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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탈북 복서’ 이제 그만! ‘챔피언’으로 기억해주세요” [엠스플 레전드]

  • 기사입력 2020.06.04 09:58:53   |   최종수정 2020.06.04 09: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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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최초 WBA 두 체급 석권 최현미, 장정구·유명우가 인정하는 ‘무패 복서’ 

-“복싱 3개월 차 첫 스파링, 3년 차 언니에게 한 대 맞고 ‘난타전’ 갔죠”

-“날 이유 없이 미워하는 친구들에게 성공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한국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복서로 기억되길”

 

최현미는 16살에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프로 전향 후엔 왼쪽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경기에 나섰다(사진=엠스플뉴스)

최현미는 16살에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다. 프로 전향 후엔 왼쪽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경기에 나섰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무패 복서 

 

최현미(29)란 이름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최현미는 한국 여자 최초 WBA(세계권투협회) 두 체급을 석권했다. 페더급(57.15kg 이하)과 슈퍼 페더급(58.97kg)에서 각각 7차 방어에 성공했다. 18전 17승(4KO) 1무. 2007년 9월 프로로 전향한 이후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그런 최현미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또 하나의 말이 있다. ‘탈북 복서’다. 최현미는 북한 평안남도 평양 출신이다. 

 

최현미는 ‘무패 복서’보다 ‘탈북 복서’로 불릴 때가 많다.   

 

최현미는 2004년 7월 한국 땅에 발을 디뎠다. 이후 한국 복서로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도전을 이겨내며 그 자리를 지켰다.  

 

16살에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그 뒤로 쭉 내 왼쪽 가슴엔 태극기가 있어요. ‘탈북 복서’ ‘새터민 복서’ 등으로 불리면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한국에서 두 체급을 석권했어요. 지금까지 챔피언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습니다. 이젠 ‘챔피언’으로 불리고 싶어요.” 최현미의 속내다.

 

레전드가 인정하는 ‘무패 복서’ 최현미 “복싱은 내 인생의 동반자” 

 

WBA 슈퍼 페더급 챔피언 최현미(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WBA 슈퍼 페더급 챔피언 최현미(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한국 복싱 레전드 장정구, 유명우는 “자신들의 뒤를 이을 선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무패 복서’ 최현미”란 답을 들었습니다. 

 

과찬입니다. 선배들이 지금처럼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좋게 말씀해 주신 거 같아요(웃음). 

 

지난해 6월 29일 일본의 후지와라 와카코와 경기에서 승리하며 7차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이후엔 어떻게 지냈습니까. 

 

2월 20일 WBA와 IBF(국제복싱연맹)의 통합 타이틀 매치를 준비했어요. 3개월 동안 이 경기만 생각했습니다. 한국 첫 통합 챔피언이란 타이틀을 꼭 달고 싶었죠. 코로나19가 이 경기를 가로막았습니다. 

 

코로나19가 경기를 가로막았다?

 

경기 1주일 전 코로나19로 타이틀 매치가 무기한 연기될 것이란 소식을 접했어요.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습니다. 3개월 동안 아무도 안 만나고 경기 준비만 했어요. 짧게나마 여행을 간다는 건 꿈도 꾸지 않았죠. 텔레비전도 안 봤어요. 새벽에 눈 뜨면 러닝, 웨이트 트레이닝, 스파링 등을 반복했습니다. 허무했어요. 그리고...

 

네?

 

금전적인 피해가 엄청났습니다(웃음). 미국에서 훈련을 진행했어요. 경기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숙박비와 트레이너 비용 등을 메울 방법이 없어진 겁니다. 재활 비용도 계속 나가고 있는데 큰일이예요. 지난해 7월 이후 지출만 있습니다. 

 

현재는 무기한 연기된 통합 타이틀 매치를 준비하고 있는 겁니까.  

 

복싱 20년 차입니다. 아픈 곳이 많아요(웃음). 2월 경기를 준비하면서는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재활에 집중하고 있죠. 글러브를 잠시 벗고 허리 근육을 강화할 수 있는 코어 운동과 필라테스 등을 해요. 그리고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이요?

 

처음엔 유튜버로 활동하는 지인들을 도와줬어요. 그러던 중 재미난 댓글을 봤습니다. “최현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는 거죠. 경기가 잡히기 전까진 약간의 여유가 있어요. 복싱을 뺀 최현미의 삶을 보여주자는 마음에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죠.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채널인지 간략하게 소개해줄 수 있습니까. 

