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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이슈] 1982・1983년 ‘베스트 10’은 왜 KBO 역사에서 지워졌나

  • 기사입력 2019.12.10 10:57:20   |   최종수정 2019.12.10 1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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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원년과 1983년, 골든글러브와 베스트 10 별도 시상

-1982년에는 수비율로 골든글러브 선정…진짜 최고 선수는 베스트 10에

-골든글러브 시상식, 원래는 현재와 같은 위상 아니었다

-골든글러브에 가려진 ‘베스트 10’ 수상자들, 제 자리 찾아줘야

 

2019 골든글러브의 주인공들(사진=엠스플뉴스)

2019 골든글러브의 주인공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조시 린드블럼, 양의지, 박병호, 박민우, 최정, 김하성, 이정후, 제리 샌즈, 멜 로하스,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 12월 9일 열린 2019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빛낸 영광의 이름들이다.

 

KBO리그 골든글러브는 그해 포지션별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이날 수상자들은 KBO 공식 홈페이지 ‘역대 골든글러브 수상자’ 란에 이름이 올라간다. 매년 초마다 나오는 연감에도 이름이 올라가 역사에 넘는다.

 

하지만 분명 그해 포지션 최고의 선수로 뽑혔는데도, KBO 홈페이지에서 이름을 찾기 힘든 선수들이 있다. 프로 원년인 1982년과 1983년 ‘프로야구 베스트 10’으로 선정된 선수들이다. 

 

1982, 1983년 골든글러브보다는 ‘베스트 10’이 비중

 

박철순은 1982년 최고 투수였지만 그해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했다(사진=OB)

박철순은 1982년 최고 투수였지만 그해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했다(사진=OB)

 

시계태엽을 맨 처음으로 돌려보자. 프로야구가 막 생긴 1982년 당시 골든글러브는 지금과는 다른 개념의 상이었다. 당시엔 포지션별 최고의 선수가 아닌 ‘수비율’을 선정 기준으로 삼았다. 포지션 최고 선수는 ‘베스트 10’이란 별도의 상을 통해 선정했다.

 

이 때문에 원년 골든글러브 멤버들을 보면, 그해 최고 선수라기엔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이름이 적지 않다. 원년 투수 황금장갑은 24승 투수 OB 박철순이 아닌, 팀 동료 황태환이 받았다. 황태환은 그해 27경기에서 6승 5패 3세이브 평균자책 3.86으로 나쁘지는 않지만 썩 좋다고 하기도 애매한 성적을 남겼다. 

 

포수 부문 수상자 김용운은 타율 0.244에 3홈런 29타점을 기록했고, 2루수 차영화의 성적은 타율 0.259에 1홈런 12타점에 불과했다. 타격성적이 아닌 수비율만 갖고 수상자를 선정한 결과다. 

 

수비율 대신 투표 방식을 도입한 1983년에도 골든글러브 수상자 명단은 그해 ‘최고 선수’와 거리가 멀었다. 1루수 부문 수상자가 김성한(타율 0.327 7홈런 40타점)이 아닌 신경식(타율 0.268 5홈런 50타점)인 게 대표적인 예다.

 

정작 그해 최고 선수들이 받은 상은 따로 있었다. 1982년 팀을 우승으로 이끈 박철순은 그해 최우수선수와 함께 ‘베스트 10’ 투수로 선정됐다. 그 외에도 포수 이만수, 1루수 김봉연, 2루수 구천서, 3루수 이광은, 유격수 오대석, 외야수 이종도, 장태수, 윤동균, 지명타자 백인천 등이 원년 베스트 10의 주인공이다. 지금으로 치면 ‘골든글러브’에 해당하는 이름들이다.

 

1983년 베스트 10 명단도 화려하다.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한 김성한이 베스트 10에서는 최고의 1루수로 선정됐고, 외야수 부문에서는 도루왕 김일권이 이름을 올렸다. 골든글러브에는 설 자리가 없던 김봉연이 베스트 10에서는 지명타자 수상자로 선정됐다.

 

실제 프로 초기만 해도 골든글러브는 크게 비중 있는 상이 아니었다. 한국 프로야구 창립 기념일인 12월 11일 열리는 시상식이란 의미는 있었지만, 수상기준과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베스트 10’ 쪽이 훨씬 무게감이 컸다. 

 

과거 언론 보도를 찾아봐도 1982년과 1983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비중 있게 다룬 기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베스트 10’은 최우수선수를 포함한 부문별 타이틀 시상식과 같은 날 상이 주어져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983년 리그 최고 투수였던 재일동포 장명부는 베스트 10에 선정된 뒤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 해태 투수 이상윤에 대해 “베스트 10도 못 되고 개인상도 못 타 올해 최고의 ‘애석상’”이라 소개한 신문기사도 있다. 당시 베스트 10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주는 일화다.

 

프로야구 역사에서 지워진 이름, ‘베스트 10’ 수상자들

 

KBO 공식 자료는 베스트 10이 아닌 골든글러브만을 기억한다(사진=KBO 홈페이지)

KBO 공식 자료는 베스트 10이 아닌 골든글러브만을 기억한다(사진=KBO 홈페이지)

 

골든글러브와 베스트 10을 별도로 시상했던 프로야구는 1984년부터 두 상을 하나로 통합해, 지명타자까지 10개 포지션별 최고 선수를 선정하는 상으로 재정립했다. 

 

문제는 상의 명칭이 ‘베스트 10’이 아닌 ‘골든글러브’로 통합되면서 생겼다. 베스트 10에 쏟아졌던 스포트라이트가 골든글러브 쪽으로 이동하면서, 원년과 1983년 베스트 10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원년과 1983년 골든글러브 수상자들은 1984년 통합 이후 수상자들과 함께 KBO 홈페이지는 물론 각종 간행물에도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반면 골든글러브에 흡수된 베스트 10 수상자들은 점차 기록에서 사라졌고, 팬들의 기억에서도 흐릿해졌다. 이제는 옛날 신문이나 잡지 기사를 뒤져야만 찾을 수 있는 이름이 됐다. 

 

프로 원년 골든글러브와 지금의 골든글러브는 전혀 성격이 다른 상이다. 당시엔 오히려 베스트 10이 지금의 골든글러브에 해당하는 무게감을 갖는 상이었다. 그렇다면 KBO는 베스트 10 선수들을 별도의 페이지를 통해 소개하거나, 적어도 골든글러브 수상자들과 함께 소개할 필요가 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에서도 지워진다. 내년이면 KBO리그도 벌써 39번째 시즌을 맞는다. 이제는 역사를 제대로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년과 1983년 베스트 10 수상자들이 KBO리그 역사에서 제대로 된 자리를 되찾기를 기대해 본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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