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의 첫 대외 연습경기, 파격 시프트 앞세워 2연승

-박병호 등 홈런타자는 물론 이정후 상대로도 극단적 시프트 시도

-수베로 감독, 밀워키의 수비시프트 한화에 이식해

-한화 선수들도 적극 동참…김민우 “거부감 없다” 정은원 “재미있었다”

한화 수비 시프트의 중심 정은원(사진=한화)
한화 수비 시프트의 중심 정은원(사진=한화)

[엠스플뉴스]

한화 이글스는 3월 5일과 6일 대전 홈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 상대 연습경기 2경기를 모두 이겼다. 5일 경기에선 6대 0, 6일엔 8대 0으로 연이틀 팀 완봉승을 장식했다. 투수진의 호투와 타선의 활발한 공격도 돋보였지만, 무엇보다 파격적인 수비 시프트 사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연습경기에서 한화 야수들은 1회초 시작부터 9회 경기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수비 위치를 옮겨 다녔다. 좌우 타자에 따라, 투수에 따라, 구종 선택에 따라 내야수와 외야수가 O/X 게임 하듯 수시로 위치를 바꿨다. 1번부터 9번까지 라인업 전체가 김재환, 오재일로 구성된 팀을 상대하듯 시프트를 사용했다.

이정후 타석에선 2루수 정은원이 우측 외야 잔디의 ‘2익수’ 자리로 이동했다. 보통은 김재환, 오재일 같은 거포 타석 때나 나오는 시프트다. 박병호 타석에선 반대로 유격수와 3루수가 필드 왼편으로 이동했다. 잡아당기는 타자 박동원 타석 때는 외야수들이 평소보다 훨씬 왼쪽으로 이동하는 수비를 펼쳤다.

심지어 데이터가 많지 않은 상대인 김웅빈, 박주홍 등 저연차 선수 타석 때도 내야수들이 우측으로 이동하는 시프트를 썼다. 야구 중계 도입부 수비 위치 소개화면에 나오는 ‘정상 위치’에서 선 모습은 한화 수비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중에는 2루수가 2루 베이스 오른편에 서고, 유격수가 왼편에 서면 그게 오히려 특이해 보일 정도가 됐다.

“작년 기준 정상 수비 위치는 거의 없었습니다. 한두 번 정도를 빼고는 모든 타자 상대로 조금이라도 수비 위치를 움직였어요.” 한화 정은원의 말이다.

‘시프트 달인’ 수베로, 1회부터 9회까지 변화무쌍 시프트 펼쳐

2익수 자리에 선 정은원(사진=중계화면 캡쳐)
2익수 자리에 선 정은원(사진=중계화면 캡쳐)

한화의 과감한 수비 시프트는 카를로스 수베로 신임 감독이 가져온 변화다. 수베로 감독은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내야 수비 코치를 맡았다. 밀워키는 메이저리그에 수비 시프트가 보편화하기 전엔 2010년 이전부터 시프트를 적극 활용해, 탬파베이 레이스와 함께 이 분야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팀이다.

한화에 와서도 수베로 감독은 수비 시프트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시프트 준비는 거제 1차 스프링캠프 때부터 시작했다. 선수들에게 과감한 시프트 사용을 예고하고, 시프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3, 4일 열린 자체 청백전에선 경기 내내 시프트를 사용해 선수들이 새로운 위치에 익숙해지게 했다. 경기 후 수베로 감독은 “선수들이 자기 수비 위치를 벗어난 것에 어느 정도 친숙해지고 편안해진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5일과 6일 연습 경기 키움 전에서도 공격적인 시프트 사용이 돋보였다. 정은원은 “연습 경기니까 제약을 두지 않고 과감하게 했다. 작년에 하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시도하는 거니까, 최대한 많은 타자를 상대로 조금이라도 시프트를 해보자고 했다”고 전했다.