 

여러 가지를 합니다. 평범한 학생 신분인 대학 후배를 불러서 복싱을 가르쳐주거나 다른 종목에 도전하고 있어요(웃음). 운동선수다 보니 주변엔 운동선수가 많습니다. 활용하는 거죠. 이게 아주 재밌어요. MMA(종합격투기), 서핑 등을 하는 데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릅니다. 

 

결국엔 운동이군요.    

 

복싱뿐 아니라 모든 운동이 재밌어요(웃음). 운동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싶죠. 취미로 다른 종목을 경험하면서 몸 상태를 끌어올릴 수 있는 효과도 있습니다. 20년 차다 보니 병원에선 이런 말을 자주 하세요. “이제 운동을 그만해야 할 것 같다”고. 그런데 아직 그럴 생각이 없어요. 수술도 권유하지만 안 합니다. 운동으로 아픈 걸 이겨내고 나아갈 수 있다고 믿죠. 

 

최현미는 지금도 링 위에 올라설 때마다 설렌다(사진=엠스플뉴스)

최현미는 지금도 링 위에 올라설 때마다 설렌다(사진=엠스플뉴스)

 

운동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건 역시 복싱 아닙니까. 

 

인생의 동반자죠. 지금도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올라설 때 설레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훈련이 힘들지만 꾹 참습니다. 링 위의 승자가 됐을 때 맛볼 수 있는 달콤함이 보통 아니거든요(웃음). 이걸 한 번 맛보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장정구, 유명우 선배도 이 맛에 복싱했을 거예요(웃음).     

 

그 인생의 동반자는 어떻게 만났습니까. 

 

어릴 때부터 가만히 앉아있질 못했어요. 끊임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아이였죠(웃음). 여러 스포츠클럽을 체험하던 중에 글러브를 꼈어요. 11살 때였는데 당시 북한에선 여자 축구와 복싱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국가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종목이기도 했죠. 무엇보다 재밌었습니다. 좋아하는 데 이유 없다고 하잖아요. ‘이거다’ 싶었죠.   

 

복서는 상대와 주먹을 주고받습니다. 11살이면 아주 어린 나이에요.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습니까.  

 

전혀요. 훈련을 거쳐 링 위에 올라가면 누구든지 때려눕힐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죠.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스파링이 있어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최현미는 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은 소녀였다’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스파링이었습니까. 

 

인생 첫 스파링이었어요. 김철주사범대학 체육관에서 복싱을 시작한 지 3개월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당시 코치께서 “3개월간 기본기 훈련 열심히 했으니 링 위에서 한 번 싸워보라”고 했죠. 상대는 복싱 3년 차 3살 위 선배였어요. 여기서 재밌는 건 그 선배와 ‘절친’이었다는 겁니다. 

 

‘절친’과 피할 수 없는 한판을 벌인 거군요. 

 

친한 언니였습니다. 복싱 경력이 저보다 훨씬 길었죠. 살살할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웬걸. 링 위에 올라 ‘시작’하는 순간 잽이 훅 들어오는 겁니다.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맞아본 건 처음이었어요. 맞는 게 두렵다? 그런 생각은 없었습니다. ‘언니고 모고 없다. 넌 이제 죽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죠(웃음). 보고 배운 거로 정신없이 싸웠습니다. 난타전이었죠. 

 

어떻게 됐습니까.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스파링이 종료되고 정신이 돌아왔어요. 바로 언니 얼굴을 봤습니다. 코피가 나고 있었죠. 전 괜찮았습니다. 승리가 주는 열매를 그때 처음 맛봤어요. 11년 인생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달콤함이었습니다. 동시에 자신감이 붙었죠. 복싱 3개월 해서 3년 차 언니를 이겼네? 계속하면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겠구나.  

 

그 언니와 실전을 방불케 하는 스파링을 펼쳤습니다. 경기 후 언니와 ‘절친’ 사이를 유지하는 데 문제는 없었습니까. 

 

그 뒤로 말도 안 했어요(웃음). 서로 죽일 듯이 싸웠으니까. 남남 된 거죠. 

 

“탈북자란 이유로 날 미워하던 친구들에게 성공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최현미는 2007년 9월 프로로 전향한 이후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프로통산 전적은 18전 17승(4KO) 1무(사진=최현미 제공)

최현미는 2007년 9월 프로로 전향한 이후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프로통산 전적은 18전 17승(4KO) 1무(사진=최현미 제공)

 

최현미의 이름 앞엔 두 가지 수식어 따라붙습니다. 하나는 ‘무패 복서’입니다. 프로통산 18전 17승(4KO) 1무를 기록하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탈북 복서’입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운동에만 집중하고 있던 13살 때였어요. 2003년 12월 어느 날 아버지께서 여행을 가자는 겁니다. 목적지가 한국이라는 건 몰랐어요. 중국으로 건너가 2주 동안 이동만 했습니다.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면서 어딘지 모를 곳으로 나아갔죠. 진짜 여행인 줄 알고 마냥 좋아했어요. 

