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스포츠춘추]

2007년 7월 18일. 부산 아이파크는 스위스 국가대표 출신 안드레 에글리 감독의 후임으로 한국 U-20 축구 대표팀 박성화 감독을 선임했다. 

당시 상황을 떠올린 한 축구인은 “새 감독 지원자가 50명이 넘었다”면서 “외국인 감독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부산이 부산 대우 로얄즈 시절의 영광을 되찾고자 고심을 거듭했던 기억이 난다. 박 감독은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거론된 지도자였다. 박 감독을 택한 건 이 때문”이라고 했다. 

박 감독이 부산에 머문 기간은 17일이었다. 박 감독이 부산 지휘봉을 잡은 지 17일 만에 故(고) 핌 베어벡 감독의 사퇴로 공석이 된 한국 U-23 축구 대표팀 사령탑에 내정됐기 때문. 대한축구협회(KFA)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의 혼란을 최소화하고자 U-20 월드컵 등의 경험이 있는 박 감독을 택했다. 

KFA에 부산 구단과 팬을 향한 존중은 없었다. 


역사가 ‘주먹구구식 행정은 무조건 실패한다’고 말한다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 이근호, 정성룡, 김정우, 김동진 등이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 이근호, 정성룡, 김정우, 김동진 등이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다(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 U-23 대표팀은 2008 베이징 올림픽 본선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탈리아, 카메룬, 온두라스와 한 조에 속해 1승 1무 1패(승점 4점)를 기록했다. 

선수 구성엔 문제가 없었다. 박주영, 이근호, 기성용, 이청용, 김진규, 김창수 등이 호흡을 맞춘 팀이었다. 와일드카드론 2006 독일 월드컵 주전 왼쪽 풀백 김동진,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16강 주역 김정우가 나섰던 팀이다. 

대표팀만 실패를 맛본 게 아니었다. 자신들이 고심 끝 선임한 감독을 17일 만에 빼앗긴 부산 아이파크는 더 큰 아픔을 맛봤다. 부산은 2007시즌 K리그 13위를 기록했다. K리그 출범 시즌(1983)부터 참가한 부산이 10위권 밖으로 밀린 첫 시즌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잘못된 실패 사례가 있음에도 비슷한 선택을 한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향해 나아가던 2011년이었다. KFA는 조광래 감독의 후임으로 최강희 감독을 선택했다. 최 감독은 당시 전북 현대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최 감독이 전북에서 200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 2009시즌 K리그 우승 등을 일구며 2010년대 전북의 시대를 알리기 시작한 때였다. 

최 감독은 전북 잔류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지만 KFA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절충안으로 나온 것이 최 감독이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까지만 팀을 이끈다는 것이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오른다면 본 대회에선 다른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기로 했다.

한국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16강에 오른 팀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두 번째 조별리그 통과였다. 박지성, 이영표가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을 끝으로 은퇴했지만 이청용, 기성용, 구자철이 중심을 잡고 떠오르는 별 손흥민이 있었다.

특히나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며 2014 브라질 월드컵을 향한 기대가 컸었다. 

최 감독은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낸 뒤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놨다. 그리고선 전북으로 돌아갔다. 최 감독의 자린 홍명보 감독이 채웠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이후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 3명의 감독이 대표팀을 맡았다. 

한국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러시아, 알제리, 벨기에와 한 조에 속해 1무 2패(승점 1점)를 기록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은 2002 한·일 월드컵부터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6차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유일한 대회다. 


책임 ‘나 몰라라’ 정몽규 회장, 다음 방패막이는 현직 ‘K리그 감독’인가요

보호 받지 못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보호 받지 못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 축구 대표팀의 2023 카타르 아시안컵은 실패로 끝났다. 대회 기간 중 대표팀에서 발생한 문제가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선수 보호에도 실패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에게 책임을 물었다. KFA는 마이클 뮐러 국가대표 전력강회위원장도 경질했다. 대표팀 주장 손흥민과 갈등이 있었던 이강인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무분별한 비난의 중심에 섰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대표팀을 정상적으로 지원해야 했던 KFA 정몽규 회장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표팀 선수들이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큰 상처를 입고 있지만 방관한다.

정 회장은 빠르게 클린스만 후임 감독 선임 작업에 착수했다. 새 전력강화위원장으로 KFA 정해성 대회위원장을 선임한 가운데 전력강화위원도 새로 꾸렸다.

대표팀 새 사령탑으로 K리그 현직 감독을 고려 중이란 얘기가 나온다. 복수의 축구계 관계자는 “외국인 감독은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라며 “KFA는 3월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태국과의 2연전을 차질 없이 치르기 바란다”고 말했다. 

“태국과의 2연전에서 문제가 생기면 월드컵 본선 도전이 험난해질 수 있다. 빠르게 팀을 휘어잡을 수 있는 지도자를 바라는 건 이 때문이다. 문제는 홍명보, 김기동, 김학범 등 현재 K리그 지휘봉을 잡은 이의 이름이 나온다는 거다.” 앞의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현직 K리그 감독을 아무런 고민 없이 빼가려는 행태는 한국 축구 발전을 가로막는 구태이자 악습”

한국 축구 대표팀 주장 손흥민(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 축구 대표팀 주장 손흥민(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K리그는 한국 축구의 근간이다. 축구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하지만, K리그를 향한 배려는 1983년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찾아보기 어렵다.

대한축구협회는 상황이 어려워지면 K리그의 희생을 강요한다.

K리그는 아무 말 없이 희생할 수밖에 없다.

KFA 국가대표팀 운영 규정 감독 선임 조항 제12조(감독, 코치 등의 선임) 제1항엔 ‘각급 대표팀 감독, 코치 및 트레이너 등은 국가대표 지도자 선발기준에 따라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또는 기술발전위원회의 추천으로 이사회가 선임한다’고 나와 있다. 

눈여겨봐야 할 건 제12조 제2항이다. ‘협회는 제1항의 선임된 자가 구단에 속해 있을 경우 당해 구단의 장에게 이를 통보하고, 소속구단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KFA는 '통보'하고, K리그 구단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 계약서보다 강하고, 구단의 팬보다 중요한 '특별 사유'가 무엇인진 알 수 없다. 

K리그에서 10년 이상 몸담은 한 구단 관계자는 “땅 파서 운영할 수 있는 구단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면서 “모기업은 연간 수백억 원을 들여가면서 K리그 구단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K리그 구단은 유소년 축구에도 연간 수십억을 투자한다. 구단은 더 많은 팬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런 구단의 핵심이 감독이다. 현직 K리그 감독을 아무런 고민 없이 빼가려는 행태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가로막는 구태이자 악습”이라고 했다. 

K리그(1·2)는 2023시즌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유료 관중을 집계한 2018년 이후 처음 단일 시즌 300만 관중을 돌파했다. 경기당 평균 관중은 1만 733명이었다. 유료 관중 집계 후 최초이자 2011년 1만 1천634명 이후 12년 만의 평균 1만 관중을 돌파했다. FC 서울은 평균 2만 2천633명의 관중을 불러 모으며 한국 프로스포츠 최다 평균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울산 현대 홍명보 감독은 구단 제작 유튜브 다큐멘터리 ‘푸른파도2’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바 있다.

“팬들은 그 결과 하나를 가지고 일주일을 생활하는 사람들이야. 여러분을 좋아하는 사람들.”

KFA는 한국 축구의 근간을 지탱하는 팬을 늘 외면해 왔다. 이번에도 그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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