3회 박병호 타석. 시프트 성공으로 3아웃을 잡아냈다(사진=중계화면 캡쳐)
3회 박병호 타석. 시프트 성공으로 3아웃을 잡아냈다(사진=중계화면 캡쳐)

결과는 대성공이다. 한화의 시프트는 높은 적중률을 자랑했다. 5일 경기에선 2회 초 서건창의 1-2루간 타구가 2익수 위치에 있던 정은원에게 잡혔다. 3회초 2사 만루에서 박병호의 3유간 타구도 하주석이 잡아내 3루에서 포스 아웃 처리했다. 6일에도 위기 상황마다 잘 맞은 타구가 수비수 정면으로 가서 잡히는 장면이 속출했다.

물론 이따금 빗맞은 타구가 시프트 반대 방향으로 가서 안타가 되는 장면도 나왔지만, 전체적으로는 시프트가 실패하는 장면보다 성공하는 장면이 훨씬 많았다.

수베로 감독은 “아무리 모든 곳에 고르게 공을 보내는 타자라고 하더라도 장타나 강한 타구가 많이 나오는 부분이 있다. 타구가 가는 방향과 속도를 보고 그 길목에 수비를 배치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야구는 확률의 스포츠가 되고 있다. 우리는 각 팀의 타구 스프레이 차트를 갖고 있다. 우리가 가진 다른 팀의 데이터를 통해 상대가 우리의 시프트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시프트를 활용했다”며 정규시즌 때도 파격 시프트를 사용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시프트 거부감 없다” “아웃 잡는 게 기쁘고 재미있었다” 한화의 밝은 미래

한화 김민우는 투수임에도 수비 시프트 사용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한화 김민우는 투수임에도 수비 시프트 사용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투수 중에는 수비 시프트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프트 덕분에 잡은 아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정상 위치’에 있었다면 잡았을 타구가 안타로 이어지는 장면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일부 구단에서 극단적인 시프트를 쓰고 싶어도 주저하게 되는 원인이다.

한화는 어떨까. 5일 선발 김민우는 시프트 관련 질문을 받고는 “되게 좋았다”라며 미소지었다. “박병호 선배 타구를 비롯해 안타가 될 타구들이 시프트에 여러 차례 걸렸다. 덕분에 편안하게 던질 수 있었다.” 김민우의 말이다.

김민우는 시프트에 대한 저항감이 “없다”고 말했다. “데이터상으로 (아웃될) 확률이 더 높아서 시프트를 하는 것 아닌가. 확률 때문에 그렇게 선택한 것이고, 맞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모든 한화 투수가 김민우와 같은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젊은 투수가 변화와 새로운 시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좋은 신호다.

야수들 역시 시프트 사용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정은원은 “재미있게 했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 경기했다”며 “타구가 내게 오지 않아도, 다른 선수에게 공이 가도 집중하게 됐다. 타자를 잡으면 기쁘고, 아웃이 늘어가는 게 기분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5일 연습경기에서 공수 맹활약한 정은원(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5일 연습경기에서 공수 맹활약한 정은원(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선수들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된 것도 큰 변화다. 벤치에서 시프트 사인이 나오기도 하지만 보통은 선수들이 스스로 위치를 잡는다. 정은원은 “타자 유형에 따라 먼저 움직이고, 거기서 조성환 코치님이 한두 발 정도 조정해 주신다”며 “캠프 동안 계속 그렇게 훈련을 했고, 어느 정도 정립된 상태에서 경기에 나가고 있다”고 했다.

수비 위치를 잡는 과정에 선수들 간에 소통이 필수다. 자연히 그라운드에서 대화가 많아졌고, 수베로 감독이 원하는 활기차고 역동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정은원도 “야구장에서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원래는 위치가 정해져 있지만 이제는 유동적으로 수비 위치가 바뀌어야 하므로 계속 말을 해야 한다.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젊은 한화 선수들이 새로운 시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모습은 한화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수베로 감독도 “선수들의 자세가 만족스럽다. 선수들이 코치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길 원한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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