 

여행처럼 재밌었습니까. 

 

국외로 나간 게 처음이었습니다. 모든 게 새로웠죠. 하루가 지날수록 날씨가 따뜻해지는 건 아주 신기했어요. 처음엔 옷이 두꺼웠는데 점차 얇아졌죠. 2주 후엔 더워서 잠을 못 잘 정도였어요. 이동만 했을 뿐인데 날씨가 다를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가족이 여행 중인 게 아니란 걸 알았죠. 

 

계기가 있었습니까.   

 

우리가 도착한 곳은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선이었어요. 아버지가 뱃놀이하자고 했습니다. 카누 배를 타고 베트남으로 넘어갔죠. 그때 처음 물어봤어요. “아버지, 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라고. 아버지께선 “여긴 베트남이다. 지금 한국으로 갈 계획이다. 중국보다 잘 사는 나라”라고 했어요. 솔직히 당시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몰랐습니다. 

 

한국을 몰랐다?

 

한국을 남조선이라고 배웠습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지구상에 있는지 알 수 없었죠. 아버지가 “한국으로 간다”고 해서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새 나라로 가는 줄 알았어요. 이때부터 정말 힘들었습니다.

 

어떤 게 가장 힘들었습니까.  

 

베트남에서 가족이 흩어졌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갈 날을 기다렸죠. 문제는 아버지와 오빠였어요. 헤어지고 4개월 동안 연락을 못 했습니다. 아버지와 오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하루하루가 걱정이었어요. 편히 잠든 날이 없었습니다. 결국 어머니께선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이 안 좋아지셨죠.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4개월입니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나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2004년 7월 27일. 정확히 기억합니다. 딱 하나만 생각했어요. 아버지, 어머니, 오빠와 함께 있고 싶다. 한국으로 오는 과정부터 정착하는 것까지 너무 힘들었습니다. 

 

북한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구슬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복싱 생각은 안 났습니까. 

 

복싱이고 뭐고 가족들과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학교에 적응하는 시기까진 복싱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수업 듣고 재미난 추억 만들면서 새로운 길을 찾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에 사건이 터졌죠. 

 

어떤?

 

제가 먼저 다가가는 성격입니다. 친구들을 금세 사귀었어요. 하지만, 모든 친구와 가까이 지낼 순 없었습니다.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날 싫어하는 친구들이 있었죠. 미술 시간이었어요. 물통에 물 뜨러 가던 중에 한 친구와 어깨가 부딪쳤습니다. 그리고 제 물통이 떨어졌죠. 그 친구가 한 마디 했어요. 

 

뭐라고 했습니까. 

 

처음엔 다짜고짜 욕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선 “북한에나 있을 것이지”란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 말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아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는 중학교 2학년 사춘기 때입니다. 생각이 많았죠. ‘나는 누구지’란 물음에서부터 왜 여기 있는지 모르는 거예요. 내가 뭘 잘못해서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아. 

 

성공하고 싶었어요. 나를 아무런 이유 없이 미워하는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친구들보다 위에 서고 싶었죠. 방법은 하나였어요.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복싱이었습니다. 

 

최현미는 복싱을 인생의 동반자로 표현한다(사진=엠스플뉴스)

최현미는 복싱을 인생의 동반자로 표현한다(사진=엠스플뉴스)

 

다시 글러브를 낀 거군요. 

 

최현미에게 복싱은 운명이란 생각을 해요(웃음). 세계 최고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장정구 선배가 ‘짠’하고 나타났습니다. 

 

장정구는 한국 복싱 레전드입니다. 어떻게 인연을 맺은 겁니까. 

 

아버지가 주변 분들에게 “딸이 복싱한다”는 얘기를 자주 했어요. 그게 장정구 선배와 가까운 분 귀에 들어간 거죠. 그렇게 장정구 선배를 만나 딱 한 마디 했습니다. 선생님, 세계 최고가 되고 싶어요. 

 

어떤 답을 들었습니까. 

 

제 손을 잡고 장정구 선배와 가까운 분이 운영하는 체육관으로 갔어요. 그리고 체육관 관장께 딱 한 마디 했죠. “내가 키우는 애다. 잘 키워”라고. 그때부터 트레이너 세 분께 집중 훈련을 받았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목표로 구슬땀을 아끼지 않았죠. 

