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춘추]
KBO리그는 올 시즌부터 ABS(자동 투구판정 시스템)를 도입한다. 아직 미국, 일본 등 국외리그에선 도입 전인 ‘로봇심판’의 등장이다.
KBO(한국야구위원회) 심판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숨 가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심판위원회는 2023년 12월 초를 기점으로 동계 훈련을 진행 중이다. 완벽한 제도 숙지 및 적용을 위해서다. 그런 훈련 모습은 언론에도 몇 차례 공개됐고, 다가오는 ‘새 시대’를 향한 기대를 부풀게 했다.
다만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ABS가 도입되면, 커브를 던지는 투수가 더 유리해질 것이란 전망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심판진 훈련 도중 낙차 큰 커브가 애매한 코스로 들어온 뒤 바운드성으로 떨어졌는데, 로봇심판을 통해 스트라이크로 판정받는 장면이 이목을 끌기도 했다.
로봇심판 등장에 ‘커브’ 향해 이목 쏠렸다 “유리한 부분 있을 것”
이른바, ‘대(大)커브의 시대‘가 오는 것일까. 스프링캠프 출국을 앞둔 현장에서도 조심스러운 시선과 함께 커브를 주목했다.
“전반적으로 커브 구종 활용이 늘지 않을까요? ABS 제도에선 각이 큰 변화구를 잘 던지는 선수가 유리할 것 같아요. 이번 오키나와 캠프에서도 그런 부분을 신경 쓰려고 합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삼성 라이온즈에 새롭게 합류한 정민태 1군 투수코치의 전망이다. 정 코치는 현역 시절 강속구와 낙차 큰 커브를 무기로 리그 최고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지난해까지 해설위원으로 고교야구 중계 경험이 있는 정 코치에게 로봇심판은 낯설지 않은 존재다. KBSA(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지난해 4월 신세계 이마트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기점으로 로봇심판을 도입한 바 있다.
정 코치는 “올 시즌 KBO리그와 다를 수 있겠지만, 지난해(2023년) 고교야구에선 떨어지는 변화구가 확실히 돋보이더라. 커브 같은 구종은 존 경계선 위아래를 걸쳐 들어오면서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디펜딩 챔피언 LG 트윈스의 우완 임찬규는 1월 30일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출국 전 취재진을 만나 “(ABS는) 일단 겪어봐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커브 구종 관련해서도 직접 경험한 뒤 판단하려고 한다”고 했다.
참고로 임찬규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커브볼러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2023년 정규시즌 때 커브 구종 구사율이 23.5%에 달했다. 이는 규정이닝(144) 진입 투수 17명 가운데 3번째로 높고, 국내 투수 중엔 으뜸이다.
“과거 퓨처스리그(2군)에서 로봇 심판이 시범도입됐을 때 등판한 적이 있습니다. 커브 같은 경우엔 볼이라고 생각한 게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기도 하더라고요. 시즌 들어가기 전에 체크를 다 해봐야 할 듯싶습니다. 공 궤적을 최대한 크게 가져간다든지, 느린 커브를 던지는 등 개인적으로 테스트를 해보려고 해요.” 임찬규가 밝힌 올봄 ABS 대응 계획이다.
한편 선수들 사이에선 “ABS 관련해선 구종을 떠나 판정에 납득할 수 있는 근거가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에 KBO는 2월 6일 “2024년 시즌 주요 규정, 규칙 변경사항을 담은 안내자료를 10개 구단에 배포했다”고 발표했다. 그중 공개된 자료를 보면, KBO가 그간 ABS 도입을 두고 고민해 온 흔적이 역력했다. 특히 커브 구종에 대한 우려를 파악해 그에 따른 보완을 명확히 한 게 돋보였다.
ABS 최종안, 지난 4년 시행착오 및 많은 고민 고스란히 담겼다
“1, 2차 훈련 동안 커브 구종 관련해서 말이 많았죠. 그런 고민도 충분히 담긴 결과입니다.”
6일 스포츠춘추와 연락이 닿은 오석환 신임 심판위원장의 말이다.
KBO는 지난 1월 24일 2024년 제1차 실행위원회를 열어 ABS 및 피치 클락(시범 운영)에 대한 세부 운영 규정을 확정 및 발표한 바 있다.
단기간 쌓인 데이터만으로 결정된 사안은 아니다. KBO는 지난 4년간 퓨처스리그에서 ABS를 시범운영하며 선수단, 심판의 의견을 반영해 보완점을 개선해 왔다. 또 감독자회의와 실행위원회(단장회의), 운영팀장회의 등은 물론이고, 거기에 전문가 자문회의, ABS를 앞서 경험한 선수단 대상 설문조사, 메이저리그(MLB) 사무국과 데이터 공유 및 논의 등을 더해 최종안을 마련한 것.
먼저 상하 기준에선 홈 플레이트 중간 면과 끝면 두 곳에서 상하 높이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스트라이크로 판정한다. 상·하단 높이는 선수별 신장의 비율을 기준으로 적용된다. 상단 기준은 선수 신장의 56.35%, 하단 기준은 선수 신장의 27.64% 위치가 기준이다. 해당 비율은 기존 심판 스트라이크 존의 평균 상·하단 비율을 기준으로 했다.
‘앞뒤’로 표현된 홈 플레이트 중간 및 맨 끝은 면적 기준이 다르다. 중간 면에선 타자의 신장 기준 비율을 그대로 적용하지만, 끝 면은 중간면 기준보다 1.5cm 낮췄다. 무엇보다, 총 2번의 판정을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커브의 위력은 당초 예상보다 반감될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또 확실한 판정 근거를 마련해 모호함을 줄였다.
함께 발표된 좌우 기준은 비교적 느슨하다. 홈 플레이트 중간면 기준에서 좌우 2cm씩 확대 적용한다. 좌우 존은 공 어느 일부분이 스치기만 해도 스트라이크로 판정된다. 이를 두고 오 위원장은 “마찬가지로 현장의 목소리를 고려한 것”이라면서 “로봇 심판 도입으로 스트라이크존이 예년보다 좁아질 수 있다. 볼넷 증가 가능성을 감안해 좌우를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오후 윤희상 KBSN 스포츠 야구 해설위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ABS가 리그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 섣불리 예단하긴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새 변화를 앞둔 KBO가 대비를 잘 하고 있다”고 했다.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은 그 누구보다 규정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판정 하나하나에 희비가 엇갈리는 스트라이크존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17년 동안 프로 무대에 선 윤 위원도 이를 언급하며 “아무래도 투수들이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좌우 스트라이크존 확대도 그렇고, KBO가 선수들의 목소리를 어느 정도 반영하려는 건 긍정적인 면이 분명히 있다”고 덧붙였다.
어느덧 개막이 45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격변’에 임하는 KBO는 새 시즌 맞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심판진도 예외는 아니다. 오석환 심판위원장이 다음과 같이 힘줘 말한 까닭이다.
“개막 전까지 빈틈없이 완벽해야죠. 심판들은 마산으로 이동해 조만간 ABS 관련 3차 훈련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또 오는 21일부턴 10개 구단 캠프지로 찾아가 규정 관련 설명회를 열 거에요. 선수들이 충분히 적응할 수 있도록 심판진 또한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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