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FC 1995, 13년 만에 제주 유나이티드 만났다

-“부천 SK가 떠난 2006년 2월 2일, 이날을 어떻게 잊습니까”

-“지난해 부천의 승격 실패 아쉬움보다 제주와 만난다는 설렘이 컸다”

-“SK가 떠난 자리, 우린 그대로 남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부천 FC가 13년 만에 제주 유나이티드를 만난 5월 26일. 이날을 손꼽아 기다린 부천 서포터스 헤르메스는 함께하지 못했다(사진=엠스플뉴스)
부천 FC가 13년 만에 제주 유나이티드를 만난 5월 26일. 이날을 손꼽아 기다린 부천 서포터스 헤르메스는 함께하지 못했다(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부천]

2006년 2월 2일 오전 구단 홈페이지에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SK는 제주도로 갑니다’란 문구가 적혀 있었죠. 머릿속이 멍 했습니다. 내 팀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게 믿기질 않았어요.

부천 FC 공식 서포터스 ‘헤르메스’ 회원 20년 차 이기백 씨는 2006년 2월 2일을 정확히 기억했다. 이날 한국 두 번째 프로축구단 유공 코끼리의 역사를 잇는 부천 SK는 제주도 연고 이전을 발표했다.

이 씨에게 부천 SK는 삶의 일부였다. 이 씨가 부천 SK와 인연을 맺은 건 2001년 3월 25일 부천종합운동장 개장 경기(부천 SK-전북 현대)였다. 아버지 손을 잡고 부천 FC를 응원하며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이후 이 씨는 주말마다 아버지와 함께 축구장으로 향했다.

부천 SK는 우리 동네 축구팀이었습니다. 매주 우리 선수들의 플레이를 눈앞에서 지켜봤어요. 이기든 지든 경기를 마치면 구단 버스 앞에서 선수들을 기다렸습니다. 선수들에게 사인을 받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면 하늘을 날아갈 듯이 좋았죠. 부천 SK는 어린 시절의 일상과 추억이 담긴 팀이었어요.

부천 FC 1995 창단, 부천 SK의 빈자리를 메우다

헤르메스 20년 차 이기백 씨는 부천의 K리그2 참가가 확정된 후 백두산에 올랐다. 팀의 밝은 앞날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다(사진=엠스플뉴스)
헤르메스 20년 차 이기백 씨는 부천의 K리그2 참가가 확정된 후 백두산에 올랐다. 팀의 밝은 앞날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다(사진=엠스플뉴스)

SK가 제주로 떠난 지 1년 10개월. 부천종합운동장의 새 주인이 나타났다. 헤르메스 회원이 앞장서 만든 부천 FC 1995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건 숫자 1995. 헤르메스가 유공 코끼리 프로축구단을 응원하기 시작한 해다.

창단은 했지만 성장은 쉽지 않았다. 부천은 창단 첫 시즌(2008)부터 2012시즌까지 아마추어 리그로 운영된 K3리그에 참여했다. 최고 성적은 2009시즌 기록한 4위(총 17개 팀)였다.

이 시기 제주 유나이티드는 잘 나갔다. 2010년 제주는 K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김은중, 배기종, 김호준 등 K리그 정상급 선수가 팀 중심에 섰다. 유망주에서 K리그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한 구자철도 있었다. 구자철은 2010시즌 K리그 30경기에서 뛰며 5골 12도움을 기록했다. K리그 도움왕과 미드필더 부문 베스트 11에 선정됐다.

사연 있는 두 팀이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이른바 ‘노는 물’이 달랐다. 부천이 제주를 만나려면 K리그 팀이 참여하는 FA컵 3라운드에 올라 조 추첨의 행운이 더해져야 했다. 이기백 씨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20살 때 부천이 K3리그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헤르메스 회원들과 전 경기를 함께 했어요. 경기가 어느 지역에서 열리든 찾아가서 응원했습니다. 제주는 신경 쓰지 않았어요. 평생 우리와 함께할 부천이 중요했죠. 당장은 K3리그 소속이지만 언젠가 올라갈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도울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하고 싶었죠. 그게 열렬한 응원이었습니다(웃음).

조금씩 성장하던 부천은 2012년 12월 5일 승강제 도입을 알린 K리그 참가를 확정했다. 제주가 있는 K리그1은 아니었지만 아마추어팀에서 프로팀으로 한 단계 올라섰다.