 

다시 글러브를 꼈습니다. 이때부턴 운동에만 집중한 겁니까.  

 

운동만 했으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없었을 거예요. 운동과 학업,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습니다. 

 

아르바이트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요(웃음).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러닝 뛰고 학교에 갔습니다. 수업을 마치면 체육관으로 뛰어가 죽어라 운동했죠. 7시부터 새벽 1, 2시까진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했어요. 사장님들이 웬만한 남자보다 힘이 좋다고 예뻐해 주셨죠. 

 

생활이 어려워서 아르바이트를 한 겁니까. 

 

지방 경기를 가면 일주일 체류비가 필요했습니다. 부모님께 부탁드리기 싫었어요. 스스로 해결하고 싶었죠. 많은 분이 이런 말을 해요. “그 시간에 운동했으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지 않았느냐”고. 제 생각은 다릅니다. 

 

아르바이트 경험이 복서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까. 

 

복서이기 전에 성인입니다. 누군가 “넌 복싱만 해서 세상을 모른다”고 했을 때 받아칠 수 있어요(웃음). 학창 시절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면서 복싱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간절함도 커졌습니다.  

 

2007년 4월 23일 그 노력이 결실을 봅니다. 제5회 연맹회장배 전국여자아마복싱대회 60kg급에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대회 전부터 자신감이 넘쳤어요. 링 위에 누가 올라오든 상대보다 많이 준비했다는 확신이 있었죠. 솔직히 큰 어려움 없이 정상에 올랐습니다. 북한에서부터 꿈꾼 올림픽 출전에 한 발 다가선 거 같아서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을 앞두고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여자 복싱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은 겁니다. 

 

처음 글러브를 꼈을 때부터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했습니다. 

 

복싱을 그만두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땀 흘린 게 헛수고란 생각이 들었죠. 한동안 힘들었습니다. 

 

2007년 9월 프로 전향을 선언했습니다.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운동에 투자한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겁니다. 올림픽에 나갈 수 없다면 프로로 전향해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자고 결심했죠. 

 

“한국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복서로 남았으면” 

 

최현미는 매 경기 죽을힘을 다해 준비한다. 그 결과 최현미는 '무패 복서'로 불린다(사진=최현미 제공)

최현미는 매 경기 죽을힘을 다해 준비한다. 그 결과 최현미는 '무패 복서'로 불린다(사진=최현미 제공)

 

‘타고난 복서’ 최현미는 프로 전향 1년 1개월 만에 WBA 여자 페더급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중국 복서 쉰춘옌을 심판 전원일치 판정(3-0)으로 이겼죠. 아마추어나 프로나 복서는 ‘복서’입니다. 링 위에 올라서기까지 죽어라 운동했어요. 늘 그랬듯 상대보다 더 땀 흘렸다는 확신이 있었죠. 훈련 마치면 상대 분석에 몰두했습니다. 링 위에서 절대 패배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어요.  

 

얼마만큼 훈련해야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겁니까. 

 

경기 일정이 잡히면 그날 준비에만 집중합니다. 오전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눈을 떠요. 곧바로 스트레칭하고 밖으로 나옵니다. 언덕이든 평지든 가리지 않고 10km 이상 뛰죠. 그리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합니다. 오후엔 체육관에서 실전 대비 훈련을 해요. 운동이 끝나면 오후 5시가 조금 넘습니다. 바로 자요(웃음).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다 쏟아붓습니다. 

 

종일 운동만 하는 겁니까. 

 

휴식 시간엔 상대 분석에 집중합니다. 링 위에서 습관이 무엇인지 같은 영상을 수십 번 돌려보죠. 트레이너와 소통하면서 상대의 약점을 찾기도 하고요. 복싱은 링 위에 올라서기 전에 승부가 결정 납니다. 그 자리에 서기까지의 과정이 승패를 결정해요. 운동량은 남·여 복서 통틀어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복서이기 전에 사람입니다. 높은 곳을 바라보고 나아갈 때와 가장 높은 위치에 섰을 때, 사람 마음이 같을 수 있습니까. 

 

세계 챔피언에 오르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을 줄 알았어요(웃음). 잠시뿐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마어마한 부담이 나를 짓눌렀어요. 복서로 사는 동안 ‘챔피언 벨트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갈수록 커졌죠. 이 부담이 나중엔 불안감으로 바뀌었습니다. 

 

불안감?

 

챔피언은 벨트를 지켜야 합니다. 죽을힘을 다해 얻은 벨트를 잃진 않을까 불안했죠. 주변에선 “(최)현미는 이번에도 이길 거야”란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 말이 언제부터인가 공포로 다가왔어요. 

