 팀 내 최고 타자를 배치하는 타순에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 선수를 배치해서 팀 공격도 선수 스탯도 망가진다. 뇌동맥류로 고생하는 민병헌을 붙박이로 밀어붙인 지난 시즌이 연상된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롯데, 결단의 시간이 다가온다

좌완 불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지만, 허문회 감독은 요지부동이다. 사진은 김유영과 김진욱(사진=롯데)
좌완 불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지만, 허문회 감독은 요지부동이다. 사진은 김유영과 김진욱(사진=롯데)

허문회 감독도 나름의 근거는 있다. 허 감독은 “대체선수를 기용하면 1, 2경기는 좋을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역효과”라는 소신을 말한다.

바꿔 말하면 자신이 미리 정해둔 주전 선수 외에는 대체선수이고, 이 선수들은 주전 선수를 넘어설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다른 팀은 주전 선수들도 끊임없이 경쟁하며 긴장감을 유지하고, 백업 선수들에게도 동기를 부여하는데 롯데는 주전과 백업이 일찌감치 나뉘어 있다. 따지고 보면 ‘대체선수’라는 표현 자체가 주전 선수가 되기에는 능력이 부족한 B급 선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른 팀은 2군에서 콜업한 선수에게 바로 1군 출전 기회를 준다. 2군에서 한창 감이 좋을 때 올라왔으니 좋을 때 바로 기회를 주는 게 맞다는 논리다. 롯데에선 1군에 올라와도 벤치만 지키다 그냥 내려가거나, 대수비-대주자로 가뭄에 콩 나듯 기회가 주어진다. 큰 점수차로 벌어진 경기에서 베스트 9이 끝까지 자리를 지킬 때도 많다.

일례로 내야수 김민수는 4월 20일 1군에 올라온 뒤 29일에야 첫 선발 출전 기회를 받았다. 이날 상대 팀 LG 선발투수는 특급 에이스 앤드류 수아레즈였다. 전준우, 이대호도 치기 힘든 공을 콜업 열흘만에 처음 선발 출전해서 치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감독이란 자리는 마음만 먹으면 선수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자리’라는 속설이 떠오르는 장면이다.

허 감독의 2군 선수 불신에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군을 한 팀이 아닌 ‘경쟁자’로 여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부산지역 방송 해설자는 “허 감독이 래리 서튼 2군 감독을 의식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해 홈 개막전 당시 전광판의 시즌 프로모션 영상 마지막에 서튼 감독이 등장하자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안다”고 했다.

허 감독은 개막 5연승 뒤 첫 패배를 당한 뒤 선발로 장원삼을 추천한 ‘누군가’를 지목해 맹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식이라면 다음에는 내가 직접 선수를 선택하겠다”는 말도 했다. 최근 논란이 된 ‘2군에 좋은 투수가 없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로 풀이된다. 보통 1군 감독들은 2군에 대해 이런 식으로 나쁘게 말하지 않는다. 2군에 대한 개인적 감정이 반영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지역 방송 해설자는 “롯데가 지금처럼 최하위에 그칠 전력은 아니다. 지난 시즌부터 좀 더 선수를 폭넓게 기용하면서 내부 경쟁을 유도하고, 다양한 선수에게 경험치를 부여하면서 팀의 기동력과 수비 약점을 보완한다면 좀 더 나은 경기를 할 수 있다”며 “가진 자원을 총동원해서 싸워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전쟁터에서 전력의 반쪽만 갖고 싸우니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리 없다”고 지적했다.

다른 야구인은 “지난 시즌부터 롯데 구단이 다양한 변화와 개혁 작업을 추진하기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는데, 정작 현장에서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 아쉽다”“구단의 방향성과 현장의 운영이 반대로 움직이다보니 애초 구단이 추구했던 개혁까지 추진력을 잃는 듯하다.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닌 팀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롯데가 달라지려면 엔트리 구성과 선수단 운영의 전권을 지닌 허문회 감독이 달라져야 한다. 허 감독은 달라지겠다고 약속했고 롯데는 그 약속을 믿었다. 하지만 25경기가 지난 지금,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진리만 확인했을 뿐이다. 롯데는 지난 시즌의 실패를 올 시즌에도 그대로 되풀이할 것인가. 개인의 독단과 고집으로 허비하기엔 144경기 한 시즌은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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