부천은 7년 동안 K리그2에 머물렀다. 두 차례(2016·2019) 리그 4위를 기록하며 준플레이오프에 올랐지만 승격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지난해엔 리그 3위 FC 안양과 준플레이오프 단판승부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고도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대회 요강 제7조(대회 방식) 3항(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선 무승부 시 정규리그 상위 팀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다)에 따라 2019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런 부천의 심장을 뛰게 하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제주가 2019시즌 K리그1 최하위(12위)에 머물며 다이렉트 강등을 확정했다.

이 씨는 우리가 준플레이오프를 넘어서지 못한 아쉬움은 없었다제주와 13년 만에 만난다는 게 아주 기뻤다고 말했다. 덧붙여 제주의 선수층이 두꺼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축구는 11명이서 하는 스포츠다. 12번째 선수인 우리도 있다. 하루빨리 제주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고 했다.

부천 FC가 낳은 최고 스타로 불리는 이을용(사진=제주 유나이티드)
부천 FC가 낳은 최고 스타로 불리는 이을용(사진=제주 유나이티드)

부천 서포터스만 제주의 강등을 반긴 건 아니다. 부천 프런트도 제주와의 만남이 반가웠다.

2015년부터 부천에서 일하고 있는 유하람 대리는 제주가 K리그2로 내려오길 바란 게 사실이다. 입사 첫날부터 팬들과 비행기 타고 제주로 가는 꿈을 꿨다. 7월 12일 제주 원정이 잡혀있다. 유관중 경기로 진행한다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 대리 역시 부천의 오랜 팬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에 빠져든 유 대리는 지역 프로팀인 부천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친구들과 만나면 부천이 낳은 최고 스타 이을용 코치의 선수 시절 이야기로 밤을 지새운다.

유 대리는 친구들과 부천이란 팀을 통해 한 시대를 공유한다부천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함께 성장하고 추억을 쌓고 있는 팀이라고 말했다.

13년 만에 만난 부천과 제주, K리그를 뜨겁게 달굴 새 ‘더비 매치’는 이제 시작이다

부천 FC(붉은색)와 제주 유나이티드(흰색)의 대결은 이제부터 시작이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부천 FC(붉은색)와 제주 유나이티드(흰색)의 대결은 이제부터 시작이다(사진=엠스플뉴스 이근승 기자)

5월 26일 부천종합운동장. 부천 FC와 제주 유나이티드가 13년 만에 만났다. 그러나 헤르메스는 함께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무관중 경기가 이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이기백 씨는 헤르메스 회원들과 ‘아쉽다’는 얘길 많이 했다결과를 떠나 역사적인 날을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주와 첫 만남부터 보여주고 싶었다. 2006년 2월 2일 SK가 떠난 자리에 우린 그대로 남아있다는 걸. 우리가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부천은 제주에 0-1로 졌다. 후반 추가 시간 주민규에게 결승골을 내줬다. 올 시즌 3연승을 질주하며 K리그2 단독 선두에 올라있던 부천의 첫 패배다. 반면 제주는 부천전에서 올 시즌 첫 승리를 일궜다. 제주는 이날 경기 전까지 1무 2패로 8위였다.

부천 송선호 감독은 13년을 기다린 대결이다. 우리 선수들은 그라운드 안에서 모든 걸 쏟아냈다. 패배의 원인은 전술적인 변화를 주지 못한 내게 있다. 부천 팬들에게 죄송하다. 하지만, 제주전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다음 경기에선 반드시 승전고를 울리도록 준비하겠다. 두 팀의 대결이 K리그 흥행에 도움이 되는 ‘명품 더비’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부천은 올 시즌 제주와 두 번 더 만난다. 헤르메스는 이 가운데 9월 19일 예정된 제주와의 홈경기를 유독 기대한다.

이 씨는 우린 경기장에서 함께 뛸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와의 다음번 홈경기에선 꼭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다. 주심의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린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쉼 없이 응원하고 싶다. 제주와 첫 만남에선 패했지만 개의치 않는다. 부천은 우리와 평생을 함께할 팀이다. 이제 한 번 붙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부천이 13년을 기다린 대결, 5월 26일 끝이 아닌 시작을 알렸다.

이근승 기자 thisissports@mbcplus.com

저작권자 © 스포츠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 후원하기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