 

부담과 불안, 공포를 어떻게 이겨냈습니까. 

 

훈련이죠. 챔피언에 도전할 때처럼 변함없이 운동하는 겁니다. 그렇게 도전하는 상대를 하나둘 이기면서 확신이 생겼죠. 초심을 잃지 않으면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복싱계가 최현미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체급을 올려서 다시 한 번 챔피언 벨트 획득에 성공했다는 겁니다. 

 

2013년 5월 8일 호주 랭킹 1위 섀넌 오코넬을 판정(3-0)으로 이겼습니다. WBA 페더급 7차 방어전에 성공한 거죠. 2008년 페더급 세계 챔피언이 된 이후 최고 자리에 도전한 7명과 싸워 이겼습니다. 더 이상 적수가 없다고 판단했어요.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싶었습니다. 과감하게 챔피언 벨트를 WBA에 반납하고 체급을 올렸죠. 슈퍼 페더급에 도전한 겁니다.  

 

챔피언 벨트를 반납하고 새 도전에 나선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복서 최현미의 한계를 확인하고 싶었어요. 새 체급에서 다시 한 번 정상에 올라 타이틀 방어전까지 성공적으로 치른다? 상상만으로 가슴이 뛰었습니다.  

 

 

페더급 챔피언 벨트를 반납한 지 세 달 만에 슈퍼 페더급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습니다.  

 

2013년 8월 15일 일본 베테랑 복서 푸진 라이카(당시 37살)와 붙었습니다. 광복절에 열린 경기예요. 복서 인생에서 가장 큰 부담을 안고 나선 경기입니다. 이 경기에서 패하면 은퇴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했죠(웃음). 

 

그 부담을 이겨내고 챔피언 벨트를 획득했습니다. 

 

페더급 챔피언 벨트를 반납하고 슈퍼 페더급에서 새로운 챔피언 벨트를 찼습니다. 이 벨트가 복서 최현미를 한 단계 성장시켰어요. 한·일전에 대한 부담을 이겨냈습니다. 도전자로 언제든 챔피언에 오를 수 있다는 확신도 생겼죠. 이후 경기부턴 링 위에 올라설 때의 마음이 훨씬 편했어요.  

 

마음이 편했다?

 

이전까진 승리에 대한 확신만 있었습니다. 상대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다는 게 자신감과 승리로 이어졌죠. 슈퍼 페더급 챔피언 벨트를 획득한 뒤론 여유가 생겼습니다(웃음). 복싱을 즐길 줄 알게 된 거죠. 

 

한국 여자 최초 두 체급을 석권해 다시 한 번 7차 방어까지 성공했습니다. 

 

복싱을 즐긴다고 해서 경기 준비 과정이 변한 건 아니에요. 항상 절실한 마음으로 훈련했습니다. 복싱은 자기와의 싸움이란 걸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어요. 아직까진 무패지만 언젠가 패하는 날이 올 수 있습니다. 그날이 오는 게 두렵지 않아요. 난 항상 최선을 다했고 도전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으니까. 통합 타이틀 매치에서 승리하면 한 체급 더 올려서 도전할 생각이에요(웃음). 

 

한 체급 더 올린다?

 

더 이상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디까지 도전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요(웃음). 

 

‘무패 복서’입니다. 누구보다 높이 올라갔습니다. 떨어지면 더 아플 수 있어요. 패배에 대한 두려움, 정말 없습니까.  

 

많이 아플 거예요.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나보다 더 땀 흘린 선수가 나타나면 웃으면서 축하해줄 마음이 있어요(웃음). 그게 프로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쉽진 않을 거예요. 복서 최현미는 단 한 순간도 패배를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죽을힘을 다해 훈련하고 상대를 분석할 거예요. 그래도 패한다? 최현미를 아는 분들은 패자인 내게 손뼉 쳐줄 겁니다. 그거면 돼요.      

 

많은 분이 장정구, 유명우 등 복싱 레전드를 떠올리며 한 시대를 추억합니다. 최현미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복싱에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면서 여러 국가에서 귀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제 선택은 한국이었어요. 태극기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한 복서. 도전을 멈추지 않는 선수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도전의 끝은 어디입니까.  

 

글러브를 벗은 후에도 도전은 이어질 겁니다(웃음). 그 끝이 어딘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방향만 정해져 있을 뿐이죠.

 

방향? 

 

한국에서 복서로 살아가는 건 정말 힘듭니다. 복서를 향한 지원이 매우 열악하죠. 재능이 풍부하고 꿈 있는 친구들이 쭉쭉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고 싶어요(웃음).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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